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단장해드립니다, 챠밍 미용실
사마란 지음 / 고블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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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 사진 속 엄마의 얼굴은 흐릿했다. 겨우 찾아낸 사진이 그랬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고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큰언니의 영정사진은 멋지고 환했다. 큰언니의 취미 가운데 하나가 사진이었는데 출사를 다니며 찍은 사진이 많았다. 만약 엄마가 챠밍 미용실에 갈 수 있다면 엄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과 헤어를 해드리고 싶다. 이런 생각은 사마란의 소설 『영혼을 단장해드립니다, 챠밍 미용실』를 읽었기 때문이다.


“할머니 눈엔 내가 그냥 동네 미용실 아줌마로 보이지?”

그녀가 빙긋이 웃으며 할머니를 마주보았다. 할머니의 얼굴은 고단했던 일생이 그대로 담긴 듯 깊은 주름살이 패어있었다.

“할머니는 지금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존재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여긴 낮엔 산 사람들 머리를 해주지만 밤이 되면 죽은 사람들이 단장을 하러 오는 곳이거든. 산 사람 꿈에 들어가기 전이나 죽어서 저승에 가기 전에 들러 예쁘게 단장을 해. 할머니도 저승 가기 전에 예쁘게 하고 가.” (112쪽)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챠밍 미용실’은 죽은 사람을 단장해 주는 미용실이다. 낮에는 산 사람을 상대하고 밤에는 죽은 자를 만난다. 그게 가능하다고? 원장 챠밍이라서 가능하다. 챠밍은 이런 일을 500년 동안 해왔다. 죽은 사람을 보는 건 물론이고 고양이와도 말을 나룰 수 있다. 챠밍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 걸까. 그녀는 혹 귀신이나 구미호가 아닐까. 그러나 작가는 챠밍에 대해 함구한다. 그냥 그런 존재라고 나중으로 미룬다. ‘도깨비 복덕방’의 사장도 챠밍과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만 슬쩍 흘린다. 소설은 챠밍 미용실에 방문하는 죽은 자의 사연이나 원한 같은 단순한 에피소드의 나열이 아닌 호러이면서 판타지인 세계로 안내한다.


챠밍은 죽은 자를 단장해주고 그들에게 구슬을 받는다. 구슬은 챠밍에게 깊은 잠을 안겨준다. 죽은 자와 챠밍은 서로가 서로를 돕는 존재인 것이다. 도깨비로 통하는 복덕방 사장은 챠밍과 판(신) 연결하는 존재다. 챠밍이 요즘 꾸는 이상한 꿈 때문에 도깨비에게 신과 만나기를 요청한다. 판은 쉽게 챠밍을 만나 주지 않는다. 챠밍과 도깨비에 이어 웹툰을 그리는 의명이 현월동으로 이사 오면서 소설은 한층 더 재미를 더한다. 도깨비 복덕방의 소개로 이사 온 빌라에서 집밥을 먹고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란 계획은 한순간 무너졌다. 고물과 쓰레기로 가득 찬 1층 할아버지와 그 집 손자의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서 신경은 예민해졌고 기이한 꿈까지 꾼다. 거기다 편집장은 그림이 이상해졌다고 말한다. 참다못한 의명은 이 모든 게 1층 때문이라고 여기고 망치를 들고 1층을 찾는다. 그런데 그곳엔 할아버지와 손자는커녕 할머니의 시체만 있었다. 의명이 보고 들은 건 무엇일까? 당신이 생각하는 게 맞다. 의명은 죽은 자를 보는 사람이었다.


의명은 도저히 그런 빌라에서 살 수 없었다. 자신이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모른 채 부랴부랴 집을 나와 본가로 향한다. 그림 그리는 걸 못마땅해하는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갈 수밖에 없다. 트렁크를 끌고 가는 도중에 한 남자와 부딪혔지만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가 판이라는 걸 의명은 알 리가 없다.


소설은 챠밍과 도깨비에 이어 의명이 합류하여 죽은 자를 안전하게 저승으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과정을 들려준다. 죽은 자만이 아니라 현월동 사람들의 고민과 걱정을 함께 풀어간다. 학폭에 시달리지만 아빠에게 말할 수 없는 만규, 그런 만규를 괴롭히는 석훈의 사정, 어린 나이에 결혼해 평생을 자식 뒷바라지만 해온 슈퍼 할머니를 도와주고 위로한다. 그리고 궁금했던 챠밍과 도깨비의 사연도 공개된다.


소설 속 현월동의 모습은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동네다. 낡은 빌라, 편의점이 아닌 동네 슈퍼, 부동산이 아닌 복덕방이 있는 곳이다. 친근하다 못해 개발이 필요한 곳, 뭔가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지만 벗어나고 싶은 동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고단한 삶과 외로운 죽음을 조명한다.


저승으로 가기 전 단장한다는 설정과 죽은 자를 보는 능력은 드라마 〈야한(夜限) 사진관〉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이 소설도 드라마화되면 좋을 것 같다. 오싹한 공포와 오컬트를 좋아하는 이라면 만족도가 높을 소설이다. 더위를 날려 줄 재밌는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영혼을 단장해드립니다, 챠밍 미용실』 을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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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7-10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엄마는 독실한 불교 신자라 회색 법복을 입은 자신의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써 달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그 사진이 너무 칙칙해 싫더라고요. 근데 당신이 원하시니 그때 사용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죽으면 뭔가 다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영정 사진만큼은 늙은 모습이 아닌걸로 사용하고 싶어요^^

자목련 2024-07-11 16:12   좋아요 1 | URL
문득, 신자들이 입는 법복은 색상이랑 디자인이 다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정 사진이란 말만 들어도 먹먹해집니다.
말씀처럼 죽으면 그만이니 남겨진 이들이 어떤 걸로 결정할지 알 수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 죽음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