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처럼 이 글은 주로 건축(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건축물이라는 대상에서 파생되는 여러 미학적 단상들을 모아놓은 글이다. 그래서 건축물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삶도 다루고,난해한 미술작품도 다루고, 몇몇 학자와 비평가의 이름도 나온다. 말하자면, 건축을 소재로 삼아서 꾸려놓은 미학 선물세트인 셈이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사물이 가치에 관해 당신에게 이야기한다. 당신은 그것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연습하면 충분히 사물들의 그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보통에게 사물이 말을 한다는 문장은 수사적 의미를 뛰어넘는다. 사물은 자신의 물성(물적 특성)을 통해서 진짜로 어떤 의미를 전달한다. 매끈하게 잘 빠지고 군더더기가 없는 대상은 절제와 검소를, 반대로 화려하고 장식이 많은 대상은 아름다움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의미란 결국 인간의 활동의 결과물이다. 그 활동을 우리는 흔히 접근 또는 해석이라고 부른다. 대상의 물성이 전달하려고 하는 것은, 물성에 의해서 고정되어 있지만 동시에 우리의 해석에 대해서 열려있다. 해석의 차원에서 절제와 검소는 투박과 무미건조와 유의어(또는 동의어)다. 그 모든 전달사항은 동일한 물성 속에 갇혀있으며, 인간의 이해와 조우하는 현상을 통해 해방되길 기다린다. 물성의 잠재성과 해석의 능동성이 만나는 그 순간 우리는 대상에서 가치, 특히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이것이 “사물이 말한다”는 주장에 대한 보통의 설명이다.


사실의 측면에서 봤을 때는 말이 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장인 “사물이 말한다”는 소리는, 현대미학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특정한 전통이 “해석으로서의 존재”라는 구호를 내세워 채택하고 있는 기본 입장이다(라고 나는 이해했는데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해는 의미 이상의 무언가, 더 나아가서는 어떤 사물의 존재 여부와 그 양상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이다. 이 과정에서 그 어떤 이해도 임의(무작위)적이지 않으려면, 거의 시에 다다른 사실인 “사물이 말한다”는 견해를 채택할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처한다. 말하는 사물들이 나를 둘러싼 세계, 그리고 해석(이해)을 자신과 세계 모두의 존재양식이 되는 인간의 근본 조건. 대충 요약하면, 하이데거와 가다머의 견해가 이렇다.


그렇기에 보통의 견해는 그렇게 낯설은 주장은 아니다. 보통의 장점은 그 견해를 이야기해주는 과정에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세상에 하이데거의 책을 읽고 자신있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조금 처지가 낫긴 하지만, 가다머는 또 어떤가? “말하는 사물들”을 수용하는 방식으로서 예술적 활동의 중요성을 끝없이 강조한 두 사람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책을 읽으면 “으읭?”과 아무말 대잔치의 연속이라는 느낌 뿐이다. 반면 보통은 인간의 삶과 건축과 예술에 대해 쓰기 위해 성실히 수집한 자료를 천천히 내보이며, 어떤 사물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렇게 그는 사물과 우리 사이의 중재자가 되며, 동시에 미학과 우리 사이의 중재자가 된다. 생활에 짓눌린 우리가 놓치는 비현실적 부분을 알려주는, 작두 탄 무당인 셈이다.


물론 해석이라는 활동이 놓인 근본적인 주관성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보통이 우리에게 건네는 대화도 보통의 개인적 생각 이상으로 나아가기엔 걸리는 부분이 있다. 어쩌면, 이런 식으로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태도를 좋아하지 않는 내 성향 때문에 이렇게 삐딱하게 이 책을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이야기꾼으로서, 해석 상에서 흥미로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러로서 보통의 재능은 높게 살만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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