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안녕, - 제1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이종산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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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의 말들을 믿지 않았다. 현실은 소문이었다. 믿을 수 있는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현실과 환상은 구분되지 않았고 삶과 죽음은 뒤엉켰다. 모든 것이 이상했다. 내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살고 싶은지 죽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136쪽

 

 거짓말은 나를 숨기기 위한 방패에 불과하다. 때문에 나는 곧 드러나고 만다. 하지만 나를 감추고자 하는 마음을 아는 이에게 거짓말은 진실이 되기도 하다. 그러니까 어떤 이는 거짓말을 통해 나를 멀리하고 어떤 이는 거짓말을 통해 나와 가까워진다는 말이다. 그 두 관계는 애정의 존재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이종산의 『코끼리는 안녕,』속 주인공 마리는 삶이 곧 거짓말이다. 무엇 때문에 마리가 거짓말을 시작했는지 작가는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하나의 장면을 다 보여주지 않고 모호한 상황만 이어간다. 어쩌면 이러한 전개가 이 소설의 특징인지도 모른다. 짧은 문장을 이용해 감정을 전달한다.

 

마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관을 만드는 여자다. 아버지는 죽고 엄마와는 떨어져 지낸다. 학창 시절부터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 의도적으로 속이려 한 게 아니다. 어느 순간 그렇게 시작됐고 멈출 수 없었다. 동물원에서 일하는 민구는 그런 마리를 이해하려 애쓴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결국 그 역시 마리를 떠난다.

 

 말하는 코끼리 우리 앞에서 마리는 드라큘라를 만나고 그의 지난 삶을 듣는다. 오래 전 그가 사랑한 미라라는 여자와 환생이라는 남자의 이야기. 그가 간절히 그 여자를 찾고 있다는 걸 알지만 마리는 민구와 미라의 관계를 말하지 못한다. 코끼리가 죽고 그 우리 앞에 있었다는 이유로 마리는 조사를 받는다. 민구는 미라와 함께 마리를 데리러 온다. 그랬다. 마리는 드라큘라와 함께 있는 게 좋다. 거짓이 아닌 이야기, 아무 의미가 없는 이야기를 그와 나눌 수 있으니까.

 

 마리와 드라큘라는 친구처럼 연인처럼 서로를 길들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고 누군가를 길들이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온전한 나를 보여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소중하다. 마리에게 드라큘라가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그를 위해 관을 만든다. 그가 떠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드라큘라 옆에 나란히 누웠다. 드라큘라가 관 뚜껑을 닫았다. 안에서 여닫기 편하도록 손잡이를 만들고 잠금장치도 해뒀다. 드라큘라가 관을 안에서 잠갔다. 나는 불편해졌다. 잠금쇠 쪽으로 손을 뻗었다. 드라큘라가 내 손을 붙잡았다. 내 숨소리가 들렸다.’ 123쪽

 

 소설엔 분명 드라큘라가 등장하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다. 마리가 코끼리 살해 용의자로 지목된 점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말하는 코끼리의 등장부터 판타지 이미지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깔고 그 위에 무심한 듯 경쾌한 대화를 툭툭 던진다. 그것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상관없다. 어차피 우리는 직접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믿고 그것에 속지 않는가. 우리 삶 속에 부유하는 수많은 이야기처럼 말이다.

 

 ‘-마늘 먹을 줄 알아요?

 -돈 떨어지면 마늘 까.

 -햇빛은 괜찮아요?

 -오늘은 괜찮아. 일 년에 하루는 낮에 돌아다닐 수 있어.

 -보통 땐 관에만 있어요?

 -낮에 보통은.

 -갑갑하겠다.

 -십오 년 넘게 관에서 나오지 않은 적도 있는데 뭐.’ 31쪽

 

 이종산은 젊은 작가다. 아니 어린 작가라는 말을 선택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한데 그녀는 거짓말이나 농담이 힘겨운 삶의 순간을 견디게 한다는 것을 아는 듯하다. 이토록 놀랍고 유쾌한 농담을 건네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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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도피 ㅣ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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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의 책을 다시 읽게 되는 경우는 두 가지가 아닐까 한다. 하나는 필요에 의해서, 나머지는 좋았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고백하자면 베른하르트 슐링크의『사랑의 도피』를 다시 읽게 된 건 두 경우에 모두 속한다. 2009년 『다른 남자』로 먼저 읽었다. 물론 그 내용이 다 기억나는 건 아니다.  해서 조금 더 집중해서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부분에서 밑줄을 긋는 건 나의 한계인가.

 

 소설의 인물은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갈등의 중심에 있다. 그러니까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진실이 아닌 약간의 과장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독일이라는 배경이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판사 시절 아버지가 유대인에게 선물 받은 그림을 둘러싼 비밀을 다룬<소녀와 도마뱀>, 동독과 서독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겪게 되는 내면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한 <외도>, 유대인 여자친구를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독일인 남자친구의 이야기 <할례>을 차례로 보면 전쟁과 이념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그것들이 삶을 어떻게 잠식하는지 세밀하게 그려낸다.

 

 베를린 장벽에 무너진 후 동독과 서독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외도>에서 화자인 나와 스벤은 체스를 두는 친분을 쌓는다. 스벤의 아내 파울라와 그의 딸 율리아와도 한 가족처럼 지낸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동독과 서독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어쩌면 그건 평생 풀리지 않는 숙제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장벽이 없는 것처럼 행동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 사이의 우정을 저편 당신들의 우정이나 이곳의 우리들 사리의 우정처럼 여길 수도 없구요.” (84쪽, 외도 중에서)

 

 스벤과 파울라는 각자 대학에서 강의를 맡으며 동독이 아닌 독일인으로 정착하는 듯하다. 그러나 스벤은 비밀경찰에게 나와 파울라에 대한 정보를 은밀하게 제공한다. 과거 정당에서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정치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것,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이 대해서 말이다. 그는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안 파울라는 크게 화를 내고 그 일로 셋의 관계는 어긋난다. 스벤과 파울라는 율리아의 부모의 역할에만 충실한다. 표면적으로 셋은 여전히 친구로 남았지만 결국 동과 서로 나뉘고 만 것이다.

 

 ‘장벽이 무너지던 겨울을 동서독 사람들 사이의 호기심으로 물든 사랑의 봄으로 변모시킬 수 있었던 그런 것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그러던 중 낯설게, 자기 것과 다르게 그리고 멀리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만 여겨지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가깝게 평범하게 그리고 성사시게 느껴졌다. 세면대에 떨어져 있는 여자친구의 검은 머리카락처럼, 혹은 그녀와 함께 산책을 할 때에는 마음에 들지만 함께 쓰고 있는 아파트에 있을 땐 신경을 건드리는 여자친구의 덩치 큰 개처럼. 호기심의 대상으로 계속해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혼돈 속에서 어떻게 함께 삶을 꾸려 가느냐에 있다. 물론 서로가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아직 관심이 있을 경우에.’ (125~126쪽, 외도 중에서)

 

 <할례>는 유대인 여자와 독일인 남자의 사랑을 통해 이념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안디와 사라는 뉴욕에서 만났다. 독일을 떠난 유학중인 안디는 여자친구 사라의 가족을 통해 유대인의 의식에 대한 거부감을 버리려고 노력한다. 사라와 안디는 아주 잘 통하는 사이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유대인과 독일인의 역사라는, 묘한 기류가 흐른다. 함께 독일 여행을 다녀온 후 골은 점점 깊어간다.  

 

 “무엇보다 너희는 나를 편견을 갖고 대해. 너희는 독일인들에 대해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어. 그러니까 너희는 나에 대해서도 다 알고 있는 거야. 그러므로 너희는 더 이상 나한테 관심을 가질 필요 없는 거지.”

 “우리가 너한테 크게 관심이 없다고? 네가 우리한테 갖고 있는 관심 정도도 안 된다고? 그런데 왜 우리는 네가 멀리 떨어져서 우리를 시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거지? 그리고 왜 그 차가운 반응을 독일인들한테만 느낄까?” (319~320쪽, 할례 중에서)

 

 안디는 사라에게 자신의 사랑을 확인시키고 싶다. 해서 유대인의 의식인 할례를 감행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안디는 그녀를 떠난다. 그들에게 전쟁은 아무렇지도 않은 과거 역사의 일부가 아니라 현재였는지도 모른다.

 

 아내가 죽은 후 다른 남자의 존재를 알고 혼란스러운 남편의 심리를 다룬 <다른 남자>, 세 여자 사이를 오가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위험한 남자의 이야기 <청완두>, 죽음과 직면하고서야 이혼 후 돌보지 않은 아들을 떠올리는 <아들>,  무의미한 결혼 생활이 아닌 진짜 삶을 찾기 위해 아내를 떠나는 <주유소의 여인>속 인물의 삶도 흔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삶을 흔드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이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한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런 흔들리는 삶을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아름답게 그려낸다. 여전히 매력적이고 황홀하지만 쉽지 않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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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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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때문에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살아간다. 하지만 문제는 목표라는 지점에 도달했을 때 행복을 느끼는 이가 많지 않다는 거다. 타인의 눈으로 바라본 삶이 아니라 나 스스로 완전하다고 느끼는 삶이 존재하지 않아 우리는 불행한 것이다. 그럼에도 누구도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거나 불완전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가벼운 나날』은 이처럼 복잡미묘한 삶을 가장 완벽하게 묘사한 소설이다.

 

 소설은 건축가 남편 비리와 아내 네드라의 평범한 이야기다. 부부에겐 사랑하는 두 딸과 친구, 애완견이 있다. 친구들을 불러 함께 저녁을 먹고 음악을 듣고,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본다. 대화의 주제를 위해 책을 읽고, 아이들을 위해 직접 동화를 쓰고 연극을 준비한다. 누가 봐도 그들은 행복한다. 가장 완벽하게 연출된 가족사진처럼 말이다. 그러나 부부가 꿈꾸는 삶은 달랐다. 비리와의 결혼이 탈출구였던 네드라에겐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비리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하고 안정된 생활은 생기를 잃은 삶이었다.

 

 ‘그들의 삶은 미스터리였다. 숲과 비슷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덩어리로 이해되고 묘사될 수 있었지만, 가까이 갈수록 흩어져 빛과 그림자로 조각났고, 그 빽빽함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는 형태가 없었고, 경이로울 정도의 디테일만이 어디나 가득했다.’ 51쪽

 

 네드라와 비리의 일상을 통해 엿보는 타인의 삶, 그건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뉴욕에서 쇼핑을 즐기며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교외의 전원주택으로 돌아오는 삶에 만족이 결여되었다면 누가 믿겠는가. 타인의 시선을 즐기면서도 벗어나고 싶은 네드라의 갈망은 우리의 내면의 소리와 닮았다. 해서 어떤 장면에서는 마음을 들킨 듯 소름이 돋고, 어떤 장면은 덤덤하게 넘기고, 어떤 장면에서는 화끈거린다. 비리는 능동적으로 삶을 이끄는 네드라가 부러웠고 버거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둘은 이혼을 결정했고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마흔 하나의 네드라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떠난다.

 

 ‘축제는 끝났다. 아이들에게 그가 수없이 읽어주었던 이야기, 세 가지 소원을 다 써버린 가난한 부부처럼, 그는 절실히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는 분명히 보았다. 다 말하고 나니 그가 정작 원했던 건 단 한 가지, 아주 작은 소망이었다. 그는 아이들이 가장 행복한 집에서 자라길 바랐었다.’ 325쪽

 

 어떤 선택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세상에는 내가 아는 삶과 내가 모르는 삶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타인의 삶에 관여할 수 없다. 나의 생, 역시 누군가에게는 모르는 삶에 속한다. 물론 네드라와 비리가 부부였을 때처럼 다 안다고 믿는 공통의 삶도 존재한다. 그건 때로 포장을 원하고 영혼 없는 웃음을 요구했다.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삶은 내가 아는 삶과 모르는 삶이 균형을 이룬 삶인지도 모른다. 네드라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그의 고단한 삶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러니까 드러나지 않는 삶의 비밀 조각들을 보여주고 공유하는 삶 말이다. 네드라의 말처럼 주인공에서 조연으로 옮겨가면서 내가 아는 삶과 모르는 삶의 접점에 닿는 순간과 마주할게 될 것이다. 그 접점을 우리는 결혼, 이혼, 죽음이라는 말로 부르는지도 모른다.

 

 “전과 다름없다…… 아녜요. 누구도 전과 같을 수는 없어요. 우리는 옮겨 가고 있어요. 이야기는 계속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에요.” 352쪽

 

 제임스 설터는 우리가 살면서 놓치는 삶의 순간을 포착한다. 평이한 순간들을 아름답고 선명하게 담아내 특별하게 만드는 놀라운 작가다. 차마 잴 수 없었던 삶의 무게를 적확하게 측량하는 것이다. 그의 문장으로 태어난 삶은 이전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경이로운 것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몰랐던 삶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삶이 궁금하다. 투명하거나 불투명한 우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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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바닥이 따뜻하다. 눅눅한 기운을 걷어내려고 보일러를 돌렸다. 발바닥에 타고 전해지는 따뜻함이 좋다. 어김없이 콧잔등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래도 좋다. 아, 뜨거운 건 이렇게 좋은 거구나. 아침에 듣는 음악이 좋고, 커피가 좋고, 자두가 좋고, 복숭아가 좋고, 맥주가 좋고, 치킨이 좋고, 책이 좋고, 글이 좋고, 당신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당신, 내가 좋아하는 걸 모르는 당신,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걸 아는 당신, 좋은 것들은 이리도 많다.  

 

 한 작가에 대한 애정은 어떻게 생성되는 걸까? 첫 인상, 입소문, 출판사의 홍보 문구, 표지, 지인의 추천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구병모, 김경욱, 이응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신간이 유혹하는 아침이다. 이 작가들과의 첫 만남을 생각한다. <위저드 베이커리>로 만난 구병모는 신선했다. 이어 만난 <고의는 아니지만>은 놀라웠고 <아가미>는 독특했다. 신간 <파과>는 어떤 느낌일까. 김경욱의 소설은 단편 드라마로 만났다. 그리고 책을 읽었다. <위험한 독서>가 제일 좋았다. 아니, 읽지 못했기에 그의 소설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장편소설 <야구란 무엇인가>는 야구에 대한 소설일까? 표지를 장식한 토끼의 의미가 궁금하다.

 

 이응준과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은 무척 아름답다. 요즘 제목의 대세는 밤인가 보다. 이증준의 <밤의 첼로>는 얼마나 매혹적일까?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으로 만났던 감성을 떠올린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여름 거짓말>이야말로, 이 여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 아닐까 싶다. 저절로 표지에 손이 간다. 물결의 말들이 내게로 스며들 것 같다.

 

 

 

 

 

 

 

 

 

 

 

 

 

 

 

 

 

 

 

 

 

 

 

 

 

 좋아하는 동생의 글에 의하면 좋은 것을 좋아하려면 많은 의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좋아하니까, 때로 싫은 것도 싫어하지 못하고 서운함도 감수해야 한다는 거다. 읽히지 않는 책을 덮지 못하는 일, 읽지 못하는 책을 구매하는 행위의 근원에도 사랑이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좋아하니까, 사랑하니까. 그러므로 모든 사랑에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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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ㅣ 문학동네 시인선 37
김충규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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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은 죽었고 그의 시는 남았다. 남겨진 시를 읽으면서 시인을 생각한다. 시집을 위한 시가 아니라 그런지(이건 내 생각일 뿐이다) 시인의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듯하다. 당신이라는 단 한 사람을 위한 시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집 속 당신은 ‘내 사람’으로 명명된 누군가이겠지만 시집을 읽는 이는 모두가 단 한 사람이다. 그래서 시를 읽는 시간, 당신과 나만 존재한다.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라일락이 보일락 말락

 어디에 숨었니? 내 사람

 

 공기가 삭아내리는 소리

 

 라일락 향기 지독해서

 숨어버린 거니? 내 사람

 

 라일락을 가진 집의 지붕 위에

 찌그러진 심장 반쪽

 다급히 숨은 거니? 내 사람

 

 저 집은 죽은 고래

 저 심장은 고래의 각혈 덩어리

 

 내가 먼바다에서 잡아온 고래가

 라일락 향기에 죽었다

 

 내가 이 세성에 낳아보지 않은

 희미한 딸이

 멀리서 손짓하는 한참 오후

 눈 비벼보면 아지랑이

 

 삭은 공기를 질질 끌고 가는

 허파에 구멍이 뚫린 늙은 바람

 어디 숨어 우는 거니? 내 사람

 

 내 심장을 꺼내 먹이면

 고래가 숨을 얻어 허공을 헤엄쳐오를까

 그러면 나타날 거니? 내 사람

 

 라일락이 피기 전에 온다 해놓고 못 와서

 어둠이 징검징검 허공 딛고 오도록

 꼭꼭 숨어버린 거니? 내 사람

 

 내가 심장을 꺼내기도 전에

 심장에 불이 타도록

 

 라일락 다 지고 고래 다 썩고

 그런 뒤에 나타나려니? 내 사람 (10~11쪽)

 

 유리창과 바람과 사람

 

 유리창에서 바람이 미끄러진다

 먼 곳에서 우리집 쪽으로 하염없이 밀려와

 발코니 유리창에서 그만 미끄러진다

 저 바람의 숙박은 대체 어디여야 하는가

 한때 내가 나를 들판에 버려서

 어디 향할지 몰라 허둥거리는 영혼을 보는 듯

 기실 저 바람이란 누군가의 영혼이 떠도는 것인지 몰라

 유리창에 부딪혀 피 흘리는 바람의 영혼이 측은해

 눈길을 피한들 내 영혼의 숙박이 온전한 건 아니다

 영혼이 매일 변신을 거듭한다면 모를 일이나

 저리 미끄러진 바람은 절룩일망정 변신하지 못할 것이다

 바람의 육체가 수시로 변한다고 믿는 건

 사람의 어리석음일 뿐

 한번 얻은 육체는 바람도 사람도 어쩌지를 못하는 법

 하여 서럽기도 하고 생이 두렵기도 하고

 유리창에 미끄러지기도 하는 것

 저렇게 살다 죽더라도 바람이 묘비명을 남길 일은 없듯

 내 가련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순간이 오더라도

 나는 묘비명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

 그저 세상이라는 유리벽에 반복적으로 미끄러지다

 일생을 훌쩍 허비한 것에 불과할 테지만

 앞을 가로막은 유리창을 원망할 필요는 없는 것

 바람은 바람 없는 영원의 숙박을

 사람은 사람 없는 영원의 숙박을

 그나 나나 사후(死後)는 그리 고요하면 아주 그만 (24~25쪽)

 

 장맛비로 채워지는 날들, 밤새 바람은 강했고 비는 춤추듯 내렸다. 유리창에 부딪힌 바람은 누군가의 비명이며 간절한 목소리였을지도 모른다. ‘앞을 가로막은 유리창을 원망할 필요는 없는 것’ 이라니, 봄에 접어두었던 시를 다시 펼치자 지친 여름을 일으켜 세운다. 닫힌 곳에서 울고 싶었던 울음이 터져 나오고 사라진다.

 

 뭐였나, 서로에게 우리는

 

 서쪽으로 간다 당신은

 숨숨숨 숨을 놓겠다는 건가요 해가 저렇게 퍼런데

 벌레들도 용맹하게 잎을 갉으며 살아가는데

 그러고 보니 당신의 등이 굽었다 오래오래 지쳤다는 증거

 서쪽에 이르렀을 때 당신 앞에

 큰 의자가 놓여 있으면 좋겠다 침대면 더 좋다

 거기서 오랫동안 당신이 잠에 빠졌으면 좋겠다

 함께 갈까요? 하는 듯이 당신이 내 눈을 오랫동안 들여

다보았을 때

 함께 갈 수 없는 길이잖아요라는 듯이 나는 눈을 피했다

 하필 초록의 전쟁이 벌어진 이 봄날에

 당신은 서쪽으로 간다 그런 당신에게

 안 갈 수 없나요? 라는 물음은 부질없다

 서쪽으로 가서, 당신은 새로운 모습으로

 말을 타고 이곳으로 돌아올 수도 있을까

 내가 지켜본 평소의 당신이라면 어려울 듯싶은데

 희미한 미소를 마지막으로 남기며

 당신은 기어이 내게 등을 돌렸다

 암실이 돼 있는 서쪽으로 천천히 뚜벅뚜벅

 이후로 당신을 만나려면 사진으로만 만나야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당신과 함께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이런 그동안 뭐했나

 뭐였나, 서로에게 우리는 (60~61쪽)

 

 언젠가는 모두와 이별할 시간이 올 것이다. 그러니 미리 짐작하고 미리 아파할 필요는 없다. 어떤 의미를 묻는 일도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만다. 눈부신 봄, 닿는 곳마다 물색으로 변하는 여름, 낙엽처럼 쌓이는 상실의 가을, 새로운 기대를 품는 겨울을 함께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그래도 헤어짐을 예고하는 마지막 밤은 슬프다. 하여 내일이 오지 말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같은 것이다. 어떤 내일이 내게 올지 모르지만 조금 천천히 내일이 오기를 기다리던 시간이 시와 오버랩된다. 밤과 하나가 되었던 시간, 밤을 채운 소리와 밤을 지켜준 것들 속에 이 시집이 있었다.

 

 내일이 오지 말기를, 중얼거리는 밤이다

 

 내일이 오지 말기를, 중얼거리는 밤이다. 살아온 날의 흔

적을 싹 긁어내었으면 하는 밤이다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

고 이런 생각을 하는 지금 이 순간만 약간 허락되었으면 하

는 밤이다 코가 뭉개진 바람이 지나가는 거리에서 떼로 돌

아다니는 고양이의 발소리를 듣는다 요즘 고양이는 잘 울지

도 않는다 사람을 별로 두려워하지도 않고 가까이 다가오

지도 않고 적절한 거리에서 노려보다가 등을 돌린다 너희

도 내일이 오지 말기를, 중얼거리며 돌아다니는 거니? 물어

보고 싶은 밤이다 거대한 사상은 이미 내게는 골칫거리다

장식된 책들을 솔직히 닷 불사르고 싶다 다 타고 남은 수북

한 재를 모아두었다가 심심할 때 물에 타 마시고 싶다 방이

아닌 큰독 안에 들어가 웅크린 채 잠들고 싶은 밤이다 나에

게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어 그

사람과 둘이 독 안에 들어가 웅크려 자는 것도 좋을 듯싶다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지만 백 살도 넘게 살아버린 느낌은

뭘까 난을 일으킨 묘청은 전생에 고양이였을까 이런 엉뚱

한 상상이 나는 더 좋다 묘청의 묘는 어디에 있을까 그 묘

를 고양이들이 지키고 있는 게 아닐까 내일이 오지 말기를,

중얼거리면서도 내일 고양이들은 다시 올까? 궁금한 밤이

다 야옹― (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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