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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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자 투박하고 요란한 사투리가 쏟아져나온다. 사투리는 물론이고 북한이라는 배경만 짐작할 뿐 시대적 배경을 찾기는 아직 이른듯했다. 구전으로 내려온 바리데기의 전설을 현대화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해지고 이전의 북한을 배경으로 한 손님을 만날때 무척이나 힘에 겨웠던 기억이 있어 내심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렇치만 그건 지나친 속단이었나 보다. 무척이나 편안하게 술술 그 속에 빠져들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을 덮고 있다.

7번째 딸을 내리 낳은 어머니에게 고된 시집살이의 시어머니가 아닌 따듯한 시어머니가 계신다는 것은 바리데기라는 소설이 얼마나 따뜻하고 끈끈한 정이 있는지 살짝 보이고 있다고 나는 중얼거린다.
내다버려진 7번째 딸은 죽지않고 살아나고 우리의 바리로 다시 태어나고 신통하게 할머니의 내력을 닮아 영혼이 맑고 다른사람들과 쉽게 마음을 열고 이승과 저승을 함께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1990년대의 허기와 추위가 몰려오는 북한의 천진에서 바리는 성장하고 살길을 따라 이주하게 되는 과정에서 가족은 뿔뿔히 흩어지고 바리는 중국을 거쳐 영국으로 가게 된다.
혼자 남겨진 소녀에게 영국을 얼마나 낯선 곳이었을까? 그런데 이상케도 바리는 언제나 평온과 함께 다니다. 바리가 믿고 의지하는 샤머니즘일지 모른다. 할머니가 나를 지켜주리라는 믿음과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보여지는 생과 사의 경계를 바리는 끝도 없이 만나게 된다.

꿈속에서 만나는 할머니가 말하는 저승의 끝에 생명수가 있다고 바리가 그것을 가져와야한다고 몇 버닝고 말하는데 죽지 않고는 생명수를 얻지 못하는 것일까? 그럼 바리는 죽음의 경계를 체험하게 되는걸까? 이는 우리의 생이 저승과 천국을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리라. 남편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고 아이를 잃게 되도 바리는 삶에 대해 좌절하지 않고 굳굳하게 살아낸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이다.

작가 황석영은 계속 말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통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죽음의 두려움과 살아가면서 만나는 상처를 받아들이라고 한다.

바리데기 공주가 자신을 몸을 다바쳐 불사약을 구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의 생명수는 바리가 아닌 우리 스스로 구해야한다는 것을 말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새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286쪽
그럼 나는 어떤한가? 나만이 이토록 아파한다고 세상에게 화를 내고 혼자만의 아집으로 똘똘 뭉쳐 벽을 쌓고 있지는 않을까? 바리가 타인의 마음의 얻기 위해 정직하게 자신을 들어내고 타인의 상처에 손을 잡아준 것에 비하면 하나의 창을 닫으면 다른 창을 열어둔다는 말을 꼬투리삼아 더 큰 창을 열어달라고 아우성치는지 모른다.
바리의 깊고 고운 심성을 조금이나 배울 수 있을까?

행복은 불행과 함께 오기도 한다. 바리가 보았던 악과 거짓과 악령이 들끊는 그곳은 우리가 만나는 세상과 닮아있다. 바리가 원하고 우리가 원하는 생명수는 그저 우물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하게 그 생명수를 찾아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어쩜 그 모양이 슬픔과 절망을 등에 진 모습일 수도 있다.그 뒷곁에 평안과 행복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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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슴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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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더운 요즘 나는 나를 달래가면서 검은 사슴을 읽게 되었다.
이 여름날 꽃가루처럼 날리는 눈을 떠올리며 깊은 골짜기의 울림에 귀기울이며 책장을 넘기고 넘기고 또 다시 주춤하다 그렇게 읽었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답답한 먹먹함 이랄까,그것이 맞는 답일까?
한강의 검은 사슴.

초반에는 너무 어렵게 다가왔다. '내 여자의 열매'라는 단편들로만 그녀의 글을 접한 내게 검은 사슴은 긴호흡을 필요로하기에 내심 두려워지기도 했다. 이러다 책을 덮어버리면 어쩌지? 그래서 더 열심히 들어오지 않는 책장을 넘기도 또 넘겼다.
검은 사슴을 만난다는 것은 어쩜 꿈이었는지 모른다.

검은 사슴,북한에 서식하고 있다는 검은 털을 가진 사슴. 막장속에서 광부를 만나게 되면 뿔을 잘라주면서 빛을 보게 해달라고 했다는 검은 사슴.
깊은 막장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 터널을 빠져나오는 광부들이 검은 사슴이리라.
그네들이 보는 막장을 뚫고나와 만나는 그 눈뜨지 못할 빛이 바로 삶이리라.

잡지사 기자인 인영,기억을 잃고 사라진 의선,의선을 사랑하는 명윤,그리고 황곡에서 만나는 사진작가 장, 임씨와 그의 아내
의선을 흔적을 찾아 헤매는 명윤과 인영은 강원도 황곡에서 장이라는 사진작가를 취채하게 된다.
왜 사진을 찍는지 잃어버린 남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장은 자신을 떠나간 아내를 끌어안고 산다. 그러나 그녀를 잡지 못했다.
취재를 핑계삼아 떠나왔지만 인영은 사실 의선을 찾아야하는 이유를 말할 수 없다.간절하게 의선을 찾아 헤매는 명윤도 사실은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얽힌듯 엮긴 그네들의 만남에는 어떤 필연이 있었을까? 인영과 명윤이 찾고 있는 의선이라는 여자가 사진작가 장이 떠올리는 임씨의 딸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닫게 되었다.

눈발이 가득한 겨울이  눈 앞에 그려진다.
밝음과 멀리있는 사람들이 있다. 짐짓 그렇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았는데도 흐림으로 보이는 사람들.
실은 나도 잘 웃지 않는다. 소설속의 인물이라도 어쩐지 닮은 꼴 성향의 사람을 발견하면 주춤하게 된다.
엄마와 언니를 잃고 세상에 홀로남은 인영에서 가녀린 손가락으로 머리를 매만져주던 의선이 가족같은 존재였다는 걸, 세상을 향해 몸부림치던 명윤에게는 의선은 또 다른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때 의선은 곁에 없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에 지쳐가고 있을 때를 만나게 된다. 나에게 향한 따뜻한 시선을 알지 못하기도 하고 주변의 지인과 가족들에게 마음과는 달리 무뚝뚝하기도 하다. 한줄기 빛을 향해 달려나오는 검은 사슴처럼 우리가 갈망하는 빛을 알아가는 과정이 산다는 것일까?
인영도 명윤도 의선도 사진작가 장도 모두 검은 사슴이었겠지. 잘라줄 뿔은 없지만 세상의 빛을 향해 이제는 눈을 크게 뜰거라는 걸 안다.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것을 멈출 때 비로소 평화를 얻게 된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251쪽

인영이 너무 일찍 깨달은 것을 나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그 깨달음을 얻을때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혼잣말로 중얼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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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의 열매
한강 지음 / 창비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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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밤 눈이 아닌 귀로 들려오는 낭독의 소리는 언제나 나를 매료시켰다. 그런던차에 만난 목소리의 주인공이 소설가임을 알았다. 한강이라는 너무 예쁜 이름. 나는 중얼거렸다.음,필명이 너무 멋지네. 작가 한승원씨의 딸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이름이 본명이라는 것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야 알게되었다.

그 날 한강이 낭독한 구절이 이 소설집에 있었다. [어깨뼈]라는 아주 짧은 글이었는데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내게로 온 그녀의 글이 너무 슬퍼서 나는 몇 번이고 다시보기를 눌러 그 목소리를 기억하곤 했다.그녀의 목소리만큼 이 소설은 단아하고 낮은 음색으로 쓰여졌다. 적당하게 행복하거나 적당하게 웃음이 묻어나거나 적당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글이다. 단편 하나 하나 사실 즐거움으로 밑줄을 그을 만한 곳은 없었다.적어도 내게는, 그렇지만 뭐랄까?겨울을 뚫고 먼저 봄을 데려온 목련의 수줍은 듯한 은은함이 있었고 베란다를 통해 달려드는 장마철 굵은 빗줄기같은 힘이 있었다.

단편들을 보면 제목에서 내용이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어느 날 그는] [철길을 흐르는 강] [해질녘의 개들은 어떤 기분일까] [흰 꽃]이 소설들은 인간의 내면의 충동과 갈등을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과 또 어디론가 회기하고픈 인간의 본능을 읽을 수 있었다.현재와 과거를 함께 서술하여 가끔 혼돈이 되기도 한 부분도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결국 그들의 사랑은 소통되지 못한 몸짓에 불과하고 여자도 남자도 외부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내면의 또 다른 그네들과는 전혀 다르다. [아기 부처]나 [붉은 꽃 속에서]는 사찰에서의 풍경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짙은 향내가 가득하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내가 그 상처를 낸 주인이라는 것을 우리는 나중에서야 알게 되고 깨닭음이라는 이름으로 또 그 생을 꾸역꾸역 살아가게 되는지 모른다. 속세를 떠나지 않아도 우리는 보살이 되고 속세를 떠나고 그 안에서 맴돌기도 한다. ......지나가는 아픔 하나 견디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아기 부처 중 111쪽] 

이 소설집의 제목으로 붙여진 [내 여자의 열매]는 어느 날 부턴가 식물로 변해버리는 아내의 이야기로 소재가 무척이나 특이하다.점점 초록의 식물로 변해가는 아내에게서 강렬한 생명력을 발견하는 남편. 아내가 남기고 간 열매는 아내이고 그 열매는 계속해서 싹을 띄울꺼라는 희망이 있다. 인간으로써는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었던 아내. 그 아내가 시들어가는 것을 모른척했을지 모르는 남편.그렇치만 아내를 놓아 줄 수 없을 만큼 외로웠던 남편이었다.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우리는 이처럼 언제나 외롭고 애처롭기만 하다.

[아홉 개의 이야기]는 아홉 개의 아주 짧은 글들이 있는데 마치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어진거 같지만 막상 읽어보면 하나 하나가 모두 다른 목소리를 낸다.그 중 [어깨뼈] [목소리]가 내겐 가장 인상적이었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지. 그때 나는 어깨라고 대답했어.~~~당신의 마른 어깨와 내 마른 어깨가 부딪힌 순간. 외로운 뼈들이 달그랑,먼 풍경(風磬)소리를 낸 순간.-[아홉 개의 이야기 중 어깨뼈 - 251쪽]

그녀가 선택한 어휘는 무척이나 고급스럽고 단단하며 투명하기까지 하며 귀를 귀울여야만 들을 수 있는 그녀의 목소리처럼 읽는 내내 집중하게 된다. 맑은 떨림으로 만들어내는 그녀의 소설을 다음엔 눈이 아닌 내 몸에서 올리는 나만의 목소리로 소리내어 읽고 싶은 충동이 인다. 반짝이며 별처럼 빛나는 글속에 보이지 않는 달과 해가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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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하성란 지음 / 창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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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욕심을 냈다는 걸 알았지만 이 책을 만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1999년 동인문학상으로 그녀의 이름은 금새 유명한 작가로 기억되었다. 그러나 정작 활자를 통해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곰팡이꽃은 드라마로 연출되어 작품해석을 해주는 프로그램에서 만나게 되었고 그 방송으로 하성란이라는 소설가를 알게 되었다.이 소설집은 모두 11개의 짧은 단편집인데 열개만 넣을 수 있는 상자에 하나를 더 넣어 꽉 꽉 채운 것처럼 읽는 내내 참으로 탄탄한 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을 보고 소설을 고르는 경향이 있고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편독하는 습관이 강한 내게 이제 그녀의 이름은 강하게 인식됨에 틀림없다.
*별 모양의 얼룩
아이를 잃은 슬픔에 잠긴 여자의 이야기로 실제1999년에 일어난 씨랜드화재 사건이 모티브이다.
무덤덤한 서술로 시작되는 소설은 곳곳에 잠재되어 있는 슬픔을 결코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읽고 있는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메마른 이 소설은 아마도 독자를 모두 울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
미묘한 끌림의 제목의 이 소설은 결혼에 대한 경고문이라고 할까?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뉴질랜드에서 살게 되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서로를 알지 못한 채 결혼을 하게 되지만 남편은 동성애자 였고 아내는 그 비밀을 결국 알게 되고 만다.
꿈같은 결혼은 금세 물거품이 되고 그녀는 그녀가 결혼의 상징처럼 여겼던 오동나무장롱에 갇히게 되고 결국 다시 이혼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 모든 것을 함께한 오동나무장롱과 함께.

*파리
한적한 시골 마을의 경찰서의 두 남자와 두 여자의 이야기로 시골이라는 배경이 이 소설에는 무척 특색으로 적용한다. 경찰서의 남자들은 외지의 사람으로 이들에 대한 적개심이 마을을 하나로 묶어준다.
두 남자중 하나는 임순경으로 다른 남자는 사내로 두 여자중 하나는 처녀로 나머지는 여자로 쓰여져있다. 모든 남자들은 처녀를 원하다. 그러나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임을 왜 모르는걸까?
*밤의 밀렵
사망보험금지급을 위해 깊은 산중의 외진 산골의 마을에 실사를 나온 한 남자의 이야기로 파리와 같은 맥락으로 읽혀졌다. 외부인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못하는 마을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혈연관계로 이뤄져 외부인과 소통을 하지 않는다. 결국 남자는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마을을 떠나게 된다.
*오,아버지
딸만 셋인 집안의 첫 째 딸이 주인공의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으로 쓰여졌다.
실제의 아버지와 신앙의 아버지를 혼돈하는 여자 아이의 자아성장의 과정이 나타나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고 진지하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약혼자의 생일파티에 함께한 친구들 중 하나와 관계를 맺게되는 어이없는 상황에 놓인 여자. 그 과정에서 그들이 파우스트라는 이름으로 엮여졌다는 과거를 알게 된다. 
모두 자기는 아니라고 말하는 남자들은 거짓과 위선들로 꽉 차 있다. 여자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와이셔츠
넓은 집으로 이사를오고 건달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남편은 어느 날 갑자기 돌아오지 않는다. 아내는 평소와 같은 생활을 해나가고 꿈속에서 남편이 좋아하는 연을 본다. 크고 좋은 집으로 이사를 왔지만 부부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고 아내는 남편이 남기고 간 와이셔츠로 연을 만들어 날린다. 하무와 부재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우리는 누구나 연을 품고 있고 연을 날리고 있는지 모른다.
*저 푸른 초원 위에
마당이 있는 집과 도시를 벗어나 교외에 살고 싶은 것은 누구나 바라는 행복의 조건인지 모른다.
소아마비를 앓는 아이를 가진 부부는 마당이 있는 집에 살지만 여전하게 불행하다. 그 넓은 마당에 누렁이가 아이를 대신하자 행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동네에 개 도둑이 들면서 남편은 점점 불행해하고 아이는 부부의 시선에서 더 멀리 떠나간다. 누렁이는 돌아오지만 아이는 사라진다.
우리가 찾는 보석은 무엇일까? 마음이 씁씁한 소설이었다.
*고요한 밤
목수가 되려고 은행을 퇴직한 남편과 백화점에 다니는 아내는 이사를 하게 되고 윗 집의 소음으로 고요한 밤을 만나지 못한다. 남편은 윗 집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게 되는데 이 소설은 누구나 한번쯤 소음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백번 공감할 내용으로 이어진다. 발칙한 상상은 실현이 되기도 한다.
*새끼손가락
고요한 밤이나 만큼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택시기사인 섬뜩한 (?)남자와 손님이 된 극히 평범한 여자의 이야기로 읽는 내내 주인공 여자가 되어 초조와 불안에 휩싸였다. 그러나 결말은 맹랑한 반전이 있다. 그 반전은 직접 확인하라고 권한다.
*개망초
화자인 나는 이미 몇 달 전에 뺑소니에 치어 강물가에 버려졌다. 썩어가는 화자는 이제 엄마와 아빠와 친구를 낚시터를 기억하지만 정작 나는 찾지 못한다. 잊혀진다는 것은 한 순간임에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하성란은 이 소설집의
주인공에게 특별한 이름을 주지 않았다.
여자,남자,남편,아내 그 뿐이다.11개 소설이 모두가 정교하게 쓰여져 있어 숨이 막히는 듯 한 느낌도 적지 않다.
섬세함을 배제하고 감정적인 표현은 극히 적다. 감성을 자극하는 글귀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직시하는 눈빛만이 보여졌다.
쉽게 만날 수 없는 소재의 다양성이 참 좋았기에 반면에 그녀만의 숨겨진 부드러움을 발견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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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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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않는다.' 책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언제부터인가 전화를 할 때 마다 시계를 보는 습관이 있다. 상대의 시간을 너무 충내지 않나 싶은 초초감에 시달리곤 한다. 무엇이 나를 초초하게 했는지 글쎄 정확하게 꼬집지는 못하지만 나는 여유롭고 다른 모든 이는 언제나 바쁘다는 것이리라.
은희경의 소설을 읽는 것은 내게 큰 즐거움이다. 이 소설집에 대한 소리는 더구나 나쁘지 않았다.
나는 시계를 자주 보는 사람인데 행복하지 않는 사람일까?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부도덕한이라는 단어로도 충분하게 옳치않음이라는 말을 전하고 있는데 명백하게 라는 말을 덧붙임은 그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진정한 옳음이었을까?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나,그런 남편을 둔 어머니.
어머니와 나의 대화속에서 주인공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그러나 결국은 그 모든 것에 속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것은 결국 나의 행복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불행을 몰고 오는지를 새삼 깨닭는다.
사실,극히 흔한 소재이고 진부한 소재이기도 하다.
마흔이라는 시간적 제약을 두지 않더라고 누구나 사람은 삶속에서 지루해하고 무언가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꿈꾸기도 한다.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집착의 대상을 찾는 것이 인간이 견뎌야 할 고독의 본질인지도 모른다.-17쪽
이것이 사랑을 찾는 인간의 본연의 모습인지 생각하게 한다.
나는  어머니의 딸이며 어머니의 연적이었다.나는 그의 여자이며 그의 아내의 연적이었다.나는 그의 아내였다..53쪽
이 글은 왠지모르게 내게 큰 위안을 주었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방백형태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결말이 너무 쉽게 드러나 있어서 읽는 이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싶다. 혼자 남겨진 주인공의 방백은 신선했지만 스토리의 구성력은 너무 약하게 느껴졌다. 

서정시대.
제목에서 풍기는 그 자체로 얼마 전에 읽은 날씨와 생활과 비슷하게 다가왔다.
왜 그랬을까? 소녀의 이미지로 부각되는 주인공의 머리핀 때문이었을까?
성공한 중년 소설가는 은희경의 자전적인 모습인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하게 만든다. 처음이라는 이름으로 붙여지면 괜시리 소중하고 숭고해보이는 사랑에 대한 시선을 달리하게 된다.
내가 당신에게 가진 의미도 당신이 나에게 같은 의미는 서로 다르다는 것은 많은 시간이 지나야만 보여진다.

지구 반대쪽.
지금이 지금이 아닌 그 어떤 곳에서의 시간의 흐름이 주인공을 혼돈스럽게 한다. 꿈속에서 만나는 나와 닮은 그녀를 만난다. 알 수 없는 곳에서 그 곳의 시간으로 시계를 맞추는 대로 살아간다면 과거의 내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것인지 주인공은 고민한다. 그러나 지구 반대편이라는 소설은 머리도 없어 보이고 꼬리도 없어보이는 그녀의 몽환적인 냄새가 짙게 배어나온다.

여름은 길지 않다.
이 이야기는 작가의 새로운 어투가 엿보였다.
뭐랄까? 슬프지만 웃고 있는 피에로 같은 왠지 그렇게 느껴졌다.
세 남자와 한 여자의 반나절 동안의 발칙한 대화와 일탈이 낯설지만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꿈꾸는 동경이 아닐까? 나와는전혀 상관없는 사람과의 대화는 가끔 진실한 대화를 길어올리기 때문이리라.

인 마이 라이프와 멍은 내게는 깊게 다가오지 못했다.
멍은 고민하는 듯하지만 그저 평범한 우리네 삶의 모습이 엿보였고 인 마이 라이프는 추억을 이야기하고 사랑의 의미를 말하는 듯 보이지만 이 역시 끼어맞춘 추억과 사랑이라는게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강하게 들어왔다.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낯설지만 따듯한 무언가가 있다.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고 즐겁기도한 책이었다. 먼저 읽은 최근의 소설집보다 먼저 읽었더라면 더 달콤한 맛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는 듯한 몇 편의 글들을 만나게 되니 살짝 씁쓸한 맛도 나지만 어쩜 그것이 그녀의 책으로 나를 이끌게 하는 강한 자석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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