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질병의 역사 역사 명저 시리즈 17
프레더릭 F.카트라이트, 마이클 비디스 지음, 김훈 옮김 / 가람기획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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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 등록 작업 때에 눈여겨보게 된 책입니다. 찍어놓고 읽게 된 건 상당한 시간을 소요한 다음의 일이지만요.

이 책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끼친 질병과, 질병을 극복하는 역사. 근데 사실 전자는 좀 하아? 싶은 게.... 페스트 같은 일대 사건은 그렇다 치고라도, 로마 제국이 질병 때문에 훈 족의 침입 앞에서 무너졌다는 것은.... 전쟁이란 대개 질병을 유발하지 않습니깡....

뭐 소소로운 딴지는 넘어가고.

역사란 것이 본디 그러하듯이, 이 책을 읽으면서 현실을 재고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요즘 이슈가 되는 것이 쯔나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고초와 황폐한 현장 등을 조명하면서, 재앙이 덮쳤을 때 범죄가 만연하는 이유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들과 법률에 대한 두려움도 그들의 악행을 저지하지 못했다. 아테네 사람들은 모든 사람이 무차별적으로 쓰러져 죽는 광경을 봤기 때문에 자신들이 신들을 공경하든 공경하지 않든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여겨 신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쯔나미 때문에 드러난 선행도 있지요. 세계 각국의 기부와 구호활동이 빗발치고... 전혀 의외의 장소에서 인간 성품의 선량함이 빛을 발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아이쿠 책 감상문 쓰는데에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군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제가 책 중에서 가장 깊은 감명을 받았던 부분은 바로 이 구절입니다.


1803년 스페인 왕은 자신이 지배하는 아메리카 식민지 사람들에게 백신을 접종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스페인 당국에서는 천연두를 앓은 적이 없는 22명의 아이들을 선발하여 그 중 두 명에게 우두 백신을 접종했다. 일행이 아메리카까지 항해하는 동안 열흘마다 한 번씩 2명의 새 아이가 앞의 두 아이에게서 혈청을 접종받았고, 그렇게 해서 활성을 유지한 백신이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 항에 도착했다. 여기서 일행은 둘로 나뉘어져 한쪽 편 사람들은 남아메리카로 들어갔으며 그들 덕에 페루 한 곳에만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접종을 받을 수 있었다. 다른 한 배는 26명의 아이들을 태우고 동양으로... (중략)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필리핀, 마카오, 광둥에 이르렀다. 광둥에서 영국과 미국 선교사들은 그 백신을 중국 내륙 지방 사람들에게 접종했다.

그 장면을 생각하면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됩니다.

26명의 아이들이 서로 건네고 건넨 백신이 동아시아에까지 도달해서, 마침내 전세계 어디에서도 어머니가 마마로 어린 자식을 잃고 비탄에 잠기지 않은 때에 이르기까지의 긴 여정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 말이지요.

분명 스페인은 남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원주민을 학살했으며 신대륙에 천연두를 퍼뜨렸지만, 그 손으로 천연두 백신이 전 세계에 퍼지게 되는 전기 또한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축복도 재앙도, 한 가지에서 오는 것이라면....

인류가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면, 마치 심판이라도 하러 오는 양 '묵시록의 세 기수' 기근과 역병과 전쟁은 인류를 덮치러 왔습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도 결코 그들에게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책에서는 이 시대에 위협이 되는 질병들, HIV, 암, 말라리아, 그리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질병들, 혹은 우리가 잊어버리고 중요시 하지 않는 많은 질병들... 인류가 사람다움을 잊고 무절제한 행태를 수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전 시대의 사람들이 받았던 것과 같은 재앙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리라고 이 책은 경고합니다. 천연두를 물리친 것으로 안심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라고 말이죠. 역사는 저 모든 재앙에서 비롯한 비극으로 얼룩집니다.

하지만 그 뒤편에서는, 그 모든 고통과 비극과 맞선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종두법을 발견한 제너, 매독이 뇌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발견한 노구치, 영국의 도시 공중 위생을 개선하고자 애쓴 채드웍, 그밖에 이름을 들 수조차 없는 많은 사람들. 인간은 26명의 그 아이들처럼, 이웃에게 혹은 미래에 희망을 건넬 수 있습니다.

그래요. 지금도....


Heal the world

make it a better place

For you and for me and the entire human race

Michael Jackson - Heal The World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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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인간 -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
노다 마사아키 지음, 서혜영 옮김 / 길(도서출판)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전쟁과 인간 :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 / 노다 마사아키 지음 ; 서혜영 옮김 ; 길 출판사 2000년

옛날 일기장에도 쓴 바 있는 [전쟁과 인간]의 감상을 다시 한 번 쓰게 되었습니다. 이전 감상문의 자세한 내용은 옛날 일기장에서 검색하시면 오케이. 그리고 NOT DiGITAL님께서 훨씬 훌륭한 감상문을 써두셔서, 이 기회에 트랙백합니다. (이글루스 망해서 날아감...)

말했다시피 [전쟁과 인간]은 읽어볼 가치가 있는 좋은 책입니다. 어느 정도 훌륭하냐면 저자의 신변을 걱정할 정도로 말이죠...(먼 산) 인터뷰에 응했던 전직 일본군인과 헌병 여러분도, 지금까지도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또 하나 인상깊은 문구가 있어서 발췌해둡니다. 전범 재판 당시 나치 치하의 의사회에 대한 저서에서 인용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인간은 변화할 수 없는 사악한 존재라고 해명하는 것이다. 이 재판의 피고들은 자신이 한 행위를 변명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도 냉혹하고 잔인한 행위들이 있었다는 증거물을 제출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형식적인 권리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논거는 될 수 없다. 타인의 죄를 끌어들여 자신의 죄를 부인하는 것은, 제대로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

우리의 죄를 작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죄를 자각한 상태에서 삶을 이어갈 때, 비로소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존경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간적 존경을 얻을 수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이미 살 가치도 없는 것이다.'

-[인간 경시의 독재] 알렉산더 미체를리히와 프류트 밀케 공저

...최근 모종의 범죄에 대해 사회가 끓어오르고 있지요.

저는 그 일에 대해 온전히 객관적인 보도를 접하지 않는 이상 코멘트는 삼가하자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마는....

죄에 벌을 가하는 일은, 어지간히 죄질이 나빠 피고를 사회와 완전히 격리하자는 의미에서 처하는 사형 이외에는, 대개 피고의 갱생을 위해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피해자와 그 주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 복수하고 싶어한다면, 그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겠지요. 너무나 파렴치한 일을 앞에 두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을 방치하는 것도 건전한 사회를 이룩하는 데에 있어서 온당하지 않은 일이겠지요.

그렇지만 지금 미워하고 지금 괴로워하고 지금 분노하는 사람들도...

언젠가,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때 돌에 맞아죽었던 사람, 무참하게 뭉개졌던 사람이, 이루었을지도 모르는 모든 선한 일들, 베풀었을지도 모르는 모든 기쁨, 감내했을지도 모르는 모든 슬픔을- 한 사람의 인생을 우리는 온전히 모두 고려하고 있었는가 하고요.

-뭐, 그렇다고 해서 피고들이 할 말이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요.

살인은 물론이거니와 화제가 되는 모종의 범죄와 같은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가 겪는 고통, 가족들이 겪는 슬픔은, 돈이나 시간으로 보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쪽도 그만한 고초를 겪었다? 그게 어쨌다는 걸까요? 그 사람들은 그토록 슬퍼하고 괴로워했는데.

저 자신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를 작게 만들거나, 그것을 부정하거나, 갚아 없앨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온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걸 없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죄를 짊어지고 인간이 어디까지 긍정을 일구어낼 수 있는가-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명제라고, 저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인간은 변화할 수 없는 사악한 존재라고 해명하는 것이다. 이 재판의 피고들은 자신이 한 행위를 변명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도 냉혹하고 잔인한 행위들이 있었다는 증거물을 제출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형식적인 권리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논거는 될 수 없다. 타인의 죄를 끌어들여 자신의 죄를 부인하는 것은, 제대로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

우리의 죄를 작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죄를 자각한 상태에서 삶을 이어갈 때, 비로소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존경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간적 존경을 얻을 수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이미 살 가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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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반호
월터 스콧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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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이반호 / 월터 스콧 지음 ;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사 2004년

언젠가 방명록에서 psyche님께서 추천하셨던 책. 요전날 도서관 서가에서 발견하여 읽어보았습니다.
감상은....
psyche님, 저도 길베르 파 할게요!!!
랄까나요....

상당히 전형적인 중세 배경의 기사도 로맨스이지만, 파격적인 캐릭터와 유쾌한 상황이 등장하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일단 주인공은 아이반호의 영지를 가진 색슨 인의 후예 윌프레드입니다만... '아이반호의 윌프레드? 그런 녀석이 있었나?=3=' 라는 것이 솔직한 기분이에요. [아이반호]가 매력적인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유쾌한 광대 왐바, 충직한 돼지치기 거스, 쾌활한 은자와 록슬리 씨, 게으름뱅이 흑기사(...), 수전노 유대인 아이작, 우르프레드 노파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 덕분이겠지요. 덧붙여 윌프레드와 로웨나라는 메인 커플링.. 즐. 꺼지삼. 저는 오히려 아이작의 딸 레베카와 브리앙 드 봐 길베르가 훨씬 좋았어요. 네네네.

스포일러를 빼면, 어쨌든 읽을 가치가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이!
레베카! 레베카! 레베카!
두말할 나위 있을까요! 레베카의 고결함과 아름다움과 지혜로움은! 마음을 준 윌프레드에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삽시간에 연애대상에서 제외당하는 수모를 겪어도 조용히 참아넘기는 그 마음씨란... 정조를 지키기 위해 줄 없이 번지점프 뛰려고 드는 그 결단력도 그렇고, 화형대 앞에서도 의연하게 견디는 강함도 그렇고. 아가씨, 멋져! 조금만 더 좋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샤론의 장미, 골짜기의 백합으로서 로웨나 따위는 사단급으로 몰려와도 그 발밑에도 못 미쳤을 겁니다. 크캬캬.

그에 반해 브리앙 드 봐 길베르는 불신자에 흉악무도한 성전 기사이지요. 신을 믿지 않고, 야심만만하고, 사라센 사람을 300명이나 학살하는, 도의와 자비와는 거리가 먼 사나이입니다. 그렇지만 애처로운 실연도 해보았고, 레베카의 강경한 태도에 감명을 받기도 하며, 불타오르는 성에서 그녀를 구해내기도 하지요(레베카 쪽에서는 끌려간 것입니다만...(먼 산)). 마침내 운명의 시간 바로 그 화형대에서, 성전 기사로서의 자신의 명예와 모든 것을 버리려고 하면서까지 레베카를 구하려던 모습은 정말 훌륭했습니다.(애인의 위기에도 침상에서 뒹굴고 있던 어떤 얼빠진 기사놈과는 달리 말이지요... 도대체 명예 운운하면서 목숨 걸고 싸우더니 정작 중요할 때에는 운신도 못하는 것이 뭐가 기사냐?)

성당에 소속된 자의 이교도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이라는 점에서, 저 두 사람은 [노틀담의 꼽추]의 클로드 프롤로 신부와 에스메랄다가 생각나네요. 길베르는 클로드보다 억척스럽고, 레베카는 에스메랄다보다 현명하고 신앙심 깊은 처녀라는 차이는 있지만요. 레베카가 유대인이 아니고 길베르가 성전 기사가 아니었더라면, 혹은 레베카가 윌프레드를 사랑하지 않았고 길베르가 그토록 냉혹하고 난폭하지만 않았더라면,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행복이란 어떤 것이었을까요... 차라리 그 두 사람에게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부질없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ㅜㅜ

아아... 역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그거예요...
나무칼과 베이컨 방패로 훌륭하게 적을 물리친 왐바의 용맹.....(....)
그리고 자칭 검은 게으름뱅이라는 기사와 암자의 은자의 예배(.....)
하지만 저에게 있어서 최고는 프롱 드 봬프의 성으로 보내진 광대 왐바와 돼지치기 거스의 도전장....(.....)

웃기지 않은 장면은, 울리카의 복수로군요. 마지막에 불타는 성에서 무시무시한 이교의 찬가를 부르는 그 장면은 정말 오싹할 정도로 장렬했습니다.

결론: 주인공 커플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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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인간 -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
노다 마사아키 지음, 서혜영 옮김 / 길(도서출판)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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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글루스 2004년 12월 24일 작성한 글입니다)
전쟁과 인간 :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 / 노다 마사아키 지음 ; 서혜영 옮김 ; 길 출판사 2000년

옛날 일기장에도 쓴 바 있는 [전쟁과 인간]의 감상을 다시 한 번 쓰게 되었습니다. 이전 감상문의 자세한 내용은 옛날 일기장에서 검색하시면 오케이. 그리고 NOT DiGITAL님께서 훨씬 훌륭한 감상문을 써두셔서, 이 기회에 트랙백합니다.

말했다시피 [전쟁과 인간]은 읽어볼 가치가 있는 좋은 책입니다. 어느 정도 훌륭하냐면 저자의 신변을 걱정할 정도로 말이죠...(먼 산) 인터뷰에 응했던 전직 일본군인과 헌병 여러분도, 지금까지도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또 하나 인상깊은 문구가 있어서 발췌해둡니다. 전범 재판 당시 나치 치하의 의사회에 대한 저서에서 인용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인간은 변화할 수 없는 사악한 존재라고 해명하는 것이다. 이 재판의 피고들은 자신이 한 행위를 변명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도 냉혹하고 잔인한 행위들이 있었다는 증거물을 제출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형식적인 권리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논거는 될 수 없다. 타인의 죄를 끌어들여 자신의 죄를 부인하는 것은, 제대로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
우리의 죄를 작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죄를 자각한 상태에서 삶을 이어갈 때, 비로소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존경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인간적 존경을 얻을 수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이미 살 가치도 없는 것이다.'

-[인간 경시의 독재] 알렉산더 미체를리히와 프류트 밀케 공저

...최근 모종의 범죄에 대해 사회가 끓어오르고 있지요.
저는 그 일에 대해 온전히 객관적인 보도를 접하지 않는 이상 코멘트는 삼가하자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마는....

죄에 벌을 가하는 일은, 어지간히 죄질이 나빠 피고를 사회와 완전히 격리하자는 의미에서 처하는 사형 이외에는, 대개 피고의 갱생을 위해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피해자와 그 주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 복수하고 싶어한다면, 그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겠지요. 너무나 파렴치한 일을 앞에 두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을 방치하는 것도 건전한 사회를 이룩하는 데에 있어서 온당하지 않은 일이겠지요.
그렇지만 지금 미워하고 지금 괴로워하고 지금 분노하는 사람들도...
언젠가,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때 돌에 맞아죽었던 사람, 무참하게 뭉개졌던 사람이, 이루었을지도 모르는 모든 선한 일들, 베풀었을지도 모르는 모든 기쁨, 감내했을지도 모르는 모든 슬픔을- 한 사람의 인생을 우리는 온전히 모두 고려하고 있었는가 하고요.

-뭐, 그렇다고 해서 피고들이 할 말이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요.
살인은 물론이거니와 화제가 되는 모종의 범죄와 같은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가 겪는 고통, 가족들이 겪는 슬픔은, 돈이나 시간으로 보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쪽도 그만한 고초를 겪었다? 그게 어쨌다는 걸까요? 그 사람들은 그토록 슬퍼하고 괴로워했는데.

저 자신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죄를 작게 만들거나, 그것을 부정하거나, 갚아 없앨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온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걸 없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죄를 짊어지고 인간이 어디까지 긍정을 일구어낼 수 있는가-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명제라고, 저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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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 -상 살림중국문화총서 7
유의경 지음, 김장환 옮김 / 살림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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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글루스 2004년 12월 12일 게시한 글입니다)

세설신어 / 유의경 지음 ; 김장환 옮김 ; 살림출판사, 2000년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송宋나라의 유의경(劉義慶:403∼444)이 편집한 후한後漢 말부터 동진東晉까지의 일화집입니다. 처음에는 [수신기]나 [요재지이] 같은 소설집(여기서 소설은 현대의 소설과 달리, 일화집 같은 의미입니다)인 줄 알았습니다만, 흥미로 몇 장 뒤적거려보니 소설은 소설이되 지인志人소설이더군요. 인간이 아는 것들의 일화를 엮은 지괴志怪(괴이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라는 정도입니다)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는 거지요.

사실 진냥은 위진남북조 시대에 대해 그다지 흥미가 없었습니다. 우선 위나라.... 고백하자면 저, 나관중의 세뇌에 당해 촉한정통론의 똘마니였다구요?ㅜㅜ 삼국지에서 관공을 제일 좋아하기도 하고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위나라는 주적. 그리고 뒤를 이은 진나라 역시 찬탈에 의해 정권을 잡은데다 사마의의 손자가 건국한 것이기 때문에 호감도 낮음. 또한 고등학교 세계사에 있어서 위진남북조 시대란 ① 혼란기 ② 청담사상 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으면 장땡이었지요. 네에, 진냥의 위진남북조 시대에 대한 지식은 고등학교 레벨에서 성장하지 못했던 겁니다...ㅜㅜ

그런 상태에서 흥미 본위로 읽게 된 [세설신어]였습니다만... 글쎄 이게 의외로 재미있는 겁니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지식인들이란 난세에 시달려 무력해진 패거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지독하다), 뭐...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지만, 사람이란 어떤 난리 중에서도 어떻게든 꾸려나가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 혼란기 청담을 토론하는데 열을 올리고 산 속에 들어가는 것을 무슨 로망처럼 여기며 교묘한 말로 모욕과 칭찬을 주고받는 이야기들. 어떻게 봐도 술꾼에 난봉꾼으로밖에 안 보이는 이들이 존경받는 명사였고, 친애하는 벗의 장례식장에서 나귀 울음소리를 흉내내고, 아내와 거침없는 조롱을 주고받고. 제대로 된 유학자가 보면 기겁을 할 이야기들입니다만, 의외로 싫지 않았어요. 파격이라는 것이 아무런 신념도 생각도 없이 마구잡이로 자행되는 것이라면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되기 십상이겠지만-
언젠가 유홍준 교수가 저희 학교에 와서 특강을 하신 일이 있습니다. 주제는 [완당 평전]. 추사 김정희 선생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추사체를 온고지신에 견주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옛 서체에 통달하였기에 추사체 같은 파격적인 기법을 창조해낼 수 있었다고...


또한 인상깊었던 것은 역자의 평이었습니다. '유가사상의 속박을 받던 지식인들이 마음껏 개성을 표출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청담사상은 난세에 대한 도피이고, 지식인들은 무력할 뿐이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아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고 말이지요.

....덕분에 전혀 관심없던 위진남북조 시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관련서적을 뒤지고 있습니다. 이래도 되나.... 논문 주제도 못 정했는데.....

허연이 젊었을 때 사람들이 그를 왕구자와 비교하자, 허연은 크게 불만스러웠다. 그때 여러 명사들과 지법사가 함께 회계의 서사에서 불경을 강론했는데 왕구자도 그곳에 있었다. 허연은 마음 속으로 몹시 분이 나서 곧장 서사로 가서 왕구자와 변론을 벌여 우열을 결정하고자 했다. 격렬하게 서로 논쟁한 끝에 마침내 왕구자가 크게 패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허연이 왕구자의 논리를 사용하고 왕구자가 허연의 논리를 사용하여 다시 서로 변론을 벌였지만 왕구자가 또 패했다. 허연이 지법사에게 말하길 "제자(허연 자신)의 방금 전 의론이 어떠합니까?"라고 하자, 지법사가 조용히 말하길 "그대의 의론은 훌륭하긴 하지만 어찌 그리 심하게 하는가? 이것을 어찌 진리의 중정(中正)함을 구하는 담론이라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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