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어떻게 흐르고 어떻게 고이는 것일까. 어떤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며 어떤 시간은 일 분이 한 무한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는 과거의 시간에 매여 살기도 하고 누군가는 미래의 시간을 상상하며 살기도 한다. 지금 내가 속한 시간은 살아 있는 시간일까, 죽어 있는 시간일까. 박솔뫼의 『도시의 시간』을 읽고 나는 어떤 시간에 갇혀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 말이 되지 못하고 맴돌다 사라진 시간의 숲에서 헤매는 듯하다. 소설 속 우나처럼 준을 기다리고 찾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일본에서 대구로 온 우나와 우미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우나와 우연하게 친해진 배정은 화자인 나와 같은 학원에 다닌다. ​우나는 집에서 준의 노래를 들으며 준을 생각하고 우미는 밖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학원에 다니는 나는 걷는 걸 좋아하고 대학 시험에 세 번 떨어진 배정은 대구에서 나서 자랐다. 그러니까 네 명의 공통점은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시간이 많다는 점도 같았다. 우나와 다르게 우미는 학교에 다니고 싶었지만 미용실에 다니는 우미의 엄마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구속되지 않은 시간은 자유롭지만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우나는 죽은 아버지가 유산처럼 남긴 1954년에 태어나 1976년에 ‘돌핀’이라는 음반을 낸 가수 제니 준 스미스를 듣는다. 내가 학원에서 수업을 받는 시간에 우나는 도서관에서 준에 대한 기록을 찾는다. 그리고 나와 우나는 함께 걷도 준에 대해 말하고 준을 상상한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도시의 거리를 걷고 걸으며. 우미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귄다. 배정은 그들 중 하나였다. 학원에서 나를 불쌍하게 봐주고 챙겨주던 배정은 우미와 사귀면서 조금 달라진다. 배정의 시간 속엔 우미가 있었지만 우미의 시간 속엔 배정이 없었다. 나의 시간 속엔 우나가 있고 우나의 시간 속엔 준이 있듯 말이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다. 지금 같은 대학생이 직장인이 될 것이다. 그마저도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 것이다. 그 이후는 알 수 없다. 되는 것 없이 변하는 것 없이 완성되는 것도 나아지는 것도 없고 깨닫고 나아가는 것도 없다. 그것만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46쪽)

 

 소설은 같은 하나의 음악으로 채워진 음반처럼 반복하고 반복한다. 준의 음악을 들으며 그녀를 좋아하던 아버지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나, 일본으로 돌아가 학교에 다니고 단 한 사람의 연인을 갖고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꿈꾸는 우미, 우미를 향한 마음이 커지는 배정, 집과 학원과 거리가 전부 인듯 살아가는 나. 계절이 흐르고 해가 바뀌어도 그들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간다. 우나의 가족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멈춰진 것만 같은 네 명의 시간과 달리 빠르게 변화하는 대구의 시간을 통해 박솔뫼는 어떤 시간을 붙잡고 싶었던 것일까. 살다 보면 잊혀진 사람들과 어떤 날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 후 우미를 통해 우나의 죽음에 들었을 때 떠오르는 준의 앨범이 발매된 1976년과 우나와 함께 준의 음악을 듣던 침대가 있던 시간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은 모호하다. 그러나 이상하게 불편하거나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아니다. 그냥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어, 그렇게 수긍하게 된다. 이상한 일이다. 어쩌면 박솔뫼가 소설을 통해 보여주는 연약하고 연약한 10대의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연약하지만 연약한다는 걸 믿지 않던 시절들 말이다. 이제는 하나의 점으로 남아 존재하는 시간에 대해 성장이라는 말이 아닌 통과라는 말을 중얼거리게 된다.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두고 싶었던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나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

 

 ‘언제나 누군가가 있다. 어떤 날에 내가 모두를 알게 되듯이 누군가 모두를 알게 되는 날이 오면 나는 나도 알아 버려도 좋고 알아줬으면 좋고 알고 마음대로 그 누군가의 마음대로 나를 완전히 이해해도 좋다 좋아요 좋습니다. 그래 줬으면 좋겠다. 아주 짧은 순간 내가 모두를 이해하듯이 누군가가 길을 혼자 걷는 나를 보면 모두를 이해한 누군가는 나를 이해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172쪽)​

 

 묘하게 정지향의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가 겹쳐지는 소설이다. 하나의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을 걷는 기분이랄까. 그럼에도 어떤 시절에는 단 하나의 단어로 말해버리게 되는 시간들. 이런 문장은 그 시절에만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감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바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과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누군가가 존재했던 연약하게 흐르던 시간은 어디에 닿아 있을까.

 

 “나는 좋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전체가 좋지는 않고 아까 아침에 걷다가 다리를 지날 때쯤에 그때 바람이 부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천천히 다가와서 나를 그 안에 집어넣었어. 내가 바람 안으로 들어간 건데 강제적이지는 않고 그냥 저절로 그렇게 되었어.”

 “네가 들어간 거야?”

 “내가 들어간 건데 바람이 집어넣은 것이기도 해. 그러니까 바람이 커다란 장막이 되어 나를 넣은 채로 갈 길을 간 거야.”

 “저절로 그렇게 된 거야?”

 “어, 그러니까 그렇게 된 거지.”

 “그러니까.”

 “어. 그러니까 저절로. 내일 또 그렇게 되고 다음 날 또 그렇게 되면 잊고 지내다가 한 달쯤 후에도 그렇게 되면 바람은 자주 나를 넣는 거잖아.” (19~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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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 - 삶에 질식당하지 않았던 10명의 사상가들
프레데리크 시프테 지음, 이세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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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모르는 비밀 장소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혼자 찾은 영화관이나 목욕탕이 되기도 한다. 마음껏 나를 드러내도 좋은 공간 말이다. 남에게 보이기 싫은 눈물과 표정을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 그곳은 책이 된다. 책이라는 존재는 얼마나 고마운가. 고해성사를 하듯 책 속의 누군가에게 속상함을 털어놓아도 좋다. 그러니 프레데리크 시프테의 『우리는 매일 슬픔 한 조각을 삼킨다』 속 이런 문장에 반색하지 않을 수 없다.

 

 ‘설령 펼치지 않더라도 책을 가지고 있으면 안심이 된다. 정신이 부재하는 삶의 구역과 자유 구역의 경계선을 언제라도 넘나들게 해주는 친구가 내 손닿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57쪽)

 

 제목에 대한 기대는 ‘불행한 이가 일단 통찰력을 가지면 더욱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기만하거나 물러설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란 에밀 시오랑의 문장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의 말대로 개인적인 에세이일 뿐이다. 다만 에세이의 소재가 열 명(니체, 페소아, 프루스트, 쇼펜하우어, 『전도서』의 저자, 몽테뉴, 샹포르, 프로이트, 로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작가와 사상가라는 거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는 삶을 통찰하는 철학을 배우는 시간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프랑스 철학교사이자 작가인 저자가 선택한 10명 가운데 절반 정도만 익숙하다. 오히려 낯설어서 더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다. 저자는 그들을 상징할 수 있는 문장을 소개하며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들의 삶과 사상에 동의하고 때로 반격한다. 시종일관 까칠하고 시니컬하다. 철학을 논하고 사유하는 삶을 증명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타인을 이해하려하거나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인간이 배우는 본질적인 것은 전부 불행의 경험에서 온다. 몸소 불행을 겪을 수도 있고, 남의 불행을 지켜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앎은 어떤 식으로도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116쪽)

 

 절대로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불행은 없다. 절대로 나의 불행이 타인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그의 말에 격하게 수긍하면서도 피하고 싶은 게 불행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동안 견디지 못하는 감정들, 버리고 싶은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것 같다. 순조롭게 읽기고 쉽지는 않지만 아주 묘한 책이다. 철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이지 않은 책이다. 

 

 철학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상실, 고독, 고통, 죽음을 초월한 무언가를 전해줄 수 있을까. 소개된 10명의 사상가와 작가가 아니라  ‘생은 전염병이다. 세월에 의해 허무에 감염되는 것이 생이다.’ (128쪽)란 저자의 문장에 빠져든다. 프레데리크 시프테의 불친절한 매력에 빠지고 만다. 그의 방식대로 슬픔 한 조각을 마시고 조금은 권태로운 생을 살아도 좋을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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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1-13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서 끝을 봐야겠어요! 맨날 읽다 말다하는 나쁜버릇을 고쳐야^^

자목련 2015-01-15 10:18   좋아요 0 | URL
지금쯤은 다 읽으셨을까요?
저도 요즘 이 책을 읽다, 저 책을 읽다 그래요. ㅎ

2015-01-13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15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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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은 괜히 쓸쓸하다. 봄이 오기 전 거쳐야 할 하나의 계절이라는 걸 알면서도 울적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보편적으로 인생의 겨울(이런 표현은 적절한 것일까)에 속하는 노년의 삶은 어떨까. 아흔 살까지 정정하셨던 할머니를 떠올려보지만 그녀의 삶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어떤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했을지 짐작할 수 없다.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누구나 주어진 똑같은 하루였을 텐데 말이다.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할머니와 아버지의 시간을 생각한다. 누구보다 가장 먼저 자신의 생이 끝나고 있다는 걸 알았을 그들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 (162쪽)

 

 죽는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다. 필립 로스는 평범한 한 남자의 죽음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상세하게 들려준다. 소설은 적막한 공동묘지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버지, 전 남편, 동생, 삼촌, 친구, 동료를 추모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저마다 그를 추억하며 그리워한다. 소설은 그 남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자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보석상을 하는 아버지와 다정한 어머니, 그리고 든든한 형이 있었다.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었다. 광고 회사에 취직해 인정을 받았고 퇴직 후에는 자신이 좋아했던 그림을 그리며 살아간다. 아버지가 운영했던 보석상의 이름 ‘에브리맨’처럼 보통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 사랑은 언제나 특별했다. 세 번의 결혼으로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지만 좋은 남편과 존경받는 아버지는 아니었다. 두 번째 아내의 사이에 낳은 딸 낸시가 살갑게 안부를 챙겼지만 함께 살 수는 없었다.  화려했던 시절이 지나가고 병든 육체만 남은 노년의 그에겐 아무도 없었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노년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약에 대한 정보를 교환할 뿐이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건 형에 대한 질투였다. 심장질환으로 수차례 수술을 받고 병원 신세를 지는 자신과 다르게 여섯 살 많은 형의 건강한 육체는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세 번째 젊은 모델 아내와 헤어지고 혼자서 수술을 받고 퇴원을 하는 동안 형은 동생을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았다. 형이 자신을 위해 모든 걸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다. 이혼한 딸 낸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아닌 뇌졸중으로 쓰러진 엄마를 선택하는 게 당연했다.

 

 혼자라는 건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 늙고 병든 아버지가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는 딸에게  건네는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 (83쪽) 말은 자신을 위한 말이기도 했다. 버틸 수 없는 순간과 맞닿았을 때 느꼈을 절망도 받아들여야 한다. 아직 겨울의 계절이 아닌 여름, 가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알지 못한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반드시 인생의 겨울에만 찾아오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다.’ (23쪽)

 

 필립 로스는 삶과 죽음에 대해 보편적 시선을 지킨다. 한 남자가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과정을 통해 제목 ‘에브리맨’이 갖는 의미를 소설에 잘 녹여냈다. 저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생을 살겠지만 죽음이라는 평범한 결말을 맞는다는 걸 잘 보여준다. 더 이상 어떤 계절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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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겨진 것들
염승숙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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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와 다르지 않은 반복되는 일상을 살면서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피곤하다. 하지만 의미가 없는 삶은 얼마나 허무한가. 같은 듯 다른 하루 속에서 의미로 다가오는 어떤 순간을 발견한다면 정말 괜찮은 생이 아닐까. 이런 이상한 말들을 쏟아내는 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느낌 때문이다. 염승숙의 『그리고 남겨진 것들』을 읽고 난 후 내게서 떠나지 않는 기운들 말이다.

 

 염승숙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아니 성장했다는 표현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환상과 현실을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기존의 느낌이 사라진 건 아니다. 여전히 현실의 상처와 슬픔을 풀어내는 방법으로 환상을 택했다. 감정을 지닌 환상이라고 하면 맞을까. 죽은 후에 벽돌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남겨진 것들」, 잠들지 못하는 불면을 위해 고가의 수면제인 잠이 유통되는 세상을 그린 「완전한 불면」, 국가가 통제하는 질병 시스템으로 아무도 모르는 사이 사라져야 하는 무서운 미래 「호우」, 타인과의 소통이 부재로 점점 누군가를 잊고 사는 모습을 얼굴이 사라지는 것으로 표현한 「양의 얼굴」은 현실에서 만날 수 있을 법한 고통을 꿈을 꾸는 듯 그려낸다. 점점 더 강력해지는 질병을 국가에서 관리하는 모습이나 소통이 사라진 쓸쓸한 사회는 미래의 우리 모습이 아닐까 두렵기도 하다.

 

 ‘우리는 왜 몰랐을까. 어른이 되면 매일 울고 싶어진다는 걸, 나를 위해 울어줄 누군가가 그리워 기어코 적막을 감내한다는 걸.’ (「양의 얼굴」279쪽)

 

 결국엔 모두가 혼자라는 걸 알면서도 죽음을 통한 이별은 익숙해질 수 없다. 등에 소나무가 자라는 아버지의 일상과 죽음 후 온라인 기록을 삭제하는 일을 하는 아들을 통해 사라지는 것에 대해 말하는「습濕」과 연락이 끊긴 아버지를 대신해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며 그리워하는 「노래하는 밤 아무도」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존재하지 않는 자의 흔적을 지우며 그를 기억해야 하는 고통과 부재를 통해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시간은 누구도 피할 수 없기에.

 

 ‘잊어야 하는 것과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잊히는 것과 잊히지 않는 것의 간극에 무엇이 위치해 있는지, 그는 알 것도 모를 것도 같았다. 사라지는 것은, 잊히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슬픈 것이다. 그것은 연민도 무엇도 아니지만, 때로는 노력해서라도 기억해야 하는 수고가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만 덧없이 되풀이될 따름이었다.’ (「습濕」48쪽)

 

 그리워한다는 것만으로 상실의 슬픔이 상쇄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기억을 재생시키는 일은 거대한 통증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통증의 반복으로 그것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것이다.

 

 자전적 소설 「청색시대」에서 염승숙은 절망의 색을 청색이라 말한다. 절망은 죽음의 다른 말이며 어떤 삶을 살았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라는 걸 확인시킨다. 유독 내게만 강하게 불어오는 청색이라고 믿고 좌절하는 모두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전한다. 어떤 과거를 지녔든 어떤 미래를 꿈꾸든 사라지고 만다는 걸 말이다. 그리하여 사라지고 남겨진 것들이 무엇이든 우리는 오늘을 사는 것이라 단호하게 말한다.

 

 푸르고, 푸른 바람이 분다. 너는 알았는지? 멈추지 않고 불어오는 푸른 바람만이 도시를, 세계를, 의식의 내부를 ​훠이훠이 휩쓸고 지나간다. 거미가 제 거미줄을 펼친 채로 날아가듯, 머나먼 사막에서 황사가 진군해오듯, 푸른 바람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덮친다. 색을 띠는 모든 것에 푸른 바람이 모래처럼 내려앉으므로 그것은 청사(靑沙)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청색시대」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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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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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가장 무서운 건 귀신이나 유령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옮긴이의 말 중에서)

 

 길을 잃었을 때 아는 얼굴을 만난다면 무조건 그를 믿고 따라갈 것이다. 의심 따윈 필요 없다. 우선은 그곳에서 벗어난 뒤 생각해도 늦지 않다. 불안이 사라진 후에야 그는 왜 그곳에 있었던 것일까 생각한다. 설령 그가 나와 가장 가까운 사이라도 말이다. 톰 롭 스미스 장편소설 『얼음 속의 소녀들』의 시작이 그랬다. 혼돈의 연속이었다.

 

 엄마의 고향인 스웨덴으로 은퇴 이민을 간 부모님이 차례로 전화를 해서 상반된 이야기를 꺼낸다. 아버지는 엄마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한다. 스웨덴으로 출발하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 다니엘에게 엄마의 전화가 걸려온다. 아버지의 말을 믿지 말라며 곧 영국에 도착할 거라고.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엄마는 다니엘에게 스웨덴에서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자신은 절대 미치지 않았으며 아버지도 범죄자들과 한패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사람은 고립됐다는 사실이 의식 속에 스며들기 시작하면 변하게 된다. 처음엔 안 그렇지만 서서히, 단계적으로, 그러다 어느새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돼. 그러고는 하루하루 국가도 없고, 바깥세상에 치이는 일도 없고, 서로에게 각자의 의무를 일깨워주는 존재 없이,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이나 근처에 이웃도 없이, 아무도 우리를 들여다보지 않은 채, 영원히 우리는 보는 눈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살아가는 거지.’ (69쪽)

 

 다니엘이 알고 있던 엄마와는 달랐다. 많이 말랐고 초췌한 모습으로 환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아버지 말대로 정신병원에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엄마는 자신이 몰랐던 부모님의 경제 상황을 시작으로 스웨덴에서 시작한 농장 생활에 대해 상세히 들려준다. 엄마의 말이 거짓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모아 분신처럼 지니고 있었다. 사진 몇 장, 잘라진 종이와 서류, 불에 탄 흔적이 있는 자수 조각을 소중하게 다뤘다. 엄마는 뒤이어 도착한 아버지를 피해 호텔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주변을 살핀다.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서 입양아에 대한 폭행과 폭력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를 모두 묵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라진 흑인 소녀 미아를 찾아야 한다고 애원한다. 결국 다니엘이 스웨덴의 농장에서 직접 방문하여 그곳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서야 모든 진실이 밝혀진다.

 

 만약 내가 다니엘이라면 엄마의 말을 무조건 믿을 수 있을까. 낯선 환경과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에 엄마의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아버지의 말이 진실은 아닐까. 언제부턴가 서로에게 모든 걸 말하지 않고 살아온 부모와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믿음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다니엘이 단 한 번도 농장을 방문하지 않은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여유로운 노년이 아니라 빈털터리가 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농장을 선택한 부모님과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해 연락을 미룬 다니엘. 

 

 그랬다. 이 소설은 엄마가 말하는 범죄의 사실 여부에 대한 호기심으로 위장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불신이 가져오는 위험한 결과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빽빽한 숲과 호수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스웨덴의 풍경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불안한 심리 묘사가 압권이다. 신화 속 트롤 괴물에 대한 이야기까지 흥미롭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추리와 심리라는 두 마리 토기를 잡은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거기다 소설의 첫 상황은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일이라니 더욱 놀랍지 않은가. 폭설이 계속되는 이 겨울 차가운 호수를 둘러싼 장엄한 숲으로의 초대에 응하지 않을 독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만큼 겨울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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