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내린 눈은 아직 다 녹지 않았다. 아파트 출입구는 여전히 눈을 밟고 오간 흔적이 남아 있다. 신문지를 깔아 두었던 현관도 마찬가지다. 눈 닿는 곳마다 눈이 그곳에 있다. 드나들 때마다 눈을 의식하고 조심조심 걸었다. 고개를 수굿하여 눈을 바라본다. 거기 눈이 있다는 걸 기억하면서 말이다. 거기 있는 존재, 그대로 인식하지 않은 채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눈이 내리니 나는 그것을 분명하게 의식한다. 지난 1월 9일 밤에는 쉬이 잠들지 못했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침대에 눕지 전 내리는 눈을 보면서 핸드폰을 이용해 이런 글을 끄적이기도 했다.
‘눈이 창문으로 달려든다. 집 안으로 들어오고 싶은 모양이다. 전부를 다 잃고 사라져버릴 것을 알면서도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아 안쓰럽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는데 밖이 환하다. 달빛이 아닌 눈빛이다. ’ (1월 9일 23시 47분)
1월 10일 아침에는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비탈에 서 있는 나무는 한쪽으로만 눈을 맞고 있었다. 그 뒤쪽에는 눈을 알지 못하는 듯 보였다. 한 몸이지만 각기 다른 곳을 보며 서로 다른 것을 생각하며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

남아 있는 겨울날은 얼마나 될까. 대한(大寒)이 지나면 입춘이 올 것이고 또 봄의 전령사라면서 이곳저곳에서 꽃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항상 우리는 다음 계절을 꿈꾸는 것 같다. 어서 빨리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꽃 피는 봄에는 휴가가 있는 여름을 기다리고 무더운 날들에는 서늘한 가을이 갈망하고 낙엽 지는 가을에는 첫눈의 겨울이 오기를 말이다. 기다린다는 건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설사 그것이 언제 올지 몰라 무작정 기다린다 해도 기다리는 동안 그것만 생각하게 되니까. 기다림은 그런 것이다.
지금 내가 기다리고 있는 건 故 정미경의 소설이다. 벌써 1주년이 되었고 정미경의 단편과 미발표 장편이 나왔다. 단편집 『새벽까지 희미하게』에는 정미경의 근작 단편 5편과 그를 추모하는 작가의 산문이 있고 장편 『당신의 아주 먼 섬』에는 남편 김병종 화가의 글이 있다. 민음사에서는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 새롭게 나올 거라고 한다. 그녀를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가장 애틋한 기다림이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올 때가지 그것으로 충분한 기다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