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제자리에
최정화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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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을 유지하는 건 어렵다. 단순하고도 명확한 사실을 알기에 아침을 맞이하며 감사함을 느낀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다양한 사건 사고를 경험하고 나서야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유도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서 아닐까. 당연한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최정화의 소설집 『모든 것을 제자리에』를 읽으면서 산다는 건 불안을 껴안고 사는 것이며 동시에 불안을 떨쳐내려 안감힘을 다하는 것이란 걸 인식한다. 그래서 7개의 단편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불안의 감정을 발견한다. 무엇이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드는지.

 

 한 번의 실수는 평생의 주홍글씨가 되기도 한다. 적절하지 않은 비유일지도 모르지만 「인터뷰」의 화자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학자인 그는 과거 기자와의 인터뷰를 하면서 불미스러운 사건의 당사자가 되었다. 사건의 여파는 컸고 그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새 책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아내와 장인은 과거 그 일을 언급한다. 아내와 장인이 숙소로 돌아가고 혼자 남은 그는 한 커플과 동석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가 기억하는 사건과 실제 일어난 일 사이에는 거짓과 진실이 공존한다. 사건을 왜곡하는 일이 그가 불안의 크기를 축소시키는 방법은 아닐까.

 

 그렇다면 불안의 ​시발점은 무엇일까. 화가 친구의 전시회에서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를 그린 그림을 보면서 화자는 그 남자가 친구의 애인이라고 단정하는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를 보면 추측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화자는 남편의 옷장에서 푸른 코트를 발견한다. 화자는 남편이 친구와 불륜관계라 생각한다. 막연한 추측은 확신이 되고 집착으로 발전할 것이다. 아내와 다투고 밖으로 나간 남편을 찾아 거리고 나온 화자에게 보이는 건 온통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들이다.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남편을 찾을 수 없다. 대화가 끊어진 아내와 남편 사이에 불안이 스며든 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소통의 부재로 찾아온 불안은 「전화」에서도 마주한다. 후배가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아 지난 만남을 돌아보지만 딱히 그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냥 그러려니 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화자는 끊임없이 전화를 건다. 그토록 전화를 하는 행동 이면에는 불안이 깔려있다.

 

 새로 이사 온 집을 방문하는 낯선 사람들 때문에 마치 자신이 누군가의 집을 빼앗을 것처럼 여겨지는 「잘못 찾아오다」​속 주인공은 처음엔 그들로 인해 불편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주인을 잃은 예술잡지와 상품권이 처음부터 자신의 것 인양 사용한다. 조금 뻔뻔하다 할 수 있는 행동은 「인터뷰」속 거짓말처럼 불안을 위장하는 도구로 보인다. 가장 현실적으로 불안에 대응하는 태도일 수도 있다. 언제까지 불안에 끌려다닐 수는 없으니까.

 

 상황이 나빠지고 자신감이 떨어지면 불안은 더욱 자신의 존재감을 들어낸다. 「내가 그렇게 늙어 보입니까」​의 화자는 현재 실직자다.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우연하게 사고를 당한 후 그는 자신이 나이에 비해 한참 늙어 보인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행동을 지배하고 그는 점차 노숙자처럼 변해간다. 그러니 그에게 세상은 이전과는 다른 세계였다.

 

 왜 어떤 일들은 구름이 모양을 바꾸는 것처럼 서서히 일어나지 않고 단 한순간에 완전히 빛깔을 바꾸어버리는 것일까. 따뜻한 기운을 품은 은은한 복숭앗빛 하늘이 왜 저토록 사나운 핏빛으로 변해버렸을까. 좀 전까지 잘 어울리던 한 쌍의 커플이 왜 이리 급작스럽게, 마주치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 끔찍한 악연으로 방향을 바꾸는 걸까. 왜 그런 일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갑자기 일어나는 걸까. 왜 어떤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고 내뱉은 한마디가 다른 어떤 사람을 다시 벗어나지 못할 수렁으로 몰고 가는 걸까. (111쪽, 「내가 그렇게 늙어 보입니까」)

 

 『모든 것을 제자리에』란 제목은 소설 속 모든 인물이 바라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자신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해 생긴 불안, 관계가 깨어질까 두렵고, 잘못된 일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그런 불안을 이기고 싶은 욕망을 표현한 소설이었다. 내게 닥친 일은 아니지만 일어날 수 있는 상황.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없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우리의 그것과 같았다.

 

 최정화는 불안을 포착하는 작가다. 불안을 생명이 있는 것처럼 다룬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전하고 싶었던 건 불안을 잘 알아야 달래고 잠재울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불안과 대화하는 방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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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4 17: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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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4 21: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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