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아워 2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13-2018 골든아워 2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답답하다가 울컥하고, 아프다가 따뜻했던 책이다. 2권의 마지막 <인물지>가 주는 감동은 형용할 수 없었다. 리뷰를 쓰고 싶은데 못 쓰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골든아워 1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골든아워 1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한 글을 읽으면서 때로 마주하는 잔혹한 현실이 픽션이기를 바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은 유한하다. 그래서 소중하고 아름답다. 모두가 다 알지만 모두 다 자주 잊고 사는 진실이다. 주어진 일상이 영원할 거라 막연한 믿음으로 우리는 살아가기도 한다. 지나온 어제처럼 당연하게 오늘을 맞이하고 살아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발생해서야 일상에 대해서 돌아본다. 가령 내 부주의가 아닌 상대의 잘못에 의한 자동차 접촉사고가 난다든지, 가벼운 통증을 무시하다 사라지지 않아 찾은 병원에서 소견서를 받거나 느닷없는 집주인의 전화에 보통의 일상은 너무나도 쉽게 와르르 무너진다. 그 순간 평범했던 일상에서 일탈한다. 아니 이때부터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만 내게로 다가올 때 우리는 절망한다. 절망의 순간은 어떻게든 지워나가고 다음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 때때로 그건 너무 고통스럽고 비루하다. 그럴 때 우리는 일상이 아닌 일탈을 시도한다. 한 방을 꿈꾸며 한 번도 구매하지 않았던 로또복권을 사기도 하고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로 도피한다. 게임 속 캐릭터가 되거나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거나 소설 속으로 빠져든다. 내 일상이 아닌 그들의 일상에 잠시 마음을 기대는 것이다. 소설 속 삶이 현실의 일상과 더 가까워 분노와 화를 참지 못하기도 하면서. 일상의 표정은 다양하다. 모두가 꿈꾸는 평온한 일상, 걱정과 근심으로 채워진 불안의 일상, 거대한 슬픔을 겪고 감사하는 일상에 대해 생각한다
     
 김이설의 소설집 오늘처럼 고요히(2016)를 다시 꺼냈다. 이 안에는 일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럼에도 우리의 일상인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나는 그런 일상을 살지 않는다고. 뉴스에서나 접할 수 있는 무섭고도 잔혹한 일상이 소설 속에 가득하니까.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그런 사회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그들에게 힘을 내라는 말은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 그렇게 살지 말고 다른 일상을 살아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대를 이어 행해지는 가정폭력을 다룬 미끼, 품격과 권위의 삶을 사는 겉모습과 다르게 기본을 지키지 못하는 진짜 모습이 역겨운 부고, 친절하게 독촉하는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 할 수 없는 일은 세상에 없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흉몽. 그들은 모두 우리의 모습이었다. 어떤 모습은 너무 닮아서 소름이 돋기도 한다. 우리는 그저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 뿐이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우리의 일상은 어느 순간 비일상의 궤도에 진입해 있다. 부당한 일에 대해 부당하고 말하는 게 그토록 잘못된 것일까. 파업의 대가로 돌아온 건 손해배상 청구와 남편의 자살을 다룬아름다운 것들을 읽다 보면 그런 일상이라면 누구라도 포기를 택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 안다. 나의 일상을 대신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슬픔을 대신 덜어줄 수 없다. 대신 앓을 수 없고, 대신 살아줄 수도 없듯이, 온전히 자기 혼자 버텨내야 했다.’ (89)란 말을 나와 당신이 하루에도 몇 번씩 중얼거린다는걸. 그 뻔한 말이 우리가 유일하게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일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마는 것이다.
     
 일상을 산다는 건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다. 일상을 유지한다는 건 일상을 지킨다는 것이다. 일상을 지키는 건 견고한 성을 쌓고 지키는 일처럼 어렵다. 그저 살아가는 일을 생각하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내 일상을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혼자만의 삶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혼밥, 혼술, 혼자서 모든 걸 해내는 삶이 확장되지만 그들도 결국 누군가의 가족이고 작은 사회의 일원이다. 때문에 나의 일상을 지키는 건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저마다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최정화의 소설집 모든 것을 제자리에(2018) 속 인물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지난 과거는 잊고 현실에 충실하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하지만 한번 불안이 찾아오면 일상은 불안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제 겨우 지난 사건을 잠재우고 새로운 책을 펴냈지만 여전히 3년 전 인터뷰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불안한 남자 인터뷰, 친구가 자기 애인을 모델로 그렸다는 그림 속 푸른 코드를 입은 남자가 자신의 남편일 거라고 생각하며 불안에 떠는 여자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 친하게 지냈던 회사 동료에게 사기를 당했지만 그럴 리 없다고 믿으며 새벽마다 창문 밖에서 떠들어대는 아이들 무리가 제발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남자 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일상의 반복성은 망상을 키운다. 그리고 망상은 불안을 키운다. 일상은 생이 끝날 때까지 이어질 테고 불안은 일상의 그림자가 되어 뫼비우스 띠처럼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동료나 이웃에게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왜 어떤 일들은 구름이 모양을 바꾸는 것처럼 서서히 일어나지 않고 단 한순간에 완전히 빛깔을 바꾸어버리는 것일까. 따뜻한 기운을 품은 은은한 복숭앗빛 하늘이 왜 저토록 사나운 핏빛으로 변해버렸을까. 좀전까지 잘 어울리던 한 쌍의 커플이 왜 이리 급작스럽게, 마주치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 끔찍한 악연으로 방향을 바꾸는 걸까. 왜 그런 일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갑자기 일어나는 걸까. 왜 어떤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고 내뱉은 한마디가 다른 어떤 사람을 다시 벗어나지 못할 수렁으로 몰고 가는 걸까.’ (111)

 

 때로는 그 불안의 실체가 무엇인지 확연하게 잘 알고 있지만 벗어나지 못한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다니는 회사가 문을 닫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면 불안해서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리느라 맡은 업무를 제대로 해낼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IMF를 경험한 세대는 그런 사태가 발생할까 불안하다. 꼰대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자꾸만 후배와 아이들을 상대로 그 시절을 복기한다. 그뿐이 아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병력이 유전되어 나도 똑같이 아플까 봐 겁이 난다. 불안이라는 건 이렇게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어 잠식한다. 안다는 것이 더 무섭다. 불안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우리 일상을 맴돌며 지켜본다. 어느 시절에는 뭔가 특별한 이벤트가 일어나기를 바랐지만 이제는 그런 이벤트가 아닌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을 바란다. 새해에는 반드시 지키겠다는 거대한 다짐을 하고 연말에는 후회를 하는 보통의 일상 말이다. 적당한 비가 내리고 적당한 눈이 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일상은 어찌할 수가 없다. 짧은 이별의 눈 맞춤도 허락하지 않은 채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기도 하고 고통의 시간을 견디다 끝내 친구나 가족을 떠나보내기도 하니까. 우리 일상에 희로애락의 조각들이 다 들어있다는 걸 알면서도 죽음으로 인한 경험은 피하고만 싶다. 상실의 자리는 어떠한 것으로도 채울 수 없고 애도의 끝은 존재하지 않다는 걸 점차 받아들인다. 때문에 친구처럼 지냈던 전 남편의 죽음을 경험한 패멀라 D. 블레어와 사고로 오빠를 잃은 브룩 노엘이 함께 쓴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란 책과 함께 일상을 지켜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이 책을 읽는 일은 힘들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잃은 상실의 시간을 견디고 그 슬픔을 온몸으로 껴안은 일상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죽음을 경험하고 애도와 함께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 넘치도록 차오르는 눈물과 슬픔으로 어떻게 일상을 계속 이어가야 할지 모르는 이들이다. 그들에게 구체적이며 실질적으로 건네는 조언이야말로 거룩하고 숭고하기에 아름다운 일상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애도를 표현하며 살아가는 일,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지나 회복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눈부신 일상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고통의 시간을 살고 있을 때 우리는 혼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둘러보면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상황에 있는 이들이 있다. 책을 통해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곤 한다. 문득 문학이야말로 유일하게자신만의 일상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일상 속에 놓여 있음을 깨달았다. 문학은 애도의 일상을 산다. 작가는 죽고, 그 작가가 남긴 문학을 읽은 독자도 계속해서 바뀌고 사라진다. 문학은 그렇게 자신을 이 세상에 남긴 이를, 그리고 읽고 스쳐 지나간 이들을 애도하는 일상을 살아간다. 동시에 문학은 자신을 새로 읽고 스쳐 지나갈 이들을 기다리는 작별의 일상을 마다하지 않는다.  


 ‘길고 느린 과정이에요. 때때로 두 걸음 앞으로 나가갈 때마다 세 걸음 뒤로 물러나요. 하지만 다른 때에는 후퇴 없이 앞으로 두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어요. 당신은 그저 계속해서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두고 나아가야 해요. 그리고 이것이 정확히 제가 하고 있는 것이에요. 한 걸음씩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303)
     
 창밖으로 눈 내린 풍경이 보인다. 아름다워서 황홀할 지경이다. 어느 순간 사라질 것이다. 우리 생이 그러한 것처럼. 생은 그러한 일상이 모인 풍경이다. 사라질까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면 일상은 무의미하다. 상처와 고통으로 인해 일상을 던져버리고 싶은 순간과 마주하거나 내일이 오는 게 두렵고 오늘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불안한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 살아있음을 우리는 때로는 비일상으로써 획득하고, 불안으로써 체감하며, 죽음으로써 견딘다는 것을. 결국 일상이란 살아가는 일이다. 단순하면서도 위대한 여정, 일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릴 거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눈이 내리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는 건 평화를 만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눈을 지나 저마다의 목적지로 향하는 이들에게 눈은 장애물에 불과하다. 한 시간 정도 내린 눈으로 내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이렇게 아름답다. 바라본다는 건 그런 것이다. 그 속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저 바라보는 것.

 

 

 

 

 치과진료 중이라 뜨거운 커피를 며칠째 마시지 않고 있다. 마셔도 상관없겠지만 나는 착한 환자니까. 겁이 많은 환자니까. 조금 참고 있는 중이다. 이 기회에 커피를 줄여도 좋겠지, 싶다가도 술도 아니고 커피 마시는 즐거움마저 줄일 필요가 있을까, 결론을 내린다.

 

 올해의 마지막 주문이기를 바라며 몇 권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사실 이 책은 오래전부터 기다렸다. 어떤 책인지도 모르고, 어떤 작가인지도 모르고 마냥 기다렸다. 장혜령의 시인의 산문집. 2017년 문학동네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시인의 첫 책은 시집이 아니라 산문집이다. 그것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랑의 감성을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왠지 내 마음에 들 것 같은 책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다려온 시집, 박준과 이제니의 시집도 12월의 선물로 좋겠다.

 

 눈은 곧 사라질 것이다. 눈이 녹는 과정도 지켜볼 수 있겠지. 창밖으로 보이는 하얀 물감을 풀어놓은 것들이 사라지고 여전히 굳건하게 서 있는 소나무들이 나를 바라보겠지. 서로를 바라보는 일, 그건 조금 황홀하다. 서로를 바라본다는 일.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8-12-13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경이 너무 멋집니다 치과는 아니고 댁에서 찍은 풍경인가요? 춥기는 하지만 설경은 참 기분을 묘하게 만들어주는듯 합니다 치아는 온도에 민감하다고 하대요 잘 하셨습니다 전 못 참을텐데...건강유의하십시오!

자목련 2018-12-14 12:42   좋아요 1 | URL
네, 치과는 아니고 거실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계절마다 다르게 보이는 이 풍경이 참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설경은 저를 다른 곳으로 이끄는 듯 묘합니다. 치아에 대한 걱정 감사합니다. 포근한 오후 보내세요^^

카알벨루치 2018-12-14 12:47   좋아요 0 | URL
종종 거실에서 본 풍경사진을 올려주시는 것도 저희에겐 좋은 뷰가 될 듯 합니다 ^^

여름숲 2018-12-14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정다정 소복소복한 문체시군요. 다정히 잘 읽었습니다. 눈...눈때문에 전 오늘 출근 못했지요. 남의 동네 큰길가에 차를 두고 왔다가 오후에 찾아왔어요. 바라보는 눈은 참 좋은데 말이죠^^

자목련 2018-12-14 12:41   좋아요 1 | URL
다정히 읽어주시고 다정한 댓글을 주셔서 감사해요. 눈 때문에 힘든 하루를 보내셨군요. 맞아요, 바라보는 눈은 참 좋죠. 하림 님, 향기로운 오후 보내세요^^
 
잘 지내니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는 이상하게도 생각이 많아진다. 남은 시간 잘 보내라는 인사를 하거나 받기도 하는데, 너무 그런 인사를 쉽게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냥 잘 지내라고 말해도 될 텐데 말이다. 어쩌면 그건 자기 스스로에 대한 주문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울한 어떤 날에는 괜찮다고, 누군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정작 혼자인 날에도 다들 바쁘니까 어쩔 수 없다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고. 가까이 다가서도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고 너무 깊이 다가오면 한 말 물러나게 되는 톤 텔레헨의 소설 『잘 지내니』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처럼 말이다.

 

 아무도 내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 다람쥐는 생각했다. 정작 나는 수많은 동물들을 생각하고 있는데. 개미, 하마, 모기 심지어 수달과 사자, 까치, 곰, 말벌, 코끼리 그리고 쥐도 생각하고 있다. 다람쥐는 정말 모든 동물들을 생각했다. 지금껏 생각해 보지 않았던 동물이 있을까 싶을 만큼. 내 생각은 여태껏 누구도……. (7쪽)
 

 안녕 다람쥐야

 잘 지내니? 나는 잘 …… 아니 사실은, 네가 내 생각을 전혀 안 하니까 그다지 잘 지내는 것 같지 않아.

 한 번씩 내 생각을 하긴 하니?

 그럼 안녕!                                                       

 ㅡ 부엉이가 (9쪽)

 

 누구나 다람쥐처럼 그런 생각에 빠져들 때가 있다. 상대의 생각은 물어보지도 않고 나만 혼자 그 사람을 사랑하고 걱정하고 좋아하는 거라고 단정 짓고 속상해한다. 마음을 안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하지만 그 내 마음도 보여주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알려고 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나와 당신도 다람쥐와 부엉이처럼 서로를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잘 지내지라는 문자에 바로 답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나중에 통화하자라는 말만 남기고 끊어버린 상대에게 그만의 사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이 작고 예쁜 소설에는 이처럼 다양한 동물의 고민이 등장한다. 고만고만하다고는 할 수 없는 고민들, 그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에 그렇다. 어느 날 나는 왜 존재하는지, 나의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한다. 왜 그런 때가 있잖은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지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건 두렵고, 혼자 있고 싶지만 좋은 일은 함께 축하받고 싶은 마음, 모두 잘 사는데 나만 불행한 것 같은 마음, 이 복잡 미묘한 마음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아마도 누군가는 어쩜 이렇게 내 마음과 똑같을까, 나도 그랬는데, 하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흰개미는 모든 게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자기 몸마저 버리려고 들어 올려 보았지만, 바닥에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또다시 넘어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자기 사진이 완전히 쓸 데 없지는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흰개미는 누워서 위를 쳐다보았다. 햇빛이 비치고 하늘은 파랬다. 태양과 하늘마저도 내다 버리고 싶었다. 너무 쓸모가 없어. 그러나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39~40쪽)

 

 다람쥐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바로 지금 존재할 뿐인데. 나중으로 가 본 적이 없고,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어. 다람쥐는 항상 자기 자신보다 앞서 나갔던 생각들을 더 이상 좇을 수가 없게 되자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그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지금이 아니면 아무 때도 아닌 거야.” 그러고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67쪽)

 

 거북이는 오후 내내 덤불 앞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러니까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모두 조금씩이라는 거지. 근데 조금이라면 어느 정도인 거야? 때때로 조금 배가 고프거나, 조금 덥거나 하는 게 어떤 건지는 알고 있었다. 조금 덥다는 건 따뜻하다는 거야. 그럼 조금하고 같은 건가? 조금 맛있게 먹었던 시든 민들레와 오래된 자작나무 이파리도 조금 쓰긴 했지. (76쪽)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다 아는 이야기가 가슴에 콕 박히는 순간은 저마다 다르다. 18개의 짤막한 이야기의 이 책을 두 번 읽게 되었는데 나는 처음에 어떤 부분은 살짝 지루하고 무덤덤했다. 그런데 두 번째에는 처음에 보이지 않았던 흰개미, 거북이의 마음이 크게 보였다. 존재(쓸모)에 대한 생각과 행복에 대한 욕심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주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메모하는 문장이 자꾸 늘어났다. 가볍게 생각한 책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다정한 마음을 선물 받은 기분이랄까. 괜히 말랑말랑한 감정에 빠지는 날, 따뜻한 차 한 잔을 곁에 두고 가만가만 책장을 넘기면서 당신의 안부를 전하면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