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는 맛
존 릴런드 지음, 최인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존 릴런드의 『나이 드는 맛』을 읽었다. 60대에 접어들어 80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미국의 저널리스트가 80대 후반에서 90세를 넘긴 노인 6명을 1년 동안 취재한 뒤 쓴 기사를 엮은 책이다. 취재원들은 퇴행성(노인성?) 질환을 몇 개씩 안고 있고, 건망증과 치매의 경계를 오가는 지적인 상태를 보이기도 한다. 취재가 끝난 직후 두 사람은 실제로 죽기도 했다. 그만큼 이 책에 등장하는 노인들은 말 그대로 죽음을 눈앞에 둔, 내일 죽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영어로는 oldest old라고 한다는데, 나이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많은 사람들이라니 재미있는 표현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들을 취재하면서 행복에 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상한 조합이다. 인간에게 최고의 불행이라 여겨지는 죽음, 그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그 속에서 행복의 조건을 찾아가겠다고 하니까. 더군다나 노인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아직까지 사회적 지위가 있고 활동하는 것에 전혀 무리가 없는 사람들, 정정한 6~70대들을 대상으로 “젊게 살 수 있어요!” 따위의 말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기에 더더욱 그렇다. 젊게 살기엔 너무나 나이들어버린 사람들, 우리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최소한의 활동조차 버거운 사람들이기에, 이 둘을 한꺼번에 연상하기 쉽지 않다.


이런 상식적인 태도에 대해서 작가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오히려 자신이 취재한 초고령층 노인들이 보여주는 삶의 방식을 배워야 진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에 충실하려고 한다. 가족들을 만나고, 다시 사랑에 빠지고, 지나간 날을 추억하고, 해왔던 일을 계속 한다. 반대로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으니, 앞으로 무언가를 해야한다고 구상하는 것은 이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여러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실천할만한 신체적 능력이 없기도 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들이 현재에 충실한 방식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 할 수 있는 것을 얼른 찾아서 지금 당장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작가에 따르면, 미래에 기대를 투영하고 그걸 이뤄냈는지에 따라서 기뻐하거나 실망하는 것은 젊은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모든 불만족과 불행의 원천이 된다. 자신이 “지금” 진짜로 하고 싶은 것, 진짜로 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지 못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함으로써 “미래에는” 그 비교대상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태도는 번영이나 부를 가져다줄 순 있겠지만, 행복을 가져다줄 순 없다. 이렇게 우리는 노인으로부터 행복을 배울 수 있다.


노인이 행복을 잘 성취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원천은 경험이다. 크나큰 불행이 닥쳤을 때 그것을 마냥 외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현실적으로 그 일을 잘 처리하고 감정적으로 감내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이런 부분에서 노인은 분명 강하다. 한 사람의 긴 삶에는 다양한 굴곡이 있고, 현명하게 역경을 대처하는 방법을 익힐 기회 또한 젊은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책에서 나온 말마따나, “대공황을 겪은 사람들에게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는 그럭저럭 견딜만한 사건이었다.” 더군다나, 친구와 가족을 죽음으로 잃어버리고 남은 사람들에게, 그 어떤 사건이 더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내가 보았던 초고령층 노인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중학교 다닐 때 80대 중반의 나이로 돌아가신 친할머니와, 현재 80대 중반으로 하루에 한 번씩 노인정을 가신다는 외할머니다. 대체로 할머니들과 별로 친한 편이 아니라서, 이 책에서 나오는 질문들을 던질 기회도 없고 자신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보았던 친할머니의 마지막 몇 년은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상태는 비슷한 것 같지만(약간 더 심각했나?), 처지는 훨씬 더 열악했다. 거동이 불편한 몇 년간 친할머니는 내 가족들에게 부담이었다. 열 걸음 남짓 떨어져있는 화장실까지 가는 데 보행기의 도움을 받아도 10분은 족히 걸렸다. 부모님은 맞벌이에 나는 낮 시간엔 학교에 있다가 저녁 늦게나 집에 들어가니 거의 항상 혼자 남겨져있었다.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우리의 대우에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무언가를 요구할 땐 항상 소리를 질렀고, 나는 짜증을 냈다. 이 책에 나온 “노인의 행복비법” 같은 것은, 최소한 그 당시엔 내 집엔 없었다. 반면 외할머니는 다소 힘들어하시긴 하지만 버스로 서울-부산을 분기에 한 번씩은 왕복하기도 하고, 시간이 나면 아파트 노인정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지낸다고도 하시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이 책에 나온 노인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서, 마지막으로 들었던 생각은 이렇다. 세계가 변하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져서, 노인의 지혜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는 영역은 정말 많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여전히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의미있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그건 그 사회가 노인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취재원 6명 모두는 양로원과 집을 왔다갔다 하고, 필요할 때에 간병인을 부를 수 있고, 일정한 범위 안에서 무상으로 의료비용과 생활비를 지원받는다. 이런 공적 지원은 한 사회의 구성원인 ‘인간으로서’ 노인의 사회적 삶을 늘린다. 반면 내가 주변에서 보아온 대한민국의 노인의 삶에 이런 토대가 있는가,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다. 부양의 책임은 온전히 가족에게 돌아가고, 모시지 않는 가족에게 불효의 딱지를 붙여 함께 사는 가족에게 스트레스만 쌓이게 만든다. 돌봄에 참여하는 사람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에서, 성평등의 문제와도 얽혀있고, 실제로는 모두가 일하느라 다들 바쁜 상황에서 노인은 집에 홀로 남겨지기에 사회로부터 사실상 고립된다. 이런 식으로 생명만 어찌어찌 연장하는 것이 과연 행복일까, 라는 생각을 나는 내 친할머니를 보면서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책의 요점만은 간단하다. 현재를 살아라,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라, 능력 밖의 사건들과 통제할 수 없는 흐름에 동요하지 말아라. 미래가 없는 상태에 다다라야만 이런 깨달음을 얻어 진짜 행복을 찾게 되는데 그 행복을 만끽할 시간이 너무나도 짧다는 것, 아마 이것 자체가 어쩌면 인간이 짊어져야 할 가장 무거운 짐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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