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뚱이를 갖고 스스로 울기 시작하면서 나는 괴로워졌다. 내 손으로 밥을 집어먹고 내 입으로 말을 하게 되면서 나는 고통스러워졌다. 추운 걸 알게 되고 배고픈 걸 알게 되고 맞으면 아프다는 걸, 원망하고 미워하고 분노하는 걸 알게 되었다. 원망. 미움. 고통. 괴로움. 공포. 분노. 나는 그 글자의 의미를 다 안다. 아니까 기억한다. 그 느낌. 뽀족한 바늘로 내 몸에 하나하나 새겨 넣던 그 감정들.’ (206쪽)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슬픔을 지닌다. 존재에 대한 이유를 몰라서 슬프고 존재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해 슬프다. 무엇이 나를 존재하게 만들었는지 누군가에게 따지고 묻고 싶을 뿐이다. 왜 태어나서 이런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 끊임없는 질문은 정체성을 찾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작은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설사,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더라도. 모든 존재는 고귀하며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될 때 성장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영악하게 재빨리 그것을 알아차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길고 긴 성장통을 앓기도 한다. 자존감 회복을 위해 일생을 몸부림치기도 한다.

 

 ‘이년’, ‘저년’, ‘언나’, ‘간나’로 불리던 소녀는 알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가짜 아빠에게 맞고 집을 나가는 가짜 엄마가 아닌 진짜 엄마를 찾으면 알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이가 집을 나갔다 돌아오지 않아도 찾지 않는 부모, 자신의 슬픔과 분노에 갇혀 아이를 볼 수 없던 부모가 아닌 다른 부모가 필요했다. 그런 상상으로 불안을 걷어가려 애쓰고 있었다. 당돌한 이 소녀는 자신이 만날 세상이 핑크빛이 아니라는 걸 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의 구멍을 찢고 바깥으로 나왔던 그때 그 순간, 나는 이미 끝을 경험했는데.’(19쪽)

 

 소녀와의 동행이 길어질수록 나는 소녀가 끝이 아닌 시작과 만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하게 따뜻한 누군가와의 도움이 아니었고 행복도 아니었다. 세상이 행복한 곳이라고 나는 소녀에게 말해줄 수 없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어떻게 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는지 알게 된 소녀는 더욱 당돌하고 사납고 거칠게 굴었다. 행복이라는 순간은 짧고 긴 불행이 찾아오는 걸 몸으로 익혔다. 그러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로 인해 살만한 곳이라고 말해주고 싶기는 했다. 그것은 황금다방의 장미 언니처럼 자신의 처지에서 시작된 연민이며 태백식당 할머니의 애틋한 사랑이었고 폐가에서 만난 남자의 침묵과 진짜 엄마를 찾아주겠다던 과격한 각설이패의 단순함과 자신을 동등하게 대하던 가출 소녀 유미와 나리의 시비 같은 것이었다. 소녀를 알아본 이들은 모두 소녀처럼 불행을 안고 살아간다. 정착할 곳이 없어 떠돌며 결핍으로 채워진 삶을 사는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소녀의 존재를 인식했기에 이름을 물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불리는 이름이 있으므로.

 

 세상의 모든 가짜를 불태워버리면 진짜로 가득한 세상이 될 거라고 믿었던 어린 소녀는 이제 없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해야 할 이유는 사라졌다. 어린아이에서 소녀로 엄마가 될 수 있는 몸으로 성장하는 동안 진짜 세상의 민낯을 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가면으로 가득한 잔혹한 세상의 단면을 말이다. 어떤 이유로 세상은 모두 가짜였고 어떤 이유로 세상은 모두 진짜였다.

 

 ‘거리를 떠돌며 내가 정했던 진짜엄마의 조건은 모두 껍데기고 포장이며 환상이고 거짓말이다. 나의 진짜엄마는 어떤 얼굴이라도 가질 수 있으며 그래서 결국, 어떤 얼굴이라도 상관없는 그런 사람이다. 맞는 대신 때리는 자이고 때리는 게 번거로우면 죽여 없앨 수도 있다. 그 모든 게 귀찮을 땐 외면한다. 상관없는 척한다. 그뿐이다. 오직 중요한 건 자신의 생존이다. 불행이나 행복 따위엔 관심도 없다. 이제야 알겠다. 그런 사람을 찾기는 너무 쉽고, 너무 쉽기 때문에 나는 여태 못 찾고 있었다. 너무 흔하니까, 어디에나 있으니까. 거울을 보면, 그 속에도 있다.’(274쪽)

 

 그런데 정말 소녀는 이름이 없었을까. 소녀가 진정으로 바랐던 이름은 기차 소리를 닮은 ‘드드덕’이었을까.  당찬 얼굴로 나를 쏫아볼 것만 같은 소녀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다. 너의 존재를 나는 알고 있다고. 너를 만나 반가웠고 나는 너를 기억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묻고 싶다. 존재하는 고통과 분노와 슬픔이 조금은 사라졌냐고. 아마도 소녀는 미친 소리라고 말하겠지. 그래도 한 번쯤 피식 웃어줄지 누가 알겠는가.

 

 김사과의 단편소설 『02』속 영이, 오정희의 장편소설 『새』속 우미를 떠올린다. 그러나 존재하지만 부재하는 소녀의 지독한 성장기라 할 수 있는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은 비단 한 소녀의 성장소설이 아닌 모두의 성장소설이다. 왜냐하면 소설 속 소녀를 보았지만 못 본 척했고 알지만 모른 척 지나쳤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타인의 삶에 관여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아니, 멈춤 없이 성장하는 소설이 맞겠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소녀와 소년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스쳐가지 않게 먼저 인사를 건네도 눈을 마주할 소녀와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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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6-09-21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재에 대한 이유를 몰라서 슬프고 존재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해 슬프다.
무엇이 나를 존재하게 만들었는지 누군가에게 따지고 묻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