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돌이켜보면 손편지를 가장 많이 썼던 시절은 십 대였다. 좋아했던 남학생과 주고받은 편지엔 뭔가 잘 보이고 싶은 글들로 가득했다. 지금처럼 쉽게 목소리를 들을 수 없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편지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었다. 흔히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말하는 고교시절엔 수업 시간에 쪽지를 많이 건넸다. 뭐가 그렇게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지 수없이 많은 쪽지와 손편지를 썼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그 시절 친구가 있었기에 행복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손편지를 받는 즐거움을 잊은지 오래다. 빠르고 쉽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세상에 이오덕과 권정생이 30년 동안 서로에게 쓴 편지를 엮은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은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사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친구가 되었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구나 자주 만날 수 없는 사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것은 나만의 편견이었다. 1973년 1월 18일 이오덕은 권정생을 찾아가 만났다. 서른일곱 권정생과 마흔아홉의 이오덕의 12살 나이 차이를 뛰어넘은 우정은 웅숭깊은 것이었다. 이런 우정이 가능하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아동 문학이라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서로가 서로에게 문학적 동지가 된 두 분의 편지를 읽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부분이 많다. 항상 아픈 몸으로 혼자 지내는 권정생의 생활을 세세히 살피는 이오덕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권정생에게 이오덕은 스승이자 피를 나눈 형제 그 이상이었다. 권정생을 만난 후 그의 문학을 많은 이가 읽을 수 있도록 신문사와 출판사와 연락을 취하고 출판과 인세를 비롯한 모든 일을 도맡는다. 혹시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약을 먹지 못할까 걱정하고 책에 대한 열정으로 건강을 해칠까 몹시 염려한다.

 

 ‘도시에 가 봐야 무엇 볼 것이 있습니까. 저가 여기 있는 동안이라도 같이 와서 살았으면 합니다. 방은 마을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습니다. 잘 생각해 봐 주세요. (…) 저에게 부담이 될 것을 염려해서 이곳 오실 것을 주저하시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생활이 얼마나 들겠습니까. 저도 역시 그런 생활입니다. 단지 교회가 없어 안 된다면 어찌할 수 없겠습니다. 그리고 연탄이 아니고 나무를 때고, 하지만 전기가 있으니 편리한 점도 있지요.’ (1976년 3월 15일 이오덕의 편지 중에서, 130쪽)

 

 ‘약을 계속해서 잡수셔야 할 터인데 걱정입니다. 어디 돈을 빌려서라도 약을 잡수시면 제가 가서 갚겠습니다. 그렇게 쇠약하신데도 책을 읽고 싶어 하시니,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게 반성됩니다. 일본서 절판되었다는 책은 선집이 저한테 있으니 다음 갈 때 가져가겠습니다. 독서도 너무 무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979년 11월 19일 이오덕의 편지 중에서, 198쪽)

 

 나보다 더 나를 생각해주는 이가 있다는 건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나의 모든 걸 맡기고 의논하면 의지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있다는 건 매우 행복한 삶이자 성공한 삶이다. 이오덕과 권정생의 편지를 읽다 보면 사랑받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다. 과중한 업무로 항상 바빠 찾아가지 못해 미안해하는 이오덕의 편지에 권정생의 답장은 마치 연인의 고백과도 같다. 한 번의 만남을 위해 약속을 정하고 변경된 일정을 알리는 일도 모두 편지로 가능했던 시절이기에 이오덕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권정생의 배려가 담겼다.

 

 ‘기다리지 않아도 올 것은 오고 마니까 사람들은 바보입니다. 하루도 기다리지 않고는 못 배기니까요. 선생님은 찾아오지 않아도 항상 제 곁에 계신답니다.’ (1974년 8월 23일 권정생의 편지 중에서, 76쪽)

 

 이오덕과 권정생은 새로운 원고가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보여줄 수 있는 존재였다. 기탄없이 서로의 글을 평할 수 있는 상대로 서로의 문학과 한국 아동문학에 대한 의견이 오가는 편지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글을 쓰는 문학을 업으로 삼고 산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난과 전쟁, 그리고 스무 살에 결핵이 걸려 오랜 시간 외롭게 고통받으며 살아온 권정생의 삶이 있었기에 『강아지똥』과 『몽실 언니』를 비롯한 보석 같은 동화가 존재할 수 있었다. 가장 진실된 글이야말로 최고의 글이 아닐까 싶다. 새삼 고맙고 감사하다.

 

 ‘생활에서 도피한다는 것, 저는 찬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생활이 없이 어떻게 글을 씁니까? 제 동화가 무척 어둡다고들 직접 말해 오는 분이 있습니다만, 저는 결코, 제가 겪어 보지 못한 꿈 같은 얘기는 쓸 수가 없습니다. 쓰려고 노력하지도 않겠습니다.’ (1977년 7월 5일 권정생의 편지 중에서, 159쪽)

 

 편지를 쓰는 동안 정신은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한다. 함께 길을 걷다 때로 멈추고 넘어지면서 한 곳을 바라보던 이오덕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권정생이 쓴 편지가 마지막이 되었지만 아마도 그곳에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30년이란 시간 동안 서로를 향한 마음의 크기를 어떻게 수치로 말할 수 있을까. 감히 그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 없다.

 

 ‘선생님 가신 곳은 어떤 곳인지, 거기서도 산길을 걷고 냇물 돌다리를 건너고, 포플러나무가 서 있는 먼지 나는 신작로 길을 걸어 걸어 씩씩하게 살아 주셨으면 합니다.’ (2003년 8월 25일 권정생의 편지 중에서, 369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료탑 2015-05-2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책을 사게 됐어요. 자목련님의 글을 다시 읽으니 읽던 책도 놔두고 어서 빨리 읽고 싶네요

자목련 2015-05-30 09:38   좋아요 0 | URL
한 권의 책을 함께 나누는 기쁨, 책이 주는 즐거움이지요. 치료탑 님, 즐겁게 만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