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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멜빈 버지스 지음, 정해영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2년 7월
평점 :
2분 퀵서비스
여러분의 기억 속으로 책을 배달해드리는 2분 퀵서비스! <빌리 엘리어트> 시작합니다.
소설 <빌리 엘리어트>는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만든 같은 제목의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기반해 영국의 소설가 멜빈 버지스가 재창작한 소설입니다. 주인공 빌리 엘리어트는 탄광촌에서 광부인 아버지 재키 그리고 역시 광부이면서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형 토니와 함께 사는 12세 청소년입니다. 권투 수업 중에도 우아한 동작을 생각하며 옆에서 진행되는 발레 수업에 눈길을 계속 주던 빌리. 혼자서 몰래 발레 동작을 따라하다가 발레 교사인 윌킨슨 선생님에게 그 모습을 들키고 마는데, 선생님은 빌리의 재능을 한 눈에 알아보고 발레를 가르치기 시작하죠. 하지만 아버지 재키와 형 토니는 여성들이나 하는 발레를 빌리가 배우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탄광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때문에 벌어진 파업으로 인해 학원비를 지원하는 데 더욱 어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빌리의 강한 의지와 윌킨슨 선생님의 설득에 아버지 재키는 마음을 바꾸었고, 빌리는 왕립 발레 학교 입학을 위한 지역 오디션을 준비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오디션 직전, 형 토니는 파업 시위 도중 경찰을 다치게 한 죄로 재판에 넘겨지고, 가족의 재판에 참석해야 했던 빌리는 지역 오디션에 불참하고 맙니다. 윌킨슨 선생님은 크게 실망했지만 아직 런던에 직접 가서 오디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겨울에 난방조차 할 수 없어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인 피아노마저 부숴 땔감으로 사용한 빌리의 가족을 포함해, 탄광촌의 모든 사람들이 오늘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 이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아버지 재키와 형 토니는 마을회의에서 빌리를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특히 방금 재판을 받아 마을 사람들의 영웅으로 떠오른 토니의 연설 덕분에 빌리는 가족들과 함께 런던으로 가 오디션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빌리는 오디션에 합격했을까요? 탄광촌 사람들은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산업구조의 급변에 직면해 쇠퇴해가는 1970~80년대 영국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계급 격차, 젠더 갈등, 가족과 공동체의 역할, 성장기 청소년의 성정체성 고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가로지르는 명작 소설, <빌리 엘리어트>입니다.
2종 보통 키워드
꼼꼼하게 책을 읽은 당신을 위해 두 단어로 핵심을 짚어드리는 2종 보통 키워드입니다.
제가 꼽은 단어는 <지역문화>입니다. 영국에서 석탄은 산업혁명 시기부터 가장 중요한 자원 중 하나였습니다. 전세계 다른 모든 지역에서 점진적인 경제적 발달이 이뤄져 산업혁명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영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이유가 가까운 곳에서 석탄을 캐올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역사학자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마치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탄광지역은 가장 빨리 공업화된 지역입니다. 일자리가 생기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사람들이 모여들면 문화가 생겨나죠. 이렇게 이른바 “노동자 문화”가 최초로 생긴 지역에서 발생한 소설 속 사건들이 보여주는 문화적 단면을 통해, 우리나라의 공업화된 지역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생각해볼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주인공 빌리를 갈등으로 몰아넣는 것은 권투와 발레라는, 성별에 따라 이분화된 아이들의 선택지입니다. 나는 발레가 더 좋아보이는데 아버지와 형은 내게 권투를 배우라고 하고, 권투를 할 때에도 “요리조리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현대적으로 하고 싶은데 이 사회는 “정정당당하게” “남자다운” 옛날식 복싱을 선호합니다. 이런 이분법은 성장하고 난 뒤에 아이들이 어떤 직업을 가지면 좋은지 판단하는 사회의 선호를 반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권투를 배우는 이유는 권투 선수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아버지 재키가 반복하는 말처럼 “빌리 또한, 내가 했고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했던” 광부 일에 적합한 강인한 체력과 태도를 갖기 위해 훈련하는 과정입니다. 광부에게 “요리조리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일은 거의 필요하지 않을테니까요.
반면에 여자 아이들이 발레를 배우는 이유는, 적어도 제가 읽은 경험으로는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윌킨슨 선생님이 “중산층” 가정의 구성원으로 등장한다든가, 런던에서 잘 사는 사람들이 배우는 게 발레라는 식으로 아버지 재키와 형 토니가 생각하고 있었고 발레 학교 입학과 교육에 실제로 엄청나게 많은 돈이 드는 등의 설정을 보면, 권투와 발레라는 소재는 계급과 경제적 격차에 관한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상상력을 약간만 더 발휘해보자면, 이 탄광촌 공동체의 남성들에겐 중산층이 가져야 할 여러 특성이 불필요하거나 낮게 평가받는 데 반해, 여성들에겐 탄광촌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 못지 않게 중산층이 가져야 할 우아함 같은 덕목 또한 가져야한다는 문화적 압력이 존재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발레를 하는 빌리 그리고 빌리의 친구이자 여장을 좋아하는 크로스 드레서인 마이클은 이런 지역/노동자 문화의 경계에 위치한 캐릭터입니다. 이 둘은 "호모"라는, 남성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할 정도로 탄광촌 사회의 성역할과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인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좋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빌리는 발레 학교 오디션을 받겠다는 소원을 마을 사람들로부터 공인받은 반면, 마이클은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처지라는 점은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요.
“탄광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일인 것 같기도 하지만, <빌리 엘리어트>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광부입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는, 그 동네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광부라면, 광부들의 모임은 경제활동을 하는 마을사람 전체의 모임과 차이가 거의 없겠죠? 그래서 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가 거의 일치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한국의 주요 도시에선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기도 합니다. 한 동네 사는 사람이 모두 광부이거나, 한 회사의 회사원이거나, 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거나 하는 경우 말이죠. 이렇게 한국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한 커뮤니티 안에 살아가는 것을 소셜 믹스, 사회적 계층 혼합이라고 하는데요.
돈이 없는 빌리네 가족을 위해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주는 장면이 제 눈에 띈 이유는 이 사실과 이어집니다. 마을회관에서 공동체의 중요한 문제를 심사하고 의결하는 풍경 자체는 우리에게 그다지 낯선 일은 아니지만, 이 회의에서 "누구누구네 집 아들 유학비용을 모으자"는 내용을 논의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낯선 풍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소설에서도 잘 드러나듯 사람들의 모임이 사실상 노동조합의 기능을 수행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즉, 파업에 참여하는 광부 노동조합이 소설의 중요한 배경인 이유는, 아버지 재키와 형 토니가 조합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광부 노동조합 자체가 이 소설의 문화/정치/경제/사회적 요소가 유지되도록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노동조합는 대기업 공장 노동자들이 결성한 이익집단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유럽에서 상당수의 노동조합은 보험이나 연금 업무도 자체적으로 집행하는 등 동업자 공동체의 기능도 같이 수행합니다.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이유로, 중세 길드의 전통을 노동조합이 물려받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길드란 중세에 있었던 같은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는 장인들의 공동체입니다. 흔히 역사나 경제학에서 길드는 공급을 독점해 가격을 통제하고 기술을 공개하지 않는 등 경제의 발전을 방해한 집단으로서, 자본주의, 공장에서의 대량생산, 시장경제의 발달과 함께 그 힘을 잃어 사라진 경제주체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길드가 관리하는 영역은 생산과 판매에 국한되지 않고 그보다 훨씬 더 넓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생활밀착형 보험과 연금입니다. 길드 구성원들은 길드에 소속된 댓가로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판매가격을 보장받으며 다른 곳에서 개발된 선진 기술에 대한 정보를 거의 댓가없이 받을 수 있었는데, 이에 대한 보상으로 길드에 회비를 냅니다. 길드는 이 회비를 이용해 부상을 당해 일을 할 수 없게 된 길드원에게 생계비를 지급하거나,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은퇴한 장인에게도 돈을 주었습니다. 일종의 상호부조라고 할 수 있는데요. 노조 장학금이라거나 노조 연금보험, 노조 상조회 같은 이름이 낯설지 않고, 탄광촌에서 빌리의 일을 처리하는 게 감동을 주는 일회성 이벤트처럼 보이기보다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 가운데 빌리의 안건이 올라간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2제 아이랑 투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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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를 재미있게 보신 분들에게 무엇을 추천해드릴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영화 두 편이 생각났어요. 두 개 모두 영국을 배경으로 할 뿐만 아니라 영국의 사회상을 통해 계급갈등과 문화격차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인데요. 한 개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이기 때문에 아이랑 같이 보는 걸 권해드릴 수 없어요. 나머지 하나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좌파 성향 감독이라고 평가받는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15세 등급이고, 복잡한 상징 해석이 필요없는 아주 직관적인 영화라 아이와 함께 보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늙은 목수 다니엘와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케이티의 일상을 비춰줍니다. 여러 측면에서 <빌리 엘리어트>와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요. 다니엘을 통해서 산업구조, 경제정책, 사회문화의 변화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어려운 상황에 처하는지 보여주고, 케이티를 통해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 시선이 얼마나 뿌리깊고 심각한지를 보여줍니다. 이 둘의 삶을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하는 영국 사회와 국가 행정 체계에 대한 비판도 함께 담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