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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울 것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이상하게 뒤늦게 끌리는 작가가 있다. 주변에서 좋다고 추천해도 이유 없이 미루고 있던 작가의 글 말이다. 그러니까 작가와의 만남에도 타이밍이 있는 것이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어떤 작가는 소설보다는 산문이 더 매력적이고 어떤 작가는 소설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둘 다 너무 좋은 작가도 있다. 개인적인 취향이고 개인적인 의견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언제나 부럽다. 문장에서 뿜어 나오는 당당함과 마주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임경선의 『자유로울 것』에서는 그런 당당함이 전해졌다. 자신감과는 다른 그 무엇 말이다. 저자의 개인적인 일상과 더불어 생각을 자연스럽게 써 내려간 책이지만 『태도에 관하여』과는 같은 듯 다른 책이다. 글을 쓰며 사는 일, 삶을 사랑하는 일, 건강, 가족, 친구, 행복, 가치에 대한 주제로 쓴 글들이다. 쉽고 간결하고 지루하지 않으며 힘이 있다.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에 여러 나라에서 살았던 이력과 갑상선암으로 다섯 번이나 수술했고 여전히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야 하는 점을 제외하면 보통의 40대 여자의 삶이다. 그러나 뭔가 다르다. 20대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 담배를 배우고 끊게 된 계기, 작가로서 독자와의 관계,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방법,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글, 평범하면서도 특별하다. 솔직한 글, 담백한 글, 그리고 감정이 있는 글이다. 그러니까 이제 알겠다. 내가 끌리는 건 바로 감정이 있는 글이다. 선명하고도 명확하게 기준을 잡은 삶을 지향하며 자신이 사랑하며 잘 하는 걸 아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관계에 대한 이런 부분이 참 좋았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과 맺은 관계는 어느 시점에서는 끊어지고 어느 시점에서는 다시 회복되고 어느 시점에서는 추억이란 이름으로 저장된다.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라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힘든 건 지난 일에 대한 후회나 그리움에서 시작되는 게 경우가 많다. 한때 잘 나갔다는 이유로, 한때 그 사랑을 몹시 사랑했다는 이유로, 나이가 들면서는 지나간 젊음에 대한 미련으로 아프다. 과거가 존재했기에 현재가 있는 건 맞지만 과거에서만 살려는 건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사람들은 내 인생 속으로 들어왔다가 또 나간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아끼고 좋아하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이라고는 나와 마음이 맞을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데려다 놓는 것 정도다. 번지수 틀린 곳에서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면서까지 인간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다.’ (「친구가 별로 없어서 좋다」, 121쪽)
글을 쓰며 사는 삶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내가 좋아하는 줌파 라히리에 대한 애정(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사랑한다면서 줌파 라히리의 글에는 투명하면서도 우아한 슬픔이 있다고 말하는)의 글은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아 괜히 우쭐했다. 아직 읽지 못한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빨리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작가의 하루는 과연 어떨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글쓰기를 위해 준비하는 게 있다면 무엇이며 하루에 얼마나 글을 쓰는 것일까, 주부이자 엄마로 육아를 병행하며 원고를 쓰기 위해 최적화된 카페를 찾고 쓰기에 집중하며 최선을 다해 작업하는 모습에서는 글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전해졌다.
‘지금의 나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라고 단정 짓던 그 수준을 스스로의 힘으로 뛰어넘어야 한다.’ (「퍼스널 트레이닝에서 배운 것」, 259쪽)
문득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글로 쓰며 사는 삶, 진정한 자유를 즐기고 누리는 사람, 그런 삶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걸 아는 사람. 그리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 눈부신 열정을 전염시키는 에세이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