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철학자들 - 철학은 어떻게 정치의 도구로 변질되는가?
이본 셰라트 지음, 김민수 옮김 / 여름언덕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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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책이 정말 재미있었다. 거짓말을 조금 더 보태면, 재미없고 흥미없는 심드렁한 문장이 단 한 개도 없었다. 한 줄 한 줄마다, 그리고 그 문장들 사이의 행간마다 정보와 문제의식과 생각할 거리가 가득 담긴 책이었다.


많은 사람들 그리고 대다수의 철학자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공동체가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근대 사회에 들어와서 공동체는 특정한 이념에 대한 복속을 통해 구성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수많은 사람들이 단일한 공동체에 소속감을 느낀다고 발언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공동체는 그래서 “이념”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위대한 독일을 만들고자 했던 나치당에도 이념이 필요했다. 이 책의 초반부에 설명된 것처럼, 나치즘의 기반이 되는 이념은 “게르만” 제일주의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탄생하지 않았다. 히틀러 자신과 그 주변 사람들은 철학에 대한 악의적 편집을 감행했다. 그렇게 국가사회주의의 이념지도가 “칵테일”로서 제공되었다. 맥락도 상황도 고려하지 않은 짜깁기다. 하지만 그 짜깁기에 동원된 몇몇 멘트들을 남긴 철학자들 또한, 맥락도 상황도 고려하지 않은 채 아무런 의식 없이 그런 구절들을 활자로 새겨놓았다는 점에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진 않다.


그렇기에, 조금만 지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나치즘이 표방하는 것들은 아주 우호적으로 이해해봐야 아무말 대잔치 수준이다. 그래서 나치는 그것을 처음부터 정교하게 다듬을 생각을 하지 않고, 학문의 제도를 먼저 장악하려고 한다. 어차피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거나, 그것이 말이 안된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지적인 마비상태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조성되었지만 단지 보이지 않았을 뿐인 단초들 - 결국 반유대주의 - 위에서, 나치는 정부를 점령했고 나치의 이념은 학문제도를 장악했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이 아무말 대잔치의 확산에 참여하거나 동조하거나 침묵한다. 이렇게 아무말 왕국이 탄생하고, 사람들은 권력을 획득한 아무말 앞에서 두 가지 선택지를 강요당했다. 아무말이 아무말이 아닌 것처럼 포장하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하거나, 아니면 아무말 왕국으로부터 탈출하거나.


책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두 대가, 칼 슈미트와 마르틴 하이데거는 포장전문가의 길을 선택했다. 정치(적 행위)의 근본을 구성하는 요소는 적대라는 것이 슈미트의 입장을 가장 간략하게 요약한 문장이 될텐데, 적대라는 단어 앞에는 “유대인에 대한(그리고 즉 소수자에 대한)”이라는 말이 교묘하게 생략되었다. 하이데거는 나치의 유사-낭만적, 반계몽주의적, 반근대적 작태를 탈근대와 고양된 신비주의로 탈바꿈하는 철학적 시를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그것은 합리적 논증이 아니었고, 근거가 있는 주장도 아니었으며, 어딘가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이미지들만 난무하는 언어기호예술일 뿐이었다. 나머지 덜 유명한 학자들은,


“눈 뜨고 보기 힘들만큼 참혹한 인간의 고통이 늘어가는 동안(...) 명예를 놓고 다퉜고 반유대주의의 정확한 개념을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p.141)


반면 탈출을 시도한 유대계 철학자들은, 나치즘이 주구장창 선전하던 “유럽(이라 쓰고 게르만이라 읽는)”이 실제로 지니고 있던 내밀한 문화적 유산과 건전한 지적 전통을 지키려 애썼다. 그들이 그 통찰을 간직하기 위해 동원한 능력은 다양했다. 아도르노의 예민한 문화적 감수성, 벤야민의 (하이데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신비주의적 세계관, 아렌트가 시도한 유대계(라고 쓰고 소수자라고 읽는)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해명, 백장미단의 후버가 구상했던 진정한 독일의 추구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히틀러의 아무말로부터 도망가거나, 저항하거나, 아무말이 “적대”하는 것들을 보호하고자 애썼다. 즉, 


“망명한 유대인들은 순수한 유럽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다.”(p.257)


하지만 이들의 운명은 결코 순탄치 못했다. 반유대주의는 단지 히틀러와 나치즘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전 유럽의 문화적 코드에 깊게 스며든 어떤 것이었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나치 바깥의 반유대주의에 포획되어 나치에게 압송되기 직전 자살했다. 아렌트는 영국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2차대전이 끝나고도 몇 년이나 더 지나서야 미국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아도르노는 미국으로 망명해서도 자기 집 앞에서 반유대주의자들의 시위가 벌어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 동안 나치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런 일이 자행되고 있다는 걸 사람들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치밀하게 외면했다.


나치 시대의 지성사적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한다는 것은 이 책의 큰 장점이지만, 나는 이 점 못지 않게 히틀러의 반대자들이 처한 운명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가 나치라는 딱지를 붙이고 여기에 모든 나쁜 특성들을 몰아넣는 것이, 사실은 우리가 일상에서 저지르는 악덕들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좋은 구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치즘은 영국의 반유대주의에 대한 매우 편한 핑계가 되었다. 미국은 자국 내 나치당원들의 활동을 방관했다. 유대인들은 나치를 벗어났다고 해도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예민함이 극에 달한 철학자와 지식인들은, 유럽과 미국 사회에 공기처럼 깔려있는 반유대주의의 냄새를 그 누구보다도 먼저 맡아야만 했으며, 그래서 고통스러워했다. 우리는 어쩌면, 그 공기를 들이마시며 우리의 정신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공기처럼(또는 유령처럼) 떠도는 차별은, 당연히 전후 복구처리의 불공정한 결과로 나타났다. 몇몇 상징적인 나치 수뇌부 소속 인물들을 제외하면 나치에 협력했던 철학자들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가 원직에 복귀했다. 칼 슈미트는 정치학에서, 하이데거는 철학에서, 아직까지도 절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 되었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언급되는 철학자들이 그 중요도가 포장전문가 두 사람에 비해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솔직하게 말해 그 위상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예술에서도 언제나 문제가 되는 질문,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일을 저지른 사람의 작품을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이 책에서 더욱 더 첨예하게 제기된다. 윤리와 예술작품은 다루는 대상이 다를 수도 있지만, 철학은 윤리 그 자체를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즉, 조금의 논리적 비약을 섞자면, 하이데거와 슈미트의 철학을 한 마디로 줄였을 때 “나치가 되어라”가 된다는 말이다.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 포장해본들, 메시지의 본질을 지워버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나치가 되어라”라고 말하는 철학자들을 가르쳐야 하는가? (그렇다면, 대체 왜 그 명민하다는 아렌트는, 그리고 당대의 수많은 지식인들은, 그 두 사람을 그렇게 상찬하지 못해서 안달이었는가?) 나의 위치는, 누군가가 하이데거를 읽는다고 하면 “그런 놈의 잡소리는 읽을 필요가 없어요”라고 적극적으로 말리지만, 나 스스로는 밥벌이를 위해 포장전문가들의 저술을 읽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자리다. (심지어 집에 몇 권 있다)


안타깝게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내겐 우리나라의 몇몇 철학자들 또한 머리에 스쳐지나갔다. 어용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했던 철학자들의 존재는 저기 멀고 먼 유럽나라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이승만에게는 안호상이라는 철학자가, 박정희에게는 박종홍이라는 철학자가 있었다. 그리고 “국민윤리”라는 무시무시한 초중고 교과과목을 만들어낸, 부끄러운 윤리/정치/사회철학 연구자들이 있었다. 물론 이들은 이제 거의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국민윤리라는 과목 또한 도덕, 윤리를 거쳐 생활윤리나 윤리와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약간) 탈바꿈했다. 하지만 마치 공기처럼 떠돌아 다니는 어떤 것이 나치의 제도화를 통해 소수자들을 질식시키는 독가스로 바뀐 것처럼, 우리의 주변에도 그런 공기가 떠돌아다니지 않으리라고 자신있게 말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슬림은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구호를 그렇게 떳떳하게 말할 수는 없을테니까 말이다.

"눈 뜨고 보기 힘들만큼 참혹한 인간의 고통이 늘어가는 동안, 20세기의 철학자들은 명예를 놓고 다퉜고 반유대주의의 정확한 개념을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p.141)

"망명한 유대인들은 순수한 유럽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다."(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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