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으로 새우볶음밥을 먹었다. 간편조리용으로 나온 새우볶음밥을 먹고 진한 커피를 마셨다. 황사의 기운이 걷히니 맑은 하늘이 보였다. 봄이구나, 봄이었어. 그런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 봄을 즐길 기운은 없다. 3월이 끝나고 내일부터는 달라진 봄을 느낄 것 같다. 4월이니까. 4월은 그런 달이다.


봄이니까 봄을 읽어야지. 그래서 『소설 보다: 봄 2024』를 샀다. 올해부터 가격이 인상되었다. 여름부터는 고민하게 될 것 같다. 아무튼 그리고 이장욱의 시집 『음악집』 도 샀다. 최근에 읽은 소설 영향이 크다. 이장욱의 소설을 읽고 나서 신간 시집이 나온 걸 알았고 나는 시집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 시집을 읽지 않을지도 모른다. 읽지 않은 많은 시집들처럼.





그렇다면 나는 왜 시집을 사는가. 시집을 사며 시집을 사는 사람이라는 허세를 키우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먼 기억 속 선물 받은 시집을 읽던 나를 기억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한 권의 시집 전체를 다 읽지 않더라도 시집을 꺼내보고 시집을 읽기는 할 테니까. 우선 이장욱의 시집에서 이런 시를 읽는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영원을 잃어버렸다.

자꾸 잃어버려서 믿음이 남아 있지 않았다.

원래 그것이 없었다는

단순한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이제 달리지 않고 누워 있다.

목적지가 사라진 풀밭에 자전거를 버려두었다.

바퀴의 은빛 살들이 빛나는 강병을 바라보며

이제 불가능해지는 일만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였다.


풀밭에는 아주 작은 음악들의 우주가 펼쳐져 있고

그것을 아는 것은 쉽다.

진실로 그것을 느끼는 것은 모로 누운 사람들뿐이지만

누구의 왕도 누구의 하인도 아니어서

외롭고 강한 사람들뿐이지만


은륜이 떠도는 풍경을 바라보면 알 수 있는 것

햇빛에도 인과관계가 있고 물의 일렁임에도 인과관계가 있고

달려가다가 멈추어 서서 문득 잔인한 표정을 짓는 일에도

원인과 결과가 있겠지만


오늘은 기도를 하지 않아서 좋았다.

매일 명확한 것들만을 생각하였다.

나의 풀밭에서 부활하려고 했다.

거대한 존재가 내 곁에 모로 누워 있기라도 한 듯이 사랑을 하려고


석양이 내리자

아무래도 나를 바라보는 이가 보이지 않아서

텅 빈 주의를 둘러보았다. (「인과관계가 명확한 것만을 적습니다」, 전문)


문득, 오늘이 부활절이라는 게 생각났다. 그러니까 나는 부활절 예배를 드리지 않았고 기도를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목사 님의 말씀을 유튜브로 듣다가 자꾸 끊겨서 그만두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는 달걀과 떡과 커피를 마셨다. 부활절이라는 건 모른 채. 아무튼 내일은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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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03-31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장욱 인용해주신 시 참 좋네요. 작가 소설을 언젠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부활절이었군요. 저도 잊고 있었습니다.

자목련 2024-04-01 10:12   좋아요 0 | URL
블랑카 님이 좋아해주시니 좋습니다!
봄이에요, 4월에는 부활의 기운이 넘쳐나면 좋겠습니다^^