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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
최정화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11월
평점 :
‘무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때문에 움직이지’라는 문장이 마음에 걸렸다. 그 대부분의 사람들에 자신이 속한다고 생각하니까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그건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돈으로 움직일 수 엇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사는 수밖에 없었다.’ (196쪽)
능동적인 삶과 수동적인 삶의 차이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삶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삶의 주인이 누구냐는 묻는 자체는 우습지 않은가. 저마다의 삶은 주인은 바로 자신이니까. 최정화의 『없는 사람』을 읽고 우리는 모두 능동적인 삶과 수동적인 삶의 경계에 서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없다. 막연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까.
소설은 ‘도트’라는 인물을 감시하며 그의 행적을 이부에게 보고하는 무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트는 누구이며, 그를 감사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누가 그를 감시하라고 지시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단순하게 무오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 이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신에게 말을 걸고 지켜봐 주며 돈까지 벌게 해주는 이부가 무오는 가족 같았다. 일은 아주 쉽게 여겨졌다. 도트, 그러니까 점을 따라다니는 일은 어렵지 않았고 도트란 인물에게 궁금한 게 없었다. 처음에 무오에게 도트는 하나의 점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점점 무오에게 주어진 일은 커졌고 도트는 점이 아닌 선이 되어가고 있었다.
무오는 이부에게 질문하고 싶은 게 생겼다. 파업 현장에서 노동자의 지도자인 도트가 선창하는 구호를 외치면 외칠수록 도트를 향한 다른 마음이 자라기 시작했다. 시위 진압에 대한 정보를 주고 대비하라고 말하고 싶었고 자리를 이탈하며 갈등하는 도트에게 자신의 역할을 잊지 말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사측에서 고용한 용역이었던 무오는 노동자의 자리에서 그들처럼 살고 싶었던 것이다. 도트의 목소리는 무오의 가슴을 깊게 파고들었다. 함께 파업을 하는 노동자가 되고 싶었다.
‘진짜가 되고 싶다. 그게 무오의 진심이었다. 농성장의 이들에게 신의를 지키고 싶은 것이, 지부장을 일깨워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상황이 바뀔 거라고 믿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가 되고 싶었다. 진짜로 이들 중 하나가 되는 것. 이들과 다르지 않은 농성대원이 되는 것. 여기에 속하는 것. 온전히 속하는 것. 이들과 다른 점 없이 섞이는 것. 그것을 원했다.’ (203~204쪽)
무오는 덩그러니 혼자의 삶이 아닌 우리가 되는 삶을 살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들로 인해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삶, 능동적으로 살고 있다는 확신 같은 거 말이다. 돈 때문에 사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을 간절하게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도트, 이부, 그리고 농성장의 노동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릴 수 있는 현장이 많다는 건 아프고 아픈 일이다.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게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소설은 우리 사회의 노동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고발한다. 그러나 결국 그 안에서 만나는 건 개인의 고통이었고 불안한 삶이었다. 불안을 껴안으면서 나로 존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들. 같은 세상을 사는 우리는 소망한다. 수많은 도트가 멈추지 않고 이동하고 있기를 바란다. 점에서 선으로 그리고 면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있는 사람으로 존재하기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람은 존재하기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