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만드는 사람 - 국토·역사·정체성을 만든 근대국가의 기획자들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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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투어] 저자의 또 다른 저서!

지리... 라는 것은 대저 정확한 학문으로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그야 지도에 그려진 산이나 강이 도망가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저자는 서문에서부터 지리학의 계보를 되짚고, 그 정의를 새롭게 고찰합니다.

동양에서는 지리가 기전체 사서의 지志 파트에 들어가지만 서양에서는 중세 이전에는 여행기로 다루어졌고, 중세에 접어들면서 편년체 왕사나 성인담이 역사의 주류가 되면서 밀려났다는 모양입니다. 근대 과학이 발전하면서 지리학은 비로소 과학의 영역에 편입되었으나.....

저자는 역사지지 라는 관점에서 언제부터 영국사에서 국토를 '공통의 역사적 공간'으로 파악했는지 조망합니다.

그렇습니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지도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사실의 모방'으로서 국가가 영토적 통제를 구성해 온 권력의 도구였던 것이지요.

이러한 양상 변화를 이 책에서는 1부 '읽는 지도'-역사지지서, 2부 '보는 지도'-지도의 보급, 3부 '듣는 지도'-영국 국가 정체성 형성의 세 시기로 분석합니다.

1부의 시기는 헨리 8세의 종교개혁과 영국에 인문주의가 유입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특히 존 릴런드라는 인물을 소상히 분석하는데 고아였지만 운 좋게 부유한 포목상에게 입양되어 당시에는 표본이라 할 만한 인문주의 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헨리 8세의 종교개혁을 도와 수많은 수도원 장서를 처리하면서 내면에 왜곡이 쌓여 버린 걸까요? [고대 브리태니카]라는 책을 펴내어 고대 영국의 역사 지리를 총망라하고자 하였으나 헨리 8세가 죽자 실성해버렸다고요. 지식인의 복잡한 심정....

덧붙여 영국에서는 흥미롭게도 아서 왕 전설도 당당한 역사로 편입시켜 이탈리아의 역사가 버질이 [영국사]를 편찬하면서 아서 왕 전설을 부정하자 릴런드를 비롯한 영국 학자들이 개빡쳐서 디스하는 양상도 재미있었습니다. 응당 영국 왕실이 아서 왕을 상징으로 삼고자 했을 때 이 역사학자들 중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지요. 아서 왕은 실존한다...! 뭐 그런?

그리고 중세 이후 사실적인 지도가 만들어진 바탕에는 절대왕정의 군주들이 지도 제작에 열을 올리면서라고요. 이혼 소동으로 대륙으로부터 고립되면서 방어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 지도에 관심을 가졌던 헨리 8세를 비롯해서 말이죠. 영국의 팽창을 드러내는 해외 지도와 여왕의 초상이 들어간 지도 등은 지도가 분명 국가 프로파간다의 성질을 지녔음을 드러내줍니다.

또한 17세기 후반에는 국왕=국가 이미지가 국민=국가로 이행하면서 영국의 명소, 영국성을 정의한 여행기 등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지요.

지도는 이미지로 '국가'의 공간을 인식하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랜드 투어는 유럽 측면의 시각에서 영국의 정체성을 정립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

호? 이렇게 이어지나요?

아. 책에 누군가가 연필로 낙서를 해두어 짜증났는데 밑줄 친 부분 자체는 본문의 핵심을 제대로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맘 먹고 공부하는 사람의 소행임이 확실하네요. 실컷 욕해주고 싶지만 본문 읽는 데에 도움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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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여인의 죽음 이산의 책 22
조너선 D. 스펜스 지음, 이재정 옮김 / 이산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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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선 무슨 책인가 했었지만 말이죠..=ㅁ=/ 같은 저자의 작품이 여럿 중국사 서가를 장식하고 있어서, 한 번 읽어봐야 하겠다 하고 골라보았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명과 청이 바뀌는 혼란 속에서 탄청이라고 하는 가난한 현의 모습을 다루었습니다. 왕 여인의 죽음이라고 하지만 정작 왕 여인은 마지막 단락에서밖에 안 나와요...OTL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이 책의 주인공은 도적떼, 천재지변, 아직은 오랑캐라고밖에 인식되지 않는 청의 군사 등 각종 재난에 시달리던 탄청 현민, 그 중에서도 여성입니다. 저자는 그런 여성에 대한 이야기와 일화를 당대를 표현한 글(그 중에서는 포송령의 요재지이도 있습니다. 서유기와 더불어 제가 대단히 좋아하는 중국 기담집)에서 발췌하여 소개하는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성학에서 미시사까지 여러 가지 관점에서 감상할 수 있겠지만 저의 포인트는 중국 관리의 고충. 이 책의 바탕이 된 책 중 하나인 [복혜전서]를 저술한 당시 탄청의 지현(일종의 현령)인 황류훙이 왕 여인의 변사를 수사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건 무슨 전근대 중국풍 CSI.... 합리적인 증거 수집, 탐문, 그리고 민간 미신에 의거한 증인 취조까지, 대단했어요.

황류훙은 그 중에서도 유능하고 양심적인 관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전근대의 중국 관리는 요구받는 게 너무 많아보였습니다. 훌륭한 행정관에서 군대 지휘관, 범죄 수사까지. 황류훙이 아닌 대부분의 관리가 자포자기하고 치부나 쌓는 탐관오리가 되는 이유도 어쩐지 알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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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징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83
요꼬미조 세이시요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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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리버리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의 데뷔작. 지금까지 읽어왔던 같은 작가의 작품과는 다르게, 출판사가 동서문화사로군요. 뭐 전 출판사라든가 번역의 문제는 대체로 신경을 안 쓰고 읽는 편이니 상관없지만요.

이 작품에서 긴다이치 코스케의 과거가 좀 나옵니다. 무려 미국 유학 시절에 마약을 해서 인생 막장의 길을 내달렸다고 하네요...=ㅁ= 아무래도 셜록 홈즈의 오마쥬인 듯 합니다. 그래도 셜록 홈즈는 보기는 그럴싸한 탐정 아닌가요! 님하가 그러심 막장 밖에 안돼!=ㅁ=

요코미조 세이지 씨는 아무래도 시골 벽지의 명문 집안에 대해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읽은 작품의 대부분이(4건 중 3건) 시골 벽지의 명문 집안을 배경으로 하고 있더군요. 게다가 어떤 집이든 겉은 번듯해도 내용물은 막장이고 말이지요... 음, 그렇게 생각하면 [긴다이치 소년의 사건부]의 경우에는 작가가 '애들끼리 바캉스 가서 몇 박 하고 노는 상황'에 원한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왠일로)스포일러를 안 하고 내용 이야기. '일본 전통색이 묻어나는 신비한 분위기'와 '기계적 트릭'은 최악의 조합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ㅁ= 서로가 분위기를 죽이는 기분이네요. 이 작품에 비하면 [옥문도]가 훨씬 분위기가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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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의 일본견문록
강재언 지음, 이규수 옮김 / 한길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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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참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문화를 관찰하는 방법에는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나, 그 문화 밖의 외부자의 관점에서 보는 것 등등이 있을 텐데, 저는 어떤 방법이든 똑같이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어느 한 쪽이 빠져버리면 정신적 균형이 무너지는 사태가...

아무튼 그래서,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가서 쓴 감상이라고~~!!! 기뻐하면서 대출한 책입니다.

...근데 뜻밖에도 조선통신사가 쓴 글은 별로 인용되어 있지 않아서 슬펐습니다.... 제길슨.

그렇지만 중세 조선과 일본 관계에 있어 여러 가지 의문점을 풀 수 있었던 보람찬 독서였습니다.

첫째로 왜 조선 사신만 에도까지 갔을까요? 일본의 사신은 왜 한양까지 오질 않았을까요? ...이게... 만약 한양까지 가는 길을 알아버리면 일본이 또 왜란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는 위정자들의 염려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아니 벌써 캐발리지 않았어?

그리고 둘째로 일본의 칭황 건. 아무리 명목뿐인 천황이라지만 그 문제에 있어서 특히 까다로운 조선과 교류하는 데에 있어 과연 허용될 수 있었을까요? ...이 문제는 일본 정부에서 천황을 배제하고 쇼군 차원에서 교섭을 진행한 걸로 해결되었다는군요. 하지만 이렇게 되면 조선 국왕:일본 대군으로 일본 쪽 레벨이 낮아지니까... 교섭을 맡은 쓰시마 번주가 국서를 날조해서 쇼군을 '일본 국왕'으로 표기함으로서 문제를 해결했다고 합니다. 덧붙여 이건 몇 년 후 뽀록나서 난리가 났었음.

어쨌든 일본이 이렇게 막부 체제를 내세워 천황을 외국의 태클에서 보호한 결과 근대에 가까워올수록 '우리는 조선보다 잘났고 중국과도 대등하다'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지요... 요즘 하는 일과도 별로 다르지 않군요.

덧붙여 [중국의 역사 : 수당오대]에 따르면 아스카 시대 일본에서 파견한 견수사의 경우, 국서에 자신과 수 양제를 동격으로 놓자 수 양제가 기가 막혀 한 일이 있었다고 하는군요. 당연히 수 양제는 그런 어이없는 심정을 답서에 피력했을 테지요. 험한 소리밖에 안 써 있을 그 답서를 받아온 일본 사신은 차마 천황에게 바칠 수가 없어서 자기가 해치워버렸다고 합니다(...) ...이미 천 년 단위로 하는 일이 똑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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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성 - 매체로 본 근대 여성 풍속사
연구공간 수유+너머 근대매체연구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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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를 읽은 뒤 근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읽게 된 책. 1923년 창간된 여성잡지 신여성을 통해 근대 여성의 세계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근대 여성...이라고는 해도 여성이라설까요. 요즘 처자들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싶은 느낌이 확확 들지 뭡니까=ㅁ=/ 특히 신여성, 모던- 걸의 별난 행태를 빗대어 개탄하거나 웃음거리로 삼거나 하는 모습은 어쩐지 기시감이... 그래! 이건 마치 된장녀?!

게다가 당시에도 빠순희가 건재하질 않나... 기사의 표현도 요즘 잡지 기사와 대동소이합니다. 예를 들어 영화배우 소개 기사. 'K가 가진 식크하고 에로틱한 동작에 마음이 이끌리고' .....시크라는 말이 생각했던 것보다 쓰인 역사가 깊군요. 하지만 전 여전히 뭘 어떻게 하면 시크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불편했던 점은 책의 저자들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서술하기 때문에 주제가 양극단으로 딱딱 나뉘는 점이었습니다. 근대의 물결 속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여성과 지배를 관철하려는 남성, 뭐 이런 식이지요. 하지만 보편보다 특수를 중요시하는(역사교육론 용어) 업계 인간인 저로서는 영 마뜩치가 않더군요....

예를 들어 잡지에 게재되었던 풍자소설 [은파리]의 일부. 부모가 빚을 지고 고생하고 있는데 진고개(지금의 명동)에서 애인과 쇼핑하겠다는 여교사 이야기는 참.... 물론 근대 직업 여성에 대해 다분히 악의를 품은 풍자소설의 묘사라곤 하지만, 그것을 두고 '여성의 아이덴티티 찾기'라면서 정당성을 부여해주려는 논조도 뭔가 아니지 않을까요...

....죄송함다 여중 여고 여대 10년 여자 학교를 다닌 순종 여학생 주제에 여태 자기 손으로 화장 한 번 안해 본 돌연변이인 제가 할 말이 아니예요=ㅁ=/

뭐 그런 논조를 열심히 머릿속에서 뭉개면서 읽을 수 있다면, 당시의 여학생의 생활이라든가, 모던 걸에 대한 배꼽빠지는 풍자라든가, 이래저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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