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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신어 -상 ㅣ 살림중국문화총서 7
유의경 지음, 김장환 옮김 / 살림 / 1996년 1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글루스 2004년 12월 12일 게시한 글입니다)
세설신어 / 유의경 지음 ; 김장환 옮김 ; 살림출판사, 2000년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송宋나라의 유의경(劉義慶:403∼444)이 편집한 후한後漢 말부터 동진東晉까지의 일화집입니다. 처음에는 [수신기]나 [요재지이] 같은 소설집(여기서 소설은 현대의 소설과 달리, 일화집 같은 의미입니다)인 줄 알았습니다만, 흥미로 몇 장 뒤적거려보니 소설은 소설이되 지인志人소설이더군요. 인간이 아는 것들의 일화를 엮은 지괴志怪(괴이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라는 정도입니다)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는 거지요.
사실 진냥은 위진남북조 시대에 대해 그다지 흥미가 없었습니다. 우선 위나라.... 고백하자면 저, 나관중의 세뇌에 당해 촉한정통론의 똘마니였다구요?ㅜㅜ 삼국지에서 관공을 제일 좋아하기도 하고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위나라는 주적. 그리고 뒤를 이은 진나라 역시 찬탈에 의해 정권을 잡은데다 사마의의 손자가 건국한 것이기 때문에 호감도 낮음. 또한 고등학교 세계사에 있어서 위진남북조 시대란 ① 혼란기 ② 청담사상 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으면 장땡이었지요. 네에, 진냥의 위진남북조 시대에 대한 지식은 고등학교 레벨에서 성장하지 못했던 겁니다...ㅜㅜ
그런 상태에서 흥미 본위로 읽게 된 [세설신어]였습니다만... 글쎄 이게 의외로 재미있는 겁니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지식인들이란 난세에 시달려 무력해진 패거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지독하다), 뭐...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지만, 사람이란 어떤 난리 중에서도 어떻게든 꾸려나가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 혼란기 청담을 토론하는데 열을 올리고 산 속에 들어가는 것을 무슨 로망처럼 여기며 교묘한 말로 모욕과 칭찬을 주고받는 이야기들. 어떻게 봐도 술꾼에 난봉꾼으로밖에 안 보이는 이들이 존경받는 명사였고, 친애하는 벗의 장례식장에서 나귀 울음소리를 흉내내고, 아내와 거침없는 조롱을 주고받고. 제대로 된 유학자가 보면 기겁을 할 이야기들입니다만, 의외로 싫지 않았어요. 파격이라는 것이 아무런 신념도 생각도 없이 마구잡이로 자행되는 것이라면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되기 십상이겠지만-
언젠가 유홍준 교수가 저희 학교에 와서 특강을 하신 일이 있습니다. 주제는 [완당 평전]. 추사 김정희 선생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추사체를 온고지신에 견주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옛 서체에 통달하였기에 추사체 같은 파격적인 기법을 창조해낼 수 있었다고...
또한 인상깊었던 것은 역자의 평이었습니다. '유가사상의 속박을 받던 지식인들이 마음껏 개성을 표출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청담사상은 난세에 대한 도피이고, 지식인들은 무력할 뿐이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아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고 말이지요.
....덕분에 전혀 관심없던 위진남북조 시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관련서적을 뒤지고 있습니다. 이래도 되나.... 논문 주제도 못 정했는데.....
허연이 젊었을 때 사람들이 그를 왕구자와 비교하자, 허연은 크게 불만스러웠다. 그때 여러 명사들과 지법사가 함께 회계의 서사에서 불경을 강론했는데 왕구자도 그곳에 있었다. 허연은 마음 속으로 몹시 분이 나서 곧장 서사로 가서 왕구자와 변론을 벌여 우열을 결정하고자 했다. 격렬하게 서로 논쟁한 끝에 마침내 왕구자가 크게 패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허연이 왕구자의 논리를 사용하고 왕구자가 허연의 논리를 사용하여 다시 서로 변론을 벌였지만 왕구자가 또 패했다. 허연이 지법사에게 말하길 "제자(허연 자신)의 방금 전 의론이 어떠합니까?"라고 하자, 지법사가 조용히 말하길 "그대의 의론은 훌륭하긴 하지만 어찌 그리 심하게 하는가? 이것을 어찌 진리의 중정(中正)함을 구하는 담론이라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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