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치킨! 단어만으로도 마음이 설레고 가슴이 뛰고 손이 절로 가는 아름다운 그 이름, 그리고 앞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며 떠올리기 힘들어지는 그 단어. 정은정 농축산인의 『대한민국 치킨전』은 치킨이란 단어와 엮여있는 연관관계를 산산이 조각내버리는 책이다.


난 이 책을 읽기 전에 XSFM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 출연분을 먼저 들었다. 그리고 그 분량이 정말 이 책을 사고 싶게 만든다. 조금은 아쉽게도, 방송에 자신의 경험담 몇 가지를 더 추가한 것 이외에, 방송과 책 사이에 별 차이는 없다. 심지어 방송에서 그렇게 재미있게 말했던 에피소드 대부분은 책에 수록되었다. 만담과 재미를 추구하는 독자라면 책을 읽기보단 팟캐스트를 듣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팟캐스트를 들은 뒤에 이 책을 읽으니 독특한 효과가 생겼다. 거의 오디오북을 읽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책을 읽는 속도 자체는 약간 느려지지만, 그만큼 상상하는 맛이 있어 책읽기가 지루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약간은 덜 정제된 상태의, 술술 읽히는 구어체로 쓰인 책이다. 물론 말하는 것을 거의 그대로 옮긴 양식이니 만큼 비문이 제법 있지만, 이것은 일장일단이 있는 스타일의 문제라서 굳이 문제삼을만한 부분은 아니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대한민국 치킨전』은 치킨백서라고 할 만큼 치킨에 관한 모든 것을 써놓은 책이다. 후라이드 치킨의 수입의 역사, 종류와 그에 따른 제작법, 주요한 배달음식이 된 이유, 치킨 자체를 둘러싼 산업구조, 완제품 치킨을 넘어서서 치킨을 만드는 원료의 산업과 그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까지. 이 책 속에는 어디선가 지나친 풍경, 마주했던 사람들, 내가 지불한 돈이 담겨있다. 가히, 책 속에서 튀김기름의 내음이 난다고 할 만하다.


그럼에도 치킨에 관해 즐거운 이야기만 던지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 현재, 미래 모두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서술에 가깝다. 즉, 실체 없이 지배하는 이른바 “자본”이 우리 삶을 어느 정도까지 잠식했는지를 보여주는 소재로서의 치킨에 가깝다. 닭은 하림이, 기름은 해표가, 밀가루는 제일제당이, 가게의 인테리어와 주방은 BBQ가, 배달은 배달의민족이 지배하는 시대다. 물론 이들의 규모와 성격을 자세히 따지자면 각자의 특징이 있겠으나, 우리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것들이 우리 삶의 가장 밑바닥마저 지배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성격을 지닌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넓은 의미에서의 우리 생활세계의 “수직계열화”다. 


“수직계열화”의 문제는 우리 삶의 본질과 연결되어 있기에 더욱 중요하다. ‘그렇게 닭을 많이 먹게 되니, 행복하십니까?’ 우리는 정말 닭을 싸게 먹게 된 것일까? 꼭 그렇지도 않다. 업계의 주요 브랜드의 치킨값은 2만원대를 오르내린다. 이렇게 비싸진만큼 치킨집 사장들은 행복해졌을까? 치킨값이 올라서 닭을 덜 먹게 되었으니, 그만큼 덜 죽어도 되는 중병아리들은 행복할까? 그렇다고 치킨값이 싸지면, 우리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주 오래 전에 진중권이 썼던 표현을 다시 언급하자면, 수직계열화는 “이익을 사유화하고 손해를 사회화한다.” 늘어나는 행복은 누군가에게 이전되고, 줄어드는 행복은 어딘가로 전가된다. 


책에선 마무리 부분에만 살짝 언급되지만, 글쓴이 정은정 농축산인은 <그것은 알기 싫다>의 마지막 회에서 거듭 강조했다. 치킨의 수직계열화는 다가와서는 안되지만 이미 지나간 우리의 미래라고. 수직계열화에 성공한 산업 분야는 치킨 뿐만이 아니다. 동시에, 아직 수직계열화되지 않은 다른 수많은 품목이 그 대열에 들어서길 기다리고 있다. 특히 먹거리 산업의 변화는 단순히 가격과 품질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생명을 저당잡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책의 재미와 별개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재미있는 책이다. 농축산인의 말에 따르면, 다음 타깃은 삼겹살이다.


이 책의 이런 의미와는 별개로, 책 후반부로 갈수록 앞에서 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일이 많아진다는 점은 못내 아쉽다. 물론 배치되는 맥락과 표현방식이 약간씩 달라지긴 하지만, 책이 짧은데다 한 번에 후루룩 읽을 수 있는 탓에 했던 이야기를 또 언급하면 금방 떠오른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 책의 큰 그림은 4장인 「치킨 약전」에 챕터 제목 그대로 집약되어 있다. 다른 디테일 없이 치킨에 관한 뼈대만 추리고 싶다면 이 장만 읽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치킨전을 읽으며 치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글의 앞머리에 쓴 것처럼, 이제 치킨은 더 이상 행복의 동의어가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고 먹지 않게 된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은 다음날 나는 핫크리스피를 먹으러 KFC에 갔고, 그 뒤엔 친구들과 월드컵 예선 멕시코전을 보면서 버켓을 뜯었다. 하지만 아마도, 치킨에 대해 걱정하는 내 마음과 크리스피의 튀김옷을 향해 손을 뻗는 내 손의 불일치를 평생 고민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