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종교사 논형 일본학 18
스에키 후미히코 지음, 백승연 옮김 / 논형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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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다른듯 하면서도 우리나라와 닮은 구석이 참 많은 것 같다. 일본의 종교의 역사를 아주 간략하게 다룬 이 책을 읽고 난 첫 느낌도 그렇다. 종교 부분에서도, 이 사람들은 우리와 유사한 어떤 길을 밟아왔구나. 혹은 그런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 이른바 ‘고층’이라는 관점이 식민지 시기 동안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시각에 알게 모르게 적용된 것을 내가 어디에선가 배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 유사한 것인지, 아니면 관점에 의해 유사성이 발견되는 것인지 가리는 건 내 능력 밖의 일인 것 같다.


신불습합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부터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독자성, 고유성, 정체성이라는 한 묶음과 보편성 사이의 대립. 국사 시간에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유불도(선)의 통합 어쩌고, 중국의 사상적 전통과 구별되는 한국 고유의 사상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저쩌고 같은 말들이 생각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기시감 속에서도 흥미로웠던 것은, 독자성, 고유성, 정체성이라는 범주 아래 놓인 것들이 실제로는 불교의 영향이 없이는 성립조차 될 수 없었다는 것, 고유성이라 불리는 것 속에 이미 불교적 색채가 진하게 녹아있어 우리의 시점에서 그 둘을 떨어뜨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저자의 견해였다. 두 범주 사이의 대립은 그래서 정치적인 것이지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함축되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의미에서 글쓴이가 마루야마 마사오의 표현을 빌렸다는 ‘고층’이라는 비유가 정말 적절하다. 땅의 각 층은 분명히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땅 전체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각 층이 서로가 서로의 성분을 일정 정도 공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층도 단일한 물질로 이뤄져있지 않고 여러 흙의 혼합으로 형성돼있다. 사상사가는 마치 지질학자나 고고학자처럼, 그 땅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탐사하면서 땅 전체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그 모습이 무엇이냐에 따라 우리가 딛고 서있는 땅의 모습과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불분명하지만 우리의 사고방식의 기반이기에 탐구하지 않을 수 없는 그 무엇, 그 탐구의 결과에 따라 우리의 방향이 정해지는 그 무엇, 그것을 ‘고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약간씩 다른 경로를 걷긴 했더라도, 불교의 수입, 중국에서 송나라 이후에 발전한 신유학의 유입, 15세기 이후 기독교의 전파, 18세기 이후 다양한 사상사조의 침공(?)에 대응하는 모습에서도 공통점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든 지배이념에 복무시키고자 하는 권력층의 행동도 그렇고, 기존의 신념체계에 타자를 유연하게(때로는 격렬하게) 받아들이는 이른바 민중들의 분위기도 그렇다. 이런 점은 사상사가 아니라 종교사이기 때문에 고찰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상사라면 입장들의 논리적 정합성과 이론적 논쟁의 승패만을 가리면 되지만, 종교사이기 때문에 그 입장들이 사람들의 삶과 얼마나 호응했는지 고려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근대 시기에 들어서면 더 많이 들어본 이름과 더 많이 보았던 사건이 배경으로 펼쳐진다. 우리와 일본이 모두 (강제로) 세계사의 일원으로 편입되면서 생긴 일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일본에서도 있었다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은 똑같이 한국에서 있었던 (그리고 국사시간에 배웠던) 논쟁을 생각나게 하고, 신도가 종교냐 하는 논쟁은 (성격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오래된 사찰에 국고보조금을 줘야 하는가에 관한 우리나라의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결정적으로, 일본의 입장에선 종전일인 매년 광복절마다 논란이 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문제에 대한 논란과 그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생각해보면, 일본의 종교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아직 살아숨쉬고 있는 현재진행형 안건이다.


<XX사>라는 딱딱한 제목을 지닌 책이 그러하듯, 쉽게 술술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결코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주제이긴 하다. 이렇게라도 압축적으로 읽어둬서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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