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몇 주 전, 큰 언니와 나는 '이청준'작가에 대해 이런 저런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이청준'이라는 작가를 직접적으로 알게 된 것은 큰 언니때문이었다. 암투병중이라는 소식과 이번에 소설 집을 냈다는 대화를 나누며 얼른 병을 이겨내길 바란다는 소망을 함께 했다. 그의 소설에는 섬이라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 소설 중에 섬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어려운 소설임을 알지만 그래도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더 큰 생각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서 내심 뿌듯함이 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한 평생을 살아오는 사람들은 자신의 글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적지 않은 부담감을 안고 있을 꺼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왜냐하면 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허구로 꾸며진 이야기라고는 하나 그 안에 살고 있는 기구한 삶의 모습을 실제로 만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글이라는 것이 사회를 반영하고 사회를 담고 사회를 향한 거울이기에 작가로써의 소명의식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이 책에서 만난 글은 나에서 시작하여 우리를 만들어내고 동네와 지역사회를 만나 나라로 확장되어지고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다. 여태껏 살아낸 삶들이 꾹꾹 눌러 담은 밥그릇처럼 소북하게 담겨있다고 보면 맞을까.  '이청준'님이 한 평생 써놓은 이야기를 추억하는 듯한 4편의 에세이 소설도 담겨있어 독자로써도 무척 의미있는 책으로 남을 것이다. 그 안에서 '이청준'님이 쓰고 싶었던 글들과 써야만 했던 글들을 차례로 만나니 더욱더 '이청준'님의 어려운 글을 더 많이 읽어내지 못한 사실이 죄송스럽다.

그리움을 먹고 자란 돛단배는 전설이 되어 후세에 그 배(천년의 돛배)에는 꽃이 피고, 머나먼 타국의 바다에서 이어져 우리의 바다로 연결되는 그곳(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에도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들은 모두 전설적인 힘들을 품고 있다. 자신 스스로의 전설(지하실)이나 마을의 전설(이상한 선물), 나아가 나라의 알려지지 않은 아니, 제대도 알리지 않은 역사(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역시도 전설이 되어 신화가 되어 우리에게 전해짐을 느낀다.  

소설들을 읽어 내려오면서 나는 잠깐 잠깐 우리나라의 역사를 거슬러 기억해야만 했다. 88올림픽당시 깨끗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고속도로 옆으로 보이는 비닐하우스 촌을 무작위로 철거했다는 그런 내용이 왜 떠오르는 것일까? 상대의 눈이 아닌 직시의 눈이 아닌 내 눈으로만 보았기에 그러할지 모르겠다. [내 우정 자네를 탓하려는 게 아니라, 눈길을 바꿔 보면 세상 일이란 사람 따라 세월 따라 다 그렇게 달라보이는 법이여! 지난 일이 그리 소중하다면 내일 또 지난날이 될 오늘 일이 우리한텐 더 소중하니께 말여. [지하실]137쪽 ] 우리는 왜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런 사실들을 소설로 풀어 내려하는 작가 '이청준'님을 우리는 너무 잊고 있는게 아니었던가. 제목으로 쓰인 [그곳을 다시 있어야 했다]와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 두 소설에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모르고 있던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있다. 나라를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의 한과 슬픔을 우리는 이제 끌어안아야 한다. 비단, 소설 속의 멕시코나 우즈베이크 끝이 아니다. 세상 곳곳에서 내 나라 내 조국을 그리며 숨 쉬고 있을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고 후세에도 전해야 한다.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 그것은 순리이며 진리인 자연일 것이다. [섬들은 저희끼리 밤 이야기 위해 서로 다가앉는 것뿐이다. 섬들 가운데에 나는 없다...... . 그 섭리와 경이 앞에선 나 역시 숨죽이며 자신의 존재를 지워 없애야 했으니까. 그렇듯 차라리 절망스럽기까지 했으니까.[조물주의 그림] 263쪽]  임권택 감독과의 인연을 글로 담은 소설 [조물주의 그림] 속에서의 이 말이 제대로 내 안으로 들어와 박힐 날은 아마도 내가 몇 십 년을 더 살아낸 후가 되지 싶다. 

[신화를 삼킨 섬]을 출간할 당시에, 이 작품이 내 생의 마지막이라 했다는 말을 언니에게 전해 들었다. 이 책을 내면서도 어쩜 '이청준'님은 이 책이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르리란 생각이 스친다.  [혼자 가는길, 앞을 알 수 없는 길, 믿음이 없는 길...... .[귀항지 없는 향로] 279쪽] 문학에 대한 길을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감히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혼자가 아닌 많은 독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길, 신념으로 글을 쓰시는 그 길을 동행하고 싶어하는 많은 이가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다. 조금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괜찮으니 계속해서 '이청준'님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신이 들어주시길, 하루 빨리 병상에서 일어나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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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09-03-12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선물하려고 사요... 땡스~^^

자목련 2009-03-12 21:28   좋아요 1 | URL
좋은 분께, 좋은 선물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