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일제하 무속론과 식민지 권력
최석영 / 서경문화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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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에 대해서 뭔가 보충할 만한 책은 없으려나 하고 한국 근현대사 서가를 배회하다가 발견했습니다.

대체 이런 책을 한국 근현대사 서가에 배열한 것은 무슨 심보란 말입니까?! 저같은 사람이 낚이잖아요!!!

....물론 이런 제목으로 낚이는 저같은 사람은 저 하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넹.....

1910년 일본은 한국을 합병하였습니다. 합병이란 다문 한국을 없애고 법적, 제도적으로 일본에 소속시키는 데에 한정한 것이 아니어서, 한국의 종교나 문화 등 정신적인 면부터 일본의 이해와 합치시키려고 시도했지요. 승려의 도성출입 금지령을 해제하여 환심을 사고 일본 불교를 도입한 것도 그 중 하나랄까요? 일제가 한국 무속을 통제한 양상은, 일제가 한국인을 정신적인 면에서 어떻게 통제하고자 했는지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러한 양상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무속을 통제하기 위해 숭신인조합을 만들고, 한국 무속을 연구하여 어떻게든 일본의 이익에 맞도록 끌어다붙이고, 일제하에서 단군 숭배가 유행하는 것을 보고 대종교에 대항하는 단군교라는 것을 만들어 총독부 측에서 좌지우지 등등....

그밖에도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이 시기 문인 최남선이 비교종교 연구를 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름하여 불함문화론.

.....이 책의 설명만 읽어도 빡이 쳤기에 굳이 불함문화론에 대해서 캐지 않아 저의 설명에는 다소 오류가 있을 수 있겠지마는 간단히 설명하자면

'동북아에는 공통된 천신 신앙(밝)이 있으며 이 신앙이 발생한 근간은 백두산=불함산 등지에 있음. 이 천신 신앙의 근거인 단군과 스사노오는 같은 신임 ㅇㅇ'

.....이 시기가 시기인 만큼 이 학설이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는 불보듯 뻔하지요. 동조동근☆ 팔굉일우★

.........동조동근 팔굉일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일제에 이용당하지 않았으면 그리 문제 될 거 없는 거 아닌가여? 라고 묻고 싶으신 분께.

저는 이런 식으로 광범위하게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해서 한 마디로 같은 거다 하고 정의하고 싶어하는 그런 학설... 아주 싫어합니다. 저는 시베리아와 아메리카 원주민의 샤머니즘에 흥미있어 이것저것 읽어보았는데, 이 두 지역 주민에게는 공통적으로 곰 숭배가 나타납니다. 그럼 이 두 지역, 아니 한국까지 합쳐서 세 지역은 같은 곰 문화권인가여? 네?

문화나 종교에 있어 비슷한 구석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늘 숭배가 보이는 지역은 널리고 널렸고, 지모신 신앙이 나타나는 지역도 그에 못지 않죠. 신화나 전설에 있어 까마귀, 곰, 늑대 등이 맡는 역할을 보면 이상하게 닮은꼴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 그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생, 주변환경, 생활, 역사를 무시하고 하나로 묶어도 좋을 정도의 일일까요?

무엇보다도 싸잡아 묶기 좋아하는 분들에게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들은 하나로 묶지 못하는 '차이점'에 대해서는 아주 깔끔하게 묵살한다는 점입니다.

비슷한 요소를 발견해내고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은 저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건 소일거리로 충분한 것이며, 자신의 머릿속 세계와 다른 점이 있다고 파묻는 것이 있어선 안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책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신사에 얽힌 사연도 재미있었습니다.

일제는 식민 통치 후반기에 오면 신사를 마구 세워서 한국인에게 참배를 강요합니다(진냥의 모교도 신사 자리였다는군요). 전시 동원체제가 완성되기 전까진 그리 효과적이었던 것 같지 않지만.... 그런데 이렇게 신사를 세우면서 아이러니한 것은, 한국인의 민족 시조 단군을 신사에 제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름아닌 일본인 신도 관계자에게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일본의 기기신화는 야마토 정권이 성립하면서 이즈모나 스와 등 다른 지역을 지배할 무렵 성립하였던 지배신화. 기기신화 속에는 이즈모나 스와 지역의 신이 어떻게 천황가의 시조신에게 복속하였는지 묘사하고, 이즈모 대사나 스와 대사가 세워진 계기를 설명하고 있지요.

따라서 일본 신도 관계자들은 당연히 한국에 세워진 신사에는 단군을 제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조선 총독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아마테라스와 스사노오 등만 제사하였던 것입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신도는 그 이전과는 놀라울 정도로 달라졌지요. 이전까지는 지역신을 모시며 어령을 위로하고 사람들을 화합하는 역할을 했던 신도신앙이, 메이지 천황이라는 국가절대권자의 신성성을 증명하고 그 권위에 모든 것을 바쳐야 했던 것입니다.

강한 나라, 큰 나라, 열강의 하나라고 자부하면서.... 그들이 딛고 오른 것은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부수고 일그러뜨려 쌓아올린 그들 자신이었는지. 생각하면 서글프기만 하네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일본 민중이 받은 고통은 우리나라가 식민지로서 겪은 질곡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사실도 알아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는 사이 우리 발밑을 허물고 일그러진 모래성을 쌓아올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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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에서 보낸 1460일 - 사상 최악의 전쟁, 제1차 세계대전의 실상
존 엘리스 지음, 정병선 옮김 / 마티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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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트렌치 코트 까지 마라 트렌치 코트는 소중하다능!

...이 아니라.....

이 책은 1차 세계대전 중 전방의 참호 속에 내몰려 전쟁을 수행하였던 일개 병사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책입니다. 트렌치코트는 이러한 참호전의 아이템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요즘 사람들이 트렌치코트를 보면서 느끼는 모에낭만과 참호전의 참혹함은 동떨어졌다고 어필하고 싶어서 저자(인지 역자인지)는 저런 부제를 단 것 같군요.

요즘은 그래도 옛날만큼 관심은 덜하지만 진냥은 '극한 상황'이라는 시츄에이션에 상당히 흥미를 느낍니다. 표류하는 난파선, 무인도, 고산준봉에 추락한 비행기, 강제수용소 등등. 그런 상황에 처하면 당한 사람의 인격은 도저히 이전처럼 있을 수 없지요. 때로는 완전히 짐승이 될 때도 있는 한편 성인이 태어나기도 하는 장소.

그런 극한 상황 중의 하나는 단연 전쟁터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1차 세계대전은.... 포탄이 쾅쾅 터지고 전차가 굴러다니며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어떤 의미 현대전으로서의 전쟁이 자리잡게 된 장소이지요. 그런 곳에서 병사들이 무슨 일을 당했으며 무엇을 느꼈는가 하는 것은, 전쟁을 모르는- 아니, 전쟁을 모르기에 더욱 우리들이 알아야 할 세계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읽을 가치가 있는 이 책. 풍부한 사진과 기록을 활용하여, 당시 참호에서 고통을 견디며 생사를 걸고 있었던 병사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불결하고 끔찍한 참호 속의 환경, 참호족을 비롯한 온갖 질병, 독가스로 인한 고통스러운 죽음, 높으신 분들에게는 무의미한 명령에 불과하지만 병사들 당사자에게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했던 전선.

그리고 그런 괴로움 속에서도 소소한 즐거움을 찾으며 어떤 숭고함마저 느껴지는 의지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병사들의 면면도 이채로웠습니다. [빨간머리 앤]의 이야기입니다만, 만약 젬 블라이스가 유럽에서 겪고 있는 일을 알았다면 캐나다의 앤과 그 가족들은 혀를 깨물고 죽느니망정 젬을 전쟁터로 보내진 않았겠지요. 하지만 그걸 알았기 때문일까요- 참호 속의 병사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편지에 거의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물론 검열이라는 제도적인 장벽도 버젓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있었다고 해도 먼 곳의 가족들에게 괴로움을 짊어지게 하지 않으려는 병사들의 노력은 애처로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본국의 사람들에게 참호 안의 '청결하고 유쾌한 생활'을 선전하는 이른바 높으신 분들의 수작이 얼마나 저열한지도 절감하였습니다.

또 참호와 참호, 철조망에 둘러싸여 포탄을 사정없이 때려박는 공간을 사이에 두고도, 살인마나 흡혈귀에 비유하는 적국의 병사들과 대치하고도... 때로는 그들 사이에서 기묘한 인간애가 싹트는 것도 기묘했습니다. 어느 크리스마스에는 축구 경기까지 했다지요. 증오하기 위해서 왔으면서, 죽이기 위해 서로 대치하고 있으면서....

요즘은 군대도 전쟁무기도 첨단화를 달리고 있다지만, 만약 전쟁이 벌어진다면 병사들의 생활은 저 시절과 전혀 다를 바 없이 비참할 것입니다. 우선 생사가 내걸릴 뿐더러 적군이 이쪽의 편의를 봐주면서 공격할 리는 없으니까요. 삶과 죽음이 나란히 진창 속에 내버려지는 슬픔.... 그런 슬픔을 끝없이 반복하는 어리석음과 증오와 싸우기 위해서, 우리는 이 책을 곱씹지 않으면 안될지도 모릅니다.

근데 트렌치 코트는 그래도 모에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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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우게쓰 이야기 대산세계문학총서 70
우에다 아키나리 지음, 이한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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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새로이 공부할 곳을 찾아 국립 중앙 도서관에 가보았습니다. 꽤 좋더군요. 편의시설도 잘 되어 있고.

...공부와는 상관없지만... 문학관도 기웃거려 보았더니, 이게 왠일.

문학 서가의 거의 반절을 라이트 노벨이 먹고 있었습니다....ㅇ<-<

예전에는 저도 곧잘 읽었지만 요즘 나오는 라이트노벨은 당췌 읽을 생각이 안 들었는데 이게 한편으로는 다행일지도요.

그 대신 겐지 모노가타리에 관해 모아놓은 서가를 발견했는데, 거기에 덤태기로 꽂혀 있었습니다. [우게쓰 이야기](우게쓰 모노가타리).

이 작품은 흔히 말하는 설화문학입니다. 우리나라의 [금오신화], 중국의 [전등신화]와 비슷한 종류의 작품이지요. 내용도 비슷비슷하지만, 이 작품의 특출난 점은 동북아 삼국 어디든지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의 소재를 일본적으로 해석, 묘사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어느 점이 일본다운 건지 비전공자인 제가 알 리 없지만(...) 해설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으므로 이것을 참고할 수 있으니 문제 없습니다.

재미있게 읽은 것은 첫머리를 장식한 시라미네 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이쿄 법사가 여행을 하다가 스토쿠 천황의 무덤에 들려 추도를 하다 스토쿠 상황의 원령을 만나는 내용입니다.

스토쿠 상황은 양위한 천황인 상황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던 원정 시대의 인물로, 고시라카와 천황과 대립하여 호겐의 난을 일으켰다가 벽지로 유배되었습니다. 유배지에서 원한과 슬픔을 추스리고 경을 베껴서 천황에게 보냈더니 천황은 조정의 반역자가 보낸 것이니 저주의 문구가 쓰여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여 되돌려보냈다지요. 이에 원한이 극에 달한 스토쿠 상황은 귀신 같은 모습이 되어 자신의 피로 경에 저주를 쓰고 분사. 이후 일본을 떠들썩하게 하는 원령의 필두가 되었다고 하는데....

사이쿄 법사는 스토쿠 상황을 달래기 위해 그의 생전 행동을 조목조목 따지고, 원한을 풀 것을 청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 논리가 웃깁니다.

1. 상황은 정치를 바르게 한다는 유학의 가르침에 따라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셨는데, 우리 일본은 예로부터 유학의 가르침을 받들어왔다.(뻥까지마;)

2. 그런데 혁명의 정당성을 설파한 [맹자]의 책만은 싣고 오는 배가 족족 침몰해서 전해오는 바가 없다.(진짜냐?;)

3.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로 미루어보아 혁명 사상은 천황이 다스리는 우리 일본에 맞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어이 얌마...)

...수백 년 후에 읽는 사람도 한 마디 해주고 싶은 설득에 스토쿠 상황이 마음이 흔들릴 리는 없고, 스토쿠 상황은 자신의 요괴를 부려 천하를 더욱 혼란시키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던 법사는 슬퍼하면서 그 마음을 담은 시가를 읊는데, 그 시가를 읊고 비로소 스토쿠 상황은 귀신의 모습이 흐릿해지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들 유학 오해하고 있어요. 뭐, 법사의 경우 자기 본진이 아니니까 조금 오해해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 맹자 까지마라 맹자 까면 사살!

그밖에 쇼킹 아시아스러운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파란 두건'이라는 제목으로, 어느 덕 높은 법사가 일본을 여행하는데(덕 높은 법사의 기본 소양인 것 같군요) 왠 마을에 들렀더니 마을 사람이 법사의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더랍니다. 달래 놓고 이유를 물어봤더니 마을 부근의 절에 있는 주지스님인 줄 알았다나요. 왜 주지스님 보고 까무러치나요- 문제의 주지스님은 과거 다른 곳을 여행하다가 열 몇살짜리 미소년을 데려왔답니다. 주지스님은 그 소년을 매우 아꼈지요(...그러니까, 여러분이 짐작하는 그런 방식의 아낌입니다...). 그런데 그 소년이 가엾게도 병에 걸려 요절했습니다. 주지스님은 미칠 듯이 슬퍼하다가 소년의 시체가 썩어가는 것마저 아쉬워에 살을 핥고 뼈를 빨아 마침내 모조리 먹어치워버렸다고....

...........네네네네네네크로필리아입니까!? 시대를 앞서갔어!!! 너무 앞서갔다고!!!

...아무튼 주지스님은 그 뒤로 시체 먹는 것에 맛들려서 식인귀같은 꼴로 마을 주변을 싸돌아다니며 무덤을 파헤친다는 겁니다. 법사는 그 주지스님을 만나러 가서 그의 행각을 꾸짖고 시가로 만든 선문을 내려주고 돌아오지요. 수 년 후 법사가 그 절에 다시 가봤더니, 이미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몰골이 된 주지스님이 반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선문을 계속 계속 읊고 있었다나요. 법사는 꾸짖는 말을 외치며 그 어깨를 내리치고, 주지스님은 그 자리에서 형체도 없이 무너져버렸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저야 선문답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집착을 경계해서 내려준 말에 또 집착하고 있었던 주지스님의 모습이 기막혔던 것이겠지.. 하고 짐작해봅니다. 좋은 이야기이긴 한데 소재가... 소재가아아아ㅏ아ㅏ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또 다른 모노가타리가 있었는데 다음에 가서 읽어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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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대서사시 게세르 칸
유원수 옮김 / 사계절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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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세르 칸]은 몽골의 서사시입니다. 처음에는 티벳에서 전래하였다가 광활한 몽골땅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면서 몽골의 향취를 듬뿍 머금게 되었다던가요. 몽골 국립중앙도서관에서 17세기 목판으로 소장하고 있는 이런 마이너한 물건을 번역 출간해주신 옮긴이와 출판사에게 건배(.....)

처음에는 티벳 사람들, 이어 몽골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이 작품에는 두 나라의 독특한 정서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우선 그 뿌리를 라마교에 두고 있지요. 서사시의 시작은 석가모니 부처가 코르모스타 텡그리(제석천)에게 텡그리의 아들 중 하나를 사바에 내려보내 칸의 자리에 올라 중생을 구제하도록 부탁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코르모스타 텡그리의 세 아들 중 첫째와 둘째는 '명색이 텡그리의 아들인데 내려갔다 아차해서 칸이 못 되면 개쪽 ㄴㄴ'하고 빼고, 셋째 아들이 그 대임을 맡아 사바에 내려와 게세르 칸이 됩니다.

신화란 것은 예로부터 당시 사람들이 가졌던 세계관, 그들이 나름대로 생각했던 자연의 순리 등을 표현합니다. 제가 신화를 잔뜩 읽으면서 또 한 가지 즐기는 것은, 신화나 전설, 민담은 그것이 만들어진 시기에 사람들이 아름답고 좋다고 느꼈던 것(소위 말하는.. 모에?!), 더럽고 나쁘다고 느꼈던 것들을 비추어준다는 것입니다. 셋째 아들이 하강하면서 코르모스타 텡그리에게 요구했던 보배들은 이 서사시가 쓰여질 무렵 몽골인들이 무엇을 귀중하게 여겼는지 가르쳐줍니다. 터키석 오늬가 붙은 화살, 각궁, 순수한 무쇠칼, 황금 올가미와.... 무엇보다도 영험한 말.

만약 요즘 한국에서 서사시가 쓰여진다면 I7CPU컴퓨터와 23인치 LCD모니터나 샤넬 향수, 구찌 지갑, 디오르 핸드백 같은 것이 등장하겠죠? ...그런 서사시 안 써.

게세르 칸의 캐릭터도 재미있습니다. 우선 처음에 파파인 코르모스타 텡그리가 가라고 할 때 제꺽 가기는커녕 이런저런 소리를 늘어놓다가 온갖 보물과 잘난 형과 여신인 세 누이 등의 빽을 달라고 조릅니다. 그리고 '이거 잘하고 돌아오면 아버지 후계자는 나 ㅋㅋ' ...어이, 어이!

지상에 태어난 게세르 칸은 처음에는 무서운 용모와 바보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어 사바의 부모에게서 구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되로 주면 말로 받아치는 우리의 게세르(...) 신통력을 가지고 부모를 놀려대거나 이복형제와 그 어머니를 관광태우는 일은 예사도 아닙니다(......) 다행이랄지 숙부 초통이 게세르와 그 부모가 꼴보기 싫어 온갖 구박을 일삼자, 게세르의 화살도 그에게로 돌아갑니다만.

코흘리개 조로라는 이름으로 성장한 게세르 칸은 최고의 미녀로 자신과 결혼할 남자에게 무수한 시험을 내리는 로그모 고와에게 눈독을 들입니다. 로그모 고와와 초통은 신통력을 써서 척척 시험을 통과하는 조로를 이런저런 구실로 떨궈내려고 하지만, 떨궈진다고 떨어질 게세르가 아닙지요(....) 게세르가 거룩한 본모습을 드러내자 로그모 고와도 납득하고 결혼하지만, 게세르가 사방세계를 평정하러 다니는 동안 나쁜 마음을 먹습니다. 초통과 더불어 거의 최종보스 레벨. 하지만 게세르를 배신때리고 뒤치기한 두 사람에게 게세르가 내린 형벌은..

로그모에게는 '한 팔 한 다리를 부러뜨려 팔순의 양치기 노인에게 아내로 줌'

숙부 초통에게는 '영험한 조류말이 아홉 번 삼켰다 아홉 번 싸게(...) 함'

이밖에도 시방 세계의 열 가지 해악을 근절시킨 자비롭고 거룩하며 어지신 게세르 카간께서는 열 가지 해악을 근절시킨 만큼이나 저지른 일도 많습니다.

.....사바의 중생들을 구제하러 오신 분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전 도저히 제임스 롤프 씨의 표현을 빌지 않을 수 없군요.


마귀같은 새끼....

...이런 게세르를 어지간해서 말릴 인물은 없지만, 다행히 영험한 조류말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보석은 여자의 꾸미개이고 좋은 말은 남자의 꾸미개'라고 부를 정도로 말을 사랑하는 몽골의 서사시답게 활약이 굉장하지요. 게세르가 빌빌거릴 때 게세르를 격려하고, 바보짓을 하면 따끔하게 일침을 넣기도 합니다. 그래도 자기 숙부를 아홉 번 먹으라고 하는데 싫다고 말은 해보지 그랬어....(말이 말을 어떻게 하냐고 말씀하시겠지만, 영험한 조류말은 말을 합니다! 영험하니까요!)

어쨌든 이야기로서도 충분히 재미있고, 몽골문학의 풍부한 표현을 잘 살려주신 옮긴이 덕분에 저의 마이너한 몽골 덕심이 풍요로워진 작품이었습니다. 자 여러분도 마이너의 길로!(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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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대부가의 살림살이 조선의 사대부 12
이민주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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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 잡지에서 추천하는 책이기에 읽어볼까 했더니 출판사마저 공교롭게도 한국학중앙연구원입니다. 성남에 소재한 근사한 연구기관으로 여기에서 연수를 신청한 적도 있죠. 요즘은 안 하려나요....

이 책 또한 '조선의 사대부' 총서로 출간되었으나.... 다 읽고 싶은데 도서관에 없어요!:Q(연체나 어떻게 해라)

살림살이... 라고는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핵심은 '의관을 정제하다'라는 개념. 현대에도 '잘 차려입는다'(이른바 TPO라나요. Time, Place, Occusion이라나!) 라는 개념은 있지만 몸가짐을 중시한 조선 사대부들에게 옷차림은 또 다른 의미일 테지요.

.....일단 타이틀 사기라는 말을 듣기는 싫었는지 사대부의 살림살이에 관해 언급하긴 합니다.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과 다루는 분야가 사뭇 달라 비교하며 읽는 것도 재미있었네요.


이어 다루어지는 의생활. 학문하는 자가 갖추어야 할 아홉 가지 모습(구용). 네 가지 경건한 태도(지경), 네 가지 하지 말아야 할 일(사물)을 드는데 이 중 '지경'에 의관을 바르게 함이 언급되어 있다지요.

그런 사대부의 의관 정제 순서란?

첫째로 상투 틀기. 망건을 피가 날 정도로 조였다니.... 젊어보인다나요. 또한 계속 상투를 틀면 앞머리가 빠지는데 출세하는 징조라 해 기꺼워했다고 합니다. 머머리 친화적인 조선 왕조!

이어서 갓, 호박 등 멋진 패염은 여성의 장신구 못지 않게 사치라는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지요. 사치 금지법은 고대로부터 연연히 이어져왔고(크루세이더 킹즈3에서도 메뉴 중 들어가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도 건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옷차림. 대부나 학사는 난삼을 입었습니다. 관복 중 최상위는 제사에 입는 예복으로 제향관은 제복, 4품 이상 배향관은 조복, 4품 이하 배향관은 상복을 입었다지요.

융복이나 도포 등 조선 시대의 의복에 대한 설명이며 조선 초기 관복과 조복은 국가에서 지급했으나 중기 이후부터는 관리 본인이 직접 구해야 했다는 사실도 재미있었습니다.

3,4장은 사대부가 여성의 복식과 복식 관리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3대 미성이 글 읽는 소리, 아기 우는 소리, 다듬이질 소리라 하거니와(특히 다듬이질 소리는 혼자 하는 법은 좀처럼 없다는 점에서 고부나 동서간의 화목을 일컫기도 했다지요) 복식을 조달하고 관리하는 행위 자체가 가족의 화합과 발전을 상징하는... 그러한 조선 시대 사대부가였던 겁니다.

다소 아쉬운 점은 어떤 복식은 이렇게 입으면 예쁘다~ 흉하다~ 등으로 서술하지만 독자 대부분이 한복에 문외한일텐데요. 저 또한 당췌 떠올릴 수 없어요....!!!

사진이나 도해를 더 풍부하게 넣었다면 좋지 않을까요? 그렇게 한복의 아름다움으로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 많아지길 바랄 따름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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