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여름 2022 소설 보다
김지연.이미상.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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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행간의 의미, 인물과 인물 간의 대화를 낱낱이 해석하고자 하면 소설 읽기는 급 피곤해진다. 하나의 사건, 하나의 짧은 이야기로 여기며 읽는 게 좋다고 여기는 편이다. 어쨌든 소설은 픽션이고 인물 역시 가상의 인물이니까. 그렇다고 소설이 현실과 아주 별개의 세상이라는 건 아니다. 살짝 현실을 틀어 소설 속 세계로 옮겨놓다는 말에도 나는 동의한다. 『소설 보다 여름 2022』 을 읽으면서 소설 속 인물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을 해석하려는 나를 만났다. 작가가 의도하는 게 무엇인지 그 고통과 절망이 무엇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다는 말이다. 


김지연의 「포기」는 현재를 사는 청춘들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다. 도대체 평범함이란 무엇인가, 평범한 삶이라는 게 가능하긴 하냐도 묻는 듯했다. 화자인 미선이나 미선의 전 남자친구 민재, 미선의 사촌 호두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은 특별 그 이상의 복잡함으로 가득할 것이다. 호두는 민재에게 2천만 원을 빌려줬다. 미선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민재와 호두 사이에는 2천만 원 이상의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현재 미선과 민재는 헤어졌고 민재는 사라졌다. 미선과 호두에게 민재는 불편하면서도 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소설에서 미선과 민재가 생각하는 평범은 같은 듯하면서도 아주 다른데 그 부분이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내가 평범하게 산다는 거, 보통의 수준으로 산다는 거, 하고 말하면서 상상했던 수준들도 다 보통 이상의 것들이었다. 민재가 말한 평범한 삶이란 불운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살면서 한두 개의 불운이란 게 없을 수가 없으니까 그거야말로 평범했다. (「포기」, 25쪽)


어찌 보면 민재의 말대로 미선과 민재, 호두는 모두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평범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우리는 모두 평범한 삶을 살기도 한다. 그런데 또 평범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소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친구, 연인, 친척으로 맺어진 관계를 떠났다면 호두는 민재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었을까. 소설 말미에 민재가 돈을 다 갚으면 민재가 잘 지내는지 어떻게 아냐는 호두의 말은 무척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미상의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은 더욱 어렵다. 소설은 제목 그대로 모래 고모라 불렸던 고모와 화자인 목경과 목경의 언니 무경이 어린 시절 함께 지낸 이야기다. 모래 고모의 장례식에 다녀온 목경이 들려주는 모래 고모와 그와 같은 사람인 언니 무경. 고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더 친하다고 여겼는데 고모가 바라본 건 언니 무경이었다. 그것은 같은 기질이라고 할 수도 있고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소설이 그렇겠지만 이거다, 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함윤이의 「강가/Ganga」도 마찬가지다. 소설 전체가 중의적인 의미로 가득하다고 할까.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여행 중인 화자는 그곳에 남자를 사러 간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호텔 직원에게도 강가의 가게에서 만난 여자들에게도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말 그대로 화자가 남자를 사러 온 건 아니다. 화자는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소설을 시작하는 첫 문장에서 화자가 다짐한 것처럼.


강가.

이 도시에서는 그렇게 불려야지, 다짐했다. (「강가/Ganga」, 107쪽)


화자는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냉동 음식을 포장하는 일을 했다. 친했지만 그들을 대변할 수는 없었다. 한국을 떠나 머문 도시에서 만난 여자들을 모습을 보며 한국의 자신과 그들을 떠올린다.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지내고 싶지만 불편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호텔로 돌아간다.

아니다 다르게 말해보자. 

강가는 호텔로 돌아간다. 

이렇게 말하니 모든 게 한층 편안하게 느껴진다. 내가 아니라, 강가가 호텔로 간다. 공장에서 꾸역꾸역 모은 돈으로 항공편을 사서 낯선 도시에 도달한 사람은 강가. 어깨가 다 드러나는 티셔츠를 입은 채 도시를 거니는 이도 강가. (「강가/Ganga」, 122쪽)


이전의 내가 아닌 ‘강가’로 지내면 달라질 것 같은 간절하고 쓸쓸한 희망이 전해진다. 처음 만나는 함윤이의 소설은 독특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묘한 분위기를 지녔다. 타인에게 온전히 이해받기를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오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할까. 아니, 잘 모르겠다. 그게 정확하겠다. 


어떤 언어를 쓰든 간에 우리는 모두 타인의 말을 오해하지 않나요. 타인의 말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한 뒤, 그 해석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곤 하죠. (함윤이 × 홍성희,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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