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선언 펭귄클래식 80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권화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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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공산당선언』을 읽고 있자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질문은 “왜 지금 공산당 선언을 읽는가?(읽어야 하는가?)”가 될 것이다. 가장 간단한 대답은 “고전이니까”일텐데, 고전의 정의가 “(아무 이유 없지만 일단은) 읽어야 하는 책”이라면 사실 이 대답은 의미없는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게다가 “공산당(과 공산주의)”은 실패한 정치실험이라는, 80%는 맞지만 20%는 틀렸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어떤 선입견도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이 책이 타겟으로 잡고 있는 자본주의의 동시대성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자본주의 세계엔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라는 단순화로 포착할 수 없는 어떤 부분이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이 말이 맞다면 마르크스의 현재 분석도 틀린 것이고, 그 분석에 기반한 미래 예측과 행동강령 또한 제대로 들어맞을 리가 없다. 핸드메이드 소공업인들은 유통 플랫폼의 갑질에 종속되었고, 동네 슈퍼 아저씨들은 대형마트에게 시장을 빼앗겨 가게 문을 닫고 그 마트의 비정규직으로 취직했다. 기술의 발전은 점점 인간이 신경써야 하는 영역을 점유해가는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자본만 있으면 모든 인간들이 각자 가진 어마어마하게 서로 다른 수요를 작은 기관에서 모두 충족시키는 게 이론적으로 가능해지고 있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그 서로 다른 수요를 대면접촉으로 충족시켰던 모든 “소자본가”들이 프롤레타리아가 되어가고 있다는 마르크스의 통찰이 정말 틀린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공산주의 운동의 핵심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도 조금은 다르게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르크스가 생각하는 진정한 공산주의 운동이란, 어떤 세계가 아주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사람들이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로 나눠졌을 때만 이뤄질 수 있다. 이 과정은 순전히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이뤄진다. (이 말에는 수많은 쟁점이 담겨있지만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핵심 교의이기도 한데) 이 경제적 운동은 다른 영역의 어떠한 변화나 노력으로도 막을 수 없다. 또 마르크스가 이 글의 끝에 밝히는 것처럼, (진정한) 공산주의자라면 공산주의를 향한 최후의 일전에 돌입하기 전 벌어지는 모든 국지적 전투에도 우호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공산주의자들의 활동범위는 우리가 소극적이고 국지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넓어야 하고), 실제로 (내 관점에서) 꽤 괜찮은 공산주의자들은 이런 개혁의 길에 들어섰거나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도 바보가 아닌 한 내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는 내 자만이다).


(물론 마르크스는 이런 종류의 단어를 쓰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지만) 그래서 내가 이해한 『공산당선언』의 핵심은, 경제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더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를 지향하는 열망 같은 것이다. 마르크스의 실제 의도가 무엇인지와 무관하게, 『공산당 선언』 자체가 수사적으로 매우 풍부한 문체로 기록되어 있기에 나도 내 멋대로 해석한다면 그렇다는 뜻이다. 더 이상 미래를 기획하며 돈을 모을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뜻의 “월급이 스쳐간다”는 표현이 150년 전 쓰인 이 팸플릿에 이미 등장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 생각에 그리 틀린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당신의 월급이 통장을 스쳐가는 한, 마르크스의 생각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노동자에 대한 공장주의 착취가 끝나고 그가 임금을 현금으로 받을 때가 되자마자, 이번에는 부르주아지의 다른 부분들, 즉 집주인, 상점 주인, 전당포 주인 등등이 그에게 달려든다.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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