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 스위치가 고장 났다. 미리 신호를 보낸 건 아니다. 아니 내가 그 신호를 알아채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제멋대로 불이 켜지고 리모컨은 먹통이 되었다. 건전지를 새것으로 바꾸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관리사무소 직원이 다녀갔다. 리모컨이 아닌 일반 스위치로 교체했다. 낮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잠들기 직전이 가장 불편하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 바로 리모컨으로 불을 끌 수 없으니 일어나서 벽까지 걸어가서 불을 끄고 돌아와야 한다. 다시 불을 켜야 할 일이 생기면 다시 어둠을 헤엄쳐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벽까지 걸어간다. 그동안 편하게 지냈던 것.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만 아직은 그 과정에 있다.

 

 잠이 오지 않아 다시 불을 켤까 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생겼다. 존재하지 않았던 순간이다. 짧거나 조금 긴 시간, 나는 어둠에 스며든다. 휴대전화로 시각을 확인하고 불빛이 사라진 후 혼자 깨어있다는 생각과 함께 묘한 감정이 발생한다. 가만히 누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둠과 친해진 시간을 만난다. 그런 밤이 계속되면 조금은 외로울 것 같다. 그런 밤이 깊어지면 적막과 슬픔을 느낄 것 같다. 그런 밤을 상상한다. 쓸쓸하면서도 오묘한 밤을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밤은 무조건 무섭기만 했다. 부모님이 외출을 하셔서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집 밖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 것도 정말 무서웠다. 빨리 잠들기 바랐던 시절이다. 내일이 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학창시절, 연애시절에는 영원한 밤을 꿈꾸기도 했다. 이 밤이 사라진다는 게 아쉬워서, 낮보다 아름다운 밤의 끄트머리를 꼭 잡고 싶었다. 잠들고 싶어도 잠들지 못하는 밤은 괴롭다. 이런저런 이유로 잠과 멀어지는 밤. 이상하게도 그런 밤에는 책도 들어오지 않는다. 혼자 밤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혼자가 익숙한 이라도 밤은 묘하게 다가온다. 밤은 감정이 자라는 시간이며 공간이다. ​혼자 있어도 괜찮던 낮과 다르게 많은 생각이 몰려온다. 그 밤을 누군가의 곁에서 함께 보낼 수 있다면 어떨까.

 

 ‘밤을 견뎌내는 일, 누군가와 함께 따뜻한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말하는 거예요. 나란히 누워 밤을 보내는 걸요. 밤이 가장 힘들잖아요. 그렇죠?’ (9쪽)

 

 『축복』의 작가 켄트 하루프의 유작인 『밤에 우리 영혼은』을 읽노라면 노란 빛이 퍼지는 밤을 상상하게 된다. 각자 아내와 남편을 잃은 두 노인이 함께 나누는 밤.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루를 보내고 싶은 마음. 남편과 사별한 애디가 이웃집 노인 루이스를 찾아가 밤을 함께 보내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밤을 함께 보내는 일이다. 어떤 관계를 시작하자는 게 아니라, 침대에 나란히 누워 밤을 보내는 일이다. 밤이 가장 힘들지 않냐는 애디의 말에 루이스는 잠옷과 칫솔을 가지고 밤마다 이웃집으로 온다. 서툴게 서로의 하루를 이야기하는 애디와 루이스. 처음에는 할 말이 없었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한다. 지나온 삶에 대한 깊은 슬픔, 단단하게 묶여진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놓으며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위로한다. 힘든 밤은 사라지고 충만한 밤이 시작된 것이다. 혼자가 아닌 둘이 맞이하는 밤이 겹쳐질수록 외로움이 사라진 자리에 기쁨이 채워진다.

 

 ‘여기 깃든 우정이 좋아요. 함께하는 시간이 좋고요. 밤의 어둠속에서 이렇게 함께 있는 것.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잠이 깼을 때 당신이 내 옆에서 숨 쉬는 소리를 듣는 것.’ (102쪽)

 

 그저 어제와 오늘로 반복하던 하루가 특별한 하루가 되는 것이다. 내 목소리를 듣고 내 목소리에 답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삶을 충만해진다. 그리고 둘 사이에 애디의 손자가 합류한다.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집에 온 상처받은 어린 손자는 자연스럽게 애디와 루이스의 삶에 기쁨을 안겨준다. 손자를 차에 태우고 캠핑을 가고 개를 만나러 가고 둘에서 셋으로 즐거움이 확장된다. 그러나 애디와 루이스의 생각과 행동을 모두 만족하는 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자녀들은 불쾌함을 토로한다. 손자를 맡긴 애디의 아들이 가장 크게 화를 냈고 결국 둘은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만다.

 

 어쩌면 애디와 루이스의 남은 생은 외로운 밤만 계속되는 건 아닐까. 환하게 빛나는 낮과 같았던 날들은 지나갔고 길고 긴 밤만이 지속되는 생. 그 밤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저무는 삶은 다른 형태로 변화할 수 있다. 애디와 루이스는 원하는 대로 능동적으로 살려고 방향을 바꿨지만 자녀들로 인해 수동적인 삶으로 복귀했다. 누구나 늙고 혼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애디와 루이스의 우정은 얼마나 고위한가. 사는 게 뭐라고, 당당하게 즐기며 살자고 말하는 사노 요코의 삶과 다르지 않다.

 

 내게는 지금 그 어떤 의무도 없다. 아들은 다 컸고 엄마도 2년 전에 죽었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죽지 못할 정도로 일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남은 날이 2년이라는 말을 듣자 십수 년 동안 나를 괴롭힌 우울증이 거의 사라졌다. 인간은 신기하다. 인생이 갑자기 알차게 변했다. 매일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유의 획득이나 다름없다.’ (243쪽)

 

 유방암에 걸렸다고 당장 식생활을 바꾸거나 의기소침하는 게 아니라 담배를 피우고 남들 시선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한국 드라마를 열렬히 시청하고 한국을 방문하며  DVD를 모은다. 사는 게 뭐라고 남들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할까. 사는 게 뭐라고 말이다. 그들이 나의 삶을 사는 게 아닌데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인데. 사는 게 별거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무하는 게 아니라 진짜 사는 게 별거 아니니 즐겁게 신나게 살기를, 그것이 사오 요코의 인생철학인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사는 것, 참으로 멋진 인생이다.

 

 우리의 생은 점점 낮이 아닌 밤으로 채워진다. 낮보다 아름다운 밤을 위한 삶을 기대할 수 있다면 밤은 두렵지 않다.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밤. 그런 찬란한 밤에 우리 영혼은, 모든 것을 감싸는 웅장한 힘을 발휘한다. 당신과 연결되는 밤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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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6-28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가 오려나봐요. 날씨가 덥네요.
자목련님 시원하고 기분좋은 하루 되세요.^^

자목련 2017-06-29 11:49   좋아요 1 | URL
매일 비를 기다려요. ㅎ
서니데이 님도 청량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