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 - 종교, 철학, 사랑, 예술에 관한 낭시의 쉽고 친절한 네 개의 강의 카이로스총서 23
장 뤽 낭시 지음, 이영선 옮김 / 갈무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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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 낭시는 이 책에서 신, 정의, 사랑, 아름다움이라는 서로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을 때(그리고 낭시도 의도한 것 같긴 한데) 이 네 가지 주제를 관통하는 더 큰 두 가지 테마가 있다. 열려있음과 관계라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네 개념 모두 단수성(고유성)으로서의 나와 타자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 관한 문제로 설명된다. 세계와의 관계(신), 올바른 관계(정의), 절대적인 관계(사랑), 규정할 수 없는 관계(아름다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까? 낭시에게 이 모든 관계는 “열려있는” 관계로 설정된다. 즉, 이 관계들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타자에 대한 절대적인 인정(또는 타자의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인정) 뿐이다. 사실 이게 제일 어려운 숙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 인정에 기반해 우리는 고정된 관계가 아니라 다양한 소통의 창구를 통해 시간 속에서 그 관계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간다. 이런 창조가 가능한 이유가 바로 낭시가 말하는 ‘열려있음’, 즉 규정되지 않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정도가 책의 내용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추상적인 설명을 논외로 하면 이 책의 깨알포인트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낭시의 짤막한 강연 이후에 이어지는 아이들의 질문 타임이다. 아이들의 질문이라고 하기엔 꽤 수준이 높아보이는 것도 있고, 정말 아이같은 질문도 있다. 그런데 이 질문들의 공통점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하다는 것이다. 역사상 존재했던 철학자들이 평생을 놓고 씨름한 질문들을, 정말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답을 알고 싶기 때문에, 천진난만하게 던진다. 이 질문들 앞에 놓인 낭시는 (실제로 강연장에선 어땠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글로만 봤을 땐) 얘들한테 이걸 어떻게 대답해줘야할지 몰라서 진땀을 흘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때로는 엉뚱한 (것처럼 보이는) 답변을 내놓기도 하고, 상당수의 답변에서는 아이들의 질문을 통해 강연에선 보여주지 않은 진지한 사색의 길을 걷기도 한다. 내가 그 현장에 직접 있었다면 정말 재미있게 웃으면서 지켜보며, 나 스스로도 아이들의 질문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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