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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타인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가족, 친구가 아닌 명확한 타인 말이다. 관음증이나 호기심이 아닌 타인의 삶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그는 더 이상 타인이 아닌 것이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감정을 나누는 사이라면 삶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는 것일까. 누군가의 삶을 질투하고 동경하며 그 영역에 침투하고자 하는 건 잘못된 욕망일지도 모른다. 그들과 같은 삶을 살고 싶은 몸부림, 그것은 무엇이라 불러야만 할까. 나는 그것이 몹시 궁금하다. 내게도 잠재되었을 그것. 2016년 공쿠르상 수상작인 레일라 슬리마니의 장편소설『달콤한 노래』를 읽으면서 나는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 루이즈에게 나는 그것을 분명히 보았다.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안개 같은 그것.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고통은 없었다고 의사가 분명하게 말했다.” (9쪽) 이토록 잔인한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누가 무엇 때문에 아이를 죽였단 말인가. 범인을 찾는 추리소설이 아니다. 보모였던 루이즈가 아기를 죽였고 자신도 죽으려 했음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루이즈는 누구인가? 자신 있게 루이즈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존재하는가?
소설은 보모 루이즈와 그를 고용한 부부 미리암과 폴 부부의 관계에 대해 들려준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감정들과 부모로 산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가장 완벽한 보모 루이즈에 대해서 말이다. 첫 문장 때문일까. 소설엔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하다. 까탈스러운 딸 밀라와 갓난쟁이 아들 아당, 두 아이를 낳고 변호사로 복귀를 위해 계획을 세우던 미리암은 지인의 추천으로 보모 루이즈를 만났다. 그 뒤 미리암과 폴 부부는 타고난 모성으로 아이뿐 아니라 살림까지 걱정 없이 해결해주는 루이즈에게 많은 것을 의지한다. 두 아이는 점점 루이즈에게 빠져들고 그녀에게 길들여진다. 엄마나 아빠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고 자신을 사랑해주고 원하는 것들을 모두 들어주는 루이즈를 누가 싫어하겠는가. 원하든 원한지 않든 부모가 되었을 때 아이가 주는 기쁨과 함께 아이에게 얽매였다는 생각을 갖는다. 내가 아닌 아이가 우선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리암과 폴이 루이즈 덕분에 직장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자유를 누리는 것을 잘못이라 할 수는 없다.
“미리암은 루이즈와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머리에 스쳐가는 어떤 생각, 잔인하지는 않지만 부끄러운 그런 생각을 엠마에게 절대 털어놓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서로가 서로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때에만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우리 자신만의 삶, 우리 자신에게 속한 삶, 다른 이들과 상관없는 삶을 살 수 있을 때, 우리가 자유로울 때에만.” (53쪽)
“그가 원하는 건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게 전부였다. 자유롭고 싶은 것, 좀 더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었다. 조금밖에 살아보지 못했는데 너무 늦게야 그걸 깨달은 것이었다. 아버지라는 옷은 그에게 너무 크고도 침침해 보였다.” (154쪽)
소설에서는 세 인물의 내면 묘사가 탁월하다. 가정과 일, 엄마와 변호사 사이에서 갈등하고 루이즈를 두고 남편과 의견 차이를 두는 미리암, 뮤지션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며 욕망을 채우는 폴의 솔직함 심리가 적극적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둘에 비해 루이즈는 모호한 인물로 설정한다. 물론 그녀가 살아온 삶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남편은 죽었고 딸은 가출을 했으며 갚아야 할 빚이 있다. 미리암의 아파트 주변 사람들이나 놀이터에서 만나는 보모들과는 거리는 두며 가면을 쓴 것처럼 사람들을 대하며 속내를 감춘다. 마치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키는 듯하다.
“고독 속에서 그녀는 사람들을 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진짜로 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그 어느 때보다 구체적으로 다가와, 진동이 느껴지고 손에 만져졌다.” (128쪽)
철저하게 혼자였던 루이즈에게 미리암과 폴의 가족은 마지막 비상구처럼 여겨졌던 것일까. 그들 가족과 함께 휴가를 다녀온 후 루이즈는 자신과 그들의 삶을 동일하게 여긴다. 미리암과 폴의 세계로 점점 파고든다는 것을 느낀 미리암과 폴는 부담스럽다. 아이들은 예전처럼 손이 많이 가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파고드는 루이즈의 집착이 두렵다. 침해를 당한 것 같은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다.
“루이즈는 그들의 집 열쇠를 가지고 있고,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들의 삶 속에 너무 깊이 박혀 있어서 이제 밖으로 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들이 그녀를 밀어내도 그녀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작별 인사를 해도 그녀는 문을 두드려대고 안으로 들어올 것이며, 상처받은 연인처럼 위험할 것이다.” (228쪽)
“루이즈는 늘 똑같은 그 둥근 칼라에 너무 긴 치마를 입고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착각하고 낯선 세상에 와 있는, 영원히 떠돌아야 할 운명을 선고받은 인물 같아 보인다.” (279쪽)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믿은 루이즈는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루이즈를 발견하지만 모르는 척 외면한다. 그녀의 눈에 비친 루이즈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아니, 그 모습이 루이즈의 진짜였을지도 모른다. 소설에서 루이즈를 정확하게 아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미리암의 아파트 주민도 과거 그녀를 안다고 믿었던 이들도, 아이를 맡겼던 부모도.
누군가를 안다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두려운 생각이 밀려온다. 전부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내가 안다고 믿는 것만큼의 확신이 사라질 것 같다. 반대로 누군가는 나를 얼마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할까. 자신할 수 없는 문제다. 내가 당신을 안다는 것과 당신이 나를 안다는 것, 그 사이의 괴리감이 얼마나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