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의 연필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6
마누엘 리바스 지음, 정창 옮김 / 들녘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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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이라 불리는 모든 것들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단순하게 뜻을 같이 하고 동참하는 경우라도 그 순간, 삶을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사랑도 그렇다. 선택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겁내지 않는 이가 있다.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이 새겨진 붉은 색연필의 표지 목수의 연필에서도 그런 사랑을 만난다. 한 치의 균열도 찾을 수 없는 견고한 철옹성같은 사랑이라고 하면 맞을까.

 

 소설은 에스파냐 내전을 배경으로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삶에 대한 것이다. 의사인 다 바르카와 그의 연인 마리사, 그녀를 흠모하는 간수 에르발이 들려주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다. 책은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노인 다 바르카를 취재하기 위해 신문기자가 그를 방문하면서 시작한다. 혁명가이자 의사였던 그의 생은 항시 죽음과 맞닿아 있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에르발이 감시하게 된 이유는 마리사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마리사를 처음 본 순간부터 에르발은 사랑에 빠졌고 그녀가 다 바르카의 연인이라는 건 그에게 거대한 상심과 분노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다 바르카가 감옥에 있을 때 마리사의 면회나 물건을 전달해주는 일을 거부할 수 없었다.

 

 혁명가를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 바르카와 신념이 달랐던 마리사의 집안에서는 그를 반대했고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면서 사랑을 굽히지 않았다. 함께 한 시간보다는 지켜보는 시간이 더 많았을 사랑이다. 소설은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에브발의 목소리로 담담하게 담아낸다. 다 바르카가 감옥에서 만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에스파냐의 역사와 정치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조금 지루했고 어려웠다. 감히 내가 감옥이라는 공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동질감을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진 생의 마지막 순간을 집행해야하는 에르발에게 환청이 들리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자가 된 에르발이 자신이 죽인 화가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다 바르카와 마리사가 결혼에 이르기까지 에르발의 도움이 있었다. 다 바르카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그랬다. 사랑하는 여자의 남자를 감시하면서 그녀의 행복을 빌어줘야 하는 그 마음은 어땠을까? 세월이 흐른 뒤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을 기억하고 누군가에게 그들의 사랑을 전하는 일이다.

 

 난 그전에도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걸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무도 그 둘을 떼어놓지 못했어. 내가 마리사 마요와 다니엘 다 바르카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안 건 그때였지. 사실 그때까지 두 사람이 부부가 될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어. 소설에선 그럴 수 있어도 그 시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 그건 마치 향로에다 화약을 뿌려대는 짓이나 다름없었으니까.  164쪽

 

 신념대로 살아 온 남자와 그를 지지하며 사랑한 여자가 함께 늙어가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그 여자에 대한 욕망을 멈추지 못해 그들의 주변을 벗어나지 못한 한 남자의 삶은 얼마나 쓸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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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2-28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보았습니다.

혁명과 로맨스, 거의 불가분의
관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만 보니 제 리뷰는 전자에
더 비중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