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유튜버 “거의없다”의 채널을 참 좋아한다. 그가 한 번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말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영상에 인용한 적이 있었다.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 세 가지가 뭔지 알아? 시나리오, 시나리오, 시나리오.” 영화를 떠받드는 모든 요소들은 결국 그 영화가 전개하는 이야기를 받쳐주기 위한 도구라는 뜻이었고, 따라서 시나리오가 받쳐주지 않으면 영화에 무슨 짓을 해도 “좋은” 영화가 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물론 현대 영화 작법에 고색창연한 생각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겠으나, 시나리오-플롯, 즉 사건의 연쇄의 합리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구한 경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지나치리만치 강조된다. 아무리 옛날 이야기라도 하더라도, 그가 비평하는 대상이 지금으로 치면 뮤지컬과 비슷하다고 할만한 서사비극이니 지금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에 그가 보여주는 관점을 적용하는 게 딱히 무리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비극을 구성하는 여섯 가지 요소는 플롯, 성격, 사상, 조사, 장경, 노래다(6장). 성격은 인물과 캐릭터를 뜻하고, 조사는 대본이며, 사상은 대본에서 등장하는 몇몇 발언들이 보편적 주제에 대해 갖는 태도, 장경은 무대장치나 특수효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의 연구주제인 사상과 기술의 영역에 해당하는 장경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가지에 관해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설명의 목적은 “좋은” 비극을 판별하는 기준을 설정하는 작업이다.


그가 플롯이 중요하다고 누누이 이야기하는 만큼, 이 책의 상당부분은 왜 플롯이 중요한지 그리고 “좋은” 플롯이란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할애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시나리오의 기준과 그의 “좋은” 플롯 사이의 공통점은 발견하기 쉽지 않을지 몰라도, 최소한 플롯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영화는, 특히 비평의 관점에서 좋은 영화는, 사건의 연쇄가 “앞의 사건이 반드시 뒤의 사건의 원인이 되도록” 전개되어 “중간의 어느 한 사건(장면?)을 무작위로 뺐을 때 전체가 말이 안되게끔” 짜여있어야 한다는 것(7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플롯을 제외한 다른 요소들이 그저 부차적인 것만은 아니다. 비극이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콘텐츠가 플롯이라면, 그 콘텐츠를 잘 전달하기 위해선 반드시 나머지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잘 조직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인물과 성격도 일관성 있게 설정해야하고, 조사에 들어갈 단어 하나하나도 세심하게 고르고 캐릭터와 비극의 성격에 걸맞는 운율로 잘 써야한다(20장 이후). “극적” 쾌감과 독립적으로 다뤄질 수 있다는 이유로 이 책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진 않지만(14장), 사상과 장경 역시 가벼이 볼 수만은 없다. 이 원칙들을 잘 지키면, “좋은” 비극이 탄생한다.


물론 이런 관점은 너무나도 옛스런 시각이고, 21세기가 된지도 한참 지난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고루한 시각을 전복시킨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내가 봤던 훌륭한/처참한 예술작품들이 머리에 많이 스쳐지나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영화평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이디푸스 비극의 훌륭함을 논하는 부분(11장)에서 적잖이 <올드보이>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한때는 <100분 토론>에서 울려진 전국민적 유행어였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15장)는 미학자 진중권 교수가 심형래의 <디-워>에 플롯이 없다는 점을 비판하려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한 결과물이었다. 여기에선 각자가 마음 속에 품은 영화가 있을 것만 같다.


예전에 읽었을 때완 다르게 눈길이 가는 부분도 있었다. 나는 힙합음악을 좋아하는데, 그렇다면 20장에서 22장에 이르기까지 문법과 운율과 단어선택을 다루는 부분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랩 퍼포먼스의 효과를 더 극대화하기 위해 문법적 연구를 어떤 정도까지 진행해야 하는지(그리고 진행할 수 있는지), 화자의 성격을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어떤 부분에 유의해야 하는지 등등에 관한 논의가 계속 이어졌다. 고대 희랍어는 읽는 방법이 이미 사라져버린 죽은 언어이지만, 어디에선가(힙플? 힙갤? 힙합LE? DC Tribe? 요즘엔 이런 이야기 어디에서 하는지 모르겠다...) 비슷하게 전개된 지루한 논의를 지켜본 것 같은 데자뷰를 느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제의 논적들을 이 책에서 계속 언급하는 것을 보면, 아마 이 책 자체가 현실의 파피루스 배틀의 산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꽤 몰입했다.


아마도 고전의 가치란, 이런 기시감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2500년 전의 논의를 읽으면서도 그제 내가 봤던 영화, 10년 전에 내가 즐겼던 문화가 떠오르는 것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 중에 이 세계가 끝날 때까지 버려지지 않을 책을 단 하나만 꼽으라면, 난 이 책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비극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예술작품에 분석적으로 접근해서 합리적으로 평론하는 작업의 원형을 꽤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원형이기에, 그것의 창조적 파괴가 우리의 의무로 남겨진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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