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의 일본견문록
강재언 지음, 이규수 옮김 / 한길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문화는 참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문화를 관찰하는 방법에는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나, 그 문화 밖의 외부자의 관점에서 보는 것 등등이 있을 텐데, 저는 어떤 방법이든 똑같이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어느 한 쪽이 빠져버리면 정신적 균형이 무너지는 사태가...

아무튼 그래서,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가서 쓴 감상이라고~~!!! 기뻐하면서 대출한 책입니다.

...근데 뜻밖에도 조선통신사가 쓴 글은 별로 인용되어 있지 않아서 슬펐습니다.... 제길슨.

그렇지만 중세 조선과 일본 관계에 있어 여러 가지 의문점을 풀 수 있었던 보람찬 독서였습니다.

첫째로 왜 조선 사신만 에도까지 갔을까요? 일본의 사신은 왜 한양까지 오질 않았을까요? ...이게... 만약 한양까지 가는 길을 알아버리면 일본이 또 왜란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는 위정자들의 염려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아니 벌써 캐발리지 않았어?

그리고 둘째로 일본의 칭황 건. 아무리 명목뿐인 천황이라지만 그 문제에 있어서 특히 까다로운 조선과 교류하는 데에 있어 과연 허용될 수 있었을까요? ...이 문제는 일본 정부에서 천황을 배제하고 쇼군 차원에서 교섭을 진행한 걸로 해결되었다는군요. 하지만 이렇게 되면 조선 국왕:일본 대군으로 일본 쪽 레벨이 낮아지니까... 교섭을 맡은 쓰시마 번주가 국서를 날조해서 쇼군을 '일본 국왕'으로 표기함으로서 문제를 해결했다고 합니다. 덧붙여 이건 몇 년 후 뽀록나서 난리가 났었음.

어쨌든 일본이 이렇게 막부 체제를 내세워 천황을 외국의 태클에서 보호한 결과 근대에 가까워올수록 '우리는 조선보다 잘났고 중국과도 대등하다'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지요... 요즘 하는 일과도 별로 다르지 않군요.

덧붙여 [중국의 역사 : 수당오대]에 따르면 아스카 시대 일본에서 파견한 견수사의 경우, 국서에 자신과 수 양제를 동격으로 놓자 수 양제가 기가 막혀 한 일이 있었다고 하는군요. 당연히 수 양제는 그런 어이없는 심정을 답서에 피력했을 테지요. 험한 소리밖에 안 써 있을 그 답서를 받아온 일본 사신은 차마 천황에게 바칠 수가 없어서 자기가 해치워버렸다고 합니다(...) ...이미 천 년 단위로 하는 일이 똑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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