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5
이 열여덟 편의 에세이는 4년에 걸쳐 쓴 것이다.
2. 23
우리 침대 옆에 있는 서가에는 새로운 범주를 만들었다. "친구나 친척이 준 책". 먼저 그런 범주를 만들어 본 글쟁이 친구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한 군데 모아두니 따뜻한 느낌이 들더라고 했다.
3. 44
그 구절을 읽는 순간 공감으로 인한 저체온증과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뜨거움이 결합되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4. 59
아버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일 주일 만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읽던 시력에서 시력검사표 맨 윗줄의 큰 글자도 읽지 못하는 시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플로리다 서해안에 살았는데,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마이애미의 배스콤 파머 안과 연구소로 갔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망막 괴사 진단을 받았다. 기가 막히게도 그 원인이 80년 이상 잠복해 있던 수두라고 했다. 시력을 회복할 가능성은 적다는 얘기였다.
5. 63,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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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한 살, 오빠가 열세 살 때 부모님은 우리를 데리고 유럽에 가셨다. 오빠 킴은 글을 읽게 된 후로 거의 매일 밤 그랬듯이, 코펜하겐의 앙글레테르 호텔에서도 침대맡 탁자에 책을 펼친 채 엎어 놓았다. 다음날 오후 방에 돌아와 보니 책이 닫혀 있고, 책갈피로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그리고 청소부가 서명한 메모가 표지 위에 놓여 있었다.
손님, 책을 절대 그렇게 다루지 마세요.
오빠는 어리벙벙했다. 학교 기숙사에서도 나무 노에 맞을 각오를 하고 매일 밤 소등 뒤에 이불 속에 들어가 손전등 빛으로 책을 읽을 정도로 헌신적인 독자인 오빠가 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나도 오빠의 굴욕감을 이해했다. 나는 패디먼 가족보다 책을 더 숭배하는 가족을 상상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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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비행기에서 읽는 페이퍼백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다 읽은 장들은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람인데. 내 남편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습기와 뜨거운 열기로 완전 분해된 책장들이 폭풍 속의 꽃잎처럼 떨어져 내리는 사우나에서 책을 읽는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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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책들의 상태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밑줄도 긋고, 여백에 메모를 하기도 하고, 뜯어내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하고, 갈가리 찢기도 하고, 또 공개적으로 말하기 뭣한 짓을 하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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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에서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침대맡에 펼친 책을 세 권쯤은 엎어 놓고 사는 킴도 책을 사랑한다. "그렇게 하면 언제든지 즉시 원하는 데부터 읽을 수가 있잖아. 전자 제품에 비유하자면, 책갈피를 끼우고 책을 덮는 것은 '멈춤' 단추를 누르는 것이고, 책을 펼친 채로 엎어 놓는 것은 '일시 중지' 단추를 누르는 것이지."
6. 75
나는 그 무렵 처음 어머니가 된 여자들이 수면 부족과 갑작스러운 정체성 재배치로 인해 빠져들게 되는, 환희와 공황이 뒤섞인 혼란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7. 93
나 자신이 받아본 최고의 헌사. 남편의 책 속표지에 적힌 것.
"내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것은 당신의 책이기도 해. 내 삶 역시 당신 것이듯이."
8. 95
매콜리 역시 아주 중요한 면에서 우리가 닮았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 둘 다 내가 "현장 독서" - 책이 묘사하는 바로 그 장소에서 그 책을 읽는 것-라고 부르는 것의 열렬한 신봉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둘이 똑같은 취향을 지녔다는 사실이 더욱 반가웠던 것은 매콜리가 시대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독서가라고 할 만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 살 때 독서를 시작해서 쉰아홉에 앞에 책을 펼쳐 놓은 채 죽었다.
9. 122
교열자 기질은 몇 가지 상호관련된 증상들을 거느린 더 큰 증후군의 일부인데, 그 증상들 가운데 하나가 발견 편집증이다.
10. 157
나는 그런 번득이는 눈길을 잘 안다. 내가 독서에 대해 느끼는 것이 바로 그런 마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궁지에 몰리면 워터 피크 안내문이라도 읽을 것이다. 소도시의 모텔방에서 홀로 지낸 수많은 밤에는 전화번호부에서 위로를 받기도 했다. 오래 전 일이지만, 당시 내 아파트에서 적어도 두 번 이상 읽지 않은 유일한 문서 자료를 찾아내어 숙독하는 것으로 절망적인 불면증과 맞선 적도 있다. 그 자료는 내 룸메이트의 1974년형 도요타 코롤라 안내서였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중독, 금단 증상, 갈망, 공황), 수동 기어 조작 설명이 내게는 단테가 '천국편' 31곡에서 보여준 영원한 장미의 비전만큼 아름답게 느껴졌다.
11. 169
아이가 책을 가까이 하게 하는 방법 가운데 책을 쌓고, 세우고, 다시 배열하는 등 책에 온통 지문을 묻히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생각할 수 없다. 유리문이 달린 부모의 책장에서 마크 트웨인이나 발자크를 꺼내려면 먼저 손부터 씻어야 했던 다이애너 트릴링이 커서 애서가가 되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놀라운 일이다.
12. 171
두 분의 책을 합치면 7천 권쯤 되었다. 새 집으로 이사를 할 때마다 목수가 와서 4백 미터 길이의 책꽂이를 짰다. 그리고 그 집에서 이사를 나오면 새 주인은 책꽂이를 뜯어 버렸다. 내 눈에는 다른 사람들의 벽이 벌거벗은 것처럼 보였다. 우리 집에는 사진의 평평하고 하얀 배경이 될 만한 벽이 존재할 수 없었다. 벽 자체가 예술이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박혀 있는 모자이크의 갖가지 색 타일들은 모두 세로로 길쭉하고 바짝 여윈 직사각형들이었다. 이것은 손을 대도 기분이 좋았지만, 오래된 종이의 먼지 냄새를 좋아한다면 코를 킁킁거려 볼 만도 했다.
13. 184
물론 가장 사적인 낭독은 연인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대학시절 남자 친구의 좁은 침대에 함께 누워 있던 어느 날 오후가 기억난다. 우리는 공부가 끝날 때까지 유혹을 미루기 위해 발은 상대의 머리쪽으로 가게 반대로 누운 채 '낭만주의 시인들'이라는 두꺼운 밤색 책을 주고받으며 번갈아 블레이크의 '순수의 노래와 경험의 노래'를 낭독했다. 물론 오래 가지는 못했다.
14. 191
나는 책에 대한 책은 안사고는 못 배기는 성미다.
15. 207
그러나 슬프게도 잔인한 현실 때문에 환상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다. 조지 오웰은 1936년에 쓴 "서점 추억"이라는 에세이에서 헌책방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시절을 회상한다. 근무 시간은 길고, 가게는 매우 추웠으며, 책꽂이에는 죽은 청파리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손님 대부분은 미치광이였다. 그 가운데도 최악은 책에서 점차 매력을 잃게 된다는 점이었다. "정말로 책을 사랑하던 때가 있다. 책이 쉰 살을 넘기만 하면 그 모습과 냄새와 촉감이 무척 좋았다. 시골 경매장에서 1실링을 주고 책을 떨이로 사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었다. 그러나 책방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책을 사지 않게 되었다. 책을 한 번에 5천 권이나 만 권씩 덩어리로 보게 되자, 책이 지겨워지고 심지어 약간 역겨워지기도 했다."
16. 208
우리는 그 책들을 가게로 가져가 주제에 따라 분류했어. 역사는 왼쪽 벽에, 문학은 오른쪽 벽에, 철학은 위쪽 골방에. 그랬는데 갑자기 그 책들이 이제는 존 클라이브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더라고. 장서를 흩어놓는 것이 꼭 시신을 화장해 바람에 뿌리는 것과 같았다고나 할까. 무척 서글펐지. 그래서 나는 책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소유한 다른 책들과 공존할 때에만 가치를 얻게 된다는 것, 그 맥락을 잃어버리면 의미도 잃어버린다는 것을 깨달았지.
17. 218
나의 남편 조지 하우 콜트와 나는 책으로 서로의 환심을 샀으며, 서로의 자아만이 아니라 서재와도 결혼을 했다. 내가 양쪽에서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조지는 편집자다운 꼼꼼하고 지혜로운 눈으로 이 책의 모든 말을 살펴보았으며, 여기 적힌 말의 많은 부분에 영감을 주었고, 그랜드캐니언에서건 책으로 가득찬 뉴욕시티의 우리집에서건 나와 함께 그 말을 겪어 왔다. 그가 나에게 보냈던 헌사를 점점 깊어지는 사랑으로 그에게 돌려주고 싶다. "이것은 당신의 책이기도 해. 내 삶 역시 당신 것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