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축제 2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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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소설은 언제나 읽기 힘들다. 가장 최근에 만난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비롯하여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가 대표적이다. 해서, 페루 태생의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엔 기대와 동시에 두려움이 있었다. 염소의 축제가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한 채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과 첫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염소의 축제』는 열네 살에 도미니카 공화국을 떠난 후 35년 동안 가족과 연락을 끊고 산 주인공 우라니아가 병든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고향에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우라니아가 들려주는 1996년 현재 시선과 독재자 트루히요가 정권을 잡던 과거 시절, 그리고 그를 암살을 시행하던 날(1961년 5월 30일)의 시선으로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우라니아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친척에게 들려주고, 나머지 두 개의 시선은 과거에 머무르는 무척 흥미로운 흐름이다. 

소설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세 개의 이야기는 모두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과연 서사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주인공 우라니아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궁금증이 제일 크다. 트루히요 측근으로 고위 간부였던 아버지가 갑자기 독재자의 미움을 받게 되었는지, 그로 인해 우라니아가 아버지를 증오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진실은 사라지고 아부와 아첨이 가득했던 시절, 언제 독재자의 눈 밖에 날까 두려운 정치인들이 존재했다. 허수아비 대통령을 내 세우고 모든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를 암살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음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또한 트루히요를 제거하는 거사를 완벽하게 해냈지만, 그들이 원하던 세상으로 변화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리라. 수 십년 동안 세상을 지배했던 체제가 하루 아침에 달라질 리 없었다. 1인자가 죽었지만,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여전했고 사람들에게 공포는 습관처럼 존재했다. 암살자가 되버린 그들은 숨겨주고 보호해 줄리 만무했다. 그들은 살고 싶었으니까. 순간의 선택의 자신과 가족을 죽음으로 몰고올 수 있는 시대였다.   

 “주요 음모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보고는 스스로 겁을 집어먹었습니다. 트루히요의 시체는 거기에 있었지만, 트루히요는 계속 그들 안에 살아 있었던 것이지요.” p. 377 - 2권  바르가스 요사의 인터뷰 중  

 도미니카 공화국의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쓰여졌기에 서사는 탄탄했다. 염소로 불리던 트루히요가 벌이는 축제에 대한 묘사는 생생했다. 헤서, 더 잔혹하게 다가왔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의 오만과 성에 대한 혐오스러운 집착은 너무도 끔찍했다. 우라니아가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일흔의 독재자가 열네 살 소녀를 범하는 장면은 차마 읽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랬다. 독재자가 가진 힘은 그토록 강했고, 누구도 거부할 수 없었다. 역사속 잔인한 독재자들의 이름이 떠오른건 자명한 일이다.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살아있는 자체가 중요했다. 우라니아가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살아온 이유도 그러하리라. 살아내기 위해 스스로를 담금질해야 했고, 공부해야 했고, 아버지와 고향, 조국을 잊어야만 했다. 그러나 잊혀질리 없었다. 35년이란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손 하나 까닥할 수 없는 자신을 남에게 맡긴 채 눈만 뜨고 살아남은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 독재자에게 딸을 바친 아버지를 그만 용서하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과거는 잊고 현재의 성공한 삶을 누리며 살라고 할 수 있는가. 

 “자신 있게 말하지만, 날 부러워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 오히려 난 너희들이 부러워. 그래, 그래. 나도 알아. 고모와 너희들도 문제가 있고, 힘든 시기를 보냈고, 실망하고 절망하기도 했어. 그러나 가족이 있고 남편도 있고 아이들도 있고 친척도 있고 조국도 있어. 그런 게 바로 인생이겠지. 하지만 아빠와 총통은 나를 볼모지로 만들었어.” p. 365 - 2권 

 우라니아에게 사촌들과 고모가 누렸던 인생은 없었던 것이다. 한 여자의 인생은 열네 살에 머물러 성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라니아는 도미니카 공화국를 비롯한 독재 정치의 희생양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물론, 여타의 인물들과 배경, 역사적 기록들과는 다르게 우라니아는 허구의 인물이다. 그러나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권력의 횡포의 대상은 언제나 약자와 여성이었다는 것을. 잔혹한 축제는 도미니카 공화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지구상 어딘가에서 여전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이 높이 평가받는 점은 아마도 그런 점이 아닐까 한다. 그곳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쉽게 꺼낼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의 뚜껑을 과감하게 열어버린 것이다. 해서,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고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상황과 위치에 따라 사람들은 변화한다. 주목해야 할 점은 독재자가 사라지고 발라게르 대통령이 도미니카 공화국의 안정을 되찾아가는 과정과 조금씩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모습이다. 그의 모습을 통해 위정자들과 권력의 집행자들이 무언가 느끼기를 바란다.   

 이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가 나처럼 도미니카 공화국 를 검색했을 것이다.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한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서의 그 도미니카 공화국이 분명한데, 전혀 다른 느낌이다. 카리브해 이스파니올라섬의 동반부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 한때 트루히요 시로 불리었던 우라니아의 고향 ‘산토 도밍고’에 더이상 어떤 식으로든 염소의 축제는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공포와 두려움이 공기처럼 흐르는 사회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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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의 사태 - 김도언 소설집
김도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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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소설가와 소설의 주인공을 동일시 하는 경우가 있다. 소설은 꾸며낸 이야기가 분명한데 말이다. 소설가와 주인공의 동성이거나 같은 연령대면 더욱 그러하다. 그것은 소설을 통해 소설가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가 뿐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들 역시, 그네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해서, 자전소설이나 산문집을 통해 일상을 공개하는 것이리라.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신경숙의 『외딴방』이 그 예가 아닐까 한다. 작가의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랑의 사태』를 읽으면서 작가 김도언이 아니라 ‘그 남자 김도언’을 읽는 듯했다. 이건『불안의 황홀』의 여파인지 모른다.  

 『불안의 황홀』에서 만난 김도언은 밝음 보다는 어둠에 가까운, 가볍지 않고 무거운, 투명하기 보다는 불투명에 속해있었다. 해서, 그의 소설을 읽기 전 어떤 긴장감이 몰려왔다. 한데,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나 <악취미들>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랑의 사태>는 내게 평이했고, 편안하기까지 했다. 단편은 무언가 숨기고 있는 듯 보였다. 아마도 그건 곧 드러낼 냉소이며 광기인지 모른다. 아무튼 이 말은 내가 그의 소설을 좋아한다란 말이다.   

 <내 생애 최고의 연인>나 <전무후무한 페스트베이스맨>,<어느 위대한 소설가의 자술 연보>,<백하동 가는 길>을 제외한 나머지<권태주의자>와 <랑의 사태>,<다큐멘터리 가족극장>,<안으로 나가고 밖으로 들어가는 방법에 대한 고찰>, <다크블루, 시간의 풍경>은 작가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 소설 속에 투영되고 있다.  대부분의 화자는 소설가이거나, 출판사의 편집장, 시인, 시를 읽거나 시를 쓰고자 하는 문학과 관계가 깊은 사람들이다. 개인적으로 <권태주의자>와 <전무후무한 페스트베이스맨>,<안으로 나가고 밖으로 들어가는 방법에 대한 고찰>이 특히 인상적이다.  

 소설 속 인물이나 배경이 같은 <권태주의자>나 <랑의 사태>는 마치 연작소설으로 읽힌다. <권태주의자>는 제목 그대로 권태로운 삶을 사는 이야기다. 뚜렷한 목적 없이 흘러가는 대로, 그러나 한 편으로 보면 무언가에 집착하듯 보인다. 소설엔 화자가 벤자민 나무와 대화하는 부분이 있는데, 나는 벤자민 나무의 답에 매료되고 말았다.  

 “나는, 위협받는 포로처럼 우울해요. 눈에 에워싸인 당신의 복사뼈처럼 우울해요. 한쪽 발을 잃은 마네킹처럼 우울해요.”  p. 118  

 벤자민 나무도 화자처럼 권태주의자였던 거다. 눈에 에워싸인 당신의 복사뼈처럼이라니.누군가는 지루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이자 탁구장 주인인 화자 삼촌이나 화자는 모두 권태주의자답게 살고 있다. <랑의 사태>는 랑이라는 여자의 이야기다. 도서관에서 삼촌의 시집을 읽고 있는 랑을 만난다. 랑은 모텔을 운영하는 할머니와 살고 있다. 랑에게 부모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녀는 환상의 세계가 아니면 살아낼 수 없는 여자다. 화자는 기꺼이 랑의 환상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다. 현실을 부정하며 살아가는 삶, 때때로 누구나 바라는 권태로운 삶이 아닐까.

 <다큐멘터리 가족극장>, <안으로 나가고 밖으로 들어가는 방법에 대한 고찰>은 신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와, 장남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꿈을 저버린 큰 형과 쌍둥이 형을 비롯한 가족 이야기가 등장한다. <안으로 나가고 밖으로 들어가는 방법에 대한 고찰>에서는 평소에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 바라보며 아버지의 삶을 빌어 우리 생에 가져야 할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안과 밖을 나누면서 모두들 따뜻한 내부를 갖기를 원한단다. 우리는 밖이 아닌 안에서 위로를 받으면서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것이지. 그런데 나에게는 이 세상이 온통 까다롭고 사나운 바깥 같구나. 사는 것이 참으로 두렵고 어려워. 어떻게 저 밖으로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어.” p. 203~ 204    

 우리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삶은 무엇일까. 한 가족의 가장이며 세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온 삶 속에 이같은 생각들이 가득했을 꺼라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러하니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생이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고단할까.  이는 서른 아홉의 출판사 편집자인 화자가 열두 살 아래의 그림작가를 사랑하는 <내 생애 최고의 연인>나 은퇴를 앞둔 야구 선수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인 <전무후무한 페스트베이스맨>에서도 느껴진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는 간절함, 소통에 대해 말이다. 

 9편의 소설에서 김도언은 이런 삶을 지향하는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소설들은 하나의 특정한 에피소드를 통해 무언가를 갈구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가령, 죽음이라든지 존재의 이유처럼 다소 철학적인 것들이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으나 쉽게 꺼내지 못하고 말하지 않는 일들 말이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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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 -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김해용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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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보다는 둘이 좋다고 했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다시 혼자가 되어도 누군가를 찾는 일들을 반복하며 사는 걸까. 태초에 아담과 이브를 만든 신의 뜻을 저버리면 큰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하듯 말이다. 사람들은 사랑이 신이 인류에게 준 가장 큰 행복임과 동시에 가장 큰 저주인지 모른다. 해서,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절망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랑하여 행복하려 한다. 사랑, 참 어렵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어려운 사랑을 혹 하고 있다면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란 소설을 통해 그 사랑은 어떤지 생각할 시간을 가져도 좋으리라. 

 책엔 두 편의 연애 소설이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의 주인공은 누구나 부러워 할 좋은 집안의 남자 아키오다. 아키오는 누가봐도 첫 눈에 반할 외모를 지닌 여자 나즈나와 만나 결혼을 한다. 둘 다 사랑만이 전부였던 결혼이 아니었다. 가문과 형제들에 비해 모든 면에서 부족했던 아키오는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독립을 원했던 것이다. 나즈나 역시 옛 연인에 대한 복수로 결혼을 선택했다.  

 한 동안 행복했던 결혼생활은 흔들린다. 아내의 옛 애인 때문이다. 아키오는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즈나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아키오에게 직장 선배인 도카이는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도카이가 살아온 이야기를 통해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내세울 것 없는 외모, 이혼, 암투병을 견뎌낸 당당한 삶은 사랑하게 되고 암이 재발한 그녀와 결혼을 한다.

 타인을 소중하게 생각하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자신을 긍정해야 한다. 즉,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p.113      

 아키오나 나즈나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서로에게 더 큰 상처를 남겼는지 모른다. 소설엔 엇갈린 사랑으로 힘겨워하는 주변 인물이 많다. 사랑해선 안 될 상대를 사랑하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은 왜 이리 잔인한 것일까. 

 <둘도 없이 소중한 너에게>는 조금은 뻔한 불륜 이야기다. 주인공 미하루에겐 약혼자  세이지와 연인 연상의 이혼남 구로키가 있다. 말하자면, 결혼해도 좋을 남자와 사랑하는 남자가 따로 있는 것이다. 약혼자 세이지는 젊고 능력이 있지만 미하루에게 어딘가 부족하다. 반면, 구로키는 연륜 때문인지 세세한 부분까지 미하루의 마음을 잘 읽는다. 물론 미하루가 선택한 남자는 세이지다. 서로를 갈망하고 사랑하지만 구로키와 미하루는 더이상의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진심이 아니었다. 결혼식을 하루 전 날 자신의 마음을 확인한 미하루가 달려간 곳은 바로 구로키였다. 구로키 역시 미하루를 사랑했기에 이미 떠나버렸다.  

 “나는 사실 이런 관계가 제일 좋아. 만나고 싶을 때 만나고, 하고 싶을 때 하고, 그러면 후회도 안 하고, 질투나 집착도 없지. 억지로 함께 살면서, 서로를 얽어매거나 트집 잡는 짓도 하지 않아. 그런 관계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면, 나는 그게 가장 좋은 관계라고 생각해.” p. 286  

 구로키에게 사랑은 습관이었다. 미하루와 헤어지고도 그녀의 생일에 케익을 사둔 것도 벚꽃을 볼 때마다 팝콘같다던 미하루의 말이 떠오르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렇게 그 사람이 자신에게 스며들어 습관으로 남는 것이다. 미하루를 떠난 구로키는 이혼을 선택한 도카이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얼마만큼의 애정』,『지금 사랑해』, 『서른 다섯,사랑』을 통해  이별, 이혼, 불륜, 등 파격적인 소재를 거침없이 묘사한 작가 시라이시 가즈후미. 그가 그리는 사랑은 누구나 꿈꾸는 낭만적이거나 달콤한 사랑이 아니다.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로 예상외의 결말이다. 다시 말해, 과연 이런 선택도 할 수 있구나 싶을 정도다. 어쩌면 그 생각이 맞을지 모른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일이, 계획하는 수순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므로. 설령, 사랑의 결실이라는 결혼으로 이어져도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그리하여,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삶이 있고, 사랑하지 않아도 잘 살아내는 삶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은, 나를 온전히 버리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의미가,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의미와 같아야 하기에, 진정 어려운 일이다. 도대체 사랑이라는 게 무엇이기에, 누구나 한 번쯤 그 사랑에 목숨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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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8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9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7번국도 Revisited (특별판)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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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하다’란 말이 어울리던 시절은 이미 내게서 사라졌다. 그 무모함 속에 담겼던 열정,도전도 함께 말이다. 그러니까, 7번 국도 위에 있었던 시절은 기억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 시절 뜨겁다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차갑거나 미지근한 쪽에 속하지 않았다. 20대였고 삶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다. 믿는 구석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을 정도의 용기가 있었다.  마흔을 앞둔 지금은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현실에 안주하고, 나름대로의 변명으로 내 삶을 자위한다. 잘 살고 있는지, 잘 살아왔는지 마음이 복잡할 때, 새로운 7번 국도의 문장이 이끄는 대로 길을 나선다.   
 
 자전거를 타고 7번 국도를 여행하는 젊은 청춘들, 그들의 고뇌와 방황이 왠지 안쓰럽다.  7번 국도를 함께 품었던 화자인 나와 재현, 그리고 그들이 사랑했던 세희가 품었던 갈망들,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시간이 흘러 이렇게 새로운 소설로 쓰여졌듯 7번 국도는 이제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그건 소설 속 화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하니1997년 7번 국도를 읽고 그 길 위에 섰던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청춘이 아닐 것이다.  

 화자인 나는 어엿한 작가로 학생들과 문학기행을 떠나고 깨질 듯 불안했던 세희는 아이 엄마가 되어 살아간다. 혼자 외롭고 상처받았다 생각했던 시간들을 잘 견뎌낸 것이다. 그렇다고 그 시간들을 잊은 건 절대 아니다. 상처받고 상처주고 울고 웃었던, 모든 것이 사랑으로 연결되었던 순간들이 있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지난 날 내가 사랑했던 당신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나를 사랑했던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나도 살아 있을까.
 
 ‘이제는 죽고 없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 동시에 두 남자를 사랑하는 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인간을 사랑하는 일. 그 모든 사랑이 내게는 공평하고 소중하다는 걸 말하기 위해서. 그러므로 내가 할 일은 기억하는 것. 잊지 않는 것. 끝까지 남아 그 사랑들에 대해서 말하는 증인이 되는 것. 기억의 달인이 되어, 사소한  것들도 빼놓지 않고, 어제의 일인 것처럼 늘 신선하게, 거기서 더 나아가 내가 죽은 뒤에도 그 기억들이 남을 수 있도록, 이 세계 곳곳에 그 기억들을 숨겨두는 일.’ p.187 

 때로 흘러가는 대로 나를 맡겨도 좋은 게 생이 아닐까.  소설에서나 소설 밖 우리 생에서 필요한 건 이런 문장과 같은 시간일 것이다. ‘자신이 숨을 쉰다는 사실에만 집중한다. 이런저런 생각들은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둔다. 들숨에 집중해서 숨을 들이마시고, 날숨에 집중해서 숨을 내쉰다. 천천히, 다시 들숨에 집중하고 날숨에 집중한다 그걸 계속 반복하다. 생각들은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두면 된다. 어떤 생각들은 오랫동안 떠올라 마음을 흔들어놓을 것이다. 그럴 때면 격랑이 몰아치는 강가에 앉아서 강물을 바라보듯이 그 생각들을 바라본다. 중요한 건 생각과 자신 사이에 거리를 두는 일이다.’ p. 192

 7번 국도에서도 그랬듯 소설엔 노래 가사가 많이 등장한다.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투명물고기의 <저물다>를 들었다. 강렬하게 타오르던 해도 반드시 저물듯, 투쟁하는 삶도 열병처럼 사랑했던 순간도 언젠가는 저물고 만다. 해서,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충실하고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현재는 곧 과거로 사라지니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하며 살면 된다. 작가 스스로도 뜨겁던 청춘을 지나왔기에 들려줄 수 있는 말이 정답은 아닐런지. ‘삶은 우야든둥 지금 여게 있는 거지, 어데 멀리 있는 게 아닌 기라예.’ p. 96 

 김연수는 뼈대는 그대로 두고 처음부터 소설을 새로이 썼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역시 13년이란 시간을 겪었기 때문이리라. 13년이란 시간의 흐름에 세상도 변하고, 사랑도 변하고, 삶 자체도 변하니까. 그래도 2010년 다시 만나는『7번 국도 Revisited』는 누군가를 다시 길 위에 서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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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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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희경의 『소년을 위로해줘』는 소년, 소녀의 이야기다. 아니,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 시절을 겪어야 할 아이들과 이미 그 시절을 겪어낸 어른들의 이야기.  내게도 소녀의 시절이 있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가득했던 시절, 그 마음을 토해낼 수 있던 대상은 오로지 친구뿐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이어폰으로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들었고 쪽지를 보내고 비 오는 밤을 우산없이 걷기도 했다. 오르지 않는 성적과 가고 싶은 대학에 갈 수 없다는 절망에 울기도 많이 울었던 시간이다. 제발 빨리 지나가기만 바라던 시절을 소설을 통해 다시 만난다.  
 
 열 일곱 연우, 채영과 한 살 많은 나이의 태수는 같은 학교에 다닌다. 완벽한 부모아래 숨막히는 일상에 힘겨워하는 채영, 유학시절에 겪은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귀국 유학생 태수, 이혼녀인 엄마와 살고 있는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연우. 이사 온 첫 날, 자신의 창문을 올려다보는 소녀 채영과 전학 수속을 하러 간 학교에서 태수를 처음 만난다. 그들을 연결시킨 건 G -그리핀이 부른 노래다. 고등학생의 마음을 잘 전달한 가사의 랩은 완벽했다.   

 연우와 채영은 서로에게 끌리고 태수와 연우는 단짝이 된다. 함께 달리고 음악을 듣고 퍼즐을 마추며 서로를 알아간다. 채영의 슬픔에 다가갈수록, 태수의 아픔을 알아갈수록 연우는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 그러나 소설은 무거움이 전부가 아니다. 은희경답게 맑고 경쾌하다. 특히 소설에 가득한 랩과 연우와 태수에게 달리기를 가르치는 재욱과 연우의 엄마 신민아의 역할이 그러하다. 소년의 연장선에 있는 재욱은 연우에게 엄마 이상으로 위로가 된다. 해서 소설은 연우, 채영, 태수의 이야기는 그들의 부모로 이어진다.  

 감성보다는 이성으로 삶을 견디기에 현실을 받아들이고 미래를 위해 달려주길 바라는 채영의 부모, 아이와 가족을 위해 모든 것 희생할 준비가 된 태수 엄마, 연우를 이해하지만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고 연우 엄마보다는 신민아로 행복하고 싶은 연우 엄마. 고등학생에게 대학입시가 가장 중요한 일이 되버린 시대, 우리는 어떤 가족이며 어떤 부모에 속하냐고 묻는다.    

 “연우야 잘 들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해서 일이 저절로 풀리는 건 아니야. 스스로 일을 잘 풀어가게 되는 거지. 그리고 말야, 서로 사이가 좋아서 가족이 행복한 게 아니라, 각기 제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가족이 사이가 좋아지는 법이야. 그러니까 내가 내 행복을 찾고 있는 건 너를 위한 일이기도 해.” p. 213~ 214

 너무 여려서 단단해지려면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태수가 채영을 태우고 연우를 만나러 자동차를 몰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은희경은 왜 이렇게 큰 아픔을 던져주었을까. 함께 웃고 울며 보낸 여름, 가을, 겨울이 바뀌듯 아이들은 자연스레 성장할 텐데. 어차피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걸 금세 터득할 것을.   

 ‘사실 나는 위로를 잘 믿지 않는다. 어설픈 위안은 삶을 계속 오해하게 만들고 결국 우리를 부조리한 오답에 적응하게 만든다. 그 생각은 변함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는 거기 실려간다. 삶이란 오직,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이란 것이 생겨나고 변형되고 식고 다시 덥혀지며 엄청나게 큰 것이 아니듯이, 위로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러니 잠깐씩 짧은 위로와 조우하며 생을 스쳐 지나가자고 말이다.’ p. 485  

 작가의 말을 통해 은희경은 위로에 대해 말한다. 그녀 스스로 위로를 잘 믿지 않는다고 하지만 위로 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그녀 또한 소설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었던 건 아닐까. 지금 소녀와 소년이라는 시기를 살아가는 이에게, 한 때 소녀이거나 소년이었던 세상의 모든 어른들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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