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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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꿈에 대해 질문하기를 좋아한다. 말 그대로 꿈이니까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침없이 답을 내놓는 이는 매우 적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살아가는 게 대부분의 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설령 자신의 생 전부를 걸고 꿈을 찾아 가고 있다 해도 그는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꿈에 선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것에 대해 흐리터분하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다. 스토너의 생도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짓다가 농업을 위해 대학을 진학한 그가 문학을 사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슬론 교수가 셰익스피어의 글을 통해 자신에게 무슨 질문을 했는지 알지 못했지만 이미 그는 문학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쩌면 인생에 단 한 번 찾아오는 운명적 만남이었을지도 모른다. 수동적인 삶을 살았던 스토너에게 문학은 능동적인 삶으로 전향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삶의 중심엔 문학이 있었고 그것만이 전부가 되었다. 문학에 대해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니다.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친구들이 참전을 선택했을 때에도 스토너는 대학에 남았다.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는 삶이 얼마나 버거운 것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저 문학을 사랑했을 뿐이다. 공부를 계속하며 강의를 맡았고 첫눈에 반한 이디스와 결혼을 했고 사랑하는 딸 그레이스가 태어났다. 안정적인 삼각형 구조를 이룬 그런 완벽한 삶이 시작된 듯 보였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아내와 소통하지 못한 것처럼 스토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학문에 매달렸다.

 

 ‘겉으로는 방의 이미지였지만 사실은 그 자신의 이미지였다. 따라서 그가 서재를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인 셈이었다. 그가 책꽂이를 만들기 위해 낡은 판자들을 사포로 문지르자 표면의 거친 느낌이 사라졌다. 낡은 회색 표면이 조각조각 떨어져나가면서 나무 본래의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더니, 마침내 풍요롭고 순수한 질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이렇게 가구를 수리해서 서재에 배치하는 동안 서서히 모양을 다듬고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그가 질서 있는 모습으로 정리하던 것도, 현실 속에 실현하고 있는 것도 그 자신이었다.’ (143쪽)

 

 그에게 문학은 무한의 존재였다. 때문에 자신 자신이 문학과 완전히 겹쳐 칠 수 있는 순간을 갈망했다. 문학과 하나가 되기 위한 길에 교수의 권위나 출세는 들어올 수 없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옳다고 믿는 자신의 교수법을 고수하고 뒤늦게 만난 캐서린과의 사랑도 포기해야 했다. 스토너의 생에 융통성은 찾을 수 없었다. 이디스와 위태로운 결혼생활을 지속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생에 대해 자신 있게 이의를 제기할 이가 몇이나 될까. 그는 정말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을 뿐이다.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時)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353쪽)

 

 우리는 생에 가장 중요한 건 목적을 위해 소진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은 성공이나 명예 혹은 사랑을 목적이라 여기며 수 천 수 만의 목적이 있다는 걸 모른다. 스토너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 가운데 하나인 문학을 향해 살았다. 그는 죽음을 암시하는 암과 마주했을 때에도 문학을 원했다. 단언컨대 그의 마지막 얼굴은 무척 평안했을 것이다. 자신의 길을 벗어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살아왔다. 쓸쓸하고 고독했지만 충만했다. 때문에 그의 삶은 숭고하고 위대하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시켜주기를 기다렸다. 창밖을 지나는 햇빛이 책장을 비췄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쓰인 글자들을 볼 수 없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392쪽)

 

 모든 생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찬란하고 특별하다. 모든 존재가 그렇듯이 나와 당신의 이야기도 그렇다. 마치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광활한 우주에서 빛을 발하는 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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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4-0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사의 자목련이 너무 이쁘심!

자목련 2015-04-07 11:14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