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종속 고전의세계 리커버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책세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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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둘러싼 가장 큰 아이러니는, “여성의 종속”이라는 사회적 현상을 다룬 책이 1세계-백인-귀족-남성이라는 가부장제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지금에 와서는 이 아이러니가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아마 이 책이 써졌던 당시에는 “최고의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사람이 이런 주장을 했다는 것이 이 책에 더욱 설득력을 더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편으로는 밀이 대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 씁쓸하다.


이 책에 부정적인 형태로 등장하는 몇 가지 담론이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은 씁쓸함을 넘어서 서늘함을 느끼게 만든다. 성의 역할이 나눠진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느니, 관습이 좋든 나쁘든 어찌되었든 현재 상태로 보았을 때 성역할을 엄격히 나누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느니, 법적으로 평등이 보장된 지 한 몇 년 정도 지났는데 이런 상태인 것을 보면 원래 여성 일반이 남성 일반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 아니냐느니 하는 말들 말이다. 이러한 여성혐오의 논리는 (능력도 안되면서 혜택을 받아간다는) 무임승차에 대한 비판으로 정당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이야기들은, 19세기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도 참으로 말이 안되는 것이었나보다. 그들이 말하는 자연이란 본성이 아니라 관습이라는 것, 현재의 합리적 선택이 미래의 도덕적 비전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것, 법은 한 순간에 바뀌지만 그 법이 지탱하는 사회는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 그리고 너무나도 오랜 기간동안 여성차별을 감행해온 사회이기에 그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여성들이 등장하는 세대까지 우리는 기다려보아야 한다는 것, 그 전까지 우리는 법과 제도를 통해 적극적으로 차별을 교정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결코 무임승차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하게 만드는 아주 윤리적인 정책이라는 것, 그리고 이렇게 하면 인류의 절반인 여성이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에 포함되리라는 것. 이 정도가 밀의 반박이자 주장이다. 어떻게 보면 논리적이고 온건하고, 또 다르게 보면 비현실적이고 급진적이다.


밀이 비판한 사회와 우리 사회는 얼마만큼 닮았을까? 법적 가족의 중심으로 남자만을 인정하는 호주제가 폐지된 지 이제 겨우 한 세대가 지났다. 면접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 지원자에게 결혼과 출산 계획을 물어본다. 계획이 있다고 하면 떨어뜨린다. 없다고 하면 고용한 뒤에 회식 자리에서 “요새 여자들이 돈버느라 결혼을 안하려고 그래. 그래서 뫄뫄 씨는 결혼 언제 할 거야?”라고 물어본다. 그렇게 마련된 소개팅이 잘 되어서 결혼을 하면, 떨어뜨린다. 그래놓고 취집이니 맘충이니 떠들며 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느냐고 책임을 따져묻는다. 온 사회가 여성을 결혼과 가족의 안으로 몰아넣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모두가 힘들다 말하지만, 이렇게 여성은 여성이라 더 힘들다.


결혼과 직업이라는 문제는, 이렇게 밀의 시대에도 우리 시대에도 여성에게 매우 중요하고 직접적이며 차별의 최전선에서 언급되는 주제다. 이것이야말로, 역사 속의 고전으로서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사리지지 않은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서 우리가 『여성의 종속』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PS. 글쓰기 클래스 여성 수강생 두 분과 각각 같이 읽어보고, 감상문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한 분은 "저자 약력보고 깜짝 놀랐어요. 요즘 사람인줄"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다른 한 분은 "한국인이 현대어로 쓴 다른 좋은 책이 많은데 왜 이 책을 보고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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