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6일에 첫눈이 내렸다. 이곳이 아닌 그곳에 머물렀을 때 만난 눈이다. 사진은 눈이 내릴 당시 놀이터의 모습이다. 제대로 찍지 못했지만 내가 찍고 싶었던 건 눈이 아니라 노란 모과였기에 만족하는 사진이다. 첫눈이 내리고 며칠 뒤에 모과는 한 알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마도 경비 아저씨가 모두 딴 것 같다.
첫눈이 내릴 당시 나는 첫눈이 오고 있다는 걸 두 명에게 전했다. 한 명은 김장을 담그는 사진을 보내왔고, 다른 한 명은 늦은 시각에 촛불시위에 다녀왔노라고 말했다. 첫눈을 맞으며 김장을 담근 친구, 첫눈이 아닌 비를 맞으며 촛불을 들고 있었을 언니. 그리고 첫눈은 녹아버렸다.

지난 목요일에 이곳으로 돌아오니 복도의 창문공사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공사라는 말은 거창하다. 뚫려있던 부분이 막히니 답답하면서도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예전처럼 난간에 고개를 내밀고 밖을 바라보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비가 오거나 많은 눈이 내리면 미끄럽고 얇게 얼음이 얼었던 복도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12월은 김치냉장고를 가득 채운 김장과 함께 풍요로움으로 시작한다. 귤이나 사과 같은 과일이 식탁 위에 자주 잠을 자고 사은품으로 달력을 준다는 온라인 서점의 광고 메일을 받는다. 예쁜 탁상 달력과 함께 온 책은 아니지만 12월에는 이런 책이 함께 있다. 괜히 기분이 맑아지는 정용준의『선릉 산책』, 50명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정세랑의『피프티 피플』, 제목처럼 괜찮은 사람이란 누구일까, 궁금해지는 강화길의『괜찮은 사람』, 겨울에 만나는 윌리엄 트레버의 『여름의 끝』, 아직 도착하지 않은 황정은의 『아무도 아닌』이 나의 12월을 채운다.

내년을 말하기가 겁난다. 어떤 변화를 기대해도 괜찮을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는 소식, 기대해도 좋다는 답을 들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