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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홈
황시운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평점 :
제4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컴백홈』에서 자동적으로 서태지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대부분 30대 이상일 것이다. 십대에게 서태지는 말 그대로 ‘누구세요? ’ 일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의 등장으로 그들의 모든 것은 유행이 되었고 서태지는 문화 대통령이라 불린다. 그리고 이제 소설의 제목으로 등장한다. 시선을 끄는 건 빨간부츠를 신은 ‘원더우먼’ 복장을 한 거구의 소녀 표지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제목은 소설을 움직이는 거대한 복선이다. 서태지가 방송 데뷔를 하던 날, 태어나 현재는 몸무게 130kg의 열일곱살 유미는 그와 운명적인 관계라 믿는다. ‘슈퍼울트라 개량돼지’라는 별명으로 학교에서 왕따다. 집에서도 살 때문에 좋은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어떤 여고생이 뚱뚱해지고 싶겠는가. 다이어트를 반복하지만 매번 요요현상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 살과의 전쟁은 언제부터였을까. 자신도 알 수 없다.
유일한 낙은 서태지와 음식 뿐이다. 서태지는 신이며 유일무이한 존재다. 언젠가 서태지와 만나게 될 그 날을 위해 다이어트에 돌입한다. 단짝 지은은 그런 유미에게 격렬하게 격려한다. 지은은 일진의 일원으로 학년 짱으로 왕따인 유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돈을 갈취하고 방과후엔 유미의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지은이 임신을 하고 가출하자 혼자 남은 유미는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견딘다. 돈을 요구하며 지은의 행방을 묻는 아이들에게 급기야 강간까지 당한다.
열일곱살 유미의 인생이 왜 이리 가혹한가. 유미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사정도 모르며 금반지에 손을 댔다며 매를 가하는 엄마를 유미는 밀치고 때린 후 집을 나온다. 미혼모 시설에서 지은과 함께 지내지만 임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전히 왕따다. 입양을 결정했지만 아이를 키우기로 맘을 바꾼 지은은 유미와 그곳을 떠난다. 집이 아닌 미혼모 시설에서 만난 미영 언니 집에서 셋이 지낸다. 폭식과 지은과의 충동은 계속된다. 지은과 유미는 컴백홈을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툭하면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들 했다. 그런데 어떤 순간이 적당한 때인지를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살다보면 누구나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걸 알게 되는 삶의 순간이 저마다 정해져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p.180
그렇다. 모든 일에는 분명 때가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그 때가 언제인지 왜 중요한지 이야기해주는 어른은 많지 않다는 게 현실이다. 중요한 건 학창시절만 지나면 아무 문제 없을 꺼라 여기지만 힘겨운 순간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겪고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른들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응원을 해야 한다. 한데 어른들은 유미와 지은을 문제아라 할 것이다. 왜 그런 상황에 이르렀는지,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어루만져 주는 대신 무조건 질책하니 아이들은 마음을 닫는 것이다.
작가 황시운은 과감하게 거침없는 십대의 일상을 담았다. 소설 속 십대들의 욕설과 폭력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그들에게 욕이나 담배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저 습관같은 것이다. 그러니 심각하지 않다. 십대들의 왕따, 가출, 임신, 폭력을 소재로 삼았지만 그들을 품어줄 기성 세대가 등장하지 않는다. 유일한 기성세대라면 서태지 뿐이다. 그리하여 서태지의 ‘컴백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출한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잔소리를 해대는 어른들 속에서 유일하게 진심으로 집으로 돌아가라 말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아이들이 모진 성장통을 겪고 나면 철이 들고 속이 꽉 찬 어른의 시대를 맞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정한 현실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결국 자신들이 경험한 것보다 한층 더 잔혹한 세상을 만들게 될 것이다. 점점 더 악화되는 씨스템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어도 출구가 없기 때문에 결국 끊임없이 새로운 미로를 만들어내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이런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p.284 작가 인터뷰 중에서
소설 속 서태지의 존재를 믿고 의지하는 아이들에게 서태지가 되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아이들의 고민과 마음을 읽으려도 시도는 해야 하지 않냐고 황시운은 묻는다. 돌아갈 ‘홈’이 없는 안타까운 우리 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적어도 돌아올 수 있는 ‘홈’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