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그래도 좀 걸었다. 내 기준의 걷기로 제법 걸었다. 목 디스크로 언니가 입원한 6월까지도 말이다. 그런데 더위가 몰려오고 비가 오기 시작하니 점점 꾀가 났다. 징검다리처럼 걷다가 결국엔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신발을 신는 현관까지 나가지를 못했다. 나갔다 하더라도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도는 게 아니라 잠깐 바람만 쐬다가 들어오고 말았다. 그리고 가을이 되었다. 걷는 즐거움을 그리워하는 계절이 되었다. 적당한 바람과 적당한 햇빛이 나를 유혹하는 계절. 장석주의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을 읽으면서 천천히 걷고 싶어졌다. 아주 천천히 걷다가, 앉을 만한 곳이 있으면 그냥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고 싶어졌다.

 

 걷기의 즐거움은 풍부한 감각적 경험을 낳는다는 데서 비롯한다. 나는 풍경을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며 걷는다. 걷기는 저 바깥에서 내 안으로 전달되는 소리와 냄새와 시각적 자국들을 바탕으로 한 사유와 상상력의 촉매제다. 걷기에 몰입하는 사람은 시공간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열어젖힌 채 세상의 풍경들을 제 안으로 받아들인다. 걷기는 이것들을 모아 스스로를 빚는 성분으로 삼는 것이다. 또한 걷기는 관능적 기쁨을 되살리고, 건강에 보탬이 될 뿐만 아니라 나를 오롯이 나 자신에게로 되돌리는 수단이다. (233쪽)

 

 장석주가 들려주는 그의 삶은 단순하고 평안한다.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사는 자유로움 같은 게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의 삶에 정착할 때까지 그 과정은 단순하고 평온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의 평정과 고요가 찾아오기까지 수많은 파도가 일렁이며 천둥과 번개가 내리쳤을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달래려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는 장석주의 그 어느 시절처럼, 출판사를 접고 시골로 내려와 살기로 한 결정한 그 시절의 마음을 나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 힘든 시기를 견뎌냈기에 이렇게 편안하고 빛나는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그가 시인이라서가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건 특별하지 않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미 겪어온 그 계절의 변화를 마주할 때마다 놀랍고 감격스럽다. 그러니 봄이 되면 어김없이 모란과 작약의 황홀함에 빠져들고 여름의 건강한 초록에 반하는 것이다. 이건 내가 시골에 살아서 잘 안다. 장석주의 글에는 자연, 걷기, 글쓰기, 책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것이 그를 이루고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루에 여덟 시간씩 글을 쓰는 일. 한눈을 팔지 않고 오롯하게 그것을 해내는 일. 누군가는 그게 직업이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해야 할 일을 다 끝내고 한 손에 책을 들고 숲을 걷는 장석주의 삶은 그에게 최고다. 문득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의 나이만큼 먹었을 때 나는 그처럼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걷고, 읽고, 사랑하고, 쓰고 단순하게 사는 삶. 복잡하지 않고 여유가 있는 삶.

 

 장석주의 시골 생활과 서재는 이미 잘 알려졌다. 그러나 나는 그가 그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는 건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아들은 유유자적 책을 읽고 어머니는 갖가지 채소를 심었다. 어머니가 지어주신 밥과 된장찌개를 먹는 단순한 일상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그리움이 되었다.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일상의 적막함이라니. 농담처럼 결국엔 다 혼자라고 말하지만 정작 혼자가 되었을 때 우리는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미 책에서 배웠다 하더라도, 안다고 생각해도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 그것이 인생이다.

 

 단 일 회의 편도여행, 그것이 인생이다. 지도 없이 떠난 편도여행에서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을 헤매고, 구렁텅이에 빠져 벗어나려고 고단하게 허우적이며 안간힘을 쓰는 사람도 어딘가에는 있는 법이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절경을 만나 뜻밖에 횡재한 기분인 적도 있었다. 인생이라는 편도여행은 우연과 불운들, 기이한 행운과 엇갈림의 연속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 편도여행은 떠난 뒤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시 돌아올 수 없음, 그 불가피성으로 이 여행은 슬픔과 아쉬움, 그리고 덧없음과 감미로움이라는 긴 여운을 남긴다. (119~120쪽)

 

 인생의 오후를 가장 빛나게 살고 있기에 아름다운 것일까. 문장을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휴식을 얻는다. 이처럼 편안한 시인의 산문집을 읽다 보면 저절로 떠오르는 책이 있는데 바로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이다. 아마 나 아닌 누군가도 같은 생각이 아닐까 싶다. 시인의 일상과 사유, 그리고 자연을 노래한 점에서 정말 닮았다. 눈에 보이는 자연, 피부에 닿는 계절,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그대로의 기록이다.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글을 읽는 우리는 이미 잘 안다.

 

 노란 은행잎을 주워 담으며 알록달록 단풍을 즐기는 사이 ‘가을이 되었다’는 말은 곧 과거가 될 것이다.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자주 깨던 지난여름이 그러하듯. 우리는 그 계절을 그리워한다. 지겨워하고 그리워한다. 겨울이 시작되는 날, 이런 문장을 다시 읽으리라.

 

 겨울 아침의 서리 사이로 반갑기 그지없는 소문이 들려온다. 미美는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그걸 직감하는 게 평생, 계절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회고 기쁨이다. 우리가 그런 욕구를 느끼는 건 우리 외부의 것들 때문이 아니다. 질문들과 그 답을 얻으려는 노력은 우리 내부에서 나온다. (중략) 햇살은 언 풀잎들에 고루 닿고, 일방적인 광경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특별한 광경으로 불타오른다. 아직 똑바로 선 잡초들은 순간적으로 얼음과 빛의 셔츠를 입고 마법의 지팡이가 된다. 이 첫 빛은 작은 연못과 소나무 숲의 기회도 놓치지 않는다. 이제 은빛은 그만, 분홍을 보라. 더할 나위 없는 은은한 연초록의 분출을 보라. 오직 이 시간만이, 늘 새롭고 신선한 새벽만이 연출할 수 있는 광경이다. (『완벽한 날들』,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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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7-10-19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지금도 나름 <완벽한 날들>로 살고 있는걸지도 몰라요.. 그저 조금 더 나아진 모습으로 나이들길 바라는게지요^^

자목련 2017-10-20 15:34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 그게 가장 완벽한 게 아닐까 싶어요.

2017-10-19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20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