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봄을 기다리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그러므로 나의 계절은 겨울, 봄, 여름, 가을인 것이다. 2012년은 내게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내게서 파생된 일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었다. 계절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울리는 일들이 많았고 그 핑계로 나는 시원하게 울기도 했다.

 

 

 겨울

 

  큰 언니가 많이 아팠다. 여전히 언니의 삶은 아픈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아프지 않은 삶 보다 많은 것들을 보게 만든다. 내가 그랬듯 언니도 그럴 것이다. 언니의 계절도 겨울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언니는 어제 이사를 했다. 점심을 먹기 전 잠깐 통화를 했는데 집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한다. 흡족함을 너머 충만한 기운이 목소리에 가득한다. 기쁜 일이다. 이 겨울이 끝나기 전에 그 집에 가게 될 것이다. 이 겨울이 아니라 그 겨울에 나는 이 책을 기다렸다. 한국문학과 일상을 다룬 독서 에세이 <치유하는 책읽기>, 부끄럽지만 내가 쓴 책이다. 알만한 사람도 모를 책, 이제서야 이 책과도 이별을 할 수 있다. 겨울이 봄다운 봄의 손을 잡을 무렵 부끄러운 이 책은 세상에 나왔다. 미세한 떨림을 전하기도 전에 봄은 어떤 소식으로 나를 습격했다.

 

 

 봄

 

  그것은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이라 부를 수 없는, 그 이상의 절대적인 슬픔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 것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계절이었다. 다시 그 계절이 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온 몸이 저리고 아플 당신을 생각하니 나는 시간이 두렵다.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한 진리를 위로로 말하지만 시간은 흉터를 기억하게 만든다. 시간은 그런 것이다.  <열두 겹의 자정> 이 있어 견딜 수 있는 밤도 있었다. 당신의 목소리는 여전히 아프다. 곧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의 생일이다. 당신은 또 울음을 삼킬 것이며, 밤을 낮처럼 우두커니 앉아 다시 아침을 맞을 것이다. 수많은 시간이 지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어쩌면 그것이 당신에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당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름

 

  수국으로 시작된 나의 여름은 얼음과 냉면의 시간이었다. 휴직을 한 언니와 함께 보낸 계절이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매일 냉면을 먹고 얼음을 얼렸고 서로의 짜증을 증폭시켰다. 밤은 길었고 올림픽의 열기만이 그 밤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포맷하시겠습니까?>란 말처럼 새로운 포맷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그래도 나는 선풍기, 에어컨 없이 그 계절을 견뎠다. 두 대의 선풍기 중 하나는 베란다에게 긴 휴식을 취했고 다른 하나는 거실과 다른 방에 있었다. 올 겨울에는 에어컨을 구매하자는 매년 반복되는 다짐을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수국을 보러갔을 때 잠깐 바다를 만났을 뿐, 오롯이 바다를 위한 바다에는 가지 못했다.

 

 

  가을

 

  가을의 중심에서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예정된 것으로 어렵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렇다고 쉬운 결정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한 문장이 끝나고 다음 문장을 쓸 수 있도록 마침표를 찍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해준 당신들이 있어 고맙다. 가을은 특별했다. 내가 몹시도 흠모하는 당신을 만나러 길을 떠날 수 있었고 당신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서로의 목소리를 볼 수 있어 좋았다. 그 날에 마주한 하늘과 낯선 거리의 이정표들과 나무들을 기억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매년 가을, 그 날이 되면 또 당신을 추억할 수 있고 이제 나는 그 계절을 사랑할 수 있다. <입술을 건너간 이름>을 마주할 때마다 나즈막히 그대의 이름을 부르고 다시 당신에게로 갈 계획을 세울 것이다.

 

 

 겨울

 

  뚜꺼운 커튼을 장만하는 것으로 겨울을 맞았다. 다양한 이들의 정성을 먹을 수 있는 김장은 익어가고 오빠표 흰 쌀과 현미도 도착했다. 한 겹으로 모자라 두 겹의 양말을 신는 날도 있고 목에는 스카프가 사라지지 않는 날들이다. 빨간 머그에 커피를 마시고 반가운 지인의 손편지에 놀라는 날들이다. 이 계절은 얼마나 지난한 시간이 될까. 지난 겨울에 계획했던 것들은 잊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리스트를 세워야 할 시간이 시작된다. 아직도 펼치지 못한 <노랑무늬영원>은 책읽기 리스트에 처음으로 들어갈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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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12-31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며칠간 어떤 시를 찾겠다고 시집을 다 뒤졌는데 그때마다 자목련님 페이퍼가 보여서 완전 반가웠어요. 저도 한강 소설집 보고 싶은데 택배기사님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 새해를 넘기고 주문할 생각이에요. 2012년은 안녕하고 2013년에는 우리 더 잘 지내요. 사이좋게요^^

아직 겨울이 두 달이나 더 남았는데도 새해가 되면 꼭 봄이 성큼 다가온 것처럼 좋아요. 자목련님도 올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자목련 2012-12-31 23:45   좋아요 0 | URL
찾았던 시는 찾았나요? 사이좋게란 말이 이렇게 예쁘고 다정한 말이군요..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설레요. 우리들의 봄이 환하길 바라요.
아이님도 건강한 새해 맞으세요.^^

2012-12-31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31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루데이지 2012-12-3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자목련님♥새해엔 미소지을일만 있으실거예요^^

자목련 2012-12-31 23:55   좋아요 0 | URL
복을 나줘주셔서 고맙습니다.
블루데이지님, 우리 2013년에 함께 많이 웃어요!!

댈러웨이 2013-01-02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마음은 봄의 글에 오래 머물렀지만, 눈은 첫겨울의 책에 머물고 있어요. 그리고 자목련님 손 잡아 보고 싶어졌어요. 안녕요, 자목련님. 아, 보라보라한 라벤더 머리사진도 다시 환영요.

자목련 2013-01-04 13:43   좋아요 0 | URL
첫겨울의 책은 부끄러움입니다.

내린 눈들이 녹는 날들입니다.녹은 자리에 다시 눈이 내리겠지만 그러한 풍경을 마주하는 일상은 이 계절의 특권이겠지요. 휴대폰으로 그곳의 시간을 찾아봅니다. 분명 닿을 수 없는 먼 거리지만 예전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그.곳.

보라보라한 대문으로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