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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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날로 잔혹한 뉴스를 들려준다.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갓난 아이가 발견되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생활고를 위해 몸을 파는 일은 더 이상 놀랍지 않을 정도다. 우리가 사는 사회 어딘가에서 이런 일들이 버젓이 행해지는 일들이다.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삶, 최악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절박한 상황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을 것이다.   

 소설 『환영』의 윤영도 마찬가지다. 그저 평범하고 소박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를 닮은 아이를 낳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잠자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너무 큰 소망이었을까. 모두 윤영만 바라보고 있었다.  공부하는 남편, 며느리 대접을 해주지 않는 시댁, 간암으로 죽을 때까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던 아버지, 윤영에게 모든 걸 떠맡기고 남자를 택한 친정 엄마, 노름에 빠진 동생까지 말이다.   

 ‘언제나 처음만 힘들었다. 처음만 견디면 그다음은 참을 만하고, 견딜 만해지다가, 종국에는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처음 받은 만 원짜리가, 처음 따른 소주 한 잔이, 그리고 처음 별채에 들어가, 처음 손님 옆에 앉기까지가 힘들 뿐이었다. 따지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랬다. 버티다 보면 버티지 못할 것은 없었다.’ p 58~59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남편 대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당장 아이를 키워야 했고, 공부하는 남편에게 부담을 줄 수 없었다. 그런 남편과 아이가 그때는 희망이었다. ‘왕백숙’으로의 출근은 그렇게 시작했다. 주말도 아닌 평일에 멀리 시 외곽의 한적한 곳까지 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니 놀라웠다. 안채와 별채는 다른 세상이었다. 닭백숙이 아닌 욕망을 파는 곳이었다.  별채는 음식을 나르고 벌 수 없는 돈이 주어졌다. 악을 쓰며 돈을 해대라는 동생의 입을 막을 수 있고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돈이었다. 거부할 수 없었다.       

 ‘아이 생각을 하면 어디선가 녹슨 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를 따르지 않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분했다. 어린것에게 어미로 인정받지 못하는 서러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떨어져 지내니 그런 생각은 들지 못했다. 그저 안타까웠다. 그런데도 가볼 생각을 못 했다. 나도 아이가 두려웠다. 아이가 나의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이기 때문이었다.’ p.124~ 125p    

 윤영에게 삶은 진흙탕을 건너는 일이었다. 온 몸에 진흙을 묻혀도 빠져 나올 수 없는 곳이었다. 겨우 빠져 나왔다 싶어 마지막 발을 꺼내려 몸부림쳐도 발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단 하루도 마른 땅을 밟을 수 없는 깊은 수렁들. 언제 끝이 날까, 다른 길은 없을까, 아무라도 붙잡고 매달리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는 걷지 못했고 일자리를 얻어 나간 남편은 사고를 당했다. 윤영은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 한데, 왜 도망치지 않았을까. 엄마였기 때문일까. 

 ‘나는 누구보다 참는 건 잘했다. 누구보다도 질길 수 있었다. 다시 시작이었다.’ p. 193

 소설의 마지막 문장, 다시 왕백숙집 여자로 출근하는 윤영이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비장한 이 말이 비참하게 다가온다. 누가 세상이 살만하다 말하였나. 누가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선뜻 그녀를 응원하기도 겁나는 게 사실이다. 윤영에게 삶은 환영(幻影)을 보는 일은 아니었을까.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것, 만지려 해도 만져지지 않은 것 말이다. 환영(幻影)이 사라지고 손에 잡히는 삶을 그녀가 살아갈 날이 올까. 온다면 언제일까. 

 작가 김이설은 『나쁜 피』,『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에 이어 『환영』에서 더 냉정하고 잔혹해졌다. 간결하고 강한 문장으로 사실적이고 노골적으로 폭로한다.  더 깊이 파헤쳐 그 실상을 낱낱이 보여준다. 해서 읽는 이는 고통스럽고 불편하다. 누군가는 왜 이리 잔인하고 혹독하냐 할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등단작 <열세 살>, <엄마들>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주목하는 삶은 변두리 이하의 삶이며 그 중에서도 여성의 삶이다. 생명을 잉태할 수 있도록 신이 만든 존재였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피하고 싶은 삶이 누군가의 삶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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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1 1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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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1 15: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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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2 14: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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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3 09: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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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홈
황시운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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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컴백홈』에서 자동적으로 서태지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대부분 30대 이상일 것이다. 십대에게 서태지는 말 그대로 ‘누구세요? ’ 일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의 등장으로 그들의 모든 것은 유행이 되었고 서태지는 문화 대통령이라 불린다. 그리고 이제 소설의 제목으로 등장한다. 시선을 끄는 건 빨간부츠를 신은 ‘원더우먼’ 복장을 한 거구의 소녀 표지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제목은 소설을 움직이는 거대한 복선이다. 서태지가 방송 데뷔를 하던 날, 태어나 현재는 몸무게 130kg의 열일곱살 유미는 그와 운명적인 관계라 믿는다. ‘슈퍼울트라 개량돼지’라는 별명으로 학교에서 왕따다. 집에서도 살 때문에 좋은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어떤 여고생이 뚱뚱해지고 싶겠는가. 다이어트를 반복하지만 매번 요요현상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살과의 전쟁은 언제부터였을까. 자신도 알 수 없다.  

 유일한 낙은 서태지와 음식 뿐이다. 서태지는 신이며 유일무이한 존재다. 언젠가 서태지와 만나게 될 그 날을 위해 다이어트에 돌입한다. 단짝 지은은 그런 유미에게 격렬하게 격려한다. 지은은 일진의 일원으로 학년 짱으로 왕따인 유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돈을 갈취하고 방과후엔 유미의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지은이 임신을 하고 가출하자 혼자 남은 유미는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견딘다. 돈을 요구하며 지은의 행방을 묻는 아이들에게 급기야 강간까지 당한다.  

 열일곱살 유미의 인생이 왜 이리 가혹한가. 유미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사정도 모르며 금반지에 손을 댔다며 매를 가하는 엄마를 유미는 밀치고 때린 후 집을 나온다. 미혼모 시설에서 지은과 함께 지내지만 임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전히 왕따다. 입양을 결정했지만 아이를 키우기로 맘을 바꾼 지은은 유미와 그곳을 떠난다. 집이 아닌 미혼모 시설에서 만난 미영 언니 집에서 셋이 지낸다. 폭식과 지은과의 충동은 계속된다.  지은과 유미는 컴백홈을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툭하면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들 했다. 그런데 어떤 순간이 적당한 때인지를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살다보면 누구나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걸 알게 되는 삶의 순간이 저마다 정해져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p.180    

 그렇다. 모든 일에는 분명 때가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그 때가 언제인지 왜 중요한지 이야기해주는 어른은 많지 않다는 게 현실이다. 중요한 건 학창시절만 지나면 아무 문제 없을 꺼라 여기지만 힘겨운 순간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겪고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응원을 해야 한다. 한데 어른들은 유미와 지은을 문제아라 할 것이다. 왜 그런 상황에 이르렀는지,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어루만져 주는 대신 무조건 질책하니 아이들은 마음을 닫는 것이다. 

 작가 황시운은 과감하게 거침없는 십대의 일상을 담았다. 소설 속 십대들의 욕설과 폭력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그들에게 욕이나 담배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저 습관같은 것이다. 그러니 심각하지 않다. 십대들의 왕따, 가출, 임신, 폭력을 소재로  삼았지만 그들을 품어줄 기성 세대가 등장하지 않는다. 유일한 기성세대라면 서태지 뿐이다. 그리하여 서태지의 ‘컴백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출한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잔소리를 해대는 어른들 속에서 유일하게 진심으로 집으로 돌아가라 말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아이들이 모진 성장통을 겪고 나면 철이 들고 속이 꽉 찬 어른의 시대를 맞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정한 현실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결국 자신들이 경험한 것보다 한층 더 잔혹한 세상을 만들게 될 것이다. 점점 더  악화되는 씨스템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어도 출구가 없기 때문에 결국 끊임없이 새로운 미로를 만들어내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이런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p.284 작가 인터뷰 중에서 

 소설 속 서태지의 존재를 믿고 의지하는 아이들에게 서태지가 되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아이들의 고민과 마음을 읽으려도 시도는 해야 하지 않냐고 황시운은 묻는다.  돌아갈 ‘홈’이 없는 안타까운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적어도 돌아올 수 있는 ‘홈’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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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눈
구경미 외 지음 / 열림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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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여름에도 분명, 지리한 장마가 올 것이다. 얼마나 많은 비가 내릴지, 얼마나 더울지, 얼마나 많은 밤을 열대야와 싸워야 할 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여름이니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 게 받아들이기 편할지 모르겠다. 한 번쯤 새하얀 눈이 가득한 여름을 상상한다면 더위가 사라지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차가운 눈이 내리는 듯하다. 주목받는 젊은 여성 작가 7인이 (구경미, 김유진, 김이은, 김현영, 박주영, 서유미, 조해진) 눈을 테마로 쓴 소설집 『사랑해, 눈』을 읽는 것도 뜨거운 여름을 시원하고 즐겁게 지내는 방법은 아닐까. 
 
 새해 첫 출근길, 폭설로 인해 사회로부터 고립될까 두려운 한 남자의 심리를 잘 표현한 담은 서유미의 <스노우맨>과 병색이 짙은 아버지가 눈이 보고 싶다며 자식들을 대동해 눈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구경미의 <첩첩>은 평범한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일상의 모습이다. 눈 때문에 여행을 떠나 가족과 함께 추억을 만든 이들에게 눈은 소중한 의미로 남을 것이다. 반면 눈 덮인 세상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 눈은 거대한 세상과 같은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뚫고 나가야 할 삶 말이다.   

 ‘팔을 움직이면서 흘린 땀 때문에 셔츠가, 허리까지 쌓인 눈 때문에 구두와 바지, 속옷이 다 젖었다. 남자의 삽은 점점 느려졌고 눈이 쌓인 길은 끝이 없어 보였다. 삽을 쥐었던 손바닥엔 어느새 물집이 잡혔다. 고개를 돌리자 그가 파고 온 길이 삐뚤빼뚤 꼬리처럼 이어져 있었다. 앞아 아니라 옆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지저분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삽으로 퍼낸 눈 뭉치들이 원래의 자리로 굴러떨어졌다.’  p.25 - 스노우 맨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떠나 30년 만에 유골 상자로 만나는 엄마와 눈처럼 녹아 없어질 걸 알면서 시작된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 조해진의 <하카타轉多 역에는 눈이 내리고>은 쌓였다 하더라도 금세 녹아 사라지는 눈을 떠올렸다. 소복하게 쌓인 아름다움이 금세 걱정으로 변하는 눈처럼 아픈 딸을 혼자 키우는 직장 선배를 향해 시작된 사랑이 지속될 수 있는 시간은 눈이 녹기 전까지 짧았다. 엄마의 인생과 딸의 사랑은 나약하고 슬픈 눈 같았다. 

 제목에 담긴 것들을 소설에서 만날 수 있는 김이은의 <첫눈과 소원과 백일몽 사이에 숨겨진 잔인한 변증법>과 박주영의 <소설 小說 小雪>은 신선한 재미가 가득했다. 첫눈에 담긴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 김현영의 <눈의 물>은 몽환적이며, 무료하듯 반복되는 일상을 섬세하고 잔잔하게 묘사한 김유진의 <눈 위의 발자국>은 한 폭의 부드러운 풍경화을 보는 듯하다. 

 눈은 대기 중의 수증기가 높은 곳에서 찬 공기를 만나 식어서 엉기어 땅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인 비와 다르게 대기 중의 수중기가 찬 기운을 만난 얼어서 땅 위로 떨어지는 얼음의 결정체다.  얼어야만 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해서 사람들에게 사계절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비보다 더 특별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닐까. 많은 이가 첫 눈을 기다리지만 첫 비를 기다리는 이는 없으니 말이다.  눈이라는 테마는 같았지만 각 단편들은 작가의 개성을 보여주듯 다양했다. 일곱가지 눈 이야기는 모두 흥미로웠다.  

 어떤 소설은 마치 동화 『눈의 여왕』에 초대된 느낌이었고, 어떤 소설은 이게 눈인가 싶을 정도로 진눈깨비 같았고, 어떤 소설은 눈이 내려 쌓여가는 과정을 담은 듯 느껴졌다. 눈이 가진 아름다움, 눈이 가진 폭력성, 눈이 가진 여러 성질과 느낌들을 잘 살려낸 소설들이다. 

 ‘올해의 첫눈이 오늘, 내렸으니까. 몇 년째 애인인지 이제는 헤아리기도 어렵지만 어쨌든 오늘 너의 그녀는 오늘 너의 사랑. 그러니 첫눈은 당연히 그녀의 것이지. 그녀와 너의 것이지. 7년 전의 그 봄날. 봄이었는데, 화사한 봄날이어야 마땅한데, 때아닌 폭설이 쏟아졌어. 지금까지도 거기 갇혀 잇는 내게 첫눈이란, 그래, 네 말대로야. 물에 물 타기, 눈 위에 눈. 그래봤자  눈. 겨우, 고작, 눈.’ p.182 - 눈의 물 

 누군가는 벌써부터 첫눈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봉숭아 물을 곱게 들인 손톱을 깍지 못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눈이 오기를 간절하게 소망할 것이다. 결국은 ‘물에 물 타기, 눈 위에 눈. 그래봤자  눈. 겨우, 고작, 눈’ 인데 말이다.  나 역시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처럼 한 여름에 내리는 사랑스런 눈을 상상하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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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대화들 - 젊은 작가 12인과 문학을 논하다, 2011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ㅣ 불가능한 대화들 1
염승숙 외 지음 / 산지니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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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소설이나 시는 내용보다 작가의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해서, 한 권의 책을 읽기 시작할 때 혹은 끝마무리를 지을 때 작가의 말이 없으면 정말 서운하다.  예전에는 작가의 말이나 해설은 잘 읽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절대 길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작가의 말을 통해 듣는 이야기는 건빵 속의 숨겨진 별 사탕 같고, 도너츠의 블루베리잼 같다고 할까.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작가의 말처럼 소설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책이 바로『불가능한 대화들』이다. 
 
 의미심장한 제목의 이 책은 대담집이다. 염승숙, 김이설, 김재영, 정한아, 김숨, 김사과, 김언, 안현미, 최금진, 김이듬, 박진성, 이영광 젊은 작가 12명은 평론가의 날카롭고 불편한 질문에 아주 성실하게 답하고 있다. 자신들의 소설에 대해 말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자신이 쓴 소설에 대해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에 이 책은 남다른 의미를 지녔다. 

 소설 속에 녹아 든 문학적 상징이나, 의미를 나 같은 독자는 잘 모른다. 그저 내 나름대로 느끼고 생각할 뿐이다. 문학에 대해 소설이나 시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질문은 소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이미 읽은 소설의 단편과 문 장을 떠올린다. 아, 이 부분에서 작가는 이런 마음을 가졌었고 숨겨진 의도는 이랬구나 한다.  다시 그 소설을 펼쳐보게 한다. 특히 정한아가 그랬다. 그의 소설에서는 몽글몽글 뜨거운 따뜻함이 피어났는데, 그런 소설을 쓰는 그는 정작 슬픔을 안고 있었고  슬픔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정한아의 산문 <날아라 뛰어라, 그게 네 이름>에 이런 부분이다. 

 ‘저는 한 때 방 안에 갇혀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시기를 뭐하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절망의 의지도 남지 않은 무기력의 상태에서, 하루하루, 시간이, 생이, 저를 스쳐 지나갔지요. 저는 지금도 그때의 제가 내뱉었던 얕은 호흡과 방 안의 고요를 기억합니다. 매일 밤 끈질기게 따라붙었던 죽음에 대한 망상과, 새벽빛이 떠오를 때마다 간지럽게, 부끄럽게, 그래도 살고 싶다는 마음. 그 시절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소설만 남아 있었습니다.’ p.89

 김사과는 진실을 믿지 않으며 김이듬의 글은 놀라웠다. 김이듬의 글을 처음 만났다. 그는 솔직했으나 내게는 파격적이었다. 그가 쓴 시와 소설을 읽으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궁금해진다. 김사과와 김이듬은 어떻게 보면 아주 닮은 듯 보여진다. 김숨의 산문은 그의 이름처럼 깊은 숨을 들이키고 내 쉬게 한다. 마치 아주 짧은 단편 소설처럼 다가온다. <하루 - 상상은 어디에서 오는가>의 시작부터 그렇다. 

 ‘오후 두 시. 그것은 내 출근시간이다. 프란츠 카프카. 그는 오후 두 시에 퇴근을 했다지. 그는 오후 두 시에 퇴근해 한숨 낮잠을 자고 일어나 독서를 하고 새벽까지 글을 썼다지. 나는 자유로를 달려 오후 두 시에 닿는다. 오후 두 시는 무가당 크래커를 닮았다. 오후 두 시를 입 속에 넣고 낙타처럼 우물거리다 보면 목에 멘다. 침과 뒤섞여 혀와 입천장에 달라붙는 그것을 뱉을 수 도, 그렇다고 꿀꺽 삼킬 수도 없다.’ p. 32 

 오후 두 시가 되면 때때로 김숨이 생각날 것이다. 아니, 내게 오후 두 시는 무엇과 닮은 시간일까. 작가들이 쓰고자 하는 소설과 시에 대해, 그리고 이 시대에 작가들이 지녀야 할 위무는 무엇인가. 작가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듣는 시간은 의미있다. 얼굴을 마주하고 나눈 대담이라면 이처럼 상세하게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에 하고자 하는 사람이거나 특별히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작가가 있다면 그들과 조금은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이 책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작가들의 산문 때문이다. 그 시간은 아주 즐거웠다. 산문에서 작가의 솔직한 면을 볼 수 있었고 신기하게도 작가를 닮아 있었다. 무엇을 추구하는 삶인지 조금 알게 되었고, 앞으로 그들이 써낼 소설과 시를 읽을 수 있다는 데 감사했다. 어떤 글로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의 삶을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 작가의 속내를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그들의 대화를 읽다 보니 소설 보다는 시가 더 궁금해졌다. 언어 안에서 자유 자재로 노는 그들, 언어가 가진 그늘과 무늬, 그 모든 것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그들이 정말 대단하다. 특히 안현미와 최금진의 시집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세상에나, 내 책장에는 최금진의 그 시집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의 시집을 꺼내어 천천히 읽어야 겠다.
 

*읽은 지 많은 날들이 지났는데, 늦게 나마 겨우 이렇게 느낌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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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통신 1931-1935 - 젊은 지성을 깨우는 짧은 지혜의 편지들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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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바라는 건 같을 것이다. 그건 아마도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은 바람이 아닐까 싶다. 그와 동시에 시대를 걱정하고 연구하는 현자가 존재한다. 공자, 석가, 예수가 그랬듯 말이다. 따지고 보면 철학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던 거다. 다만, 우리 삶에 얼마나 깊이 관여하느냐의 정도의 차이만 있었던 것이다. 러셀의 『런던통신 1931-1935』을 읽으면서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제대로 잘 산다는 건 무엇일까 생각했다.  

 책은 러셀이 1931년에서 1935년까지 신문에 기고한 칼럼이다. 소재에 제한을 두지 않았고, 정치, 사회, 교육, 윤리, 전쟁, 사랑 등 살아가면서 계속적으로 고민하는 문제들에 대해 썼다. 사소한 일상에서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세계적 문제로 확장되고 자신의 의견을 차분하고 부드럽지만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러셀의 다른 책은 읽지 않아서 아직 모르겠다.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아주 많다. <우리가 투표를 하는 진짜 이유>에서는 제목만 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가 나올까 예상하며 순간 나는 왜 투표를 하는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러셀은 대부분의 유권자가 후보에 대해 알아보지 않고 그들의 아버지가 지지했던 자들을 지지하는 습관이 문제라고 꼽는다. 선거 때마다 소중한 한 표에 대해 말들이 많다. 후보자가 소속된 정당과 공약을 꼼꼼히 봐야 함을 알지만 어쩜 지금 우리 역시 습관처럼 투표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러셀이 남긴 말은 민주주의에 사는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우리의 정치가를 비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비판하는 것과 같다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의 수준이 곧 정치가의 수준이다.’ p. 89  

 <면화바구미의 충고>란 글을 읽으면서 나는 유명 상품의 축구공을 만드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들의 값싼 노동력의 댓가는 얼마였던가. 8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계의 절반은 왜 이리 너무도 가난하단 말인가.  말로만 착한 소비, 공정무역을 외칠 게 아니라 실행으로 이어져야 한다.  

 ‘누군가가 인간 노동의 산물을 향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이라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도덕성은 금욕적이어서 일을 하나의 미덕으로 여기도록 한다. 그리고 생산은 선이고 소비는 악이라는 생각이 뒤따른다. 이처럼 비틀린 금욕이 세계의 절반은 너무 많이 생산해서 가난하고 나머지 절반은 너무 적게 소비해서 가난한 체계를 낳았다.’ p. 106   

 적절한 예인지 모르겠으나, 외국과의 교역뿐 아니라 우리 농촌 사회를 봐도 그렇다. 유통과정을 통해 농산물의 가격은 생산자가 판 금액의 몇 배로 오른다. 소비자는 비싼 가격 때문에 절제된 소비를 한다. 직접 판매가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하게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족하기엔 부족한 실정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전문 지식인들에게 지침으로 삼으면 좋을 글이 있다. <정통이라는 것은>글의 일부다. 글 속에서 매일 싸우는 모습으로 뉴스에 등장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이쪽이었다가, 저쪽이 되는 당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말 바꾸기의 달인인 그네들은 이런 글을 읽으면 무슨 생각을 할까.

 ‘지식인이란 이러저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한 타당한 논거를 갖고 있더라도 그것을 교조적으로 믿지는 않는 사람이다. 타당한 논거에서 나온 의견은 정서적으로 교조주의자들의 의견보다는 통일성이 부족하다. 논거란 비당파적이어서 지금은 이쪽을 편들다가 다음은 저쪽을 편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p. 359~360 

 135편의 칼럼은 어느 하나 어렵다고 느껴지는 글이 없다. 누구라도 이 책을 통해 인문과 철학에 대해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인문학의 입문서로도 좋겠다. 누군가 인문 분야의 책에 대해 묻는다면 주저없이 러셀의 에세이를 소개할 것이다. 

 러셀의 글은 분명 지금보다 80년 전에 쓰여진 것이다. 한데, 오늘날의 우리에게 아주 적절한 글이다. 80년 동안 세상은 정치, 산업,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빠르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여전하게 세계는 가난과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다. ‘젊은 지성을 깨우는 짧은 지혜의 편지들’이란 부제처럼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 삶과 사회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애정을 갖고 참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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