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한창훈 지음, 한단하 그림 / 한겨레출판 / 201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는 불행한 나라일까? 그렇다면 한창훈의 이야기는 불행한 나라에 관한 것일까. 아니면 모두가 행복해서 정작 그 단어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일까. 책을 읽기도 전에 나는 행복과 불행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타인과 비교하면서 불행이 싹텄을지도 모른다고 결론을 내렸다. 혼자만 사는 세상이라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도 않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살아갈 테니까. 그러나 우리가 사는 사회는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아야 한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할 수 있는 다섯 편의 짧은 연작을 읽으면서 나는 마음이 뜨거워졌다. 군사 목적으로 존재했던 섬에 병사들은 모두 떠나고 측량사만 남는다. 풍랑으로 섬에 들어온 사람, 구조선을 타지 않고 남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그 나라로 간 사람들」는 태초의 삶이 시작된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란 법만 존재할 뿐 바다가 보여주는 대로 자연에 순응하며 함께 살아간다. 나와 너의 분리와 경계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행복이란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화산 폭발로 섬을 떠나 본토에서 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육지에서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은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한다.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는 왜 휴일에도 쉬지 않느냐고 묻자 섬사람들은 충분히 쉬는 것이라 말한다. 화산활동이 끝나고 사람들은 섬으로 돌아가고 일부는 남는다. 육지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한 쿠니는 헤어지고 혼자가 된다. 어느 날 공원에서 노인의 말을 들어주다 ‘이야기 들어주는 집’을 운영하다. 많은 사람들의 쿠니를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들을 상대하면서 쿠니는 소중한 것을 알게 된다.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만 들어주기를 바라는 일방적인 모습, 상대의 목소리는 무시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 소통을 거부하는 단절된 사회에서 행해지는 정치는 올바른 것일까.

 

 “당신과 가까워지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진정으로 가까워지려면 서로 번갈아 이야기하고 관심 깊게 들어야 한다는 거, 듣는 것도 마치 말하는 것 같아야 한다는 걸요.”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 66쪽

 

 쿠니의 이야기가 단절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그 아이」는 규칙과 규율이라는 틀에 갇혀 지내는 아이들의 현주소를 말한다. 피아노를 사랑하는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표현하기를 원하지만 어른들이 원하는 건 무조건 1등을 위한 기술뿐이다. 진정 무엇이 중요한지를 놓치고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이라 서글프다. 섬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시 그곳으로」도 마찬가지다. 바다를 가장 잘 아는 섬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고 선장이라는 사람의 명령에 따르기를 강요한다. 선장은 독재자를 대신한 말로 그것이 주는 공포와 폭력이 얼마나 잔인한지 보여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떠한가. 금수저, 흙수저 란 말로 신분을 따지고 빈부의 격차가 커지며 공감은 사라지는 사회로 전락하고 있지 않은가. 정말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란 한 하나의 법으로 살아가는 섬나라 사람들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한창훈이 바라고 꿈꾸는 좋은 세상을 우리는 만들 수 있을까.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해서 잘 사는 게 아니라 개인의 기쁨이 넘치고 웃음이 피어나는 나라 말이다. 타인의 불행으로 행복을 확인하지 않고 행복이란 말이 없어도 내일이 기다려지는 나라, 그런 나라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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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6-09-23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적인 나라까진 바라지도 않아요 ㅜ.ㅜ

자목련 2016-09-23 18:03   좋아요 0 | URL
상식이 통하는 그런 나라도 넘 멀리 있는 걸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