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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종말시계 - '포브스' 수석기자가 전격 공개하는 21세기 충격 리포트
크리스토퍼 스타이너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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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해전이던가, 인터넷 상에서 "이영애의 하루"라는 글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tv만 틀었다 하면 나오는 그녀의 cf를 풍자한, 아침에 일어나면 oo제품으로 세수를 하고, xx제품으로 무엇을 하고 식의, 그녀의 하루는 그녀가 광고하는 제품들을 소비하며 보내는 하루라는 요지로 정리되는 그런 글이었다. 이 책 [석유 종말 시계]의 첫 부분을 읽다가, 갑자기 "이영애의 하루"가 생각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도입부에는(19쪽) "2009년 미국 교외에 사는 빌의 일상"이 소개되어 있다.  평범한 미국인인 그는 하루를 "석유"를 소비하며 산다. "이영애의 하루"는 그녀의 cf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하루"이지만, 빌의 하루는 석유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하루"라는 것이 차이점이랄까. 이영애에게는 하루가 cf이고 빌에게는 하루가 석유다....! 미국인 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듯 하다. 둘러보니 내 생활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자연에 토대를 둔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곤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그러므로 석유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으랴!

 

  [석유 종말시계]의 글쓴이는 "크리스토퍼 스타이너". [포브스 매거진]의 수석 보도기자이고,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일리노이즈 대학에서 토목을 공부한 톡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단다. "이 책의 각 장은 미국의 휘발유 가격에 따라 6달러 장, 8달러 장, 10달러 장 이런식으로 구분했다. 각 장은 각 가격대가 몰고 올 변화와 그 여파와 혁신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p23) 글쓴이는 석유와 관련한 사람들의 생활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유가가 낮았기 때문에 활황을 이룰 수 있었던 사업들, 유가가 낮았기 때문에 한 집에도 서너대의 차를 보유할 수 있었던 과거의 이야기로부터, 앞으로 유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오를 때 우리가 맞게 될 변화들... 항공업과 자동차시장과 월마트는 망하게 될 것이고, 휘발유 자동차 대신 전기 자동차가 달리고, 비행기를 타는 일은 일생일대의 행사가 될 것이며, 석유화학제품인 플라스틱의 소비 또한 줄어들 것이다. "~ CIBC월드 마켓의 수석 경제학자이자 전략가인 제프 루비은 말한다. "세계화는 역행할 수 있습니다." "(p227)

 

    글쓴이가 말하는 고유가 시대의 미국의 모습은(아니, 거의 전세계 사람들의 모습은) 아직은 낯설어서 한편의 공상과학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석유가 비싸지고, 따라서 석유를 지금처럼 "마음껏" 사용할 수 없게 될 때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만큼 현재 우리의 생활은 석유와 뗄레야 뗄 수 없다. 석유의 종말을 그린 글쓴이를 통해 본 미래 사회는, 내겐 오히려 긍정적인 모습이 훨씬 많아보이기도 했다. 석유없는 세상의 사람, 산업, 무역, 세계에 관해 말해주고 있는 책. [석유 종말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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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죽기로 결심하다
함규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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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 죽기로 결심하다.  

작년이었던가, tv에서 [대왕 세종]과 [이산]을 방영할 때 즈음 조선조 임금에 대한 책이 유행처럼 출간되었던 기억이 난다. 어설프나마 역사에 대한 관심이 있는 터라 나 역시, 그 책들 중 몇몇 권을 읽어보았었다. 특히 세종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글쓴이마다 세종의 "다른 면모"를 이야기하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기도 했고, 대표적인 인물을 통해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어서 이왕이면, 다양한 류의 다양한 글을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 즈음에 "고종"에 대한 책도 한 권 읽었다. 고종에 대해서는, 결국(!) 나라를 잃어버린 임금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무능하고 나약했던 군주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지난번의 그 책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고종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입장에서, 마치 고종을 변호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라는 인상을 줄 정도였다. 이 책 [고종, 죽기로 결심하다]는 지난번 책과는 어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해서 펼쳐든 책이다.

 

    이 책은 고종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책이다. 고종의 삶은 조선 말기로부터 일제강점이라는 혼란한 시기와 함께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고종을 다룬 책이기도 하지만, 우리 근현대 도입부의 역사를 다룬 책이기도 하다. 앞서의 책과 달리, 이 책은 고종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으로 일관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이었을 때 고종의 입장은, 고종의 생각은 이렇지 않았을까 하고 글쓴이가 재구성한 상황 설명이나 고종의 생각을 그리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또한 국사공부를 할 때 가장 외울 것(?) 많고, 복잡한 국제관계와 사건의 흐름,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근현대 역사를 이야기로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는 책이기도 하다. 특히 이 책에서는 고종과 대원군의 대립구도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눈여겨 보지 않았던 부분이라 역사공부의 또다른 소득이기도 했다.

 

    이 책은 고종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다만 그가 처한 입장을 이야기하고 있다. 고종에 대해 마냥 우호적인 앞서의 책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종에 대해 훨씬 더 연민의 정이 갔던 건 오히려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고종의 죽음. 정상적이지 않았던 그 죽음에 대해서도 글쓴이는 여러가지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책 제목이 이야기하고 있듯, 그 죽음은 일방적인 타살이 아니라 타살의 의도를 눈치챘지만,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던 타살과 자살의 결합형태였다는 것이다. 불행했던 역사. 그리고 외로웠던 사나이. 고종의 삶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글쓴이의 해박한 역사지식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관점이 마음에 들었던 책. [고종, 죽기로 결심하다]

 

 

 

    *[덧붙임]  내용 외적인 불만을 하나 이야기해본다.  책의 세로 길이가 좀 작은데, 그에 맞게 편집을 한 게 아니라, "여백"을 잘라내고 글이 가득 들어차 있어서 보기에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더군다나 이 책은 부고 혹은 영정처럼 책장을 검은 모서리로 처리하고 있어 그 답답함이 더했다. 책을 만든 이들이 의도한 것이라면 모르겠으되, 읽기에는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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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절에서 역사적으로 쉬고 오다 - 그 누가 가도 좋을 감동의 사찰 27곳 순례기
이호일 글.사진 / 가람기획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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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숲을 지나던 서늘한 바람. 풍경소리. 지금까지도 내가 "절 냄새"라고 부르는 향내음. 늦가을 새벽의 부석사. 노을 질 무렵 들었던 수덕사의 법고 치는 소리....지금은 기억조차 다 나지 않는 그 사찰들. 그 시간을 함께 했던 당신들은 지금 어떻게들 지내고 있을까. 새삼 궁금해진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그 때 참 철이 없었다. 지금도 철없다는 소리를 듣는 내가 생각해도 철이 없었던 때. 내겐 남겨진 사진조차 몇 장 없다. 그 시간들이 추억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절에서 역사적으로 쉬고 오다]. 책을 읽으며 그 시간들을 함께 보냈던 사람들 생각이 많이 났다. 별 의미없는, 내겐 중요하지 않은 시간들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에 대한 후회도 함께. 이제는 기억이 뒤섞어서 이곳과 저곳을 섞어서 기억하고 있는 그 절들 생각도 많이 났다. 이 책에 소개된 27개의 절 중에서는 이름조차 처음 들어본, 내게는 낯선 절도 여럿 있었지만, 대부분 잘 알려진 절들이고, 예전에 가 본 적이 있는 절이 많았다.

 

   이 책의 사진을 찍고 글을 쓴 이는 이호일. "현재 사단법인 전통문화연구회 이사로 있다"(책 앞날개)고 하시는.. 그간 한국 역사와 관련된 기행문류의 글을 많이 써오신 분인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건, 제목 때문이다. "쉬고 온다"는 말이 무척 여유롭게 느껴지는데다가 역사에 대한 어설픈 나의 관심까지도 자극하는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글쓴이의 기행문이다. 아울러 들른 절에 대한 연기설화, 절과 관련한 인물들의 전설적인 이야기들, 절의 역사적 내력을 담고 있으며, "찾아가는 길"까지 간략하게나마 알려주고 있는 답사가이드 같은 책이기도 하다. 책을 넘기며 가장 아쉬웠던 점은 실린 사진이 컬러판이 아니라는 것. 흑백사진만으로는 내 기억을 좀 더 선명히 꺼낼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종교란에 자신있게 써넣을 종교가 없지만, 절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이 참 좋다. 우리 나라의 명찰들이 대부분 산에 터를 잡고 있어,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절길 따라 걷는 그 여유로움을 싫어할 사람은 많이 없을 터. 도솔산 선운사 가는 길이나,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숲길은 다시 한번 꼭 걸어보고 싶다. 월정사 들어가는 길엔, 왜 소나무가 아니라 전나무가 그렇게 숲을 이루었나를 글쓴이가 들려준 설화를 떠올려보며 걸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그간 <조선의 왕릉>이나 <조선의 서원>등 역사적인 문화재와 관련된 글을 많이 써 온 글쓴이의 글이라 그런지, 이 책에서도 사찰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 뿐만 아니라, 불교와 우리 나라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많이 실려 있어 좋은 공부가 되었다.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의 왼편에서 교화를 돕는 보살로서 대자대비하여 중생이 괴로울 때 그 이름을 부르면 곧 구제해준다고 한다."(p108) 근처에 이름난 절이 몇 군데 있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본 적이 없다. 이번 주말엔, 이 책 옆에다 끼고,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며 절에서 하루쯤 "쉬고 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사진도 몇 장 찍어서 다음에도 기억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 글쓴이만큼 멋진 글과 사진은 못 되더라도, 나만의 사찰 기행기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절의 역사와 여유와 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 [우리 절에서 역사적으로 쉬고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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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우리 미술 블로그 -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교과서에 숨어 있는 우리미술 이야기
송미숙 지음 / 아트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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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다. 참 좋다. 토요일을 여유롭고 넉넉하게 보내고 싶어서 펼쳐든 책인데, 첫장부터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읽어버렸다. 미술이라는 어려운(?!) 분야를, "청소년을 위"해 썼으니, 가히 어렵지 않겠구나 싶었는데 읽어보니 그랬다. 이전에도 몇 번 경험했지만, "청소년"용 책들이 유익하면서도 쉽고 재미있게 기획된 것들이 많다. 어려운 단어로 몇 번 꼬아놓은 어른용(?) 책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려주는.. 이 책 [청소년을 위한 우리 미술 블로그]도 그런 책이었다. 어렵지 않게 읽히면서도 내가 몰랐던 많은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들려주는 유익한 책.

 

   글쓴이는 서양화와 미술이론을 전공했고, 지금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에서 한국미술사와 씨름중이라는 "송미숙"씨.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교과서에 숨어 있는 우리 미술 이야기"를 표방하고 있는 이 책은 240여쪽 전체 다섯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도입부 "프롤로그"에서는 각 시대의 "한국의 역사를 미술과 관련하여 간략하게 설명해 놓았"(p5)으며 본문에는 관련 그림, 사진 자료들이 설명과 함께 실려 있고, 소주제 끄트머리에는 "돋보기"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본문에서 다룬 내용 중 짚고 넘어가야 할 용어나 인물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주고 있는 식의 구성이다. 본문의 글은 책의 제목처럼 "블로그"형식으로 꾸며있는 것이 특징.

 

   삼국시대부터 최근까지의 "우리"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주고 있는 책이다. 사실 미술에 문외한인터라, 알고 싶다는 욕심에 최근들어 미술관련 서적에 관심을 갖고 몇 권 읽어봤지만 서양 미술과 관련된 책들이 대부분이어서 아쉬웠던터에 정말 반가웠다. 책에는 그 시대의 대표적인 미술경향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작품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  관련 예술가들의 삶에 대해서도 재미있게 소개되어 있다.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의 미술 작품은 남겨진 것이 적은터라 "국사" 교과서에서 본 것들이 대부분이고, 조선시대 이후의 작품은 "국사"교과서는 물론이고 "미술"교과서에 실려 있는 작품들, 그리고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작품들이, 이 책에 실려있다.

 

   사실 이전에도 보기는 했던 그림들이 많아 내가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그림들을 글쓴이의 설명과 함께 다시 보니, 그림의 의미가 새롭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그림들에 대해 전혀 아는 것 없이 "안다."고 말할 뻔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참 다행이다.  남겨진 자료가 풍부해 이야깃거리가 많은 조선 중기 이후의 미술작품과 화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재미있었다. 95쪽에 실려있는 [강세황  자화상]에 대해서는 글쓴이의 설명이 없었다면, "저런 그림도 있었나 보고나"하고 넘어가고 말았을텐데. 강세황의 "해학"과 뛰어난 그림 솜씨에 그림을 쳐다보다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심사정의 [하마선인도]와 관련된 설명도 무척 흥미로웠다.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잘라버렸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으면서도 최북이 자신의 눈을 찔러버렸다는 이야기는 몰랐다. [세한도]가 어떤 상황에서 그려진 그림인지도 몰랐었고, 그림 속의 나비나 고양이의 의미도 몰랐었고, 장승업의 호가 왜 "오원吾園"인지도 몰랐었다. 고려시대의 수월관음도를 본 적은 있지만 그 그림이 지금은 일본에 있다는 것도, "160여 종의 고려 불화 중에서 80퍼센트 정도인 130여 점이 일본에 있"(p41)다는 사실도 몰랐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 미술사 속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훌륭한 작품들이, 열정적인 화가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소득이다. 우리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역시 큰 소득이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우리미술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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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프리즘>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리영희 프리즘 - 우리 시대의 교양
고병권.천정환.김동춘.이찬수.오길영.이대근.안수찬.은수미.한윤형.김현진 지음 / 사계절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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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제 무식이 괴로운 사람들은 손에 쥐고만 있어도 똑똑해지는 기분이 드는 책을 아주 좋아한다."(p211) 사실 제목도 어려운 이 책을 읽어보겠다고 덤벼든 이유가 바로 그거다. 내 무식이 괴롭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책은 "손에 쥐고만 있어도 똑똑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읽으면 좀 똑똑해지려나. 비슷하게까지는 안 되더라도 "척"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매번 좌절한다. 독해할 수 없는 언어로 씌인 글을 읽기라도 하듯.. 더러는 보이지 않는 벽이 만져지기도 한다.

 

   이 책 [리영희 프리즘]도 내겐 다소 어려운 책이었다. "이 책은 리영희 선생의 팔순(2009년 12월)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소박한 뜻이 담겨 있지만 리영희에게 바치는 책은 아니다."(p5) 그럼 이 책은 뭔가? 열 사람의 글을 묶었다. 열 명의 글쓴이에는 교수, 논설위원, 기자, 자유기고가와 에세이스트까지 다양한 직업군의(그러나 공통점도 있다. 글이나 말로 생계를 잇는다는), 연령대도 다르고 글쓰는 방식도 다른 이들이 섞여 있다.

    이 색다른 글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내겐 어려운 과제다. 제목은 [리영희 프리즘]이다. 왜 제목을 이렇게 정했을까. 이 책의 어느 글에도 그 이유가 설명되어 있지 않다.(내가 놓친 걸까?) 가르쳐주지 않으니 내 마음대로 결론지을 수 밖에. 열 명의 글쓴이들이 "리영희"라는 프리즘을 통해 본 세상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그렇게 정한 것 아닐까 하고.. 처음엔 "리영희"라는 사람에 대한, "사상의 은사"라고 불리는 그의 삶과 사상에 대한, 찬사의 글들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아니다. 그런 성격에 부합되는 것 같은 글은, 안수찬 기자의 <진짜 기자의 멸종> 밖엔 못 찾겠다. 어떤 이는 리영희를 통해 <영어라는 우상>을 이야기하고, 어떤이는 그를 통해 <사회과학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또 다른 어떤 이는 그를 통해 "책읽기"(<책읽기와 청년, 그리고 자유>)"를 이야기한다.

 

    "나는 리영희의 아들이 아니다. 70년대에 태어났고, 80년대엔 너무 어렸으며, 90년대에 비로소 젊은 시절을 보냈으니, 그의 드높은 이름에 대한 감동이 나에겐 없다. -중략- 굳이 따지자면 방계 증손자뻘이 되려나."(p148)는 어느 글쓴이보다도 뒷세대인 나는, 그러므로 리영희의 방계 고손자뻘 자리도 차지하기 어려운 나는 이 책을 통해 읽으며 생각한다. 리영희와 같은 "진짜 기자의 멸종"이 슬픈 것 같고, "영어라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우리 현실이 문제인 것도 같다고.. 지금의 한국 기독교가 뭔가 잘못된 것 같기도 하다고, 또 어떻게 하면 리영희와 같이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나는 <전환시대의 논리>나 <8억인과의 대화>를 읽어보지 못했다. 그저 그와의 인터뷰를 담은 책 [대화]를 읽고서 내가 태어나기 전(어렸을 때를 포함해)의 대한민국이 얼마나 숨막히는 공간이었는지, 그 시대를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도 있었구나 정도를 생각했던 것이 "리영희"라는 이름과 관련지을 수 있는 전부다.

    앎이 부족해 글을 다 읽고서도 얻음이 적다. 그를 사상의 은사라 불리게 했던 책들, "자신이 직접 관계한 적도 없는 온갖 사건들의 '간접적 주범'이 되"(p14)게 했던 그의 책들을 제대로 읽어봄이 이 책보다 우선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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