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
홍대선 지음 / 푸른숲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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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이 리뷰는 해당 도서를 푸른숲 출판사로부터 증정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오롯이 나로서 살아가는 일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때마침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추석 연휴 바로 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대환장파티가 벌어지기 직전이다. 하지만, 어쩌면 영향을 받지 않으면 ‘나’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존립이 불가능한 처지에 놓일지도 모른다. 그 어떤 인간이 키워주고 돌봐주는 사람 없이 10세를 넘길 수 있겠으며, 자연이 만들고 문화가 다듬은 산물들을 입으로 주워먹지 않고 사나흘 이상을 버틸 수 있겠는가. 이 모든 것들이 세계가 내게 주는 영향이다.


이른바 근대철학을 수놓은 많은 학자들이 염두에 둔 어떤 문제의식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영향을 받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영향을 받으면 내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철학적 차원에서 개별자로서의 인간 즉 개인으로서의 자아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등정을 시작했다. 그 등정은 저술이라는 형태로 이론으로서 남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 이론을 만들기까지 학자들이 보여주었던 삶의 과정이라는 실천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홍대선의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약칭 개되)는 이 개인이라는 등정에서 의미있는 발자취를 남긴 몇몇 철학자들의 생애를 다룬 책이다. 작가가 선정한 철학자는 표지에 나와있는 것처럼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다. 의심을 통해 이들은 각각 최종근거로서의 개인을 정립하고, 자기보존이라는 근본욕망으로 개인을 설명하며, 세계에 대한 도덕적 해석이라는 이상으로 개인을 규정하고, 반성을 통한 변증법적 변화로 개인을 제시하며, 의지의 발현으로 개인을 해석하며, 충만한 힘과 그 구현으로서 개인을 지향한다.


아쉽게도, 저 여섯 철학자가 어떤 주장을 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 책을 들여다봤을 때 알 수 있는 정보는, 저렇게 여섯 문장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내용이 전부다. 그 밖에 사이사이 삽입된, 각 철학자의 주요 개념에 대한 아주 간략한(후려쳤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릴 법한) 설명 정도가 있다. 철학적 주장에 대한 요약이나 정리, 또는 여기에 관련된 쟁점이나 생각할거리를 얻는 목적으로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닐거라 생각한다. 게다가 이 책이 전면에 내세우는 ‘개인되기’라는 주제와는, 최소한 헤겔과 니체는 (이 책에 소개된 내용만 봐서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떤 측면이 분명히 있다. 변화를 강조하고 고정불변하는 것은 없다는 주장 자체로, 이미 개인이라는 개념은 무너져내리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부분을 자세히 다루진 않는다. 대체 무엇이 어울리지 않는지 생각해보고 다른 자료를 찾아보는 일은 독자의 몫이니까.


이 책의 강점은 다른 곳에 있다. 이 책에는, 개인으로서의 철학자들이 개인이 되기 위해 영향을 받는 과정을 담았다는 어떤 역설이 숨어있다. 작가 스스로가 “철학자들의 삶을 통해서” 무언가를 보여주겠다고 말하는 만큼, 서술의 대부분은 여섯 철학자들의 전기적 사실로 채워져있다. 태어난 곳, 가정환경, 시대적 배경, 교류한 사람들, 목도한 사건들. 그 철학자들이 저술로서 남겨놓은 철학적 입장을 포함해, 어쩌면 기행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만한 여러 행보까지도 주변과 끊임없이 주고받은 영향을 통해서 해석된다. 의심하는 성향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대체로 부유한 집안 출신인(철학은 원래 부자들이 하는 것이다!) 이들이 철학의 길에 들어선 것은 부모 세대와 벌인 투쟁의 산물이고 등등.


이렇게 철학자의 견해를 철학자의 삶과 강하게 연관시키는 시도엔 명암이 있다. 한 철학자의 삶을 모르면서 어떻게 그 철학자의 입장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그럴듯하게 들린다. 실제로도 그럴듯한 주장이다.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삶을 무시하면 맥락맹이 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그 철학자가 이론을 제시하면서 추구하고자 했던 진정한 목표, 모든 개인과 우주에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를 구성하고자 했던 철학자들의 의도와 갈등을 일으키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떤 철학자도 자신의 삶에만 국한되는 사상을 제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만약 자기 주장이 자기 삶에만 연결된 것이라면, 아주 좋게 봐줘야 자기서사에서 종결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에 천착하면 관심법으로 흐르기 쉽다.


철학자의 삶과 이론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 두 견해의 대립은, 양쪽 다 맞는 말이기 때문에 맥락맹과 관심법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균형을 맞추거나 또는 타협을 봐야한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관심법 쪽으로 약간은 넘치게 기울어있다. 그래서 과연 이들이 오롯이 개인이었던 것인가, 흔한 말로 결국 시대의 산물 아니고 무엇인가 라는 질문까지 던지게 만드는 지점도 있다. 물론 이런 특징은 작가의 스타일과 집필의도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책은 관심법을 택함으로써 지루함을 버리고, 소설을 읽는 것과 비슷한 유형의 재미를 얻었다. 얼마전 <사피엔스>에서 본 내용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뒷이야기를 하거나 들으면서 낄낄대는 것은 호모속이 갈라져 나올 때부터 내려오는 인류의 습관이라고 한다. 이름만 들어도 졸음이 밀려오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목받지 못할 것이 뻔하다. 그러니까 이 책의 서술방식은 전략의 차원에서 해석해야 할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제목이 제시하는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그래서, 그 여섯 명의 철학자는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었는가? 배경의 영향 아래 놓여있든 혹은 독특한 생각의 과정을 거쳤든 간에, 그들은 철학의 역사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함으로써 유일무이한 개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개되>를 읽는 사람들은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될 수 있는 방법과 태도를 이 여섯 철학자로부터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에 소개된 그 철학자들의 실천이 그들의 철학 전체 또는 일부를 잘 보여주고 있는가? 나는 이 부분이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철학자들의 삶의 사실에 관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책이 더할 나위없이 재미있겠지만, 그 정보들이 각각의 철학과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계속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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