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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6년 9월
평점 :
판매중지
이 책을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음을 고백한다.
처음으로 고통을 준 부분은, (이 작가의 글의 성향인지 이 책 속 이야기에서 의도된 설정인지 모를) 끊임없이 나오는 과장된 표현이다. 자기가 느낀 감정은 특별하고, 자신만이 가진 감정이고, 나 이외에 어떤 사람도 여기에 접근할 수 없으며, 그래서 이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고 그걸 잘 서술하고 있다고 굳게 믿는, 내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태도가 글 전체를 지배한다. 이런 태도를 지닌 사람을 가리켜서 보통 “중2증후군에 걸렸다”라고 하지 않나? 문제는 주인공이자 1인칭 시점의 “나”는 이미 꽤 오랜 시간 동안 직장생활까지 한 성인이라는 점이다.
없는 게 차라리 나았을, 중간중간 양념처럼 언급된 어설픈 철학 얘기가 (내 입장에선) 그 “중2증후군”의 성격을 덧씌우는데 꽤 큰 공헌을 한다. 누군가에겐 이 소설의 주된 이야기와 잘 맞아들어가는 것처럼 보일테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것이 좋겠다. 이 부분은 그야말로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 경우엔, 철학자들이 말한 이런저런 경구나 너무 간략해서 실제로는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게끔 편집된 철학적 입장에 대한 설명을 배치한 글을 “겉멋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래서, 설령 그렇게 과장된 감정을 그 정도로 표현해야 할만큼 격렬하게 느꼈고 그것을 올곧게 표현했다고 간주하더라도, 그러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 운명처럼 찾아오는 사랑이라는 믿음은 몇 살까지 유효할까? 래퍼 우원재가 조우찬에게 “산타는 없단다”고 디스한 것처럼, 내가 주인공에게 가서 “운명은 없단다”고 말해주고 싶을 지경이다. 오히려, 그것을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만이 그 시간을 의미있게 보냈다고 자신을 위로할 유일한 수단이기에, 사랑이 끝난 뒤에 실체가 없는 말로 그 풍경을 덮어씌워버릴 뿐이라고. 그리고 이 말이 작가와 주인공에게 하는 말일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었기에 외면하고 싶었다.
한편으론 그 대책없는 낭만이 부러울 따름이다. 너무나도 많은 장면이 단편적으로 묘사된 책의 구성 탓에, 그 단편들 중에 비슷한 일을 겪지 않은 연인은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 장면은 그토록 낭만적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 때 정말 있었을지도 모를 낭만이 내 기억에만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낭만이 사라진 사진엔 죄책감과 후회만 남는다. 그렇게 말하지 말걸, 그렇게 행동하지 말걸, 그러지 않았어야 했는데. 세상 많은 이별 가사처럼, “만약 그랬다면 어땠을까?” 라는 물음표만 워터마크처럼 찍혀 기억 속을 떠돌아다닌다. 이 또한, 멀쩡한 정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이런 분위기는 책 전체를 관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분위기의 정점은 헤어지고 난 뒤 주인공의 생각의 흐름이다. 상대는 바람을 피웠고 그 때문에 헤어졌음에도 그의 생각 속에서 비난의 화살은 자신을 향해있다. 위험하지만 관심법을 펼쳐보자면, 이것은 진심으로 상대를 비난하지 않는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ㅈ같은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비난하지 않는 태도를 통해 자신의 도덕적 고결함을 증명하려 하고 여기에 도취된, 대체 어떤 성장의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 이렇게 되는지 궁금할 정도로 이상하게 뒤틀려있는 정신의 산물이다.
진심의 자책이 아니라 자아도취라는 점은, 너무나도 쉽고 허무하게 폭로된다. 바로 앞 문단에서 ‘떠나간 그는 예뻤고 그는 잘못한 게 없고 나는 그가 그립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 어쩌고’를 읊어대던 주인공은 어디서 예쁜 여자가 나타나니 ‘역시 운명은 나를 버리지 않았어 신은 내 편이야 어쩌고’하며 우디르급 태세 전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선,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 운명같은 사랑을 철석같이 믿는 자칭 낭만파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물론 나는 평생에 공감할 수 없는 느낌이겠지만.
책을 읽은 뒤엔, 혼란만 남았다. 사랑을 대하는 관점이 너무도 다르고, 나는 아직 이런 (내 입장에선 표면적일 뿐인) 풍성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내 감정이 빈곤하다고 해두는 게,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