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
장동선 지음, 염정용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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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공부했던 나로선, 인간의 생물학적 구성이 행위에 미치는 영향은 항상 관심사의 영역 안쪽에 있었다. 특히나 그 영역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사고와 감정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뇌라는 기관은, 인체의 여러 부분 중에서도 특히 이목을 끈다. 그래서 이 분야를 차분하게 설명해주는 책이 나오면 반갑게 맞이하곤 하는데, 장동선의 『뇌 속에 또 다른 뇌가 있다』 또한 마찬가지다.


뇌과학을 다루는 다른 책에서도 논의되는 부분이긴 하나, 이 책이 특히 강조하는 점은 뇌의 구성의 외부성이다. 우리의 뇌는 항상 뇌 바깥의 어떤 것들과 상호작용하며 구성, 조직된다. 한 편으로는 자연과학자로서 가지게 되는 당연한 입장이겠으나, 다른 한 편으로는 뇌에 대한 연구로 현재 존재하는 인간 개개인을 낱낱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또는 뇌과학이 그런 역할을 담당해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의 바람) 같은 것을 약간은 완화시켜주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치 공기저항과 중력이 없다면 물체는 관성에 의지해 자신의 운동상태를 유지하겠지만 지구에선 일반적으로 그런 상태를 구경하기 힘든 것처럼, 우리의 뇌 또한 일반적인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나 그것을 구현하는 일은 실험실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저자도, 이 독후감을 쓰는 나도,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모든 서로 다른 타자들과(인간에만 국한할 수 없기에 “타자”라는 용어가 더 적당할 것 같다) 영향을 주고 받으며 자신의 모습을 바꿔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지는 것처럼 보인다. 앞부분은 인간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에 인간이 대응하는 이야기가 주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즉, 나와 나 아닌 것들이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가는가, 더 정확히는 나는 ‘나’로 태어나며 다른 것들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관한 설명이 주로 등장하는 것 같다. 반면 후반부는 서로 이미 확립된 인간들과 그들의 구성물 사이의 관계를 주로 보여주고 있다. 타인과의 관계, 협력과 사회적 압력, 도덕적 행위와 그 해석, 문화적 차이 같은 테마들이 그렇다. 전반부의 내용이 단수로서의 ‘나’에 관한 설명이라면, 후반부의 내용은 복수로서의 ‘나’들, 이미 충분한 구성의 결과를 가진 뇌들 사이의 관계로 이해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과거에 뇌과학과 관련된 또 다른 책(데이비드 이글먼의 더 브레인)을 읽어서 그런지, 소개된 실험들 가운데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철학의 영역에서 “퀄리아(qualia, 감각질)” 문제라고 불리던, 같은 주파수의 빛을 볼 때 같은 것으로 인식하는가에 관한 문제가 “범주”의 문제로 정리되었다는 연구결과는 인상적이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언급된 가상현실 프로이트 실험의 경우, 나도 실험군으로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흥미를 끌었다.


사실 책의 내용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실험의 함의 이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충격을 준 내용이 두 가지 있었다. 첫번째는 카우클리커 게임에 관한 것이었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이 언급된 팜빌은 해보지 않았지만, 스머프 마을 만들기나 심시티같은 ‘(농장)키우기’ 장르의 게임을 엄청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쓸데없다고 매도하는 사람들은 내게 모욕감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두번째는 다수 경향성을 뒤집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내가 진실을 알고 있다”고 선포하는 것이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이것은, 대체로, (다른 영역에서는 잘 모르겠으나, 대체로 음모론을 즐겨 사용하는 정치가들이 많이들 그러는 것 같긴 한데) 철학자들이 대체로 자신의 주장을 억지로 정당화하기 위해 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도 과학으로 근거를 찾을 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신기했다.


이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그다지 새로운 정보는 많이 없는 책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험들이 배치된 방향, 즉 우리의 뇌(를 포함한 사실상 인격 전체)는 언제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변화한다는 테마만큼은 내 뇌에 확실히 전달된 것 같다. 이것을 읽으면서, 지적인 노동을 한 만큼 내 뇌의 구성도 조금은 더 촘촘해졌으면 하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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