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일제하 무속론과 식민지 권력
최석영 / 서경문화사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서 뭔가 보충할 만한 책은 없으려나 하고 한국 근현대사 서가를 배회하다가 발견했습니다.

대체 이런 책을 한국 근현대사 서가에 배열한 것은 무슨 심보란 말입니까?! 저같은 사람이 낚이잖아요!!!

....물론 이런 제목으로 낚이는 저같은 사람은 저 하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넹.....

1910년 일본은 한국을 합병하였습니다. 합병이란 다문 한국을 없애고 법적, 제도적으로 일본에 소속시키는 데에 한정한 것이 아니어서, 한국의 종교나 문화 등 정신적인 면부터 일본의 이해와 합치시키려고 시도했지요. 승려의 도성출입 금지령을 해제하여 환심을 사고 일본 불교를 도입한 것도 그 중 하나랄까요? 일제가 한국 무속을 통제한 양상은, 일제가 한국인을 정신적인 면에서 어떻게 통제하고자 했는지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러한 양상에 관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무속을 통제하기 위해 숭신인조합을 만들고, 한국 무속을 연구하여 어떻게든 일본의 이익에 맞도록 끌어다붙이고, 일제하에서 단군 숭배가 유행하는 것을 보고 대종교에 대항하는 단군교라는 것을 만들어 총독부 측에서 좌지우지 등등....

그밖에도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는데, 이 시기 문인 최남선이 비교종교 연구를 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름하여 불함문화론.

.....이 책의 설명만 읽어도 빡이 쳤기에 굳이 불함문화론에 대해서 캐지 않아 저의 설명에는 다소 오류가 있을 수 있겠지마는 간단히 설명하자면

'동북아에는 공통된 천신 신앙(밝)이 있으며 이 신앙이 발생한 근간은 백두산=불함산 등지에 있음. 이 천신 신앙의 근거인 단군과 스사노오는 같은 신임 ㅇㅇ'

.....이 시기가 시기인 만큼 이 학설이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는 불보듯 뻔하지요. 동조동근☆ 팔굉일우★

.........동조동근 팔굉일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일제에 이용당하지 않았으면 그리 문제 될 거 없는 거 아닌가여? 라고 묻고 싶으신 분께.

저는 이런 식으로 광범위하게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해서 한 마디로 같은 거다 하고 정의하고 싶어하는 그런 학설... 아주 싫어합니다. 저는 시베리아와 아메리카 원주민의 샤머니즘에 흥미있어 이것저것 읽어보았는데, 이 두 지역 주민에게는 공통적으로 곰 숭배가 나타납니다. 그럼 이 두 지역, 아니 한국까지 합쳐서 세 지역은 같은 곰 문화권인가여? 네?

문화나 종교에 있어 비슷한 구석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늘 숭배가 보이는 지역은 널리고 널렸고, 지모신 신앙이 나타나는 지역도 그에 못지 않죠. 신화나 전설에 있어 까마귀, 곰, 늑대 등이 맡는 역할을 보면 이상하게 닮은꼴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 믿음을 가진 사람들, 그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생, 주변환경, 생활, 역사를 무시하고 하나로 묶어도 좋을 정도의 일일까요?

무엇보다도 싸잡아 묶기 좋아하는 분들에게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들은 하나로 묶지 못하는 '차이점'에 대해서는 아주 깔끔하게 묵살한다는 점입니다.

비슷한 요소를 발견해내고 차이점을 찾아보는 것은 저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건 소일거리로 충분한 것이며, 자신의 머릿속 세계와 다른 점이 있다고 파묻는 것이 있어선 안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책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신사에 얽힌 사연도 재미있었습니다.

일제는 식민 통치 후반기에 오면 신사를 마구 세워서 한국인에게 참배를 강요합니다(진냥의 모교도 신사 자리였다는군요). 전시 동원체제가 완성되기 전까진 그리 효과적이었던 것 같지 않지만.... 그런데 이렇게 신사를 세우면서 아이러니한 것은, 한국인의 민족 시조 단군을 신사에 제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름아닌 일본인 신도 관계자에게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일본의 기기신화는 야마토 정권이 성립하면서 이즈모나 스와 등 다른 지역을 지배할 무렵 성립하였던 지배신화. 기기신화 속에는 이즈모나 스와 지역의 신이 어떻게 천황가의 시조신에게 복속하였는지 묘사하고, 이즈모 대사나 스와 대사가 세워진 계기를 설명하고 있지요.

따라서 일본 신도 관계자들은 당연히 한국에 세워진 신사에는 단군을 제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조선 총독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아마테라스와 스사노오 등만 제사하였던 것입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신도는 그 이전과는 놀라울 정도로 달라졌지요. 이전까지는 지역신을 모시며 어령을 위로하고 사람들을 화합하는 역할을 했던 신도신앙이, 메이지 천황이라는 국가절대권자의 신성성을 증명하고 그 권위에 모든 것을 바쳐야 했던 것입니다.

강한 나라, 큰 나라, 열강의 하나라고 자부하면서.... 그들이 딛고 오른 것은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부수고 일그러뜨려 쌓아올린 그들 자신이었는지. 생각하면 서글프기만 하네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일본 민중이 받은 고통은 우리나라가 식민지로서 겪은 질곡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사실도 알아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는 사이 우리 발밑을 허물고 일그러진 모래성을 쌓아올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