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제자리에
최정화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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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을 유지하는 건 어렵다. 단순하고도 명확한 사실을 알기에 아침을 맞이하며 감사함을 느낀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다양한 사건 사고를 경험하고 나서야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유도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서 아닐까. 당연한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최정화의 소설집 『모든 것을 제자리에』를 읽으면서 산다는 건 불안을 껴안고 사는 것이며 동시에 불안을 떨쳐내려 안감힘을 다하는 것이란 걸 인식한다. 그래서 7개의 단편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불안의 감정을 발견한다. 무엇이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드는지.

 

 한 번의 실수는 평생의 주홍글씨가 되기도 한다. 적절하지 않은 비유일지도 모르지만 「인터뷰」의 화자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학자인 그는 과거 기자와의 인터뷰를 하면서 불미스러운 사건의 당사자가 되었다. 사건의 여파는 컸고 그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새 책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아내와 장인은 과거 그 일을 언급한다. 아내와 장인이 숙소로 돌아가고 혼자 남은 그는 한 커플과 동석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가 기억하는 사건과 실제 일어난 일 사이에는 거짓과 진실이 공존한다. 사건을 왜곡하는 일이 그가 불안의 크기를 축소시키는 방법은 아닐까.

 

 그렇다면 불안의 ​시발점은 무엇일까. 화가 친구의 전시회에서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를 그린 그림을 보면서 화자는 그 남자가 친구의 애인이라고 단정하는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를 보면 추측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화자는 남편의 옷장에서 푸른 코트를 발견한다. 화자는 남편이 친구와 불륜관계라 생각한다. 막연한 추측은 확신이 되고 집착으로 발전할 것이다. 아내와 다투고 밖으로 나간 남편을 찾아 거리고 나온 화자에게 보이는 건 온통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들이다.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남편을 찾을 수 없다. 대화가 끊어진 아내와 남편 사이에 불안이 스며든 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소통의 부재로 찾아온 불안은 「전화」에서도 마주한다. 후배가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아 지난 만남을 돌아보지만 딱히 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냥 그러려니 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화자는 끊임없이 전화를 건다. 그토록 전화를 하는 행동 이면에는 불안이 깔려있다.

 

 새로 이사 온 집을 방문하는 낯선 사람들 때문에 마치 자신이 누군가의 집을 빼앗을 것처럼 여겨지는 「잘못 찾아오다」​속 주인공은 처음엔 그들로 인해 불편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주인을 잃은 예술잡지와 상품권이 처음부터 자신의 것 인양 사용한다. 조금 뻔뻔하다 할 수 있는 행동은 「인터뷰」속 거짓말처럼 불안을 위장하는 도구로 보인다. 가장 현실적으로 불안에 대응하는 태도일 수도 있다. 언제까지 불안에 끌려다닐 수는 없으니까.

 

 상황이 나빠지고 자신감이 떨어지면 불안은 더욱 자신의 존재감을 들어낸다. 「내가 그렇게 늙어 보입니까」​의 화자는 현재 실직자다.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우연하게 사고를 당한 후 그는 자신이 나이에 비해 한참 늙어 보인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행동을 지배하고 그는 점차 노숙자처럼 변해간다. 그러니 그에게 세상은 이전과는 다른 세계였다.

 

 왜 어떤 일들은 구름이 모양을 바꾸는 것처럼 서서히 일어나지 않고 단 한순간에 완전히 빛깔을 바꾸어버리는 것일까. 따뜻한 기운을 품은 은은한 복숭앗빛 하늘이 왜 저토록 사나운 핏빛으로 변해버렸을까. 좀 전까지 잘 어울리던 한 쌍의 커플이 왜 이리 급작스럽게, 마주치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 끔찍한 악연으로 방향을 바꾸는 걸까. 왜 그런 일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갑자기 일어나는 걸까. 왜 어떤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고 내뱉은 한마디가 다른 어떤 사람을 다시 벗어나지 못할 수렁으로 몰고 가는 걸까. (111쪽, 「내가 그렇게 늙어 보입니까」)

 

 『모든 것을 제자리에』란 제목은 소설 속 모든 인물이 바라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자신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해 생긴 불안, 관계가 깨어질까 두렵고, 잘못된 일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그런 불안을 이기고 싶은 욕망을 표현한 소설이었다. 내게 닥친 일은 아니지만 일어날 수 있는 상황.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없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우리의 그것과 같았다.

 

 최정화는 불안을 포착하는 작가다. 불안을 생명이 있는 것처럼 다룬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전하고 싶었던 건 불안을 잘 알아야 달래고 잠재울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불안과 대화하는 방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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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4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4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웃어라, 내 얼굴 슬로북 Slow Book 4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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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가 되지 않아도 스타 하나씩 갖고 있는 것이다. 내 별이 저 우주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듯이, 내 열정도 깊은 속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을 테다. (140쪽, 「스스로 반짝이는 별」중에서)

 

 한때는 어리석게도 짧은 글을 쓰기 쉬운 글이라 여겼다. 낙서나 메모가 아닌 주제가 있는 짧은 글의 위대함을 몰랐던 거다. 그래서 작가의 산문집이나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와 유머에 감탄하고 놀란다. 내게는 농촌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는 것으로 ​알려진 소설가 김종광의 『웃어라, 내 얼굴』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어떻게 이렇게 기발하게 쓰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20년 내공이라는 게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구나. 작가에게 글은 매일 먹는 밥처럼 확인할 수 없는 공기 같은 것이라는 걸 실감했다. 이 한 권의 책을 만든 산문이 1500개의 그것에서 추리고 추린 것이라니.

 

 이 책은 생활밀착형 에세이라 하겠다. 진실로 그러하다. 특히 1부 ‘가족에게 배우다’로 묶은 글에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고 가족을 발견하는 독자는 나뿐이 아닐 것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작가가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노고에 대해 안쓰러워하는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쉽게 떨어진 단추에 대한 추억이나 일을 끝내고 구멍이 난 양말이나 찢어진 아이의 옷을 꿰매주던 어머니의 바늘을 이야기할 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서로 다른 옷에서 떨어진 단추를 모아놓은 통, 체했을 때 소화제가 아닌 바늘로 손을 따주던 기억이 입체적으로 살아나 내 앞에서 아른거렸다.

 

 그런가 하면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는 일로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부분에서 나는 작가의 아내처럼 은행 대출을 생각했다. 웃음이 나면서도 아, 그놈의 대출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하고 서글펐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그 시절을 반추하는 모습도 아련했다. 연필을 쥐고 글씨를 그리며 배우는 모습이나 나쁜 시력이 고스란히 유전되어 안경을 쓰고 힘들게 숙제를 하는 현실에 안타까워한다. 그래도 아이 덕분에 주말마다 밖으로 나와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즐겁다.

 

 2부 ​‘괴력난신과 더불어’에서는 신변잡기에 대한 글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안에 경탄할 만한 사유가 담겼다.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사탕에 대한 글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사탕은 어린아이를 병원에 가게 만든다. 사탕은 청년을 사랑에 빠트린다. 사탕은 장년을 위로한다. 사탕은 늙은이의 친구가 된다.’ (「사탕」중에서) 사탕이라는 사물에 대해 한 번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기에,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그 작은 사탕에 그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니. 나는 과연 사탕에 대해 뭐라고 쓸 수 있을까 궁리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3부 ‘무슨 날’​은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 다양한 날에 대한 글로 엮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는 투표를 실시하는 선거가 있는 날에는「벌금」이란 제목으로 투표를 독려하는 방법에 대해, 우리 주변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영어로 쓰인 간판, 상품에 대해 속상한 마음이 더욱 크게 와닿는 한글날에는 「우스운 날」이라는 제목으로 토로한다. 작가가 거론한 날들에 대해 읽으면서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어떤 날은 그저 공휴일만 내게 다가왔고 어떤 날은 그런 날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책마다 내 집착이 묻어 있다. 책 한 권을 꺼내면 그 책의 내용은 가뭇해도 그 책을 소유하게 되었을 당시의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술 마시고 연애할 때는 하나도 아깝지 않던 돈이 왜 책 살 때는 그렇게도 아까웠던지 모르겠다. (211쪽, 「계륵」​중에서)

 

 소설가라면 책과 글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4부 ‘읽고 쓰고 생각하고’​는 그런 글들이다. 이 땅에서 소설가로 산다는 게 얼마나 고달픈지, 그럼에도 쓸 수밖에 없는 작가의 운명과 자신의 책이 좀 더 많은 독자와 만나기를 바라는 솔직한 바람이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그 바람이 이뤄졌다는 글을 읽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책을 정리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나도 매번 고민하다. 읽지도 않은 책, 읽었으니까 더 소중한 책, 이러저러한 제목을 달고 내 곁에 머무는 책이 있는데 명색이 작가는 오죽할까.

 

 한 줄 한 줄 써가면서 내면의 응어리나, 자유의지를 끄집어낸다. 내면의 응어리를 분쇄하고, 자유의지를 마음껏 실현한다. 그러니까 글은 내면의 해우(解憂)인 셈이다.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것은 칭찬을 못 받아도, 상을 못 타도, 아니 아무에게 보여주지 않고 혼자만 읽고 보아도, 즐거운 일이다. 누구를 위해서 아니라, 자신을 위해 쓴 것이고, 쓰는 자체가 즐거웠던 것이다. (290쪽, 「글쓰기로 스트레스를 푸는 세상」​중에서)

 

 나는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읽은 책에 대한 글, 혹은 짧은 메모 비슷한 생각을 쓰기도 한다. 어느 시절에는 나만의 문장을 갖겠다고 벼르기도 했다. 이런 에세이를 읽으니 더 많이 쓰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다. 작가의 글처럼 어떤 보상이 없더라도, 누군가 읽어주는 이가 없더라도, 쓴다는 게 중요하다. 일기처럼, 편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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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2-19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자목련 2018-12-21 15:5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해요. 진정한 서재의 달인이신 서니데이 님이 축하해주시니 더욱 기쁘네요.
건강하고 즐거운 시간으로 채우세요^^
 
골든아워 2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13-2018 골든아워 2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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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다가 울컥하고, 아프다가 따뜻했던 책이다. 2권의 마지막 <인물지>가 주는 감동은 형용할 수 없었다. 리뷰를 쓰고 싶은데 못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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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1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골든아워 1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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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한 글을 읽으면서 때로 마주하는 잔혹한 현실이 픽션이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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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은 유한하다. 그래서 소중하고 아름답다. 모두가 다 알지만 모두 다 자주 잊고 사는 진실이다. 주어진 일상이 영원할 거라 막연한 믿음으로 우리는 살아가기도 한다. 지나온 어제처럼 당연하게 오늘을 맞이하고 살아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발생해서야 일상에 대해서 돌아본다. 가령 내 부주의가 아닌 상대의 잘못에 의한 자동차 접촉사고가 난다든지, 가벼운 통증을 무시하다 사라지지 않아 찾은 병원에서 소견서를 받거나 느닷없는 집주인의 전화에 보통의 일상은 너무나도 쉽게 와르르 무너진다. 그 순간 평범했던 일상에서 일탈한다. 아니 이때부터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만 내게로 다가올 때 우리는 절망한다. 절망의 순간은 어떻게든 지워나가고 다음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 때때로 그건 너무 고통스럽고 비루하다. 그럴 때 우리는 일상이 아닌 일탈을 시도한다. 한 방을 꿈꾸며 한 번도 구매하지 않았던 로또복권을 사기도 하고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로 도피한다. 게임 속 캐릭터가 되거나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거나 소설 속으로 빠져든다. 내 일상이 아닌 그들의 일상에 잠시 마음을 기대는 것이다. 소설 속 삶이 현실의 일상과 더 가까워 분노와 화를 참지 못하기도 하면서. 일상의 표정은 다양하다. 모두가 꿈꾸는 평온한 일상, 걱정과 근심으로 채워진 불안의 일상, 거대한 슬픔을 겪고 감사하는 일상에 대해 생각한다
     
 김이설의 소설집 오늘처럼 고요히(2016)를 다시 꺼냈다. 이 안에는 일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럼에도 우리의 일상인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나는 그런 일상을 살지 않는다고. 뉴스에서나 접할 수 있는 무섭고도 잔혹한 일상이 소설 속에 가득하니까.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그런 사회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그들에게 힘을 내라는 말은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 그렇게 살지 말고 다른 일상을 살아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대를 이어 행해지는 가정폭력을 다룬 미끼, 품격과 권위의 삶을 사는 겉모습과 다르게 기본을 지키지 못하는 진짜 모습이 역겨운 부고, 친절하게 독촉하는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 할 수 없는 일은 세상에 없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흉몽. 그들은 모두 우리의 모습이었다. 어떤 모습은 너무 닮아서 소름이 돋기도 한다. 우리는 그저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 뿐이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우리의 일상은 어느 순간 비일상의 궤도에 진입해 있다. 부당한 일에 대해 부당하고 말하는 게 그토록 잘못된 것일까. 파업의 대가로 돌아온 건 손해배상 청구와 남편의 자살을 다룬아름다운 것들을 읽다 보면 그런 일상이라면 누구라도 포기를 택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 안다. 나의 일상을 대신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슬픔을 대신 덜어줄 수 없다. 대신 앓을 수 없고, 대신 살아줄 수도 없듯이, 온전히 자기 혼자 버텨내야 했다.’ (89)란 말을 나와 당신이 하루에도 몇 번씩 중얼거린다는걸. 그 뻔한 말이 우리가 유일하게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일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마는 것이다.
     
 일상을 산다는 건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다. 일상을 유지한다는 건 일상을 지킨다는 것이다. 일상을 지키는 건 견고한 성을 쌓고 지키는 일처럼 어렵다. 그저 살아가는 일을 생각하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내 일상을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혼자만의 삶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혼밥, 혼술, 혼자서 모든 걸 해내는 삶이 확장되지만 그들도 결국 누군가의 가족이고 작은 사회의 일원이다. 때문에 나의 일상을 지키는 건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저마다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최정화의 소설집 모든 것을 제자리에(2018) 속 인물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지난 과거는 잊고 현실에 충실하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하지만 한번 불안이 찾아오면 일상은 불안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제 겨우 지난 사건을 잠재우고 새로운 책을 펴냈지만 여전히 3년 전 인터뷰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불안한 남자 인터뷰, 친구가 자기 애인을 모델로 그렸다는 그림 속 푸른 코드를 입은 남자가 자신의 남편일 거라고 생각하며 불안에 떠는 여자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 친하게 지냈던 회사 동료에게 사기를 당했지만 그럴 리 없다고 믿으며 새벽마다 창문 밖에서 떠들어대는 아이들 무리가 제발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남자 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일상의 반복성은 망상을 키운다. 그리고 망상은 불안을 키운다. 일상은 생이 끝날 때까지 이어질 테고 불안은 일상의 그림자가 되어 뫼비우스 띠처럼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동료나 이웃에게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왜 어떤 일들은 구름이 모양을 바꾸는 것처럼 서서히 일어나지 않고 단 한순간에 완전히 빛깔을 바꾸어버리는 것일까. 따뜻한 기운을 품은 은은한 복숭앗빛 하늘이 왜 저토록 사나운 핏빛으로 변해버렸을까. 좀전까지 잘 어울리던 한 쌍의 커플이 왜 이리 급작스럽게, 마주치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 끔찍한 악연으로 방향을 바꾸는 걸까. 왜 그런 일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갑자기 일어나는 걸까. 왜 어떤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고 내뱉은 한마디가 다른 어떤 사람을 다시 벗어나지 못할 수렁으로 몰고 가는 걸까.’ (111)

 

 때로는 그 불안의 실체가 무엇인지 확연하게 잘 알고 있지만 벗어나지 못한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다니는 회사가 문을 닫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면 불안해서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리느라 맡은 업무를 제대로 해낼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IMF를 경험한 세대는 그런 사태가 발생할까 불안하다. 꼰대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자꾸만 후배와 아이들을 상대로 그 시절을 복기한다. 그뿐이 아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병력이 유전되어 나도 똑같이 아플까 봐 겁이 난다. 불안이라는 건 이렇게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어 잠식한다. 안다는 것이 더 무섭다. 불안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우리 일상을 맴돌며 지켜본다. 어느 시절에는 뭔가 특별한 이벤트가 일어나기를 바랐지만 이제는 그런 이벤트가 아닌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을 바란다. 새해에는 반드시 지키겠다는 거대한 다짐을 하고 연말에는 후회를 하는 보통의 일상 말이다. 적당한 비가 내리고 적당한 눈이 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일상은 어찌할 수가 없다. 짧은 이별의 눈 맞춤도 허락하지 않은 채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기도 하고 고통의 시간을 견디다 끝내 친구나 가족을 떠나보내기도 하니까. 우리 일상에 희로애락의 조각들이 다 들어있다는 걸 알면서도 죽음으로 인한 경험은 피하고만 싶다. 상실의 자리는 어떠한 것으로도 채울 수 없고 애도의 끝은 존재하지 않다는 걸 점차 받아들인다. 때문에 친구처럼 지냈던 전 남편의 죽음을 경험한 패멀라 D. 블레어와 사고로 오빠를 잃은 브룩 노엘이 함께 쓴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란 책과 함께 일상을 지켜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이 책을 읽는 일은 힘들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잃은 상실의 시간을 견디고 그 슬픔을 온몸으로 껴안은 일상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죽음을 경험하고 애도와 함께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 넘치도록 차오르는 눈물과 슬픔으로 어떻게 일상을 계속 이어가야 할지 모르는 이들이다. 그들에게 구체적이며 실질적으로 건네는 조언이야말로 거룩하고 숭고하기에 아름다운 일상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애도를 표현하며 살아가는 일,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지나 회복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눈부신 일상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고통의 시간을 살고 있을 때 우리는 혼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둘러보면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상황에 있는 이들이 있다. 책을 통해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곤 한다. 문득 문학이야말로 유일하게자신만의 일상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일상 속에 놓여 있음을 깨달았다. 문학은 애도의 일상을 산다. 작가는 죽고, 그 작가가 남긴 문학을 읽은 독자도 계속해서 바뀌고 사라진다. 문학은 그렇게 자신을 이 세상에 남긴 이를, 그리고 읽고 스쳐 지나간 이들을 애도하는 일상을 살아간다. 동시에 문학은 자신을 새로 읽고 스쳐 지나갈 이들을 기다리는 작별의 일상을 마다하지 않는다.  


 ‘길고 느린 과정이에요. 때때로 두 걸음 앞으로 나가갈 때마다 세 걸음 뒤로 물러나요. 하지만 다른 때에는 후퇴 없이 앞으로 두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어요. 당신은 그저 계속해서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두고 나아가야 해요. 그리고 이것이 정확히 제가 하고 있는 것이에요. 한 걸음씩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303)
     
 창밖으로 눈 내린 풍경이 보인다. 아름다워서 황홀할 지경이다. 어느 순간 사라질 것이다. 우리 생이 그러한 것처럼. 생은 그러한 일상이 모인 풍경이다. 사라질까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면 일상은 무의미하다. 상처와 고통으로 인해 일상을 던져버리고 싶은 순간과 마주하거나 내일이 오는 게 두렵고 오늘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불안한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 살아있음을 우리는 때로는 비일상으로써 획득하고, 불안으로써 체감하며, 죽음으로써 견딘다는 것을. 결국 일상이란 살아가는 일이다. 단순하면서도 위대한 여정,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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