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 - 지하철 앤솔로지
전건우 외 지음 / 들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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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이 인과 예가 사라진 아사리 판이라면, 2호선은 정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뢰한들의 세상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공항철도와 연결되는 9호선은 출근 시간에 지옥도가 열립니다. 인간이 어디까지 쪼그라들 수 있는지, 어디까지 치사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막돼먹을 수 있는지를 보려면 고시원에 살면서 9호선 오전 급행을 타보면 됩니다.(…)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보지 못한 제가 공항철도를 이용해 출퇴근을 합니다. (「공항철도: 호소풍생」, 전건우)


같은 시각 같은 버스나 지하철을 기다리는 이들은 서로를 기억한다. 어쩌면 눈 인사를 하는 정도가 되어 하루라도 안 보이면 궁금할지도 모른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는 이들이지만 저마다의 사정은 다 다르다. 누군가는 직장으로 향하고 누군가는 간병을 위해 병원으로 향하고, 누군가는 아무런 목적지 없이 그냥 집을 나왔을 수도 있다. 지하철 노선을 다 돌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에게는 어떤 말 못 할 사정이 있을까. 청량리에서 시작한 경춘선의 승객들이 모두 춘천으로 향하지 않듯 공항철도의 승객들은 모두 여행객이 아니다. 단순히 이동 수단이라 칭할 수 없는 지하철은 어느새 이용객 모두에게 일상이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6명의 작가가 지하철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집 『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에서 다채로운 지하철 풍경을 만난다. 지극히 현실적인 지옥철의 모습에서 어디론가 다른 세상으로 이끌어 줄 것 같은 마법의 공간으로 때로는 설레는 로맨스가 피어나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어느 시절 아주 잠깐 지하철을 이용했던 내가 기억하는 지하철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에 놀라면서도 그 안에서 펼쳐지는 삶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취객이나 잡상인과의 다툼 정도로만 예상했던 전건우의 (「공항철도: 호소풍생」은 이제는 한물간 협객 ‘편 관장’은 아들과 살기 위해 상경한다. 공항철도에서 그는 국정원 직원이라는 사람의 요청으로 승객 중 산업 스파이를 찾아 나선다. 아니 어느 시절이라고 국정원 직원이라는 말을 믿는단 말인가. 그러나 ‘편 관장’은 꿋꿋하게 그들과 맞선다. 하나의 엉뚱한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었지만 소설에서 ‘편 관장’에 의해 산업 스파이는 검거된다. 소설처럼 지하철 안에서 할아버지가 난리는 피운다면 과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가 있을까. 저마다 도착할 곳만 생각하며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하며 타인의 일이라 여기는 현대인에게 일침을 가하는 듯하다.


나와는 별개라는 생각들, 그리하여 사고가 발생했을 때 나만 살겠다고 출입구를 향해 달려드는 이기적인 모습은 정명섭의 「2호선: 지옥철」에서 생생하게 그려진다. 좀비라는 실체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공포에 휩싸여 매뉴얼 따위는 잊은 결과는 대참사로 이어졌다. 과거의 그날을 회상하는 형식의 이 소설은 코로나 바이러스뿐 아니라 다가올 미래에 마주한 재난과 공포에 대응하는 인간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더불어 지하철에서 발생한 사고로 희생한 노동자를 추모하게 만든다. 


단순한 죽음뿐만이 아니다. 가족들의 소멸은 그들이 공유했던 기억들이 모두 증발되어버린 것을 의미한다. 가족이 죽었다는 것은 자신이 기억될 공간이 소멸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의 서글픔이라고나 할까. ( 「2호선: 지옥철」, 정명섭)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다종다양한 인간들이 모인 곳이 바로 지하철이다. 그곳에서 매일 누군가를 관찰하는 이가 있다면 조영주의 「6호선: 버뮤다 응암지대의 사랑」 속 ‘해환’처럼 작가일지도 모른다. 서울 시내 유일한 단선 운행을 하는 6호선에서 해환은 고시생 남자를 만난다. 지하철에서 고시 공부를 하는 남자와 소설을 구성하는 여자. 가난한 연인은 조금씩 사랑에 빠진다. 새로 개통된 역의 대기실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주변 사람들의 응원을 받는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지하철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결말이 보여주는 건 지독한 현실 직시하라는 메시지처럼 들려 안타깝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어디서든 사건은 발생한다. 그런 의미로 보면 지하철이라고 특별할까 싶지만 밀폐된 공간으로 여기면 김선민의 「5호선: 농담의 세계」처럼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이나 정해연의 「1호선: 인생, 리셋」처럼 특정 시간 특정 역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상상이 충분히 가능하다. 「5호선: 농담의 세계」에서는 이곳이 아닌 그곳에 도달해서야 이곳이 주는 안전함에 감사할 수 있고 「1호선: 인생, 리셋」속 인물처럼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자 타임리프를 시도하지만 인생이란 언제나 후회를 안겨준다는 교훈을 안겨준다. 


누군가 지금도 지하철을 기다리고 누군가 지하철 안에 있을 것이다. 옆에 있는 사람을 관찰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이용할 일이 없는 지하철 노선도를 바라본다. 복잡한 노선들이 우리네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속에서 만난 이야기는 판타지나 SF든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더 이상은 모두의 지하철이 지옥철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쉬운 점은 부산, 대구, 광주, 대전의 지하철을 배경으로 한 단편이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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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칠 줄 모르고 비가 내린다. 몇 시간 전에는 천둥과 번개가 쳤다. 한낮인데 깊은 밤인 것 같았다. 무섭기도 했고 어딘가 사람들이 또 이 비에 피해를 입거나 다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됐다. 비는 많은 생각을 몰고 온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상념의 시간이 이어진다. 해결해야 할 일의 맨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그것을 찾기 위해 그것을 알고자 생각하고 생각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한다. 몰라서 모든 걸 끌어안고 걱정하는 건 우습지만 연속해서 불운한 일들이 닥치면 결국 그 모든 걸 끌어안게 된다. 그런데 하나하나 살피고 들어가 보면 ‘불운’이라 이름 붙인 그 시작은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이다. 단 한 번의 요행을 바라거나 누군가의 간절함을 빌미로 이득을 취하는 일은 잘못된 선택이다. 그걸 인식하는 게 어렵기에 회피하고 외면한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속상함에 파묻히는 건 어리석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나가아야 한다. 상담을 하거나 의견을 묻는다 해도 딱히 해결할 수 없는 분야의 일. 완벽한 답을 구할 수 없다. 인식의 힘이 필요하다. 부족한 인식의 힘을 기르기 위해 연습이 필요하다. 나를 인식하는 일,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일은 절실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일이 시작이다. 꾸미거나 치장하지 않는 본질에 대한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일. 불운하거나 불행하다며 불평할 대상을 찾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나로도 괜찮다.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걸 주입하는 건 나쁘지 않다. 


단순하게 생각한다. 단순하게 판단하라는 게 아니다. 일의 본질은 결국 단순함이니까. 매달려있다고 해서 바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집중하되 차분하게 정리를 해야 한다. 일의 순서와 수집할 정보의 목록을 작성한다. 완료된 목록을 하나씩 지우는 일은 즐겁다. 그리고 환기가 필요하다. 심각성을 떠나 힘든 일에 함몰되어 절망하지 않고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절실하다.





충동적인 소비가 좋을 때가 있다. 책을 구매하는 경우가 그렇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생각하다 보면 책을 읽는 타이밍을 놓치기도 한다. 신간이라고 해서 다 그때 바로 읽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신간을 바로 읽을 때 그만의 즐거움이 있다. 집중 독서를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책은 언제나 좋다. 그래서 책을 샀다. 책을 읽는다.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나로 살기 위해서. 너무 거창한 이유지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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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1 소설 보다
구소현.권혜영.이주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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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에서 불행과 불운으로 둘러싸인 삶을 살아가는 인물을 접할 때 반사적으로 내 삶을 둘러보게 된다. 소설 속 인물보다 괜찮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안도한다고 할까. 생각해 보면 그건 소설이고 현실의 불행과 불운은 얼마나 강하게 우리는 몰아치고 있는지 확인한다. 『소설 보다 : 가을 2021』에서 만난 인물들이 하나같이 행복과는 먼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유인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왠지 다 알 것 같다. 삶이란 참 팍팍하고 고달프니까.


구소현의 「시트론 호러」는 유령 ‘공선’이 주인공이다. 굶어 죽은 10년 차 공선은 사람이나 사물을 만지지 못한다. 우리가 예의 생각하는 유령의 능력 같은 건 없다. 그녀는 특이하게도 자신 대신 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찾는다. 이른바 독서 메이트. 소설 창작 모임에 나가는 효주가 공선에게는 딱이었다. 함께 모임을 하는 태오는 형식적인 읽기에 그쳤고 지민은 블로그 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효주는 한 번 잡은 책은 끝까지 읽었다. 그런 효주에게 경제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생겨 학교에 나오지 않고 대신 태오와 지민을 통해 그의 소설을 읽게 된다. 태오와 지민은 효주의 소설 속 아쉬운 부분과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공선은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고 싶었다. 태오와 지민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공선은 온전히 알 것만 같았다. 어쩌면 공선은 효주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공선은 소설을 친구로 여기는 유령이었기 때문에 소설의 하자는 사실상 공선이 소설을 더욱 자세히 읽게 되는 관계의 진입로이기도 했다. 상대방의 하자에서 고유한 사랑을 발견하고 고유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건 사람과 유령이 똑같았다. (「시트론 호러」, 25쪽)


구소현과 마찬가지로 처음 접하는 권혜영의 단편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도 역시나 우울하다. 교대 근무를 하고 돌아온 ‘나’는 화재 경보 소리에 집을 나선다. 진짜 불이 난 건지 경보기가 고장 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파트 비상계단을 내려간다. 자신과 같이 밖으로 나온 이들의 소리는 들리지만 기이하게도 그들을 확인할 수는 없다. 


계단 아래 계단, 그 아래도 다시 또 계단.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의 구렁텅이였다. 발밑으로 펼쳐진 공간의 밑바닥이 가늠되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나보다 아래에 위치한 사람의 검은 머리통. 그리고 가운데로 수렴하는 계단뿐이었다.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 54쪽)


어디가 끝인지 모르고 막연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일은 쉬지도 못하고 열심히 일했지만 남은 건 몇 개의 카드와 빚뿐인 자신의 모습과 닮은 듯하다. 암울한 상황은 화재경보기 오작동이라는 안내를 받았지만 ‘나’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 그 어디에도 ‘나’가 기대하는 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일까. 제목만큼 울적하고 무거운 소설이다. 


이주란의 「위해」 도 다르지 않다. 다만 이주란의 소설은 언제부턴가 소설보다는 자세한 일기처럼 여겨진다. 이주란이 인물은 대체적으로 가난하고 소극적이고 자신의 아픔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주란은 그 마음을 섬세하게 포착하여 들려준다. 주저하고 서성이며 내뱉지 못하는 어떤 마음들에 대해. 


사람들은 뭘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수현이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할머니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수현의 생각은 달랐다. 난 어느 정도 행복하고 나야말로 긍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중요한 건 역시 몰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해」, 99쪽)


무언가가 좋다. 싫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 그걸 하고 싶었다. 해본 적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말들. 그걸 하고 싶었다. (「위해」, 103쪽)


그리하여 수현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옆집 소녀 유리를 존중한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뭔가 강요하지 않는다. 지난 시간에 대해 묻지 않고 필요한 대화를 나누고 유리가 원하는 대로 함께 한다. 얼마나 힘드니?라는 섣부른 위로가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대로 따라주는 게 진정한 위함이라는 걸 알려준다고 할까. 그러니 위로하여 마음을 풀어주는 위해(慰解)는 우리가 쉽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닌 것이다. 


『소설 보다 : 가을 2021』의 세 단편은 표면적으로 우울하고 애처롭다. 그럼에도 왠지 위로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나도 소설 속 그들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명확한 말은 떠오르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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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2 소설 보다
김지연.이미상.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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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행간의 의미, 인물과 인물 간의 대화를 낱낱이 해석하고자 하면 소설 읽기는 급 피곤해진다. 하나의 사건, 하나의 짧은 이야기로 여기며 읽는 게 좋다고 여기는 편이다. 어쨌든 소설은 픽션이고 인물 역시 가상의 인물이니까. 그렇다고 소설이 현실과 아주 별개의 세상이라는 건 아니다. 살짝 현실을 틀어 소설 속 세계로 옮겨놓다는 말에도 나는 동의한다. 『소설 보다 여름 2022』 을 읽으면서 소설 속 인물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을 해석하려는 나를 만났다. 작가가 의도하는 게 무엇인지 그 고통과 절망이 무엇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는 말이다. 


김지연의 「포기」는 현재를 사는 청춘들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도대체 평범함이란 무엇인가, 평범한 삶이라는 게 가능하긴 하냐도 묻는 듯했다. 화자인 미선이나 미선의 전 남자친구 민재, 미선의 사촌 호두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은 특별 그 이상의 복잡함으로 가득할 것이다. 호두는 민재에게 2천만 원을 빌려줬다. 미선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민재와 호두 사이에는 2천만 원 이상의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현재 미선과 민재는 헤어졌고 민재는 사라졌다. 미선과 호두에게 민재는 불편하면서도 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소설에서 미선과 민재가 생각하는 평범은 같은 듯하면서도 아주 다른데 그 부분이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내가 평범하게 산다는 거, 보통의 수준으로 산다는 거, 하고 말하면서 상상했던 수준들도 다 보통 이상의 것들이었다. 민재가 말한 평범한 삶이란 불운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살면서 한두 개의 불운이란 게 없을 수가 없으니까 그거야말로 평범했다. (「포기」, 25쪽)


어찌 보면 민재의 말대로 미선과 민재, 호두는 모두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평범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우리는 모두 평범한 삶을 살기도 한다. 그런데 또 평범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소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친구, 연인, 친척으로 맺어진 관계를 떠났다면 호두는 민재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었을까. 소설 말미에 민재가 돈을 다 갚으면 민재가 잘 지내는지 어떻게 아냐는 호두의 말은 무척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미상의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은 더욱 어렵다. 소설은 제목 그대로 모래 고모라 불렸던 고모와 화자인 목경과 목경의 언니 무경이 어린 시절 함께 지낸 이야기다. 모래 고모의 장례식에 다녀온 목경이 들려주는 모래 고모와 그와 같은 사람인 언니 무경. 고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더 친하다고 여겼는데 고모가 바라본 건 언니 무경이었다. 그것은 같은 기질이라고 할 수도 있고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소설이 그렇겠지만 이거다, 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함윤이의 「강가/Ganga」도 마찬가지다. 소설 전체가 중의적인 의미로 가득하다고 할까.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여행 중인 화자는 그곳에 남자를 사러 간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호텔 직원에게도 강가의 가게에서 만난 여자들에게도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말 그대로 화자가 남자를 사러 온 건 아니다. 화자는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소설을 시작하는 첫 문장에서 화자가 다짐한 것처럼.


강가.

이 도시에서는 그렇게 불려야지, 다짐했다. (「강가/Ganga」, 107쪽)


화자는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냉동 음식을 포장하는 일을 했다. 친했지만 그들을 대변할 수는 없었다. 한국을 떠나 머문 도시에서 만난 여자들을 모습을 보며 한국의 자신과 그들을 떠올린다.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지내고 싶지만 불편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호텔로 돌아간다.

아니다 다르게 말해보자. 

강가는 호텔로 돌아간다. 

이렇게 말하니 모든 게 한층 편안하게 느껴진다. 내가 아니라, 강가가 호텔로 간다. 공장에서 꾸역꾸역 모은 돈으로 항공편을 사서 낯선 도시에 도달한 사람은 강가. 어깨가 다 드러나는 티셔츠를 입은 채 도시를 거니는 이도 강가. (「강가/Ganga」, 122쪽)


이전의 내가 아닌 ‘강가’로 지내면 달라질 것 같은 간절하고 쓸쓸한 희망이 전해진다. 처음 만나는 함윤이의 소설은 독특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묘한 분위기를 지녔다.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기를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오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할까. 아니, 잘 모르겠다. 그게 정확하겠다. 


어떤 언어를 쓰든 간에 우리는 모두 타인의 말을 오해하지 않나요. 타인의 말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한 뒤, 그 해석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곤 하죠. (함윤이 × 홍성희,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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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날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4
카롤린 라마르슈 지음, 용경식 옮김 / 열림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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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을 때가 있다. 드라마나 영화 속 장면, 책 속에서 만난 글귀가 그러하다. 황홀하게 아름다워서 기억에 담아 한 번씩 꺼내 보고 싶은 마음과 그 장면과 글귀에 포섭되어 헤어 나오지 못해서다. 드라마나 영화의 인물이 나 같아서,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글이라서 말이다. 그것은 기쁨이나 환희보다는 슬픔이나 아픔에 가까울 경우가 많다. 안쓰럽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그 마음이 애처롭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상상하지 못한 『개의 날』 이란 제목의 카롤린 라마르슈 소설에서 그런 연민과 삶의 상실을 마주했다. 그것은 지독하게 쓸쓸하고 아픈 것이며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했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개 한 마리를 목격한 순간,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어쩌자고 개가 고속도로까지 왔을까, 길을 잃었을까, 주인이 애타게 찾고 있을까. 그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거기서 멈춰 개는 잊고 달리던 대로 달리고 목적지를 향해 가지 않을까. 


그러나 『개의 날』 속 여섯 화자는 달랐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장면을 목격하면서 그들의 느끼고 발견한 것들은 내면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자신의 목소리였다. 누군가는 그 개가 자신과 닮았다고 여겼고 누군가는 죽음을 성찰하고 누군가는 삶이라는 고독에 대해 마주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죽음이 예측되는 개의 모습은 여섯 명 모두의 삶에 귀속되었다.


작가는 여섯 명의 화자 중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며 그들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트럭 운전사가 화자인 「트럭 운전사 이야기」에서는 거짓으로 지어낸 가족 이야기를 여러 잡지에 보내는 한 남자가 고속도로에서 발견한 개를 보며 느끼는 외로움과 공허함에 대해 말한다. 육체적 욕망을 근절하며 살아야 하는 사제가 미사에 오지 않는 여신도를 찾는 과정을 다룬 「천사와의 싸움」에서 사제는 개의 죽음에서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와 소피라는 여성을 향한 감출 수 없는 마음과 마주한다. 


그 개는 죽어서 분해되었을 것이고, 지금은 도로변에 일부가 남아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다가갈 수 없는 고통스러운 고독과 엄청난 절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출구는 죽음인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중 누구도 그것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사와의 싸움」, 49쪽)


죽은 뒤 영혼이 다른 육체에 깃드는 것은 사실이다. 영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그렇다. 우리의 인생은 그런 부활의 연속일 뿐이다. (「천사와의 싸움」, 68쪽)


어쩌면 개는 죽음으로 인해 자유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사제가 갈망하는 것 역시 그런 죽음을 통한 부활이 아닐까. 어렵게 다가온 부분이지만 감당할 수 없는 삶에서 한 번쯤 떠올리는 출구가 죽음이라는 걸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고속도로를 질주하던 개는 출구를 찾아 달리고 있던 건 아닐까. 


그런가 하면 연인과의 마지막 만남이 될 장소로 향하던 「생크림 속에 꽂혀 있는 작은 파라솔」의 빨간색 레인코트를 입은 여자는 개를 보며 연인과 자신을 떠올린다. 그들의 지나온 사랑에 대해서, 아니 그 이전 존재부터 버림의 대상이었던 유년 시절과 만난다.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 대신 자신을 돌봐준 유모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돌보지 못함에 대해 그녀는 버림받았다고 기억한다. 돌봄이 아닌 버림을 받았다는 건 모든 사랑에 대해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그러니 고속도로에서 개를 구하고만 싶었다. 심연 가득히 쌓인 버림받았다는 절망 때문에 그 개가 마치 자신과 같아서 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개이며, 너는 그 개의 주인이다. 나는 그 개를 위해 울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동정심일까 아니면 절망의 이면일까. 학살을 은폐하기 위한 교훈적 감정이다. 언제나 누군가 나를 버렸다. 사랑. 사랑은 항상 당신들을 버린다. 아무리 짧은 순간의 사랑이라 하더라도. 아니다, 사랑은 처음부터, 환희의 순간에도 당신들을 버린다. 그때 이미, 태양은 우물 속에 가라앉고, 검은 물 아래 버려진 개가 있는 것이다. (「생크림 속에 꽂혀 있는 작은 파라솔」, 87쪽)


달리는 개를 보면서 그처럼 달려가 스스로 생을 끝내고 싶은 「자전거를 타고」의 화자는 일하던 과일가게에서 해고된 게이다. 사장은 그가 일하는 방식이 아니라 옷차림이나 그가 게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직장을 잃었지만 친구의 생일파티에서 주변 사람에게 자신의 내면을 꺼내놓는다. 그러니까 해고 사실과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진정한 위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가 달리기 시작한 건 자신을 둘러싼 생각으로부터 단순해지기 위해서였지만 결국 고속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행위는 죽음을 원해서였다. 


달리는 것은 하나의 일이며, 나의 내면에 무언가를 철저하게 건설하는 행위다. 나는 아직 그 무언가의 정체를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앞에 서 있는 방파제의 도도함과 부서지기 쉬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거친 파도가 이는 바다도 아니고, 즉각적인 위험도 없이 습관처럼 단조롭게, 고속도로의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 이 모든 차량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달리고 있는가? (「자전거를 타고」, 114쪽) 


개를 보며 죽음을 원한 이도 있었지만 암으로 사망한 남편의 죽음을 남편에게 버림받았다고 여기는 「별수 없음」의 과부는 개를 구할 수 없음이 별수 없음으로 다가오고 그에 반해 「영원한 휴식」에서 과부의 딸인 ‘안’은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안은 개와 같은 죽음으로 제목처럼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싶다. 남편을 잃은 아내와 아버지를 잃은 딸이 서로를 바라보는 극명한 태도는 그들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보여준다. 


한 마리 개의 죽음은 개가 살아온 시간을 상상하게 만드는 동시 우리의 지난 삶을 불러온다. 철학적 사유를 애틋하고 뭉클하게 풀어낸 소설이다. 한동안 멍해진다. 무언가 빠져나간 것 같은 기분은 무엇일까.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향해 나가는가 묻는다. 마침내 도달할 것이 죽음이라는 명확한 사실과 마주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건 무엇인지, 우리가 그토록 붙잡고 싶은 게 무엇인지 내면의 진실한 고백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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