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 2,000년 유럽의 모든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
존 허스트 지음, 김종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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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는 그 역사 공동체에 속해있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일이 그렇게 쉽고 깔끔하게 정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역사에 접근한다면, 우리는 사건과 사고와 인물로 가득한 정리되지 않은 무더기 하나와 대면하게 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약간의 디테일은 생략하더라도 뼈대만 잘 간추린 역사서는 모두에게 필요한 책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렇게 잘 압축된 책을 만나기 쉽지 않다. 사건사고만 나열되어 있어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거나(즉 그냥 외워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나름의 서사를 구축하기 위해 몇몇 중요한 사건들을 자의적으로 날려버리는 그런 책들을 주로 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는 이런 두 가지 난점을 꽤 잘 해결하고 3천여 년에 이르는 유럽의 역사를 아주 간략하게 묘사하는 데 성공한 책이다. 우선 이 책은 1부에서 드라마 요약본보다도 더 짧은 역사 브리핑으로 시작한다. 그 다음엔 현대(근대)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 몇 가지에 관련해 나름의 서사를 2부에서 제공하고, 3부에서는 그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20세기)를 그 서사가 모두 흘러 모여드는 공간으로 제시한다. 앞에서 썼듯 기존의 많은 역사(입문)서가 디테일에 빠져 이야기가 산으로 가거나 아니면 지루함만 제공해주었다면, 이 책은 구성으로 통해서 나름의 긴박감도 제공하면서 우리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틀도 제공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이 책이 보여주는 두 가지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게르만적 특성에 관한 설명이 있다는 사실이다. 흔히 서양(유럽) 문명의 정신적인 두 기둥으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꼽는다. 반면 이 책의 저자는 여기에 “게르만적 특성”이라는 요소를 하나 추가한다. 아마도 저자는 현대 유럽을 이해할 때 앞의 두 가지 요소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어떤 특성을 뭉뚱그려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것은 “싸움을 좋아한다”는 말로 아주 단순하게 묘사되기도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이 특성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함축한다. 예를 들어 근대 유럽 국가들의 세계 정복 사업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포함해 이 요소도 포함시켜야 더 잘 설명이 된다. 또 봉건제라는 서유럽 중세 1000년의 독특한 정치경제체제도 게르만적 특성이라는 것을 배제하고서는 생각하기 힘들다. 이런 태도는 1부의 역사 브리핑 부분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드러난다.


둘째, ‘견제와 균형’의 강조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2부의 각 장은 표면적으로 그리스-로마의 정치사, 교회와 군주의 관계, 권력층과 서민의 다툼을 다루고 있지만, 심층적으로 들여다봤을 때 이 모든 테마를 가로지르는 주제어는 견제와 균형이다. 소수의 권력층 장군과 다수 병사들 사이의 파워게임, 교황과 황제 사이에 벌어지는 끊임없는 기싸움, 각각 이익집단이 되어 충돌하는 부자와 서민. 저자가 직접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갈등의 소산이 바로 현대의 대의민주주의라고 저자가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내가 이해한 이야기 구조가 맞다면, 이 책의 3부에서 다루는 1,2차 세계대전은 이런 견제와 균형이 어그러지고 무너지면서 세계가 파괴적으로 타락하는 사건이 된다.


이 두 요소는, 유럽사를 전부 다룬다고 보기엔 매우 짧은 것처럼 느껴지는 300페이지 남짓한 이 책을 돋보이게 만든다. 이렇게 저자는 자기 나름의 “세계사의 구조”를 보여주며, 중요한 사건들은 명시를 하든 암시를 하든 애를 써서 선보이려고 노력한다. 이 책을 통해서, 세밀한 부분을 찾아 한 단계 더 나아가기에는 매우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문장이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한글의 입장에서 봤을 때)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많아서 약간 안타까웠다. 읽기에 막대한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문장이 원래 영어로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며 더 나은 표현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잡념이 자주 들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했을 때 더 나은 번역이 될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교정/교열/편집의 과정에서 문장에 조금 더 공을 들였다면, 그야말로 빼어난 책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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