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을 위한 우산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5
빌헬름 게나치노 지음, 박교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삶은 때때로 경이롭다. 예측할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기이한 정도로 불행한 일들이 발생하기도 하고 놀라운 반전으로 회복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경이로움을 누구나 겪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제외한 삶에만 적용되는 듯 보여 절망스러울 때가 많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같은 행위일 뿐인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은 하루는 행복한 것이며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소망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빌헬름 게나치노의 『이날을 위한 우산』속 인물들도 그렇다.

 

 소설의 화자인  ‘나’ 는 마흔 여섯 살의 남자로 수제화를 신고 걸으며 테스터를 하는 직업을 가졌다. 과거에는 인터뷰 진행자로 활동했고 신문에 글을 쓰기도 했지만 모두 과거일 뿐이다. 현재는 구두 테스터로 받는 비용이 긴축재정이라는 이유로 줄어들고 일자리를 잃을 위기며, 진정 사랑하는 연인 리자는 약간의 생활비를 남기고 떠났다.

 

 내가 하는 일은 그저 구두를 신고 거리를 걸으며 이웃을 관찰하는 일이다. 같은 시각에 만나는, 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 옛 친구나 동료가 전부다. 거리를 청소하는 내외, 말의 털을 빗질하는 여자, 베란다에 빨래를 너는 노무자의 아내나, 유모차에서 잠든 아이를 보며 행복해하는 부모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제와 다른 어떤 사소한 변화나 발견에 놀라고 감탄하기도 한다. 나와 마주하는 그들도 역시나 유명했던 과거 이력을 지녔을 뿐이다. 그들은 모두 새로운 삶을 꿈꾼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는 오랜 친구 수잔네는 여전히 연극 무대를, 한때 사진작가였던 힘멜스바흐는 재기를 원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두 현재 자신의 삶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수잔네의 말처럼 말이다.

 

 ‘대중의 고통은 말이야, 수잔네는 말한다(그녀가 정말로 대중의 고통이라는 말을 쓰다니 놀랍다),불쌍하기 그지없는 그들 모두가 일생 동안 중요한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기인해, 이해하겠어?’ 78쪽

 

 정말 중요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고통스러울까? 어쩌면 그런 생각으로 위안을 받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와 인연을 맺는 사람이 모두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 누구와 마주하게 될지 모르니까. 소설에서 어쩔 수 없이 구두 테스터를 계속해야 하고, 벼룩시장에 구두를 팔아야 하는 주인공이 힘멜스바흐의 부탁으로 신문사에 연락을 했다가 다시 일을 하게 되고 수잔네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난 실패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한동안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그리고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삶을 계속 이어간다.’  158쪽

 

 우리는 어제를 살고 오늘을 산다. 그러니까 내일을 살 수는 없다는 말이다. 과거의 화려한 시절에 발을 담그고 살기도 할 것이다. 때로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기도 할 것이다. 넘어졌기에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고 뛸 수 있다는 걸 모른다. 그럴 때 누구나 삶을 원망할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기 전까지 말이다. 『이날을 위한 우산』은 그런 멋진 풍경을 선물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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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2-12-17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삶은 결코 순수한 우리 자신만의 작품은 아니겠지요...
* * *
삶의 궤적

자신이 지나온 길을 돌이켜볼 때 아깝게 놓쳐버린 여러 번의 행운과 스스로 불러왔던 여러 번의 불행을 떠올린다면, 그것이 '미로를 헤매듯 잘못 거쳐온 삶의 행로'(괴테, 《파우스트》1부, 헌사)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자칫 자신을 지나치게 질책하기 쉽다.

삶은 결코 순수한 우리 자신의 작품이 아니다. 삶은 두 가지 요인, 즉 일련의 사건과 우리가 내린 결정의 산물이다. 게다가 두 요인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제한되어 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일찌감치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예견하기는 더욱 불가능하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저 눈 앞의 사건과 현재의 결정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목표가 아직 멀리 있는 한, 우리는 그 목표를 향해 똑바로 나아가지 못한다. 다만 짐작으로 대충 방향을 잡을 뿐이다. 우리가 내린 결정이 목표점에 더 가까이 데려가주기를 바라면서, 주어진 상황에 따라 순간순간 결정내릴 뿐이다. 그러므로 주어진 상황과 우리의 기본 의도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주어지는 두 가지 힘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생겨나는 대각선이 바로 삶의 궤적이다. (쇼펜하우어)

자목련 2012-12-18 21:01   좋아요 0 | URL
전 <파우스트>를 읽지 못했는데, 장바구니에 담아둡니다.
oren님은 정말 깊은 독서를 하시는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